푸른새벽 한희정 잔혹한 여행

 

푸른새벽 한희정 잔혹한 여행

향기가 난다.

일본의 향기. 런던에 갔을 때도, 처음엔 런던의 향기가 났다.
그것이 이 1년 동안 완전하게 익숙해져버려, 향기라고도 느끼지 못하게 되고 말았지만, 이렇게 일본에 돌아오니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런던과 일본은 향기가 다르다. 그리고 이 향기야 말로 우리들의 향기라는 것을.

「돌아왔구나」

새파랗게 개인 하늘 아래, 나는 그리움에 가슴 가득 일본의 공기를 들이쉬었다. 한여름의 일본의 향기, 고향이 몸 안에 가득 들어찬다. 아아, 돌아왔다구.

「그래, 이 엄청나게 짜증나는 더위. 틀림없이 일본의 여름이야」

「저도 일본의 여름은 처음이 아닙니다만, 이건 역시 좀……」

「일본이 열대였다는 것은 조금도 몰랐어요」

그런데도 이 아가씨들은 불평불만인 듯. 뭐, 확실히. 나 역시 습도는 80%, 기온은 37도는 어떻게 된 거 아닌가 생각하지만.

정의의 사자
「최강의 마술장이」 – Emiya Family- 제6화 전편
Heroic Phantasm

「뭐야, 일본에 돌아온 감동은 못 느끼는 거야?」

「그야 있지, 1년 만에 맛보는 이 더위의 감상이라니, 엄청나고말고」

냉방이 되는 공항의 로비에 굴러들어와 간신히 되살아난 토오사카가 대답했다. 거진 반은 녹아내리는 듯 했지만, 역시 일단은 익숙해져 있는 탓인지 제일 회복도 빨랐다. 그러고 보니 작년 여름은 이미 런던이었었지.

「이 더위에 보딕 브릿지도 없다니. 이 공항은 무슨 생각으로 설계된 것인가요?」

평소의 기운은 어디에 치워뒀는지 맥이 빠져 힘이 없는 루비아양의 목소리. 터미널에 너무 가까운 탓에 버스도 없고 단거리인 탓에 걸어가는 건 피할 수 없을 듯하다. 뭐, 국제공항이라 해도 여긴 지방공항. 분명히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이 있다.

「그리스에서 더위에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었습니다만……」

이쪽도 드물게도 숨을 몰아쉬는 세이버. 그야 그리스는 건조했었으니까. 왠지 금붕어 같은 호흡인데. 괜찮은거야?

―――주인이여, 이것이 노천 욕탕이라는 것인가? 설마 노천 사우나가 있을 줄은 몰랐다.

아냐, 랜스. 이게 일본의 여름이라는 녀석이다.
우리 안에서 흠뻑 젖은 날개의 랜스. 수화물이 아니라 그냥 화물 취급했던 것이 잘못되었던 것인지, 화물 창고에서 말린 고기가 될 뻔 했던 랜스를 황급히 물을 뿌려 되살아난 참이다.

「원 참, 이제부터 전차에 타지 않으면 안된다구. 이런 곳에서 늘어져도 되는 거야?」

「아, 그거 패스」

축 늘어진 셋과 한 마리를 앞에 둔 나의 불평에, 토오사카씨는 마치 교사의 앞에 선 학생처럼 손을 들고 태연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패스라니 뭐가?」

「패스는 패스야. 이제부터 전차에 타봐야 짜증만 날 뿐이고. 국제공항에서 마중을 부탁했으니까, 시간적으로 보면 이제 슬슬 도착할 때야」

「마중? 누가?」

「나다」

한순간, 한여름의 빛으로 충만했던 로비의 해가 어두워진다. 뭔가 하고 돌아보니, 그곳에는 시커먼 법의를 두른 암석. 아니…….

「신부님…… 토오사카! 너 신부님을 부른 거야?」

「에미야군, 신경 쓸 것 없네. 이것도 업무의 일환이니까. 그건 어쨌든, 잘 돌아왔네. 상당히 훌륭하게 자란 것 같군」

팡팡, 하고 속 시원하게 나의 어깨를 두드리는 바위…… 같은 신부님. 자, 잠깐! 쓰러져요, 쓰러진다니까요!

「다녀왔습니다, 신부님. 1년간 감사했습니다」

아까까지 축 늘어진 모습은 거짓말처럼, 휘까닥 내숭을 부리는 토오사카. 반할 정도로 훌륭한 인사다. 얼굴의 땀만 닦으면 말이지.

「토오사캬양도 건강해 보이는군. 에미야군에게도 말했다시피 신경쓰지 않다고 된다네. 이것도 일이니까. 단지 되도록이면 런던에서 떠나기 전에 연락해 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랬으면 여러 가지로 준비도 가능했을 텐데」

그 토오사카에게 신부님은 온화한 미소로 응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슬슬 내 어깨에서 손을 떼어주시지 않으려나. 이대로라면 멍이 들을 것 같은데.

이 바위같은 신부님은, 코토미네의 대행으로서 교회에서 파견된 신부님이다. 처음엔 단순한 대행이었지만, 그대로 협회(시계탑)에서도 인정을 받아 휴우키 교회에 정식 신부로 부임되었다. 물론, 그냥 신부는 아니다. 코토미네와 똑같이, 때가 오면 성배전쟁의 입회인으로도 일하는 성마(聖魔) 양 방면에서 뛰어는 대행자급의 강자다.
뭐, 그것도 보면 알 수 있듯이, 분명히 60은 넘었을 터이지만, 머리카락은 아직도 검고, 몸으로 말하자면 무차별급의 격투가를 한손으로도 꺾을 수 있을 듯한 근육질이다. 네모 반듯하다니까…….

「격조했습니다, 신부님」

「아아, 세이버님인가, 오랜만이군요」

처척 악수하는 사자와 거상(巨象). 하지만 그렇게 말은 하면서도 신부님은 희미하게 미간을 좁혔다. 어라?

「무슨 일 있었습니까?」

「아니, 알고는 있는 일이다만, 조금도 성장하지 않았군. 밥은 잘 차려먹었는가?」

「변함 없으시군요, 신부님도」

씨익, 웃고는 꾸욱 손을 잡고 흔드는 세이버. 관자놀이가 조금 움찔거리는 건 애교.

「흠, 성장은 하지 않았지만 힘은 넘치는군, 이거 참」

그 손의 중압을 참으로 즐겁다는 듯이 껄걸 웃으며 넘기는 신부님. 아니 정말 훌륭해, 나였다면 손바닥이 부서졌을 거야…….

「시로우, 저 분을 소개해 주시지 않겠나요?」

그런 화기애애한 우리들에게, 루비아양이 토오사카랑 똑같이 내숭을 떨며 말을 꺼냈다. 고개를 약간 기울이며, 소개를 부탁해요, 라고 나에게 귀엽게 웃었다.

「아아, 그「이쪽은 루비아. 루비아젤릿타·에델펠트양이에요. 신부님도 이름 정도는 알고 계시죠?」」

허나, 내가 소개하려던 참에 토오사카가 재빠르게 끼어들었다. 우와아, 서로 웃으면서 엄청나게 노려보고 있어. 부탁이니까 일본에 와서까지 싸우지 좀 마. 적어도 지금만은 말야…….

「아, 그 에델펠트 가문의 따님입니까. 소문은 전부터 듣고 있었습니다」

옆에서 불어 몰아치는 폭풍같은 두 사람은 조금도 신경쓰지 않고, 신부님은 바위와도 같은 몸을 굽혀 훌륭하게 인사로 답한다. 역시, 이 사람도 보통 사람이 아냐.

「감사합니다, 신부님. 좋은 소문이었다면 좋겠습니다만」

「오오, 좋은 소식이고말고요. 올해 차석을 토오사카양과 두 분이서 나누었다고요, 정말 훌륭합니다」

빠직

어랄라, 말해버렸군. 두 사람 다 웃음을 띄운 채 굳어버리고 말았다. 핏줄이 삐져나오는 것은 숨기고 있지만, 미쳐 숨길 수 없는 오라를 풍기고 있었다. 신부님 쪽은 조금도 악의가 없다는 점에서 더더욱.

「가, 감사합니다, 신부님. 덕분에 미스 토오사카는 일평생 교우를 나누게 될 것 같군요」

「그건 이쪽 역시 마찬가지예요, 미스 에델펠트. 각자 마지막까지 경쟁해 나갈 것 같군요」

둘 다, 이 녀석의 장례식에만은 기필코 참석해 주겠어, 라고 말하는 표정으로 우아하게 미소지었다.

「자, 이렇게 서서 이야기 하는 것도 좀 그렇군. 차에서 계속하지 않겠나」

그런 수상한 웃음들을 미소지으며 바라보다, 신부님은 토오사카에게 괜찮겠지, 하고 눈짓하고 모두의 짐을 짊어지고 앞으로 나섰다. 이 이상 이야기가 계속되었다간 분명히 이야기가 마술쪽으로 간다. 온화하게 뭐라뭐라 말했어도 확실하게 알고 있다는 건가.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요?」

거의 버스같은 크기의 UBV. 그런 신부님의 차에 타자, 토오사카가 안색을 바꾸었다.

「아니, 이 1년간은 근심없이 보냈다. 단지」

「올해 봄에 마토우가에서 은거하던 분의 장례식이 있었다」

「그 지하실 할아범이? ……그렇게 간단히 돌아가시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꽤나 놀랐는지, 토오사카 녀석이 아무런 사심없이 대답했다. 잠깐, 마토우?

「그 은거한 사람. 마토우라고 했는데, 사쿠라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건가?」

나의 말에 토오사카와 신부님이 얼굴을 마주보았다. 흠, 하고 한번 헛기침을 한 신부님이 이야기를 시작하려 했지만, 그걸 제지하고 토오사카가 설명해 주었다.

「그러고보니, 시로우에게는 자세히 설명을 해주지 않았구나. 마토우가 마술사의 집안이라는 건 말했었지?」

「오우, 그건 들었었어」

그 때문에, 신지는 길을 잘못 들었다. 성배전쟁과는 관계없었다고는 해도, 사쿠라 역시 그 사실로 가슴아파 했었고.

「그 은거한 사람이 마토우 가의 당주였어. 지하실에서 틀어박혀서 나도 만난 적은 없었지만, 소문에 의하면 몇 백 년이나 살아온 능구렁이. 하지만 이걸로, 마토우가는 진짜 옛 마술사의 가문이 되어버렸어」

그랬던 건가, 나도 사쿠라와 신지의 집에는 몇 번이고 놀러갔었지만, 그런 할아버지가 있었다는 사실은 눈꼽만큼도 눈치채지 못했었지.
육친이 죽은 것은 슬프지만, 이걸로 사쿠라와 신지가 마술사의 집이라는 주박에서 풀려날 수 있다면 이 이상 가는 일은 없다. 그런데 몇 백 년? 런던에서도 마술사라고 하는 자들은 백년 이상 살았다고 하는 연령불명의 사람들이 많았었지만, 정말 황당무계한 이야기군.

「사쿠라에게 애도를 표해야겠는데」

「그래, 사쿠라와도 한번 확실하게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어……」

토오사카도, 무언가 생각에 빠진 듯한 표정이 되었다. 그 조금 미묘한 표현이 마음에 걸렸지만, 너무나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토오사카에게 되묻기는 꺼려졌다. 토오사카가 하는 일이다, 정말로 필요한 일이라면 이야기해 주겠지.

「그 일에 대해서다만…… 아니, 좀 진정되고 나서 해도 괜찮겠지. 어쨌든 후유키로 갈까」

공항에서 고속도로와 국도를 번갈아 타며 약 2시간, 문득 공기가 변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후유키로군요」

그때까지 토오사카와 변함없이 “친밀함을 담은 헐뜯기”를 하고 있던 루비아양이, 감탄한 듯이 중얼거렸다.

「흐응, 역시 알겠어?」

「물론 알 수 있지요. 극동이라 해도 바보취급은 할 수 없겠군요. 이 정도의 영맥(靈脈)은 그리 없으니까요」

「보통 그런 반응이지. 그런데도 이녀석은 눈치채지도 못했어」

「지, 지금은 알 수 있다구」

뭔가 묘하게 차례가 돌아왔다. 그야 일본을 나갔을 때는 거의 차이 따위는 못 느꼈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확실하게 파악되었다. 후유키는 특별한 토지다. 특이 이곳에서 자라고, 아마도 이곳에서 살아갈 나에게는 이 토지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한층 몸이 가벼워진 듯한 느낌마저 든다.

「뭐, 그건 제쳐두고」

토오사카는 나의 쓸데없는 저항을 깨끗하게 비껴내고, 표정을 바꾸었다. 빈틈없이 등을 곧게 피고 루비아양에게 정면으로 마주본 다음, 살짝 손을 잡고 인사하였다.

「어서 오십시오, 나의 영지에, 루비아젤릿타·에델펠트님. 나의 손님으로서, 이 바람은 부인의 가슴에 충만하고, 이 강은 부인의 목을 적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햇빛은 부인을 널리 비춤에, 이 땅에서 부인은 편안한 잠자리에 들 수 있음을 약속드립니다」

그것에 응해 루비아양도 다른 한 손을 겹쳐, 우아한 동작으로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환영에 감사드립니다, 린·토오사카님. 이 땅의 모든 것은 부인의 혈육, 저는 부인의 허락 없이 당신을 상처 입히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 있는 한 부인의 가족은 저의 가족, 당신에게 칼을 들이대는 자가 있으면 함께 싸워, 승리도 패배도 함께 할 것을 약속하겠습니다」

크다고는 하지만, 차 안은 좁다. 그런 좁은 차 안에서 두 사람은 서로 우아하게 인사를 나눈다.
이것은 간소하지만 약속이다. 다른 마술사의 “관리지”에 들어가 그곳에서 활동하기 위한 마술사의 정식 의례. 이 안에서도 이것이 최상급의 예다. 일시적이라고 해도, 이 순간부터 두 사람은 주(呪) 적으로는 혈족(자매)가 되었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아, 나는 괜찮은 건가?」

그곳에서 문득 깨달아, 일단 나도 물어보았다. 여하튼 바로 하자면 나는 비허가 무단 마술사, 토오사카에게 정식적인 인사 역시 한 일이 없을 터.

「시로는 됐어. 내 제자니까. 내 일부같은 거지」
「시로우는 괜찮아요. 저의 종자이니까, 저의 일부같은 것이지요」

조금도 주저않고 두 사람에게서 거의 동시에 대답이 돌아왔다. 순간 서로를 노려보는 두 사람, 어어이, 자매싸움은 안 된다구.

「거리의 풍경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군요」

그런 두 사람의 싸움을 평소의 일처럼 신경쓰지 않고, 어딘가 즐거운 듯이 주위의 풍경을 랜스에게 설명하고 있던 세이버가, 그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꽤나 변한 곳도 있는 것같아. 저기, 베르데가 없어지고 영화관이 생겼어」

「그렇군요, 역 앞의 이탈리안 레스토랑도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대신 들어온 가게가 페스트 푸드점이라니……」
왠지 엄청나게 아쉬운 듯하다. 왜지?

「저기 가게? 잘도 기억하고 있었네」

토오사카가 가리킨 끝에는, 좁은 골목에서 조금 들어간 곳. 정말이다, 저런 작은 가게를 차 안에서 잘도 찾았구나.

「예. 그 가게의 뷔페요리는 일본에 돌아왔을 때의 즐거움 중 하나였습니다」

아, 과연. 혹시 세이버 때문에 파산했을지도…….

「꽤나 깔끔한 거리이긴 하지만, 그다지 재미있을 것 같지는 않군요」

이쪽은 루비아양. 나무와 대나무, 진흙으로 지어진 빌딩이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었는데, 라며 조금 유감인 듯.

「언젯적 이야기야……」

아니, 정말로. 하지만, 쿄토京都나 나라奈良 근처까지 가면…… 한번 일정을 짜볼까? 모처럼이니까 관광 정도는…….

「미야마深山에 들어가면 조금은 있을 거야, 특히 시로네 집은 루비아가 말한 나무랑 대나무랑 진흙 집이니까」

분명히 그렇긴 하지만, 토오사카. 조금만 더 말을 가려서 해주지 않겠어? 루비아씨도 그렇게 기대로 눈을 빛내지 말아주겠습니까? 그렇게 훌륭한 것도 아니라니까요.

「아……」

그런데, 이곳에서 나는 시선의 구석에 익숙하지 않은 건물을 보고선, 무심코 목소리를 내고 말았다.

「왜 그래?」

「아니, 무사히 지어졌구나, 저거」

「저거? 아아, 그렇게 보이네. 잘도 지었구나」

우리들이 나란히 감탄의 목소리를 터트린 것은, 시선에 끝에 있는 수 십 층은 되어 보이는 호텔이었다. 분명히 센트럴파크 호텔이라든가 뭐라고 했었지.
특별히 신토에 고층 호텔이 있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문제는 이놈이 세워진 장소다.
구 후유키 중앙공원. 이 건물이 세워져 있는 곳은, 그 대화재. 전전 성배전쟁이 끝을 맺었던 장소인 것이다.
전회의 성배전쟁 후 곧바로 건설이 시작되었지만, 정말로 잘도 저런 곳에 호텔 따위를 지은 것이다.

「자, 그럼, 다리를 건너면 토오사카 저택도 코앞이다. 긴 여행으로 지쳤을 테지. 오늘은 하루종일 집에 있을 텐가?」

그런 신토의 풍경을 뒤로하고, 큰 다리를 건너려던 참에 신부님이 물었다. 겉보기완 다르게 안전운전이었구나. 운전의 난폭함은 체중과 반비례하는 걸까?

「그것 말인데요, 신부님. 에미야 저택(시로네 집)으로 가주시겠어요?」

「괜찮겠어, 토오사카?」

「괜찮아. 토오사카 저택(우리 집)에서 누가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

조금 놀라고 있는 나에게, 역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는 집으로 가는 쪽이 좋지 않겠어, 라며 토오사카가 조금 수줍어하는 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사쿠라와 후지무라 선생님이 기다리고 있잖아?」

「연락은 하긴 했지만……」

차분하게 이야기는 했지만, 토오사카를 따라 런던에 갔던 것은 말하자면 내 독단이었다. 기다리고 있어 주리라 말할 수 없다.

「기다릴 걸」
「기다릴 겁니다」

허나 내가 말문이 막힌 순간, 토오사카와 세이버에게 태클이 걸렸다. 둘 다, 시로가 돌아오는데 그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 리가 없잖아, 라는 얼굴로 쓴웃음 짓고 있었다. 그럴까? 하지만 그랬으면 기쁘겠지만.

「어떤 분인가요, 그 두 분은?」

「시로의 후배와 후견인. 일본에 가겠다고 정했을 때에 말했었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오는 루비아양. 토오사카의 대답에, 아아, 과연, 이라는 얼굴로 끄덕이고 있었다. 응? 뭔가 이상한 눈초리인데?

「알겠다. 그럼 에미야 저택으로」

신부님은 그런 우리들의 결론을 미소를 지으며 받아들이고, 에미야 가(우리 집)으로 향해 핸들을 꺾었다.

「미안, 이 차로는 여기까지다」

정문까지 조금만 더 가면 되는 언덕 중간에서, 신부님은 차를 멈추고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뭘까하고 생각해 앞을 보니, 과연, 문에서 좀 떨어진 앞에 검은 차가 세워져 있었다. 평범한 차라면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겠지만, 이 버스 크기의 차로는 무리라는 거군.

「뭐야? 저 콜벳. 방해되네」

「타이가의 차가 아닐까요? 면허를 땄다고 들었습니다만」

「후지 누나의 면허는 전동기야. 차 면허를 땄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어」

제일 먼저 후지 누나에게 스포츠카라니, 완전히 흉기다.

「짐은 내가 현관까지 옮기지」

공항에서와 똑같이 신부님이 4개의 트렁크를 가볍게 짊어지고, 우리의 만류를 일언지하에 거절한 다음 우리들을 재촉했다. 결국 그 말에 따라 우리들은 담장을 따라 에미야 저택(우리 집)까지 가기로 하였다.
그렇게 한가하게 완만한 고개를 올라가면, 시대착오적일 정도로 훌륭한 대저택의 문이 보인다. 아아, 조금도 변하지 않았구나.

「돌아 왔구나」

――이곳이 주인의 성인가.

랜스는 이제 슬슬 괜찮겠지, 라며 세이버의 손에 있던 우리를 스스로 열어 재끼고 날아올라 한번 울었다.

「아아, 우리 집이다. 다녀왔어. 그리고……」

나는, 뒤에 따라오는 토오사카 일행에게 돌아보았다.

「어서 와, 우리 집에」

「다녀왔어, 아아, 지쳤다」

「지금 막 다녀왔습니다. 역시 이곳은 그립군요」

그런데도 이 두 사람, 신부님께 감사합니다, 라고 정중하게 인사하고, 집주인은 무시하면서 거침없이 문으로 들어갔다.
젠장, 그럼 루비아씨에게 안내를…….

「어머나, 정말로 나무와 대나무와 진흙이군요. 멋져……」

눈을 빛내며 대문을 주시하고 계시는 군요. 아니, 기뻐해 주는 것은 고맙지만, 그건 아니라니까…….

「자, 그럼 에미야 군. 이 뒤는 맡겨도 괜찮겠나?」

그런 나에게, 끝에서 따라오던 신부님이 수고하는군, 하며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아아, 사람의 정이 가슴에 사무친다. 어깨에도 멍이 사무치지만.

「예. 짐도 그리 많지는 않으니까요」

「흠, 분명히. 생각 외로 적은 짐이었다」

신부님은 가볍게 짊어진 짐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쳐다보면서 중얼거렸다. 아니, 혼자서 들기에는 지나치게 충분할 정도로 큰 짐입니다요.

「우리들은 그리스에서 곧장 왔으니까요. 런던에서 보낸 짐은 내일 토오사카네 집에 도착하도록 손을 써두었죠」

「과연, 그럼 저렇게 큰 차를 빌릴 필요는 없었군」

신부님은 짐을 내려놓으면서,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고 이런이런, 하며 쓴웃음 지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일부러 불러내기까지 하고.

「그럼 나는 교회로 돌아가겠네. 무슨 일이 있다면 사양말로 교회로 오게나」

「예. 오늘 감사했습니다」

이것도 일이라네, 라며 신부님은 손을 흔들고, 그 커다란 몸을 차에 실은 다음 떠나갔다. 고맙기는 하지만, 신부님이 바뀌어도 그 교회에는 가기가 힘들다. 알고는 있지만 말이지.

「시로, 빨리 와」

그런 생각을 하며 신부님을 전송하고 있자니, 토오사카가 재촉했다.

「오우, 지금 갈게, 토오사카」

어쨌든, 이리하여 나는 1년 만에 우리 집에 돌아왔다.

「어서 오세요, 선배님」

「다녀왔어, 사쿠라」

사쿠라가 맞이해 주었다.
옛날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웃음으로, 옛날보다 조금 성장한 사쿠라가 맞이해 주었다.
왠지 안심되었다. 런던에서의 일상도 꽤나 익숙해 졌지만, 보통 일상이라는 건 그렇게까지 피 냄새 풍기는 것이 아니라, 이 사쿠라의 방긋 웃음을 말하는 거지…….

「다녀왔어, 사쿠라. 건강해 보이네」

「다녀오셨어요, 토오사카 선배님. 변함 없으시네요」

「오랜만입니다, 사쿠라」

「세이버씨도 정말로 변……한 것이 없으시네요」

「시로. 현관 한가운데서 멍하니 서있지 마. 뒤에 사람이 있잖아」

「저기, 선배님. 손님께서도 계십니다만……」

「아아, 이 녀석 말이지. 저어기 학교에서 질긴 인연을 맺은 루비아라는 녀석. 잠시 동안 집에 놔둘 거야」

「……린, 저 일본어는 이해할 수 있어요」

「어머나, 이거 실례. 사쿠라, 이 분은 루비아젤릿타·에델펠트, 런던에서 다니던 미대의 동급생이야. 잠시 동안 우리 집에서 일본에 체재할 예정이라, 잘 부탁해」

「사쿠라 씨라고 말씀하셨지요, 이런 선배를 가지게 되다니 정말로 딱하시군요. 상당히 학대받지는 않으셨는지? 하지만 괜찮아요, 이제부터는 제가 편이 되어드리겠어요」

「에, 예…… 자, 잘 부탁드립니다」

한순간에 평범한 일상을 질풍노도처럼 박살내시는 군요, 모두들.
젠장, 조금 정도는 평범한 일상에 잠기게 해 달라구. 사쿠라가 떨고 있잖아.

「미안, 사쿠라. 어쩌다보니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녀석들을 데리고 와서」

「에? 예……아, 아뇨! 서, 선배님 댁이니까, 어떤 손님이라 하더라도 선배님의 손님인걸요. 제가 무어라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뭐랄까, 사쿠라도 이 분위기에 휩쓸려 버렸는지 하는 말이 횡설수설이다.

「어쨌든, 모두들 들어와. 사쿠라, 거실에서 괜찮을까?」

「아, 예. 거실은 깨끗하게 정리해 두었으니까요」

너희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라며 노려보는 토오사카. 시로우도 집에 돌아오니 꽤나 잘 말씀해 주시는군요, 라며 삐친 루비아 양. 사쿠라, 미안합니다, 저로서도 역부족입니다, 라며 허리를 숙이는 세이버. 그런 소란스러운 일행을 데리고, 나는 거실까지 앞장서기로 하였다.

「선배님, 죄송해요. 이제 막 돌아오셨는데 도와주시게 만들고」

「아냐, 괜찮아. 우리 집이니까 사쿠라에게만 신세를 지면 안 되잖아」

사쿠라의 미안하다는 말에, 나는 차를 타며 대답했다. 다과는 칡 만쥬, 일본의 여름에 어울리는 시원한 과자다. 이런 것을 보니, 역시 일본에 돌아온 거구나, 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리고, 지금 저 녀석들에게 있는 것보다 훨씬 안정돼」

나는 한숨을 억누르며, 거실의 상황을 지켜보았다.

「일본어를 모른다고 생각해서 꽤나 훌륭한 말씀을 하시더군요」

「조금 솔직했을 뿐이잖아. 그것보다 뭐야, 사람을 시누이 취급하고」

「어머나? 제가 알고 있는 린·토오사카에 대해 솔직하게 감상을 말했을 뿐인 걸요」

「서로 한번 쯤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지 않으면 안 되는 모양이네……」

「동감입니다……」

어어이, 둘 다, 내숭은 어디다 버린 거야?

「왠지 토오사카 선배님이 두 사람 돌아온 것 같네요」

그런 거실의 상태를 어딘가 기쁘다는 듯이 바라보는 사쿠라. 그런가, 사쿠라는 토오사카의 내숭을 간파했다는 건가. 꽤나 예리하군.

「좋아, 다 됐다. 그럼 사쿠라, 다과 가지고 와줘」

「예, 선배님…… 어머나, 하나 많은 데요」

「하나 많아?」

아, 정말이다. 차도 다과도 하나 더 쓸데없이 준비해 버렸다. 어째서지……?

어라? 뭔가 잊은 듯한데.

………….

…….

뭐, 됐어. 생각나지 않는 것은 분명히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닌 거겠지. 다과 2인분 정도는 세이버가 있으면 괜찮을 테고.

「그럼 가자. 루비아 씨도 확실하게 소개하고 싶으니까」

「토오사카 선배님의 친구분이시죠?」

「그것도 있지만, 내가 알바하고 있는 곳의 주인이기도 해」

「헤에, 네코 씨 같은 건가요?」

「아~, 조금 다른가?」

나는 조금 멈춰 서서, 사쿠라에게 루비아 양과 알게 된 사정을 설명했다. 물론, 마술에 관계된 이야기는 뺐지만, 그걸 빼고 나서도 꽤나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되었다.

「선배님……」

대강 이야기를 끝내려던 참에, 미묘하게 공기가 변해있었다. 사쿠라는 약간 고개를 숙인 채, 미묘한 압력을 자아내었다. 묶여있지 않은 오른쪽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려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왠지 납량특집 같달까…….

「선배님은, 토오사카 선배님이 좋아서 런던에 가셨던 게 아니었나요?」

조용하면서도 딱 부러지는 추궁, 온도가 몇도 내려간 듯한 기분까지 든다.

「헤? 아, 아니, 그 뿐만은 아니지만……」

「확실하게 해주세요!」

머리카락 사이에서 번쩍하고 예리한 시선이 날아온다. 웃, 엄청난 압도감, 왠지 거스를 수가 없어.

「아, 아니…… 저기, 예, 그 말대로입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렇게 어물어물하고 계신 건가요! 토오사카 선배님이 가엾지 않습니까!」

밑에서부터 카앗~ 하고 다그친다. 무, 무섭다구. 이래선 사쿠라가 아니라 토오사카잖아. 흘러넘치는 기세에 한 걸음 물러서면, 스윽하고 한 걸음 내딛어온다. 사쿠라, 너 꽤나 호전적이 되었구나.

「아니, 그게, 저기, 사쿠라, 나는 특별히 어물어물 거리지는……」

「선배님이 그럴 마음이 없어도, 실제로는 어물어물 하시다구요!」

결국 냉장고를 등에 지게 된 나. 뭐랄까 다음 한 마디 대답으로 사쿠라에게 찔릴 지도 모를 분위기다.

「기다려! 사쿠라, 진정해」

「……저, 진정하고 있어요」

그러자, 여기서 손님의 방문을 알리는 초인종 소리.

「자, 봐, 손님 같다. 내가 보고 올 테니까, 차랑 과자 부탁해!」

「하아, 선배님이 그런 분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었지만…… 이래서는 내가 무엇을 위해 포기한 건지……」

살았다, 하고 내뱉은 내 말에, 마지못해 물러난 사쿠라를 뒤에 남겨두고, 나는 현관으로 서둘렀다. 마지막 말이 조금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왠지 꽤나 심한 소리를 들은 기분이 드는데.

하지만 현관으로 향하는 도중, 내 발은 옆으로 멈춰서고 말았다.
전방에서 밀려드는 살기와 노도와도 같은 발소리. 그래, 마치 야수가 덮쳐오는 듯한 기척이다.
나는 순간 본능만으로 몸을 피했다.

―― 쾅! ――

그 직후, 내가 아까까지 걷고 있었던 자리를 휘몰아치는 바람이 지나쳤다. 그것은 짐승의 바람. 한 마리의 맹수가 바람을 휘감고 앞질러나가는 모습.

―― 쿵! ――

그리고 바람이 멎었다. 소리가 울려 퍼질 정도의 기세로, 짐승이 이쪽을 돌아본다.

「……아, 그러니까, 다녀왔어. 후지 누나」

「……시로?」

「오우, 변함없이 건강해 보이네」

이건 이미 세이버와도 필적할 스피드였다. 순간적으로 내 눈앞까지 다가와, 후지누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힘껏 껴안았다.

「후, 후지 누나」

「……어서와, 시로」

놀라고 있는 나에게 후지누나는 좀처럼 보여주지 않지만, 그래도 중요한 때에는 반드시 보여주는, 침착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대답해 주었다.

「……다녀왔어」

기억에 비해 조금 작게 느껴지는 후지 누나를 포옹하며, 나는 오늘 몇 번인지도 모를 귀향의 감격에 잠겼다. 아아, 정말로, 나는 돌아온 거구나.

「많이 컸네, 시로」

잠시 동안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던 후지 누나가 얼굴을 들었다. 아으, 기쁜 듯이 보이지만 조금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기뻐해 주는 건 고맙지만, 후지 누나의 눈물은 설령 기쁨의 눈물이라 해도 보고 싶지 않다구.

「누나답지 않아」

「그렇지, 이렇게 미적지근한 건 좋지 않아. 응, 잘 돌아왔어, 시로. 잘 있었어?」

「오우, 펄펄 날았어」

「아, 후지무라 선생님. 어서 오세요」

이쯤해서 사쿠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득 거실 쪽을 보니, 전원이 세로로 나란히 장지문 뒤쪽에서 이쪽을 훔쳐보고 있었다. 예의가 안 좋구만.

「모두들, 어서 와」

그런 파파라치들에게 예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명랑한 인사를 하는 후지 누나.
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후지 누나가 어라?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라?」

영문을 모르게 턱에 손을 대고 생각에 잠기거나 하늘을 올려보고, 손가락을 접어 수를 세는 건 무언가 확인하는 듯한 행동. 변함없이 의미불명이라 유쾌한 행동이다. 동생이 되는 나로서는 기쁜 건지 슬픈 건지 조금 알 수가 없다구.

「저기, 시로. 한 사람 많지 않아?」

「아아, 많아. 루비아씨라고 해. 소개할게」

「아, 그런가. 다행이다. 역시 한 사람 많았구나……」

아아, 다행이다, 라며 끄덕이는 후지 누나는 만족스러운 듯이 거실로 향……

「가 아니라, 어디서 데려온 거야――――――――――!」

하는 도중에, 갑자기 폭발음과 함께 울부짖었다.

「뭐야? 누구? 저 금발에 푸른 눈의 예쁜 인형같은 여자아이? 시로가 데리고 온 거야? 시로 또 여자가 늘은 거야!?」

잠깐 기다려, 후지누나, 괴로워. 목을 조르지 마. 게다가 “또”는 뭐야? 언제 내가 그런 짓……을 한 기억이 없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목은 조르지 맛!!

「다녀왔습니다, 후지무라 선생님」

「어서 와, 토오사카. 예뻐졌네」

「오랜만입니다, 타이가」

「잘 돌아왔어, 세이버 쨩」

거실로 돌아가, 사쿠라가 건네준 차로 겨우 진정된 후지 누나가, 모두에게서 귀국 보고를 받았다. 그런가, 남은 일인분은 후지 누나 거였군. 너무나 당연해버려서 완전히 잊고 있었다.

「루비아젤릿타·에델펠트라고 합니다. 런던에서는 시로우에게 큰 신세를 지고 있었습니다」

「루비아씨라고 하는 구나. 이쪽이야 말로, 시로는 무뚝뚝한 녀석이긴 하지만 근본은 좋은 아이니까, 잘 부탁 드립니다」

루비아 양의 일도 확실하게 설명했다. 토오사카의 학우이자 내 일자리의 주인. 이번엔 토오사카에게 권유받아 일본에 관광차 왔다는 것으로 하고 있다. 설명했을 때, 내 쪽은 어째서인지 사쿠라 때와 똑같이 째림받았지만, 루비아 양은 마음에 든 것 같고, 이렇게 조용하게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주인이여, 조금 신경을 써다오…….

그런데 여기서 랜스가 나를 지적했다. 아, 미안미안, 잊었어.

「후지 누나, 사쿠라. 한 마리 더 잊었어. 이 녀석은 랜스. 런던에서 내가 기르게 된 까마귀야」

「선배님이 기르셨다구요? 저는 완전히 토오사카 선배님의 애완동물이라고 생각해서」

「헤에, 시로가 동물을 기르다니 드문 일이네. 야시장의 금붕어도 피했으면서」

「뭐어, 여러 가지로 사정이 있어서. 자, 랜스, 인사해」

왠지 쓴웃음을 짓듯이 어깨를 움츠리는 랜스였지만, 이런이런, 이라고 말하는 듯한 발걸음으로 후지 누나와 사쿠라에게 다가가, 이게, 어떻게 봐도 훌륭한 예절로 인사한다. 세이버의 한숨에서 보자면, 아마도 귀부인에게 올리는 최상급의 인사인 모양이다.

「와아, 정말 똑똑한 까마귀네요」

「응, 꽤나 예의바른 애야. 랜스 군이라고 했지. 시로를 잘 부탁해」

변함없이 여성에겐 소홀함이 없군. 갑자기 기분내지 말라고, 이 녀석.

「그건 그렇다 치고, 후지 누나. 뭘 했던 거야? 엄청나게 서두르던 모양인데」

「그게 말야, 잠깐 할아버지께 불려가서 손님 상대를 했어」

사실은 계속 기다리고 있을 생각이었는데에, 라며 입을 내밀고 팔을 휘두른다. 나도 완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잊었지만.

「죄송해요, 선배님. 말씀 드리는 걸 잊고 있었어요. 후지무라 선생님, 아침부터 계셨는걸요. 그런데 집에서 호출을 당하셔서」

사쿠라도 미안하다는 듯한 얼굴로 변명을 하였다. 어쨌든 돌아와서부터 소란스러웠으니, 여러 가지로 바빴겠지.

「시로가 돌아올 때까지는 와 있으려고 생각했는데에」

나이 값도 못하고 볼을 부풀리는 얼굴로, 큰일이었다구, 라는 후지누나. 그건 그렇다 치고.

「할아버지도 엉뚱하시네. 손님 상대를 후지 누나에게?」

「아, 시로 너무해. 나도 손님 접대 정도는 확실하게 할 수 있다구. 외국에서 온 손님이었어. 결국 일본어로 말하긴 했지만」

과연, 외국에서 손님이라면 후지 누나는 일단 영어교사이고, 이상할 것은 없다. 하지만 후지무라 할아버지께 외국 손님인가…… 뭔가 무서운 생각이 들어버리는데.

「그런 얼굴 하지 않아도 괜찮다구, 여자 아이니까. 봐, 나 바움쿠헨(baumkuchen, 과자의 일종) 좋아하잖아」

그런 나의 표정에 웃으며 손을 휘휘 젓는 후지 누나. 가 아니라 의미가 통하질 않잖아.

「잠깐 기다려, 후지 누나. 외국에서 온 여자 아이랑, 바움쿠헨이 좋다는 거랑 무슨 연관이 있어?」

「분명히 연관 있어. 시로도 관계있다니까. 봐, 우리 집에 중원(中元, 추석 비슷한 명절)이랑 연말에 매년 바움쿠헨이 오잖아」

「아, 그건 기억해. 후지 누나가 좋아하는 거니까. 매번 이쪽에도 반쯤 가져왔던 거지?」

게다가 본고장에서 온 거라, 후지누나가 바움쿠헨을 좋아하게 되었던 것도 거기에서 보내온 물건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응, 그 바움쿠헨을 보내주는 사람이, 키리츠구 씨랑 오래 전에 알던 사이라서, 거기 아가씨가 놀러 온 거야」

과연, 그렇다면 연관이 있군. 하지만, 그 바움쿠헨은 키리츠구(아버지)가 알던 사람이 보냈던 건가. 의리있는 사람이네, 키리츠구(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벌써 몇 년이나 지났는데 말이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나, 후지 누나가 무어라 묘한 짓을 하기 시작했다. 두리번두리번, 또 꽤나 대중없이 유쾌한 얼굴을 하며 무슨 생각에 잠겨 있다.

「아――――――――――――앗!!」

그리고 이번에도 갑자기 큰 소리를 지르고, 머리를 감싸 쥐며 일어섰다.

「그 아이 현관에 두고왔어!!!」

「바, 바보! 무슨 실례되는 짓을 한 거야!!」

「그치만 시로가 돌아오고, 토오사카랑 세이버도 있고 루비아씨도 있었으니까아」

양손을 붕붕 휘두르며, 영문을 알 수 없는 변명을 하는 후지 누나. 그러고 보니 초인종이 울렸지. 생각해보면 후지 누나였다면 그대로 들어왔을 것이다. 실제로 들어왔고.

「아아, 정말, 현관이지? 금방 들여보낼게」

「아우, 나도 갈래」

원 참…… 나는 후지 누나를 끌고 황급히 현관으로 향했다.

「죄송합니다, 기다리게 해서」

황급히 향한 현관에는, 한가로이 서 있는 여성의 뒷모습. 나는 앞뒤 가리지 않고 그 사람에게 사과했다.

「괜찮아요, 그렇게 기다리지도 않았으니까요」

모자를 손에 들고, 밝은 하늘색의 섬머 드레스를 입은 은발의 그 사람은, 나의 목소리에 빙글 돌아보고, 생긋 미소를 지었다.

「헤?」

굳어버리고 말았다. 어째서? 왜? 그런 질문이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춤추기 시작한다.

「시로. 이쪽은 미이나 씨라고 해. 아버지가 키리츠구 씨랑 오래전에 나는 사이였데」

아연해 있는 나의 의식 끄트머리에, 후지 누나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미이나 씨를 소개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빌헬미나·폰·슈트라우스입니다. 키리츠구 씨에게 큰 신세를 졌었지요. 안녕하세요, 시로군.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우연이네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더듬더듬 거리면서도 제대로 된 일본어로 인사하고 있는 사람은, 틀림없이 시계탑의 마술전투에서의 대가, 슈트라우스가의 차기 당주, 빌헬미나·폰·슈트라우스. 미이나 씨이었다.

————————–

결국 손대고 말았습니다 [….]
Fate in Britain의 후속편이긴 하지만 사실 Britain 지금까지 번역한 것만 봐도 무방한 내용이라 일단 슥슥.
….님과는 여러가지로 다른 번역입니다만(윌헬미나를 원문 그대로 빌헬미나로 고쳤다든가 란스는 랜스로 했다든가, 魔術使い는 마술장이라든가…)

아무렴 어떻습니까! 핫핫 […]

참, 바움쿠헨이 맞는 발음인지는 모르겠군요. 일단 스펠링은 맞지만 독일어라서;

흑단으로 만들어진 불단 앞에서 은발의 여성이 합장한다.
6첩(疊, 다다미의 개수로 나타내는 넓이의 단위)의 다다미 방에는 다른 가구는 없다. 불단에서는 희미한 선향과 촛농의 향기.

「무리한 말을 해서 미안해, 시로 군. 키리츠구 씨의 집에 왔으니 역시 인사드리고 싶었어」

「위패도 없는 불단이긴 하지만, 미이나 씨가 그걸로 좋다고 말했으니까」

불단 자체는 꽤나 오래된 물건으로, 원래부터 이 방에 있던 것이다. 애초에 형식일 뿐인 불구(佛具, 흔히 불단에 보이는 자그마한 도구들)는 갖추어져 있긴 하지만 이 불단에는 위패도 과거장(過去帳, 죽은 자의 이름이나 사망연월일등이 쓰여져 있는 장부)도 없고, 지금도 열어보니 거미집이 쳐져있을 정도였다.
그렇다곤 해도, 이 집에서 아버지에게 무언가를 빌겠다면 아마도 이 앞밖에 없을 것이다. 단지 그 뿐 만인 이유로, 미이나 씨는 여기에서 합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응, 기도를 드리는 건 아니니까. 게다가 무덤은 확실하게 있지?」

「물론 무덤은 류도우柳洞사에 있어. 나도 내일 성묘 갈 생각이었는데」

「함께 가도 괜찮아?」

「아아, 상관없어」

「고마워, 시로 군」

나를 향해 미소 짓는 미이나 씨의 웃는 모습은, 어째서인지 옛날 어딘가에서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정의의 사자
「최강의 마술장이」 – Emiya Family- 제6화 후편
Heroic Phantasm

「하지만 미이나 씨, 일본에 올 거라면 한마디 해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것도 생각했었지만 그래서는 시로 군이 놀라지 않잖아요」

나의 불평에 미이나 씨는 생긋 웃으며 당연하다는 듯이 말씀하십니다. 에에, 에에, 놀라고 말고요.

그 후, 미이나 씨가 들어왔지만, 이게 또 일대 소동이 벌어졌었다. 어쨌든 미이나 씨의 방일은, 나는 차치하고서라도 토오사카나 루비아 양도 몰랐던 일, 관리인(세컨드 오너)인 토오사카는 특히 흉흉한 기색이었다. 다만 후지 누나나 사쿠라의 앞에서 공공연하게 다가갈 수는 없었고, 이쪽은 미이나 씨가 잠시 후에, 라고 속삭여 주어서 일단은 넘어갔다.

이미 우리들과 아는 사이었다는 것도 꽤나 큰 소동이었다. 후지 누나는 그런 아이로 키운 기억은 없다며 부르짖었고, 사쿠라도 기분 나쁜 그늘에 덮여있질 않나, 게다가 미이나 씨가 키리츠구 씨의 아드님이니까요, 라며 미소 지으며 불에 기름을 끼얹질 않나, 정말로 큰일이었다.
어쨌든 미이나 씨도 런던에 유학중이고, 토오사카의 동급생이라는 것을 납득해 주긴 했지만, 토오사카도 루비아 양도 처음엔 모르는 채 했었고, 마술에 대해서는 이야기 할 수 없었으니 설명하는데 정말 엄청나게 힘들었다.

「미이나, 이제 괜찮겠지?」

그러자, 여기에서 장지문 너머로 들려오는 토오사카의 목소리.

「예, 괜찮아요」

미이나 씨의 대답과 동시에, 조금 표정이 차분해진 토오사카가 들어왔다.

「어라? 루비아 씨와 함께 오는 게 아니었어?」

「루비아는 거실에서 사쿠라와 후지무라 선생님의 상대를 부탁했어. 결계를 치고 싶어도 준비를 하지 않았으니까」

토오사카는 나의 말에 그렇게 답하곤 미이나 씨의 앞에 앉았다.

「그래서, 어찌된 영문이지?」

그리고 토오사카는 그대로 미이나 씨의 얼굴을 지긋이 응시한다. 갑자기 심문 스타일로 돌변이군.

「에에, 그러니까 일단 오해를 풀어야겠군요. 무단으로 후유키에 들어온 것은 아니에요」

「나는 몰랐어」

「대행을 맡고 계신 신부님께 허가는 받았어요. 아직 말씀을 듣지 못하셨나요?」

하지만 미이나 씨는 침착했다. 분명히 토오사카는 관리자이긴 하나, 런던에 있는 동안 연락사항의 수신이나 허락은 신부님이 대신 맡아주고 있었다. 후유키에 관한 허가사항이라면 런던의 토오사카의 입에서 듣는 것보다도 일본에서 실제로 관리를 맡고 있는 신부님께 전달하는 편이 이치에 맞는 것이다.

「아, 으…… 분명히 아직 구체적인 전달사항은 받지 않았지만」

「사본도 있어요. 보실래요?」

「아, 응」

준비 만만으로 건네진 서류를, 어디어디 라며 읽는 토오사카. 완전히 미이나 씨의 페이스군.

「성묘?」

누구의? 라며 시선으로 묻는 토오사카.

「예, 시로 군의 아버님께서 저희들과 관계되어 있다는 이야기는 들으셨죠?」

「들었었어. 일종의 분가였다고 했었지?」

이것에 대해서는 토오사카도 끄덕인다. 토오사카는 나의 스승이라 미이나 씨의 집안과 키리츠구에 대한 관계는 대략적으로 전했었다.

「시로 군에게 약속도 했었고, 돌아가시고 난 후로 한번도 성묘를 오지 않았었어요. 그래서 이번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닌걸요, 라는 미이나 씨.

「뭐, 그것에 대해선 일단 납득은 가. 하지만 뭐야? 이 체류지 : 에미야 가라는 건?」

예이?

「시로 군, 재워주시지 않을래요?」

나는 듣지 못했어, 라고 말하려던 참에 미이나 씨가 생긋 웃으며 갑자기 나에게로 말을 돌렸다.

「아, 아니. 여기서 자는 건 상관없지만……」

그건 문제없다. 이 집은 방의 개수만큼은 여관 뺨칠 정도다. 별관의 서양식 건물도 객실이 하나나 두개가 아니다.

「그럼 이 방을 부탁드릴게요. 제단도 있고 우란분(お盆, 역시 추석과 비슷한 명절)을 맞이하기엔 가장 좋은 방이네요」

읏, 그건 상관없지만 이 방은 조금…….

「아, 여기 세이버의 방이구나」

「그렇지만 저는 세이버 씨와 같은 방이어도 괜찮아요. 세이버 씨가 괜찮다고 하실 경우지만」

그야 미이나 씨와 함께라면 세이버가 거부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 방은…….

「장지문 한 장 너머는 시로의 방이야. 조금 좋지 않을 텐데?」

「아아, 그럼 역시 좋지 않네요」

다행이다. 말하기 어려웠던 것을 토오사카가 대신 깔끔하게 마무리지어 주었다. 덕분에 미이나 씨도 납득해 준 모양이다.

「소리 차폐의 결계도 이 장지문이라면 한계가 있을 것이고요」

허나, 미이나 씨. 장지문을 노려보며 뭔가 이상한 소리를 하였다. 뭐지?

「뭐야? 그게?」

「뭐라니, 린 씨도 오늘 이곳에서 주무실 거죠?」

「그럴 생각인데?」

「옆은 시로 군의 방이구요?」

「오우, 그런데?」

「세이버 씨도 큰일이네요」

「……」
「……」

저기…… 미이나 씨? 그거, 저기, 무슨 의미입니까?

「그럼 시로 군. 제 방 잘 부탁드려요」

열심히 하세요, 라며 한마디 남기고 미이나 씨는 방을 나섰다. 남겨진 것은 조금 얼굴을 붉히고 있는 나와 토오사카 두 사람. 저기, 뭘 열심히 하라고…….

「저, 저기, 토오사카」

「뭐야」

「저기, 오늘, 그게…… 여기서 잘 생각이야?」

「아, 안돼? ……」

나의 얼굴을 부루퉁하게 해서 노려보는 토오사카. 하아, 오늘 세이버에게 객실에서 자달라고 해야겠군.
이렇게, 미이나 씨는 간단하게 우리 집에 묵게 되었다. 혹시, 노린 겁니까, 미이나 씨?

「사쿠라, 또 솜씨가 늘었구나」

「선배님께서 돌아오셨으니까 저 열심히 했거든요」

오늘 저녁식사는 우리들의 귀국 축하연으로, 사쿠라가 솜씨를 부린 일식이었다. 우리 집에서 사쿠라에게 전부 일을 맡긴 것은 조금 가슴 아팠지만, 사방팔방에서 토오사카를 필두로 한 여성진 전원에게 ‘넌 가만히 보고 있어’라며 붙들려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없었다.

「루비아 씨도 미이나 씨도 젓가락을 능숙하게 쓰시네요」

「기본 예의이니까요」

「일본과는 여러 가지로 인연이 있어서」

시쿠라의 질문에 미묘한 대답을 하는 두 사람. 어느 새 에미야 가에 익숙해져 있었다. 특히 루비아 양은, 토오사카와 미이나 씨가 대화하던 사이에 어째서인지 사쿠라와 사이가 좋아져 있었다. 나는 좋은 일이라 생각하지만, 토오사카는 미묘하게 재미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왜일까?

「자, 그럼 난 객실을 준비하고 올게」

나는 식사도 끝나 차를 마시면서 예전 이야기나 토산품에 대해 꽃을 피우고 있던 여성진에게 말을 붙이며 일어섰다.

「아, 시로. 나도 오늘 자고 갈거야」

그러자, 거기에서 선생인 주제에 학생처럼 손을 들고 발언하는 호랑이 한 마리.

「별로 상관은 없지만 왜?」

「모처럼 이만큼이나 여자 아이들이 모였는걸. 분위기를 살릴 이야기도 있고. 특히 시로의 어릴 적 이야기라든가」

와아~ 재미있겠다, 라며 눈을 빛내는 후지 누나. ……자, 잠깐 기다려! 후지 누나!

「그거 흥미 깊은 말씀이로군요, 미스 후지무라」

「저도 듣고 싶은데요, 그거」

끌려오듯이 몸을 내밀고 돌연 눈을 빛내기 시작하는 금과 은.

「그럼 저는 런던에서의 시로우에 대해 이야기하지요」

거기에, 음, 하고 한번 끄덕이고 서서히 그 고리 안에 참가하려는 세이버. 어~이, 세이버 씨~이.
도움을 구하는 나의 시선에, 쓴웃음을 지으며 토오사카가 말하려던 그 때였다.

「린 씨는 유감이지만」

그렇게 툭 내뱉는 미이나 씨.

「에? 왜 토오사카가 유감이야?」

너무나도 이상한 듯한 후지 누나. 우와아, 잠깐 기다려, 미이나 씨!

「린 씨 오늘은 시「아~, 저도 그 이야기 듣고 싶네요, 후지무라 선생님. 세이버랑 같이 런던에서의 시로의 이야기도 있고」」

토오사카가 위험한 곳에서 이야기를 덮고, 그대로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마, 라며 노려본다. 아아, 알았어, 아무 말도 안 해. 하지만, 그 ‘시로의 어린 시절 이야기 왕창 들어 주겠어’라며 눈을 빛내는 건 그만둬줘.

「그래, 사쿠라도 어때? 집에는 내가 연락을 할 테니까, 사람은 많은 편이 즐겁잖아?」

「에? 저도 말씀인가요?」

어이, 후지 누나. 사쿠라까지 말려들게 하지 마. 곤란해 하고 있잖아.
그런데, 이제 적당히 좀 해, 라며 끊으려던 참에 현관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누구지?」

「짐은 내일 올 테고, 게다가 토오사카 가에 갈 텐데」

「뭐, 됐어. 내가 갈게」

어차피 객실을 준비하려고 일어선 참이다. 나는 그대로 현관으로 나가기로 하였다.

「예~, 누구십니까?」

소리를 내며 문을 여니, 그곳에는 생각도 못한 인물이 서 있었다.

「여어, 에미야. 사쿠라에게 들었어. 돌아왔다면서」

「시, 신지냐?」

「매정하구만. 친구의 얼굴도 잊은 거냐? 뭐, 그건 어쨌든, 오랜만이군, 에미야」

「아, 아아, 그래, 오랜만이다, 신지」

밤의 어둠 속에서 보이는 얼굴은 분명히 신지였다.
하지만, 꽤나 변해 있었다. 옛날은 날씬하긴 했지만 어느 쪽인가 하면 둥글고 부드러운 이미지였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신지는 얼굴이고 몸이고 홀쭉하게 말라있었고, 옷도 예전의 그 멋진 모습은 자취를 감추어서 마치 모노톤의 유령같은 모습이었다.

「어떻게 된거야?」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분명히 성배에게 먹혔던 직후에는 꽤나 쇠약해져 있었지만, 우리들이 런던에 갈 때에는 완전히 체력도 회복하고 옛날의 신지로 돌아왔었을 터이다.

「어떻게라니, 동생을 보러 온 게 당연하잖아」

이쪽의 질문과는 미묘하게 비껴나간 대답이었지만, 여전히 에미야는 바보로구만, 이라고 말하듯이, 이것만은 옛날과 다름없는 비웃음을 띄우며, 신지가 대답했다.

「아, 그렇지 사쿠라가……」

「아아, 돌아오든 이곳에서 묵든 일단 사정을 살피러 오는 건 오빠로서 당연한 일이잖아?」

왼손을 거창하게 들어올려, 네 둔감함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구나, 라며 즐겁게 웃는 신지.
왠지 안도가 되었다. 분명히 유령처럼 초라하게 변했지만, 지금의 신지에게는 성배전쟁 때의 묘하게 날카로운 면이나, 광기 비슷하게 위태로운 면도 느껴지지 않는다. 처음 만났을 때의, 짓궂지만 밉살스럽지 않은 신지였다.

「오빠」

그러자, 걱정이 되었던 것인지 사쿠라가 다가왔다.

「여어. 사쿠라, 재미있었어?」

「아, 예」

「그건 다행이네. 어떡할래? 자고 갈거지?」

「에? 그치만 오빠가……」

「괜찮아. 신경 쓰지 마. 그럼 난 이만 가볼게」

그렇게 말하고 신지는 발걸음을 돌리려 하였다.

「잠깐 기다려, 차 한잔 정도……」

하지만 그럼 너무 미안하다. 나는 차 한잔 정도 대접하려 생각해, 신지를 말리기 위해 오른쪽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읏!」

그러자마자, 뻗었던 손이 신지의 왼손에 맞고 튕겨 나왔다.

「아, 아니, 미안, 에미야. 조금 다쳐서 말야」

한순간, 매우 험악한 표정을 지은 신지였지만, 곧바로 쓴 웃음을 지으며 오른 팔을 내밀었다. 아아, 분명히 오른쪽 어깨부터 팔까지 붕대가 감겨있었다.

「왜 그런 거야?」

「아니, 익숙하지 않은 짓을 하는 게 아니었어. 요리를 하려다 기름을 뒤집어썼지. 그럼 사쿠라를 잘 부탁해, 에미야」

아연해 있는 나를 남기고, 신지는 그대로 암흑 속으로 사라져갔다.

「선배님……」

퍼뜩 정신을 차리니 사쿠라가 나를 올려보고 있었다. 온화하지만 단호한 웃음을 띄우며 나에게 말했다.

「저 역시 돌아갈 게요. 오빠가 또 요리라도 해서 다치면 큰일이니까요」

「아, 어어, 그렇군」

「그럼, 오늘은 정말로 즐거웠어요. 뒷정리 도와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사쿠라는 그렇게 말하고 신지를 뒤쫓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어서, 꽤나 멋진 엔진소리를 울리며 집 앞을 검은 스포츠카가 지나쳐 갔다. 그렇군, 그 검은 콜벳, 사쿠라꺼 였구나…….

「토오사카,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은데?」

「무리 같은 거 하지 않아……」

다음날 아침 일찍, 나는 성묘를 하기 위해 류도우사로 향했다. 처음엔 미이나 씨를 데리고, 후지 누나와 셋이서 다녀올 생각이었지만, 결국 어제 우리 집에서 묵었던 일행 전원이 성묘에 참여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세이버 역시 키리츠구와 인연이 있다. 토오사카나 루비아 양도, 나의 양부이시니 참배하는 건 당연해, 라며 영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쫓아오게 되었다.
그렇게 되니, 문제는 아침이 약한 토오사카. 지금도 유령같은 얼굴로 일행의 가장 꽁무니에서 따라오고 있다.

「시로우가 이른 아침을 택한 이유를 알 수 있겠군요……」

잠시 비탈길을 오르락 내리락하다, 류도우사의 산등성이에 왔을 때, 루비아 양이 탄식을 내뱉으며 말했다.

「이 계단을 여름 한 낮에 오르는 것은 인내심이 필요하겠군요」

「그럼, 우리 궁도부, 이 계단 오르기가 여름 합숙에서 연습 메뉴에 들어가 있는걸」

뭐가 기쁜 건지, 가슴을 펴며 엣헴 하고 대답하는 후지 누나.

「토오사카, 힘들면 여기서 기다릴래?」

「농담하지 마. 벌써 잠은 깼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냐」

분명히 잠은 깬 듯하고, 지금은 손거울을 꺼내 몸단장이 한창이다. 시로의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거니까 깔끔하게 하고 가야지, 라며 웃었지만, 그 말을 들은 루비아 씨는 물론 후지 누나까지 몸단장을 시작한 건 어째서야?

「좋아. 가자, 모두들」

거울을 집어넣고, ‘좋아’라고 말하자마자 갑자기 기운이 넘치는 토오사카 씨. 선두에 서서 쑥쑥 계단을 올라간다.

「귀엽네요, 린 씨」

기가 막혀 있는 나에게, 미이나 씨가 스쳐 지나가며 몰래 귓가에 속삭인다. 분명히 귀엽다고 생각은 하지만, 엄청나게 알기 힘든 귀여움이라구, 저거.

「여기가 키리츠구의 무덤입니까」

류도우사의 묘지 한 구석, 아무런 꾸밈도 없이 단지 “에미야 가의 묘”라고 적혀진 묘석. 이것이 키리츠구(아버지)의 무덤이다.

「그러고 보니 세이버도 처음이었지?」

「예, 일본에 있을 때도 결국 이곳에는 오지 않았습니다」

역시 어떤 응어리가 마음속에 남아있던 것일 테지요, 라며 세이버가 감개무량한 듯이 합장했다. 허나, 지금 여기서 이렇게 합장을 하고 있다는 것은, 그 응어리도 이미 풀렸다는 것이겠지.

「이쪽의 예의작법은 알지 못하는 관계로, 그러하니 저희가 하는 방식대로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십자가를 긋고, 손바닥을 모으며 기도를 드리는 루비아 양. 엄청나게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너무나 당당한 그 모습은, 주위 사람들이 내가 잘못된 거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말야, 마지막에 ‘시로우의 일은 제게 맡겨주십시오’라니, 뭘 말야?

「이런 떠들썩한 우란분은 처음이죠?」

후지 누나가 그런 모두의 모습을 감개무량한 듯이 바라보며, 키리츠구의 무덤에 물을 뿌린다.
게다가 여자 아이뿐, 키리츠구 씨 행운아~라며 한 통을 다 비울 듯한 기세로 물을 뿌린다. 미묘하게 원망이 들어간 거 아냐, 후지 누나?

「격조했습니다. 키리츠구 숙부님(키리 삼촌). 겨우 만날 수 있었네요」

마지막으로 미이나 씨가 허리를 굽히며, 무언가 작은 흰 돌의 조각같은 것을 감싸며 합장한다. 단지 합장을 하고 있더라도 눈은 감지 않고, 지긋히 묘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도라기보다, 무언가 말을 걸고 있는 듯했다.

「토오사카, 넌 괜찮아?」

나는 그런 일행의 참배를 쭉 옆에서 서서 바라보고 있는 토오사카에게 말했다.

「응. 난 여기서 끝마쳤어. 게다가 기도드리러 온 것도 아니고」

토오사카는 그렇게 말하며 집게손가락으로 내 가슴을 찔렀다.

「여기 있는 분이 틀림없이 시로의 아버지라는 걸 알았으니까. 나에겐 그걸로 충분해」

씨익 웃는 토오사카에게, 나는 무심코 하늘을 보았다. 아아, 키리츠구(아버지), 이 녀석에겐 평생 당해낼 수 없을 것 같아.

「토오사카는 시로랑 똑같네」

그런 우리들에게 후지 누나가 어째서인지 즐거운 듯한 미소로 말을 걸었다.

「시로랑?」

「응. 시로도 성묘는 자주 오지만, 기도 같은 건 안 했어. 왜냐고 물어보니까, 그다지 기도드리러 온건 아니니까, 라고 하더라」

그래서 성묘는 하지만, 우란분같은 명절 행사에는 무관심했구나, 라며 온화한 눈으로 키리츠구의 묘를 보았다.

「시로는 말야, 분명히 자기 안의 키리츠구 씨가, 잘못되지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오는거야. 쭈욱 쫓아 왔으니까」

「지금도 쫓고 있다구」

알고 있어어, 라며 후지 누나는 그렇게 말하며, 아까 전 토오사카가 손가락으로 찔렀던 내 가슴에 손바닥을 대었다.

「그치만 말야, 왠지 옛날이랑은 틀려. 옛날엔 뭐랄까, 시로는 키리츠구 씨가 되려고 했잖아?」

후지 누나는 그대로 손바닥을, 천천히 나의 뺨으로 옮겼다.

「토오사카랑 사귀게 되고 나서 부터일까? 시로는 키리츠구 씨가 되려고 하지 않게 되었어. 키리츠구 씨 처럼 되겠다고는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고, 여전히 뒤쫓고 있지만…… 뭐라고 말해야 할까? 에미야 시로가 되려 하고 있다? 그런 느낌이야」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걸까, 하고 헤헷 웃는 후지 누나를, 나와 토오사카는 가만히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가끔, 어쩌다 가끔씩 후지 누나는 정말로 예리해 질 때가 있다.

「그런가, 토오사카도 시로랑 똑같구나」

그대로 우리들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다, 그래서 그렇구나, 라며 조금 쓸쓸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후지 누나……」

그런 후지 누나의 모습이 너무나 허허로워 보여, 나도 모르게 손을 뻗으려 하였다.

「좋아, 오늘 아침밥은 이 누나에게 맡겨!」

하지만, 후지 누나는 내 손을 피하듯이 빙글 몸을 돌려, 한번 크게 소리치고 기운 넘치게 걷기 시작했다. 한 순간, 그걸 들은 세이버의 표정이 굳은 것처럼 보인 것은 기분 탓이겠지.

「이상한 사람이네, 후지무라 선생님은」

「아아, 정말 그래. 보통 때는 도저히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응석받이면서, 이런 때만은 날카로워」

나의 대답에 토오사카는, 심한 소릴 하네, 라며 키득키득 웃었다.

「하지만, 옛날엔 시로도 꽤나 애를 먹이는 아이였다고 들었어」

그대로 살짝 몸을 돌려, 토오사카는 나와 마주서서 심술궂은 미소를 띄웠다.

「에에, 여러 가지를 들었지요」

「시로 군, 정말 여러 가지로 큰일이었던 아이였었죠」

어느새 내 주위에 모여있는 루비아 양과 미이나 씨가, 토오사카와 똑같이 사악한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잠깐 기다려, 후지 누나. 이 녀석들에게 무슨 소릴 한 거야!

「시로우」

그런데, 누군가가 뒤에서 퐁, 하고 어깨를 두드렸다.

「괜찮습니다, 누구에게나 잊고 싶은 과거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세이버 씨, 뭡니까, 그 먼 시선은? 그 가엾게 여기는 듯한 시선은? 후지 누나, 정말로 이 녀석들에게 무슨 소릴 내뱉은거야!!

「나 잠깐 나갔다 올게」

성묘를 마치고 돌아와, 아침 식사를 끝마칠 쯤 나는 모두에게 알렸다. 당연하지만 후지 누나의 아침 식사는 기각. 나와 토오사카가 제대로 된 아침밥을 차렸다. 용서해 줘, 후지 누나, 우리들은 후유키시를 전장으로 만들고 싶지 않아.

「어? 어디 가는 거야?」

「성묘」

「성묘라니 방금 갔다…… 아」

내가 어디에 가는 것인가 눈치 챘는지, 토오사카가 표정을 바꾸었다.

「알았어, 다녀와. 난 가지 않을게」

그대로 지긋히 나를 바라보던 토오사카였지만, 잠시 후 단념한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아아, 그럼 다녀올게」

나는 그런 토오사카에게 쓴웃음 섞인 대답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문득 세이버를 보니 이쪽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고마워, 세이버.
나는 그대로 이상하다는 얼굴을 한 루비아 양과 미이나 씨를 토오사카와 세이버에게 맡기고 집을 나섰다.

내가 가려는 곳은, 우선은 공원. 그리고 거기에서 후유키 교회. 예전에 코토미네 교회라고도 불렸던 장소다.
사실 말하자면 이 교회는 그다지 다가가고 싶지 않은 장소였지만, 그렇다 해도 지금의 나는 이곳을 방문해야 할 이유가 있었다.

「그럼 빌려가겠습니다」

「음, 조심하도록 하게」

교회에서의 용무를 마치고, 나는 신부님께 부탁해 차를 빌렸다. 역시 다음 목적지는 걸어서 가기엔 멀었다.
일단 미야마로 돌아와, 국도를 타고 한 시간, 왼쪽에 울창한 숲이 보였다. 아니, 숲이라기보다는 수해(樹海)다. 낮인데도 불구하고 어두운 이 수해의 경계, 나는 이곳에서 차를 세웠다. 여기부터는 걸어가게 된다.

「역시 여긴 싸늘하군. 추울 정도다」

주인을 잃고도 이 숲은 아직도 어둡고, 겨울 날씨처럼 추웠다.
국도에서 3시간 가까이 길도 아닌 길을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땀 한방울 흘리지 않고 나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역시 햇빛이 닿을 뿐인데도 여긴 덥군」

수해에 뻥 뚫린 구멍, 이 작은 광장만이, 이 숲에서 여름의 빛깔에 싸여있었다.

아인츠벨룬 성터, 이곳이 나의 목적지였다.
나는 무너진 성벽을 넘어 중앙 정원으로 들어갔다. 여기도 여름을 듬뿍 받고 있다. 파릇파릇한 풀에 뒤덮인 여름의 생명에 충만한 노래. 그 하얀 소녀와는 정반대의 풍경. 어째서인지 나는 이 풍경을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라?」

발이 멎었다.
중앙 정원 밖, 그곳만은 잡초가 뽑혀져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 커다란 검은 비석과 자그마한 하얀 비석, 둘 다 깨끗하게 닦여져 있고, 꽃도 놓여 있었다.

「누구지?」

별로 오래 전이 아니다. 잡초가 뽑힌 상태나, 놓여진 꽃의 모습에서 보면 거의 하루나 이틀 전쯤일까. 나는, 준비해 온 꽃을 나란히 놓았다.

「뭐, 됐지.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면 되니까」

나는 재차 잡초를 뽑고 비석을 정리했다.
이곳은 그 하얀 소녀, 이리야스피르와 그녀의 서번트, 버서커의 무덤이다.
그래, 나는 서번트 들의 성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건 보통의 의미에서 사자를 슬퍼하며 그리워하는 성묘와는 다르다. 내가 이렇게 돌고 있는 것은, 키리츠구의 무덤에 갔던 이유와 똑같은 이유에서다.
그 싸움에서 힘이 다하도록 싸웠던 그 녀석들을 잊지 않기 위해, 내가 그 녀석들의 뒤를 쫓고 있는 것이, 결코 틀리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성묘.
그래서 학원에서도, 교회에서도, 기도는 하지 않았다. 단지 이 장소에 서서, 맹새를 새롭게 다진다. 나의 결의를 재차 확인할 뿐인 것이다.

단지, 이 장소만은 조금 다르다. 윗탑에서 쓰러진 랜서, 그리고 소녀를 지키며 싸웠던 버서커. 녀석들에 대해서는 똑같았지만, 이 하얀 소녀에 대한 기분은 어딘가 달랐다.

「작은 여자아이였으니까…… 라는 이유는 아니지」

혹시나, 좀 더 다른 만남이 있지는 않았을까? 혹시 사이좋게 놀 만한 관계가 되지는 않았을까? 토오사카나, 루비아 양이나 미이나 씨와 함께, 그녀도 우리들 사이에 끼일 수 있었지 않았을까?
이유따윈 없었다. 나는 막연히 그런 기분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녀에게 만은 슬퍼했다. 그리고 빌었다.
바라건데, 그녀의 영혼이 평온하기를…….

「――응?」

무언의 기도를 마치고, 머리를 든 나는 조금 묘한 것을 깨달았다.

「깨졌어?」

깨끗하게 닦여진 하얀 돌 모서리가 아주 조금 깨져있었다.

「뭔가 무너진 건 아닌데」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자, 나는 하나 더 묘한 것을 깨달았다. 저 수풀 그림자에서 모습을 숨기고 있는 건…….

「토오사카, 오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어?」

「그, 그다지 그 녀석의 성묘를 온 게 아냐. 내 목적은 저기야」

걷기 쉬운 차림으로 온 것이겠지. 캐미솔과 팬츠, 거기에 부츠를 신은 차림으로, 머리카락을 뒤로 묶은 토오사카가 수풀 너머에서 나타났다.
볼을 부풀리며 가리킨 방향은 첨탑. 과연,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고, 코토미네 역시 관계가 없지는 않다.
그렇다곤 해도…….

「그럼, 온 김에 어때?」

「온 김이네, 그럼 할 수 없나」

계속 아닌 체 하며 토오사카는 하얀 돌 앞에서 손을 모았다.
토오사카와 아인츠벨룬. 옛날, 성배를 처음으로 만든 가문의 후손, 그런 의미에서는 토오사카도 그 소녀도 똑같은 성배의 아이라 말할 수 있다. 마술사로서의 긍지로 무장했으면서도, 그런 것에 감상을 품지 않을 토오사카가 아니다. 고집을 부리며 계속해 퉁퉁거리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고마워」

그래서 예를 표했다. 이 세계는 슬프지만,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줘서 고마워.

「바보, 인사를 들을 일은 아니잖아. 이걸로 전부 끝났지?」

「아아, 내 성묘는 이걸로 끝이야」

류도우사, 학원, 교회, 그리고 이 성터. 내가 인사를 해야만 하고, 내가 기억해 두어야만 할 사자에게의 성묘는 이걸로 끝이다. 하지만,

「토오사카는 괜찮은 거야?」

「나? 뭐가?」

「그 녀석」

나는 그 붉은 기사를 말했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토오사카에겐 이걸로도 알겠지.

「별로. 애초에 그 녀석 죽은게 아니니까」

토오사카는 내 가슴을 푹 찌르며 말했다. 그 녀석은 죽어서 사라진 것이 아니다. 토오사카는 확인하듯이 다시금 내 가슴을 찌른다.

「그리고 말야, 그 녀석의 무덤이 있다면 거기가 아냐. 여기야」

그래서 성묘라면 매일 할 수 있으니까, 라며 한 번 더 내 가슴을 찌른다.

「그걸로 괜찮은 거야?」

「그걸로 됐어. 내 성묘도 시로랑 함께니까」

「함께?」

「그래, 함께」

토오사카는 그대로 나를 끌어당겨, 가슴에 뺨을 묻었다.

「기필코 널 행복하게 만들 거야. 그리고 나도 행복해 질 거야. ……자, 성묘 끝」

그 말만을 하고, 토오사카는 나의 가슴에서 얼굴을 떼고, 그대로 나를 올려다보며 뻔뻔스럽게 웃는다. 반짝반짝 빛나는 것처럼 당당하게 웃고 있었다.

「뭐야, 그게」

「뭐라니, 이게 내 성묘야. 자, 집으로 돌아가자」

뭐가 뭔지 잘 알 수 없었지만, 이것이 토오사카 나름대로의 맹세 방법이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을 굳히고, 토오사카의 손에 이끌려 성터를 뒤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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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왔어, 토오사카」

미야마에 도착한 때는 이미 저녁이었다. 여하튼 편도 4시간 이상 걸리는 성묘다. 루비아랑 미이나는 후지무라 선생님에게 맡겨 두었지만, 괜찮을까? “시로의 과거 폭로 투어”같은 소리를 했지만. 거기에 끼어들고 싶었던 기분도 든다.

「응, 고마워. 시로」

저녁이라고는 해도 이 계절은 아직 햇볕이 강하다. 하지만, 이곳은 그 겨울 숲과 똑같이 이 강한 여름 햇빛도 통하지 않은 것처럼 싸늘했다.
토오사카 가문의 저택. 내가 십 몇 년 동안 살았던 집. 토오사카 가문에 대대로 내려져오는 공방.

나의 성묘. 갑자기 정한 마지막 장소가 여기다.

「자, 토오사카. 가자」

차에서 내려, 멍하니 그런 나의 집을 올려다보고 있는 내 어깨를 시로가 톡 쳤다.

「아, 그치만 특별히 유체나 유골이 있는 건 아니야」

마술사의 무덤은 없다. 마술사라는 인종들은 대부분 제대로 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는 없다. 따라서 시체가 남는 일은 좀처럼 없다.
유발(遺髮, 죽은 자의 머리카락)이나 유조(遺爪, 역시 손톱) 역시 마찬가지다. 마술사에게 있어 신체에서 떨어져도 신체의 일부분은 주술 적으로는 계속 자신인 채다. 그런 위험한 것을 그리 경솔하게 남겨둘 수는 없다.
전전회의 성배전쟁에서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도 똑같다. 유체도 유발도 남아있지 않다.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묘비는 있지만 안은 텅텅 비어있다.
그래서 굳이 말하자면, 이 공방, 토오사카의 저택이 토오사카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무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인츠벨룬 성에서 돌아와, 성묘라는 것에 떠올라 그런 말을 했더니 저 녀석은 한 번 끄덕이고 이곳으로 차를 몰았다.
그렇게 흘러간 탓일까. 일 년 만에 온 나의 집 앞에서, 나는 묘하게 신묘한 기분이 되었다.

「하지만, 여기잖아?」

「응, 그렇긴 하지만」

우리들의 성묘는, 슬픔이나 기원때문이 아니다. 죽은 사람들과 서로 마주보는 맹세와 확인의 작업.
……아아, 그렇구나. 내가 집에 돌아오는 걸 망설였던 이유가 그래서 였구나.

「시로, 같이 가 줄래?」

「오우, 그러려고 왔는걸」

나는 시로의 강력한 승낙에 힘을 얻어, 토오사카 저택으로 들어갔다.

「여기야?」

「응, 여기가 나랑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헤어졌던 장소」

집 안에서 밖으로 열려있는 현관을 마주보고, 나는 시로와 나란히 섰다.

「아버지, 죄송해요. 조금 계획이 변했어요」

이상하다는 듯한 얼굴을 하는 시로의 손을 잡고, 나는 열려있는 현관을 향해 계속 말했다.

「당당한 마술사는 될 거에요. 마술사로서 마술사의 길을 걷겠다는 것은 변하지 않아요. 하지만」

나는 시로의 손을 다시 잡았다.

「나, 이 녀석을 택해버렸으니까, 조금 돌아서 갈게요. 조금 꽤 상당히 변변치 않은 녀석이구나아, 라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반드시 행복하게 되겠어요. 그래서, 저기…… 아버지, 죄송해요. 제 대에서 성배는 무리같아요」

「토오사카……」

「왜?」

「너 아직도 성배에 매달리고 있는 거야?」

「하는 수 없잖아. 아버지와의 약속이니까」

것 참, 이라는 얼굴의 시로. 하지만 하는 수 없잖아. 저거 저렇게 보여도 저쪽과 닿아있는 그릇이라구?

「에에, 그러니까, 에미야 시로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쓴웃음을 지으면서 나를 본다. 이번엔 시로가 현관을 향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따님에 대한 일입니다만, 제가 이런 녀석이라 꽤 수고를 끼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쑥스러운 듯이, 그래도 딱 부러지게 시로가 말한다.

「하지만 불행하게 만들지는 않겠습니다. 마지막엔 반드시 웃고 있을 수 있도록 해 보이겠습니다. 설령, 당신의 유언에 거슬러서라도. 그런 맹세를 할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시로는 단호하게 말했다. 상쾌할 정도로 엄숙한 표정이 되어, 현관을 향해 서 있으면서.
우우, 왠지 복잡한 기분. 시로의 마음은 기쁘지만, 이래선 역시 인격자이신 아버지라도 기가 막히실 거라구…….

그런 기분으로 시로를 보니, 괜찮다며 미소짓는다. 이, 이래선 성묘가 아니라 아버지께 교제 상대를 소개하는 것 같잖아…….

그 때였다.
바람이 불어온다. 현관 너머에서, 무언가 힘이 흘러들어, 그 힘이 바람이 되어 우리들에게 불어왔다.
추울 정도로 식어있는 집인데도, 그 바람은 너무나도 온화하고 부드러운 바람이었다.
그리고 인영이 나타났다. 석양을 등지고, 금빛으로 빛나는 인영이 조용히 우리 집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시로……」

「토오사카……」

붙잡은 손에 힘을 주고, 우리들은 현관을 마주보았다. 이곳에서 눈을 피해서는 안 돼. 우리들은 확실하게 이곳에서 새로운 맹세를 세워야만 해.

빛이, 현관에서 넘쳐흐르고 있었다…….

「시로우, 린? 무엇을 하고 있는 겁니까?」

「헤?」

「에? 세이버?」

하지만, 느닷없이 현실로 끌려와 버렸다. 현관에 서 있는 것은 이상하다는 얼굴을 한 세이버.

「세, 세이버야 말로 어째서?」

「어째서든 저째서든, 짐이 도착할 것 같습니다. 전화가 왔기 때문에 수취 수속을 위해 이쪽으로 온 것입니다」

멍하니 있는 우리들에게, 세이버가 질린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우, 그랬지, 오늘 짐이 도착하는 거였지.

「오우, 그럼 서둘러서 짐을 들일 준비를 할까」

그런 내 옆에서 나와 똑같이 얼이 빠져있던 시로였지만, 겨우 제 정신을 차렸는지 기운 좋게 밖으로 나가려――

「――우와앗!」

――하던 순간 넘어졌다. 넘어져서 현관문에 엄청난 기세로 얼굴을 박았다.

「시로우! 괜찮으십니까?」

「정말, 정신 차려. 뭘 하는 거야?」

「아니, 갑자기 발이 엉켜서. ――윽!」

일어서자마자 시로가 얼굴을 감쌌다. 왜 그런가 하고 들여다보니, 손잡이에 부딪혔는지 얼굴에 멍이 들어있었다.

「우와아, 멍들었잖아」

웃음을 참으며 건네준 손거울을 들여다보며, 시로가 한심한 목소리로 말한다.
거울 안에는 눈가에 커다란 멍이 생긴 시로의 얼굴 모습이 있었다.

그건 마치 누군가에게 주먹 한 방을 힘껏 얻어맞은 것 같은, 너무나도 훌륭한 멍이었다.

END

———————

역시 고이 키운(?) 딸을 그냥은 주기 싫다는 故 토오사카 씨의 단호한 의지가 엿보이는 한편이었습니다 […]

조금 시리어스인 듯~ 하다가 묘하게 빠지는 화였군요;

‘기도’라고 표현한 부분은 사실 우리나라 식으로 치면 ‘절’이겠지만, 일본에는 무덤 앞에서 절하는 풍습은 없는데다 절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거라… 그냥 ‘기도’라 표현했습니다.

아~ 사족인데, 저는 한글에서 작업하고 게시판으로 옮깁니다만, 한글 상태일땐 아무리 봐도 오타가 안보여요;
그래서 일단 올려놓고! 나중에 수정하기 필살기를 발동했습니다 […]

그곳은 무지갯빛이었다.

칠흑의 세계에서 의식이 돌아왔다고 생각했더니, 주위는 그야말로 하늘에서 땅까지 모두 변화하는 무지갯빛 세계였다.
아주 조금이라도 정신을 놓으면, 나 자신조차 먹혀 들어가 버릴 것만 같은 다채로운 빛의 향연.
나는 그 세계에서 주저앉아 멍하니 있었다.

「자, 잠깐 기다려봐. 에, 그러니까……」

나는 색체에 현혹되는 것을 조금이라도 피하려고 눈을 감았다. 눈꺼풀 너머로도 조금은 들어왔지만, 그래도 어떻겐가 진정할 수는 있었다.
우선은 평상심. 현재 상황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확인.
이래 뵈도 나는 마술사다. 이상한 일에는 익숙해져 있다. 이런 일 정도로 패닉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우선 일어서자」

나는 나 자신을 확인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며 행동에 옮겼다.
눈을 감은 채로, 신체감각만으로 밸런스를 잡으며 일어 선다. 좋아, 여기까지는 괜찮아.

「눈을 뜬다. 색체에 현혹되지 않게, 신중하게, 천천히」

이것도 목소리를 내며, 살짝 눈을 뜬다.
눈을 감았어도 눈꺼풀을 투과해 점멸하는 색체의 난무다. 어느 정도 각오를 해 두지 않으면 그것만으로도 밸런스를 무너트려 쓰러지고 말 것이다.

「에?」

허나, 눈앞에 색체는 없었다.
아니, 주위는 변함없이, 어디가 지면이고 어디가 하늘인지 모를 색체의 난무다. 허나, 눈앞에 보이는 것은 커다랗고 확고한 그림자. 사람?

「흡!」

「뜨앗!」

다음 순간, 갑자기 맞았다. 오른쪽 훅, 사각에서 아무런 예비동작도 없이 머리 옆을 때려오는 스매시 블로.

「핫!」

「쿱!」

의식을 장악당해, 비틀거리는 나에게, 자세를 잡을 틈도 없이 다리후리기가 들어온다. 상대는 눈앞에 서 있을 터인데, 무릎 뒤에서 비집고 들어오듯이 꺾여져, 천지가 뒤집힌다.

「커헉!」

일어날 틈도 없었다. 상체를 일으키려 하는 순간 가슴팍을 짓밟혀, 강한 충격이 등을 덮치는 건가 하고 생각하니, 이번엔 가슴팍을 잡혀 공중으로 들어올려진다.

「뭐! 무슨……」

나는 그걸로 겨우 나를 덮쳐온 인영을 시야에 잡을 수 있었다. 바닥까지 닿을 듯한 로브를 두른, 무서울 정도로 풍체가 좋은…… 노인? 헤?

「으랏!」

확인할 틈도 없이, 내 시야는 주먹으로 짓눌린다.
우직, 하고 시야가 찌그러지고, 나의 의식은, 다시 칠흑의 세계로 끌려들어가고 말았다.

붉은 악마
「진홍의 악마」 – Rin Tohsaka- 제6화 전편
Asthoreth

「이게? 꽤나 평범하네. 좀 더 거창할 줄 알았는데」

토오사카 저택의 뒤뜰. 직경 20미터 정도일까? 높이로 10미터 정도의 2층 작은 탑 앞에서, 나는 조금 맥이 빠졌다는 감상을 내뱉었다.

「시로우, 조금 보는 눈이 없군요」

「그래, ‘초超’가 몇 개나 붙는 일류 마술사. 게다가 마법사의 서고야. 밖에서 봐서 단번에 알 수 있을 것이 아니라구」

그 즉시, 선생님들께 지적당했다. 아니,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다. 일류 마술사의 결계는 그리 간단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건. 하지만, 그래도 역시 마법사가 되면, 왠지 모르게 속된 기대를 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정말로 밖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질 않는군요」

「그렇지. 우리들도 지식으로서 알지 못하면 눈치 채지도 못할 거야」

탑의 벽에 손을 대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루비아 양에게, 자칫하면 길 한가운데 있어도 놓칠 걸, 이라며 팔짱을 끼고 대답하는 토오사카 씨.

「하지만 틀림없이 이곳이 우리 토오사카 가문의 마경魔境. 대사부의 서고야」

그렇다. 이 별다를 것도 없는 작은 탑이야 말로, 대사부 키슈아·젤릿치·슈바인오그가 토오사카가 가문에 남긴 서고. 즉, 진짜 마술사의 탑인 것이다.

먼 옛날, 대사부가 토오사카 가문에 체류했을 때에 가지고 왔던 물건 인 듯. 말하자면 이것 전부가 유물(아티펙트)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인 듯 하다. 거기에 제자인 나뿐만이 아니라, 부외자라고 할 수 있는 루비아 양까지 데리고 온 것은, 현재 시계탑에서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이 행하고 있는 공동연구 때문이다.

대사부의 마법. 제 2마법. 병렬세계를 자유자재로 부리는 술.
그 안에서도 『다중차원굴절현상多重次元屈折現象』이라 불리는 술이, 토오사카 가문에 맡겨진 숙원이라고 한다.
물론, 천재 클래스의 마술사인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이 같이 있어도, 그리 간단하게 도달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곳으로 이어딘 계단 중 최초의 몇 계단. 지금, 하고 있는 일은 그곳에 발을 얹기 위한 연구다.

「그 힌트가 이곳에 있다는 것이로군요?」

같은 광석마술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고는 하나, 루비아 양은 대사부의 계보가 아닐 터. 그렇다 해도, 토오사카는 무리하게 이 연구의 파트너로서 루비아 양을 택했다.
이것은 마술사로서는 상당히 위험한 행위다. 허나, 동시에 루비아 양과 손을 잡으면 연구가 비약적으로 진행되리라 토오사카가 판단한 결과이기도 하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 너무나도 토오사카다운 판단이다. 실제로 실패가 계속되고 있다고는 하나, 두 사람의 연구는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그럼 들어가겠어. 준비는 됐지?」

「준비는 됐지만, 어디로 들어가는 거야? 역시 무슨 마술을 쓰는 건가?」

토오사카의 기운찬 한마디, 하지만 이 탑 주위에는 어디에도 입구다운 장소가 없었다.

「아, 그거라면 괜찮아. 세이버, 사다리 부탁해」

「예, 린. 이곳으로 괜찮은 것이죠?」

토오사카의 말에, 5미터 이상 되어 보이는 긴 사다리를 가볍게 들고 있는 세이버가 나타났다. 그대로 가볍게 사다리를 탑에 걸쳤다. 사다리 끝에 시선을 던지니, 오우, 저런 곳에 문이 있었군.

「2층에 문? 희한하네」

「시로우, 이게 보통입니다」

「응?」

나의 중얼거림에 세이버가 이상한 소릴 하였다.

「시로, 기억 안나? 런던에서는 2층을 1층이라고 말했었잖아?」

「아, 그건 기억해. 1층이 그라운드 플로어(ground floor, 땅바닥이라는 의미)였지?」

「그래, 그러니까 그런 거야」

토오사카가 말했지만, 나는 점점 더 알 수가 없었다. 우등생은 설명 한가운데를 뚝 떼어먹는 경향이 있어서 곤란하다.

「시로우, 즉 이 탑은 작으면서도 성인 것입니다. 성이라는 것은 외적에게서 몸을 지키는 틀. 혹시 지상 1층에 문이 있다면, 그것은 꽤나 위험한 일이 아닐까요?」

아, 과연. 분명히 땅위에서부터 성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있는 것보다, 이렇게 사다리를 걸치지 않으면 문에 다가갈 수 없는 쪽이 방어에는 좋다.

「그런 전통으로 유럽에서는 2층이 1층인 거야. 1층은 일종의 창고 취급이고」

알았어? 라는 토오사카 씨. 알긴 했지만 되도록이면 맨 처음 설명에서 전부 이야기 해 주었으면 한다구.

「그렇다고는 해도 사다리는 좀 그렇지 않나요? 토오사카의 부지 내이기도 하니, 저희들이라면 중력제어계의 주문이라도 될 텐데요?」

하고, 이번엔 루비아 양이 불평했다. 뭐, 분명히 사다리를 타고 찔끔찔끔 올라가는 건 뭔가 마술사답지 않다고 할까, 꽤나 신비감이 없다.

「해도 괜찮긴 해. 나도 7살 때에, 처음으로 부유의 주술을 배워서 해본 적이 있는 걸」

하지만, 토오사카 씨는 해보시지, 라며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묘한 뉘앙스가 느껴졌는지, 루비아 양은 한쪽 눈썹을 치켜뜨며 뒤를 재촉했다.

「그렇게 주문을 써서 위까지 올라가 문을 열었더니, 위험한 독충이 담긴 단지의 창고였지. 즉, 정식 수순을 밟지 않으면 이상한 곳으로 날아가 버리는 함정이 있다는 거야」

「일종의 공간전이가 아닌가요? 그건 마법 레벨의…… 마법사의 탑이었지요, 이곳은」

한순간 토오사카를 지적하려고 하던 루비아 양이었지만, 갑자기 깨달은 듯이 음, 하고 신음을 내뱉었다.

「그런 거지. 겉보기에 속으면 울고 싶어 질 꼴을 당할 거야」

삐뚤어진 사람이라고 들었지만, 정말로 엄청나게 삐뚤어 졌구나, 대사부는. 되도록이면 만나고 싶지 않은 분이지만, 조금 만나보고 싶기도 하다. 나는 토오사카의 얼굴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였다.

세이버는 물론, 마술사라고 해도 토오사카도 루비아 양도, 잠들기 전에 팔굽혀 펴기는 빼먹지 않을 정도로 단련하고 있다. 사다리 오르기에도 문제는 없었다. 다만, 혼자서만 스커트였던 루비아 양이, 절 골탕먹이시려는 군요, 라며 토오사카에게 불평하였다.

「……꽤나 평범하네」

안에 들어가 서고를 둘러본 나의 첫 마디. 조금 이상한 구조이긴 하지만, 마법사의 서고치고는 역시 좀 맥이 빠진다.
우선 우리들이 들어온 위층, 그곳은 탑의 둥근 주위를 따라 돌듯이 회랑이 감싸고 있었고, 중앙은 그라운드 플로어로 향해 뻥 뚫려 있었다. 난간 너머로 보이는 밑층의 서고는 원형으로 벽을 둘러싼 고정서가와, 위층의 회랑부분을 따라 원형과 동심원의 레일이 깔려 있어, 그곳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는 6개의 이동서가로 되어 있었다.
즉 2중의 서가로, 바깥쪽은 빽빽하게 책이 꽃혀 있는 서가, 안쪽은 2등분 되어 그 하나를 두고 이동서가로 되어있는 형태다.
중앙의 바람구멍 부분은 책을 볼 수 있는 자리인지 가죽 소파와 나무 테이블, 그리고 훌륭한 목제 책상이 하나. 바닥부분은 무슨 진이 새겨져 있는데, 유일하게 마술사의 서고다운 부분이다.

「감상은 그 뿐? 뭐, 분명히 한번 보아선 알 수 없겠지만」

그런 나의 감상에, 조금 불만인 듯한 토오사카 씨.

「밖에 비하면 마력은 느껴지지만…… 대사부의 서고치고는 장서도 꽤나 흔한 것뿐이군요」

「한번 마술사(메이거스)의 방에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만, 조금 더 힘을 느꼈다고 기억합니다」

아무래도 루비아 양과 세이버도 나와 똑같은 감상인 듯하다. 계단에서 서고로 내려오면서, 둘 다 불만까진 아니어도 맥이 빠진 듯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말하는 것도 지금 뿐이야. 기다리시죠, 지금 문을 열 테니까」

「문이라니, 여기가 서고 아냐?」

「여기도 서고야」

토오사카는 잘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난 후, 바닥에 그려진 마법진 중앙에 섰다.

「――――Anfang(세트)」

무언가 주문을 외지도 않고, 단지 마술회로를 기동시킬 뿐인 속삭임, 허나, 그 마력만으로 바닥의 마술진은 기동했다.

「토오사카의 혈맥주(血脈呪)로군요. 대사부의 유물은 대부분이 그 계보 이외에는 다룰 수 없는 것들 뿐이니까요」

루비아 양의 설명을 기다릴 새도 없이, 6개의 서가가 일제히 이동한다. 소리를 내며, 이제까지 비어있던 구역들만큼 빈틈없이 미끄러져 움직이다 멈추었다.

「에?」

과연 이번엔 놀랐다. 서가가 이동하기 전의 공간, 본래라면 이번엔 그곳이 빈 공간이 되어 뒤의 책장이 보여야 할 터.
허나 지금 그 공간에서 보이는 것은, 그 각각이 전부 다른 6개의 별세계의 입구였다.
마치 자연의 동굴같은 방, 천장부분에서 번개구름이 돌며 질풍과 천둥으로 휩싸인 방, 입구가 수면처럼 파도가 쳐, 반짝반짝하고 무슨 물고기 같은 것이 때로 움직이는 방, 바닥 전체가 마그마처럼 새빨갛게 끓고 있고, 곳곳에서 화염을 내뿜고 있는 방, 반짝반짝하고 반사, 굴절하는 크리스탈에 휩싸여, 마치 전부가 샹들리에로 되어 있는 듯한 방, 하나를 제외하고, 그 모두가 이상한 방으로 이어진 문이었다.

「『전 원소 서고全元素書庫(헥사리스탈·라이브러리)』…… 시계탑에도 하나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루비아 양이 경탄의 목소리를 울린다. 뭐라 해도, 각각이 원소의 열쇠로 수호되고 있는 공간으로 이어진 유물인 듯하다.

「그래. 더더군다나 대사부가 그런 곳에 신경도 안 쓰고 엉망진창으로 마도서나 마구 같은 걸 집어 던져 놓았으니까, 안은 완전히 마경이야」

토오사카는 어깨를 으쓱이며 물의 방을 가리킨다. 어라, 어느 새 입구가 있던 곳이 벽이 되어있네. 스륵스륵 옆으로 이동하는 미끌미끌한 벽…… 헤?

「이번엔…… 눈이로군요」

역시 세이버도 상당히 놀란 모양. 한 순간 통과해 간, 문과 똑같을 정도의 크기의 「눈」. 도대체 어떤 생물이 안에 있는 걸까.

「하지만, 여기만은 평범한데」

그 안, 나는 유일하게 제대로 생긴 서고로 이어진 입구를 들여다보았다.

「잠깐! 거기가 가장 위험해!」

그 순간 토오사카에게 목덜미를 붙들려 끌려왔다.

「뭐야, 갑자기」

「정말, 잠깐 보고 있도록 해」

토오사카는 그렇게 말하고, 펜 하나를 그 안으로 던져 넣었다.
가벼운 금속음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진 펜.
그런데, 마치 그곳이 한 순간 수면이라도 된 것같이, 스스로 형태를 만드는 그림자에게 먹혀, 순식간에 사라져갔다.

「뭐, 뭐야, 이게?」

「디랙Dirac의 바다? 그림자가 허수공간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군요? 그렇다는 것은……」

「그래, 이 서고는 5대원소의 반대 존재, 가공원소허수架空元素??의 서고야. 그래서, 루비아. 이걸 물어보려 생각하고 있었는데, 당신은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아?」

「어렵군요. 간단한 방호라면 몰라도, 이렇게까지 고도의 허수공간일 줄이야」

「역시. 뭐, 할 수 없나」

두 사람 모두 어렵다는 얼굴로 신음을 내뱉었다.

「왜 그래? 뭔가…… 까다로운 것처럼 보이는데」

두 사람이 곤혹스러워 하다니 조금 놀랐다. 내가 아는 한…… 커티스 정도인가.

「보이는 게 아니라, 실제로도 힘들겠군요, 이건」

「봐, 우리들이 5대원소를 속성으로 하고 있는 건 알지?」

「오우, 전부 가지고 있잖아? 그러니까 어려운 건 없다고 생각했는데」

찌푸린 얼굴의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실은 전부가 아냐, 이게」

「5대 원소라고 하는 것은 곧 전 존재라는 것. 그렇지만, 그 “존재”의 진역?逆(완전한 반대)인 허수??라고 하는 가공원소가 있어요. 완전히 정 반대인 속성으로, 전부 반대이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취급할 수 없는 것은 아니고요」

「일종의 귀문鬼門이기도 하니까」

두 사람 모두 어딘지 모르게 말하기 어렵다는 듯이 말해 주었다. 고집부리기는.

「그럼 토오사카나 루비아 씨라도 이 방에는 들어갈 수 없다는 거야?」

「들어가는 것은 가능해요」

「물리간섭을 하지 않는 한 그림자에게 먹히지 않는 걸」

과연, 공중에 뜨거나 원시나 투시라는 수가 있군. 그럼 쓸 수 있는 거 아냐?
나는 잠시 그 부분도 물어 보았다.

「하지만 손에 들 수가 없잖아. 물론 염동력이라는 수가 있기는 하지만」

「효율이 지나치게 나빠요. 특히 마도서는 보는 것만이 아니라 만질 필요가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고요」

역시 평범한 걸로는 안 되는 듯하다. 뭐, 마법사의 서고니까 말야. 당연하다면 당연한 건가.

「사역마를 써서 목록만은 만들어 두었지만. 볼래?」

넘겨받은 목록을, 루비아 양의 어깨 너머로 나도 보았다. 우와아 나는 모르는 책뿐이잖아.

「적당하긴 하지만, 특별히 재미있는 책은 보이지 않는군요. 마술이론과 마술역사가 태반이니」

그런데도 루비아 양에게 있어서는 그런 레벨인 듯하다. 갈 길이 멀구나…….

「그래, 그래서, 주목할 건 이것」

토오사카가 가리킨 것은 몇권의 표지와 목차. 독일어이나 표지 정도라면 나라도 어떻겐가 읽을 수 있을 것같다.

「이거…… 대사부의 고찰서적의 초고草稿가 아닌가요! 게다가 당시 마술사 가문의 비문秘門? 정말 말도 안 되는 분이로군요」

「그래, 메인은 아인츠벨룬과 마키리, 토오사카도 있지만, 당시의 토오사카는 그다지 역사가 없었으니까 대단한 건 없을 거라고 생각해」

목차를 보니, 아인츠벨룬이라고 하는 자들은 인조생명과 강력한 그릇의 구성에 뛰어났던 것 같다. 마키리는…… 우와아…….

「『상급종충흡개요上級種蟲吸?要(상급종의 벌레를 흡수하는 방법에 대한 개요)』에 『충군여왕종지배요강蟲群女王種支配要綱(벌레의 여왕종을 지배하는 방법에 대한 중요 강령』…… 꽤나 비린내 나는 마술체계로군요」

아무래도 흡수와 지배에 뛰어난 듯하나, 이거나 저거나 벌레를 개제하고 있다. 벌레 독의 대가라고 하는 건가. 솔직히 나로서는 사쿠라가 이런 마술 계보에서 연을 끊었다는 것이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게 이런 걸 보여 줘도 괜찮은가요?」

「그러니까 확인했잖아. 어떻게 되겠는가 하고」

특히 대사부의 초고는 허수의 궤짝??櫃(클라인 아크)에 들어가기도 하고, 라며 심술궂은 미소를 띄우는 토오사카 씨. 변함없이 멋진 성격이로군요.

「그 웃음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만…… 별로 흥미 있는 소재는 아니군요」

「그렇게 말할 거라고 생각했어」

한순간 일변해, 이번엔 드물게도 솔직한 미소를 루비아 양에게 보내는 토오사카. 네가 그런 사람이니까 보여준 거야, 라는 듯한 웃음.

「부, 부추겨 세워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요」

토오사카의 솔직한 웃음이 루비아 양에게도 통용된 모양. 잠시 동안 놀란 얼굴을 한 루비아 양이었지만, 부끄러운 거겠지, 뺨을 물들이며 얼굴을 피했다.

「그럼 린, 어느 방부터 시작할 것입니까?」

한편 이쪽은 세이버 씨. 과연, 이것은 도전할 보람이 있을 듯 하군요, 라며 기세등등한 웃음을 띄우며 완전무장으로 몸을 두르고 있다.

「세이버, 무장은 풀도록. 오늘은 그쪽이 아니니까」

하지만 토오사카 씨는 어이어이, 라는 듯이 손을 흔들어, 세이버의 무장을 풀게 하였다.
그 말을 받고, 마지못해 무장을 해제하는 세이버. 모처럼 날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만, 이라는 조그마한 속삭임은 분명 환청이겠지.

「그럼 뭘 하는 거야? 여기의 탐색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곳의 탐색이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어. 아까 루비아가 말했잖아, 여긴 『전 원소 서고(헥사리스탈·라이브러르)』라고」

분명히 기억하고 있지? 라고 토오사카가 시선을 묻는다.

「에, 그러니까, 분명히 표리(表裏) 6개의 원소 모두를 이용한 봉인공간…… 이었지?」

조심조심 대답하는 나에게,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은, 좋아, 좋아, 잘 들었구나, 라고 선생님의 얼굴로 끄덕인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이곳은 『전 원소 서고(헥사리스탈·라이브러리)』가 아냐」

토오사카는 다시, 바닥에 쓰여진 진의 중앙에 서서, 이번엔 제대로 주문을 영창했다.
그러자, 토오사카의 정면에 있던 책상이, 마치 장난감 블록이나 루빅큐브처럼 덜컥덜컥 열리고, 닫히고 다시 재조립되어 갔다.

「이곳은 더 나아가 7번째의 요소, 마법마저 포괄한 『7요소 서고七要素書庫(젤릿치·스펙트럼·라이브러리)』」

토오사카의 목소리에 재촉된 듯이, 눈앞의 책상은 변화의 속도를 높여 가, 결국 잔상밖에 보이지 않게 되어, 그 동작이 멈추었을 때에는 반짝반짝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크리스탈 상자 모양으로 나타났다.

이상한 상자다. 형태는 커다란 보석상자이면서, 백과사전 두 세권을 겹쳐 쌓은 정도의 사이즈로, 그 여섯 개의 면이 반짝반짝 무지갯빛으로 변화하는 크리스탈로 이루어져 있었다.

「마정궤魔晶櫃? 이런 것이 숨겨져 있었던 건가요?」

루비아 양이 다시 감탄의 목소리를 울렸다.

「그래, 대사부가 남긴 토오사카 가문의 가보. 대사부의 보석상자. 이 안에 대사부의 숙원, 마법으로의 계단이 숨겨져 있을 터야」

「이것이 7번째의 문이라는 것이군요」

어때, 라며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펴는 토오사카. 갑자기 루비아 양의 눈빛이 바뀐다. 그것도 그렇겠지. 눈앞에 마술사의 최종목표, 마법으로의 문이 나타난 것이다. 마술쟁이인 나 역시 꽤나 흥미를 느낀다.

「그럼, 역시 이것도 열면 저쪽의 서가처럼 어딘가로 연결되어 있는 건가?」

「아~, 아마도 아닐 걸」

나의 질문에, 토오사카는 슥, 하고 시선을 피하며 답했다. “아마도”?

「그렇다면 어떻게 되어 있다는 것인가요?」

「그게, 보석검?石? 젤릿치의 설계도인지 뭔가가 들어있다…… 라고 생각해」

보석검? 왠지 이름으로 보면 엄청난 것 같긴 하지만…… “라고 생각해”?

「린, 정직하게 이야기 하시는 것이 어떠신지? 무엇을 위해 저에게 협력을 요청한 것인가요?」

그런 토오사카의 대답을, 심술궂은 미소를 띄우며 노려보는 루비아 양이, 즐겁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아, 알았어. 그러니까……」

과연, 그런 건가.

「린도, 아직 들은 바가 없다, 라는 것입니까」

세이버가 조금 심술궂은 목소리로 그 뒤를 이었다.

「하는 수 없잖아. 이것도 숙제니까. 나 혼자라면 내 대에서 이걸 열 수 있을지 어떨지도 의문스러운 걸」

드디어 배째라 모드로 나왔다. 흥, 하며 얼굴을 돌리고 팔짱을 끼며 고집을 피우고 있다.

「어쨌든 설명해 주시는 게 어떠신지? 저는 이미 들었으니 됐습니다만」

루비아 양은 그런 토오사카를 정말로 즐겁다는 듯이 바라보며 생긋 웃는다. 그 웃음에 속이 끓는 듯한 토오사카의 표정. 너희들 정말로 사이좋구나.

토오사카의 설명에 의하면, 이 궤짝을 열기 위해서는 3개의 열쇠가 필요한 듯하다.
아무래도 최초의 성배전쟁 때에 넘겨진 물건이라, 궤짝과 “열쇠”의 하나는 토오사카 가문에 넘겨졌지만, 나머지 2개는 아인츠벨룬과 마리키에게 하나씩 넘어간 듯하다.

「하지만, 그럼 싸움이 나지 않겠어?」

요컨대 마법으로의 열쇠다. 그런건 보통 독점하고 싶어질 텐데.

「아인츠벨룬과 마키리에는 “열쇠”라고 넘겨진 게 아닌 모양이야. “열쇠”라고 해도 물리적인 열쇠가 아니니까」

즉, “열쇠”라는 것은 술식이나 계보의 피, 혹은 다른 기능을 가진 마구의 형태로 보내졌다는 것이다. 혹시 계보의 피나 가전家?의 비적秘蹟을 열쇠로 설정했다면, 상대는 열쇠를 받았다는 자각조차 없을 것이다.

「혼자서만 풀고 싶으면, 시간을 들여서 느긋하게 연구해라. 지름길은 준비해 두었으니, 그쪽으로 가려면 재주껏 아인츠벨룬과 마키리를 속여라, 라고 하는 것이군요. 소문으로는 들었지만 정말로 꼬인 분이로군요」

수정옥水晶玉(틴달로스)의 때도 생각했지만, 정말로 어처구니없는 할아범이군, 대사부라는 사람은.

「토오사카 가문 대대로 해온 연구로 어떻겐가 열쇠 하나 분의 시술은 클리어 했어. 하지만 앞으로 하나 더 남아있지. 착실하게 한다면 5, 6대는 걸릴 거야」

「거기서 저와 시로의 차례로군요」

한숨 섞인 쓴웃음을 짓는 토오사카에게, 힘을 담아 루비아 양이 말을 이었다.

「그래. 시로의 해석능력, 거기에 나와 루비아의 마력과 지식, 이 두 개가 있다면 나머지 하나도 어떻게든지 클리어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거야」

그대로 두 사람 모두 나에게 씨익 미소 지었다. 어라, 나도?

「하지만, 내가 그런 거창한 일을 할 수 있을까?」

역시 위축된다. 초일류 마술사인 토오사카나 루비아 양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연구라니.

「말하자면 죠커이죠」

「응, 걸리적거릴지도 모르지만, 대사부라고 시로의 해석능력을 예측했을 리는 없을 테니까」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장애물 취급이다. 내가 물에 빠졌을 때의 지푸라기냐? 그야 그렇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왠지 좀 마음에 안 든다구.

「시로우, 그 두 분은 수줍어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묘하게 퉁퉁거리고 있는 나에게, 세이버가 따뜻한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뒤이어, 아닌가요? 라며 재미있어 하던 토오사카와 루비야 양에게도 부드러운 미소를 향했다.

「두 분은, 누구보다도 시로우를 높게 사고 있습니다. 그 점에 대한 것은 시로우가 가장 잘 알고 있을 터입니다만?」

정면에서 날아오는 세이버님의 말씀. 쑥스럽다.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조금 고개를 숙이고 빨개지고 있었다. 나도 지금, 새빨갛겠지.
그걸 세이버가 정말로 미소가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으니, 점점 더 부끄러워진다.

「어, 어쨌든 그런 거야. 열심히 하라구, 시로」

「시, 시로우는 너무나 중요한 역할이에요. 확실하게 부탁드리겠어요」

「오, 오우」

왠지, 너무나 마법으로의 도전에 어울리는 분위기가 아니게 되었지만, 그래도 우리들은 대사부의 유물에 도전하게 되었다.
단지, 왠지 모르게 이걸로 좋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설령 아무리 괴로운 일에 직면하게 되어도, 우리들은 언제나 이렇게 거침없이 나아간다. 그것이 솔직한 기분이기도 했다.

「이것이 우선 나의 열쇠」

마정궤의 앞에서, 토오사카가 왼팔의 마술각인을 번뜩인다. 우선 첫 번째의 “열쇠”. 그것은 토오사카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마술각인 안에 교묘하게 짜 넣어진 복합주식複合呪式이라고 한다.

「시로, 이제부터 열 테니까, 확실하게 봐 둬」

「알았어」

“열쇠” 부분은 너무나 복잡해서, 나로선 따라갈 수 없었다. 아니, 술식 그 자체는 읽었지만, 의미를 전혀 알 수 없었다. 말하고 보니 백과서전을 전권 통독하는 행위같은 것이다. 읽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걸로 의미를 깨닫는 것은 나름대로의 기술과 지식의 축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열쇠”를 주시하고 있는 것은 루비아 양이다. 제 3 열쇠를 구축하기 위해, 토오사카의 마술각인으로 “열쇠”에 해당하는 부분을 직감으로 읽어내어 재구축한다. 이것은 일류 마술사의 눈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토오사카 자신은 자기 “열쇠”에 대해서는 이미 파악하고 있는 듯하지만,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은 입으로 말하는 것보다 실제로 보는 쪽이 빠르다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궤짝 쪽을, 즉 자물쇠를 주시했다. 이쪽은 마구라고는 해도 도구다. 열쇠가 들어가 어떠한 원리로 열리는 가는, 해석능력이 우수한 나밖에 읽어낼 수 없는 일이라 한다.

철컥

실제로는 소리가 들릴 리가 없는, 기계식이 아닌 어디까지나 주술의 열쇠다. 허나 내 머릿속에서는 그런 소리가 들려왔다.

「어땠어?」

「자물쇠라기보다는, 아까 이 상자가 만들어 졌던 때의 퍼즐 같은 느낌이었어」

차례차례 떨어져 오는 입방체가, 필요한 장소에 유도되어 하나의 형태가 되어 사라진다. 그런 이미지의 연쇄가, 최종적으로 개방으로 연결되어 가는, 그런 감촉이다.

「열쇠 쪽도 그것으로 설명이 가능해요. 정해진 형태라기보다는, 피타고라스 파의 수식마술 응용일까요? 변동하는 상황을 쫓아 해답을 구하는 계산식 타입이로군요. 틀린가요?」

「정답. 그럼 다음으로 간다. 이게 2번째」

토오사카는, 마법진이 새겨진 양피지에 보석을 배치하며 다시 마술각인을 발동해, 왼쪽 손바닥을 진의 중앙에 내리 눌렀다.

「――――Anfang(세트)」

「헤에……」
「어머나……」

루비아 양과 나의 탄식소리가 메아리친다. 토오사카의 마술각인에 호응하듯이, 마법진 술식은 재계산되어, 답을 내고, 더욱이 그 해답을 바탕으로 보석을 녹이면서 새로운 술식을 양피지에 새겨간다.

「토오사카가 발견한 열쇠는 재구축하는 술식이었군요」

「응, 자물쇠 쪽이 매번 새로워지니까, 이 방법밖에 없어」

토오사카는 그렇게 말하고, 새롭게 짜여진 “열쇠”를 자물쇠 부분에 집어넣었다.

「그럼 간다, 두 사람 다 잘 봐두도록 해」

토오사카는 그대로 서서히 마법진을 기동했다. 이번에도 똑같다. 무수한 부정형不定形(불규칙한 모양)이 차례차례 떨어져 오는 것을, 술식이 떠오르게 해 알맞은 곳으로 끼워넣어 간다. 단지 속도가 올라가 있다. 아까 전의 배에 가까운 속도와 양으로 이미지의 연쇄가 이어져간다. 아, 하지만…….

철컥

어찌어찌 자물쇠는 벗겨졌다. 하지만 꽤 위험했어. 마지막은 꽤나 막히던데.

「아까의 열쇠 수식을 이용해 새로운 열쇠를 구축한다, 그것은 알겠어요. 하지만 어째서 3번째에도 똑같은 방법을 쓰지 않는 거죠?」

「그 질문의 답은 시로가 알고 있을 텐데?」

내 자그마한 표정의 변화를 눈치 빠르게 깨달았을 것이다. 토오사카는 루비아 양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나에게로 돌렸다.

「수식이 열화劣化(쇠약해지다)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자물쇠 쪽은 아마도, 전에 개방되었던 정보를 토대로 재계산되어 새로운 자물쇠를 구축했다고 생각하지만, 토오사카가 준비한 술식은 계산이 조금 따라가지 못하는 느낌이었어. 방금 것도 꽤나 끊기고 있었고」

「그런 거야. 계산의 재조합이 진짜에 비하면 엉성해. 한 번의 카피라면 아슬아슬하게 들어맞지만, 2번 이상이라면 따라갈 수 없게 되고 말아」

펄럭펄럭 주식이 새겨진 양피지를 흔들며, 토오사카가 찡그린 표정으로 루비아 양에게 말했다.

「일단 만들고 나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면…… 아, 그렇군요, 한 번 할 때마다 재계산되어 버리는 군요」

「그래. 그럴 때마다, 전의 개방조건을 토대로 다시 짜여 지기 때문에, 똑같은 자물쇠는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아」

즉, 트라이 앤드 에러(try and error, 될 때 까지 반복하는 방법)는 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재조합한 주식의 정순함을 올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로군요?」

「그래, 주식을 해체하는 계통수系統樹는 가지고 왔어」

그렇게 말하고 토오사카는 전화번호부 같은 노트 다발을 꺼냈다.

「우와아, 그 한 장 한 장이 그거야?」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이래뵈도 꽤 정리되어 있어」

200년분의 결정이라구, 라며 툴툴거리는 토오사카 씨. 아니, 그건 알지만, 그걸 지금부터 해석하겠다고?

「시간이 아깝군요. 괜찮나요? 제가 봐도」

「그걸 위한 공동연구야. 대신 결과는 뽑아낼테니까」

후우, 하고 숨을 들이쉬었다 내쉰 다음 노트를 열자, 그야말로 마차를 모는 말이 되어 질주해가는 두 사람. 이 집중력은 정말 엄청나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렇게 되면 나는 할 일이 없어져 버린다. 재미있어 보이는 잡동사니는 여기저기에 있지만, 이곳은 대사부의 서고다. 이상하게 만지작거리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하는 수 없이, 나는 토오사카가 놓아둔 2개의 열쇠 주식을 읽는다, 라고 할 수는 없이 바라보았다.

토오사카의 각인에 숨겨진 열쇠는, 각종 주식에 숨겨져 엄청나게 복잡해져 있었지만, 이놈은 그 핵만을 추출한 듯이 되어 있는 탓인지, 나라고 어떻게든지 해석할 수 있을 듯하다.
물론, 의미는 알 수 없다. 단지 순서를 쫓아 어떻게 되는 것인지를 알 수 있을 뿐이다.
아아, 과연, 여긴가.
이렇게 다시 보니, 몇몇 부분에서 흐름이 막힌 곳이 보인다.

「저기, 토오사카」

「……응? 왜, 시로」

「이 술식, 이 부근이 막혀있는데」

「이 부근? 어느 곳인가요?」

아무런 생각 없이 마법진을 짚어 나가며 토오사카에게 물었던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루비아 양도 바라보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구체적으로 어느 주각인지 아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있어서는 이 부근, 이라며 애매한 위치를 가리킬 수밖에 없다.

「어떻게 생각해?」

「해 볼 가치는 있어요」

그런 나를 바라보며, 골똘히 생각하고 있던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은 얼굴을 마주보며 끄덕였다.

「저기, 뭘 할 거지?」

「일단 이걸로 세 번째의 열쇠를 만들 거야」

「시로우는 그 볼트넥을 잡아주세요」

즉 나의 해석능력으로 열쇠를 역산해 자물쇠를 시뮬레이트한다는 것같다.

「그런 걸로 잘 될까?」

「안 되어도 다음으로 연결할 수 있어. 시로는 우리들과 달리 볼 수 있잖아」

「열쇠가 아니라, 열쇠를 만드는 술식 레벨로 트라이 엔드 에러를 행한다는 거에요」

돌파구가 열린 탓인지, 두 사람 모두 무슨 새로운 장난감을 손에 넣은 아이들처럼 눈을 빛내며 희희낙락 전화번호부와 술식에 열중했다.
이번엔 일단 나도 끼어들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은 토오사카나 루비아 양에게서 들을 때마다 저기가 끊겨있어, 여기가 막혀있어, 라고 가리키는 것 정도다. 사실 말하자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엉망진창 횡설수설이지만, 그래도 전체의 흐름이 서서히 매끄러워 지는 것을 간파할 수 있었다.

「……되었어요」

「이걸로 열 수 있나?」

「으~음, 4:6 정도일까. 아직 좋지 않아」

「어쨌든 수고하셨습니다」

해석이 시작된지 거의 한나절, 온 힘을 쏟은 작업은 겨우 끝나고, 우리들은 지친 듯이 기지개를 폈다.

「고마워, 세이버」

차갑게 젖은 타올을 나눠주는 세이버에게 감사를 표했다. 어쨌든 나도 작업에 열중한 탓에, 식사든 뭐든 잡일을 모두 세이버에게 맡겨버린 것이다.

「자, 그럼 시험해 보자. 잘 봐, 시로」

「오우」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이, 새로운 술식을 바탕으로 “열쇠”를 짜 맞추는 준비를 시작한다. 나의 역할은 궤짝 앞에 진을 친 자물쇠의 관찰이다. 개방의 정도, 어디에서 걸렸는지의 파악. 그걸 토대로, 이번은 루비아 양과 토오사카가 술식의 문제점을 밝혀낸다고 하는 방법이다.
컨티뉴 없는 일발 삼연속 승부인데도 꽤나 손이 가는 방법이지만, 개방의 상황을 관찰할 수 있고, 더욱이 열쇠의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는 내가 있어 가능한 방법이라고 한다. 왠지 편리한 도구 취급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무 도움 안 되는 것보다는 기쁘다.

「――――Anfang(세트)」

토오사카의 마술회로 기동을 신호로, 3개째의 열쇠가 자물쇠에 들어간다.
자, 그럼 한번 기합을 넣어서 가 볼까.

——————–

HF에선 휙 하고 나오는 보석검의 설계도입니다만
그런 건 신경쓰지 않는게 정해진 약속♡

그나저나 심각하고 어려운 내용이 나오니까 재미 없나봐요?
읽는 분이 점점 줄어가고 있음 […] 아 왠지 기운 빠지네;;

참고로 디랙Dirac의 바다는
‘진공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닌 마이너스 전자의 바다’라는 의미입니다.
자세한 건 인터넷 검색을 해BoA요 […]
참고로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12사도 렐리엘이 이 디랙의 바다로 이루어져 있다는 설정입니다;

여전히 오타 지적은 환영합니다.

「아야야……」

눈을 뜨니 그곳은 무지갯빛 세계였다.
허나, 아까까지의 현기증 날 정도로 변화하는 무지갯빛과는 조금 달랐다.
좀 더 안정되어 있었다. 진주광택이 보이는 무지개같이, 온화하게 어딘가 안정되어있는 색체였다.
……잠깐, 아까?

「호오, 눈을 뜬 건가」

「우와아!」

나는 순식간에 일어나 자세를 잡았다.
내가 누워있던 소파와 같은 의자 끄트머리, 그곳에 태연하게 서 있었던 것은, 아까 나를 걸레짝처럼 두들겨 팬, 그 할아버지였다.

「그리 굳지 마라. 아까는 미안했네. 너무나 희미해서 토오사카의 혈통이라는 걸 파악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으니」

한순간, 되받아 치려 했던 나의 어깨를 단단히 붙잡고, 할아버지는 허물없이 말을 걸었다. 표정과는 정반대로 내 어깨에 얹힌 손은 엄청나게 무거웠다. 단지 놓여있을 뿐인데도, 몸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저기…… 토오사카라뇨?」

「아아, 확인할 때에 조금 훔쳐봤네. 자네는 토오사카의 서방인가. 이번 대는 꽤나 귀여운 아가씨인 듯하군」

할아버지는 어느 새 나타난 의자에 앉아, 조금 심술궂은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아니, 저기…… 서방이라니. 윽, 그것보다도.

「저기, 당신은?」

「흠」

할아버지는, 앉은 채로 깍지를 끼고, 한쪽 눈썹을 치켜 올려 내 눈을 바라보았다. 단지 바라보고 있을 뿐인데도, 무언가 엄청난 위압감이다.

「토오사카의 계보라면, 이미 알고 있을 터인데?」

그대로, 자, 다음은 자네의 차례다, 하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모르겠다면, 설령 토오사카의 계보라 하여도 가만히 놔두지 않겠다, 그런 말이 들려오는 듯한 표정이다.

「아, 예. 대사부……님이신가요?」

「겨우겨우 턱걸이로군」

쓴웃음을 지으며 일어선 할아버지는, 그대로 나에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래. 나는 자네가 대사부라 부르는 자. 이름은 키슈아·젤릿치·슈바인오그」

붉은 악마
「진홍의 악마」 – Rin Tohsaka- 제6화 후편
Asthoreth

「――동조개시(트레이스·온)」

느닷없었다. 느닷없이 시로가, 마정궤에 손을 얹으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시로!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무엇을 하고 계시는 겁니까, 시로우!」

나와 똑같이 루비아도 소리를 높였다. 이 녀석, 정말로 무슨 짓을 시작하는 거야!

그것은 자물쇠를 여는 주식을 시험하는 3번째 실험 도중의 일이었다.
시로의 해석 덕분에 어찌어찌 3번째 열쇠의 정순도를 높일 수 있었지만, 그래도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방법은 틀리지 않았다 생각한다. 시로의 해석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해서, 문제의 주식은 매 회 확실하게 추출해 낼 수 있었다. 문제는 해법 쪽. 매번 새로 조립되는 자물쇠라, 아무리해도 타임랙(timelag)이 생겨서 계속해 밀리고 만다. 마지막 한 걸음, 그 한 걸음이 좁혀지질 않는 것이다.

「괜찮아. 이제 조금 있으면 돼. 내가 직접 해 보겠어」

시로는 이마에 구슬땀을 흘리며 궤짝을 지긋이 노려본 채 대답했다.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았다. 지금까지 거쳐 왔던 두 번의 시도와 마찬가지로 지금 역시 마지막 한 걸음일 것이다. 우리들은 그것을 관측할 수 없지만, 시로는 가능하다. 그래서 시로는 자신의 마력을 직접 흘려 넣어 마지막 한 걸음을 나아가려 하는 것이다.

「무리예요! 시로우 당신은 술식을 이해하고 있지 않잖아요!」

루비아도 나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는지, 잡아 끌어내릴 듯한 기세로 시로에게 다가가려 하였다.

「기다려, 루비아!」

하지만 나는 그 행동을 저지했다. 이미 시로는 술식에 라인을 연결하고 말았으니까. 여기까지 오면 허투루 대응했다간 오히려 위험하게 된다.

「괜찮아, 이해는 할 수 없지만, 어떻게 하면 되는지는 알고 있어」

아아, 정말, 저 마술쟁이가! 나는 루비아를 말리면서, 진심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갑자기 이런 위험한 짓을 하다니, 원래라면 내가 시로를 끌어 내려서 한 두 방 먹이고 싶을 참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 시로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다. 일단 시로 역시 대사부 계보의 끝자락이니, 거부반응은 없을 텐데…….

철컥

귀에 들리지 않는 자물쇠의 소리. 한 순간에 어깨에서 힘이 빠진다.
해냈다. 시로는 훌륭하게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어 보인 것이다. 기쁜지 분한지 나도 알 수 없는 감정이 용솟음치는 와중에도, 나의 마술사의 눈은, 천천히 열리는 마정궤의 뚜껑에 못 막히고 있었다.
그래서, 눈치 채지 못했던 것이다. 시로가 자물쇠를 여는 순간부터 꼼짝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덜컹

「――에?」

그런데, 마치 마정궤의 뚜껑에 호응하듯이 열렸을 터인 여섯 개의 서가가 갑자기 움직였다.

「린! 루비아! 엎드리십시오!」

세이버는 다급했는지 시로우와 나, 루비아를 함께 밀어 쓰러트렸다.

―― 슈웅! ――

그 다음 순간 쓰러져 있는 우리들 바로 위를, 무언가가 맹렬한 속도로 통과한다. 수는 여섯. 문의 저편, 각각의 방에서 무언가가 하나씩 돌진해 온다. 반짝반짝하고 다채롭게 빛나는, 크리스탈?

―― 카아아 ――

여섯 방에서 뛰쳐나온 여섯 빛깔의 수정판은 뚜껑이 열린 마정궤의 주위에 모여, 순식간에 짜 맞춰 지더니, 한 층 더 큰 궤짝이 되어 마정궤를 감쌌다.

「이건…… 도대체 무엇이지요?」

「무슨 트랩들이 튀어나온 것 같은데……」

몸을 엎드린 채로, 나는 루비아와 얼굴을 마주했다. 실수했다. 그것만은 틀림없다.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어깨에 힘이 빠졌다.

「린! 루비아! 시로우가!」

해버린 실수는 어쩔 수 없지, 라며 기분을 가라앉히고 일어서려던 참에, 세이버의 다급한 목소리. 큭, 그랬지. 함정을 발동시키고 그 함정에 붙어있던 시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 리가 없다.

「루비아, 부탁해. 내가 문을 닫을 테니까」

「알겠어요」

진심으로 저 곳으로 뛰어들고 싶다. 하지만 상황으론 우선 어째서인지 열려버리고 만 여섯 개의 문을 닫지 않으면 위험해서 움직일 수가 없다. 또한 이 문들은 내가 아니고서야 움직이지 않는다.

「――――Anfang(세트)――Schliessung(자물쇠를 걸어라)!」

진에 마력을 흘리면서 나는 납득했다. 틀림없이 저 마정궤다. 희미하게 남아있는 라인에서 한 순간 이곳으로 마력이 통하는 것이 느껴진다.

「세이버, 루비아! 시로는!?」

해야 할 일을 끝내자마자 불안감이 엄습한다. 곁눈으로 본 바로는, 눈을 뜬 채로, 마치 마비된 듯이 굳어있는데…….

「외상은 없고, 지금으로선 생명에도 지장은 없는 듯해요. 하지만……」

시로의 옆에서 무릎을 꿇고 상태를 보던 루비아가, 안타깝다는 듯이 이를 악물고 새로 짜여진 6색의 마정궤를 노려보았다.

「정신을 잃은 것 같군요. 확인은 아직 할 수 없지만, 아마도, 저쪽으로」

「――큭」

한 순간, 의식이 새하얗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 시로에게는 아직 숨이 붙어있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일은 반드시 있다. 나는 마음을 바로 잡고 세이버에게 지시를 내렸다.

「세이버, 주위를 경계하도록. 아직 이걸로 끝났다고 안심할 수는 없으니까」

「예」

「루비아, 괜찮겠지?」

「에에, 궤짝과 시로우의 스캐닝이로군요. 어느 쪽을?」

「……시로를 부탁해. 궤짝은 내가 하겠어」

한 순간 망설였지만, 시로에 대해서는 루비아에게 맡기기로 했다. 시로 쪽은 나랑 루비아, 어느 쪽이 하든 똑같다. 하지만 궤짝은 내가 적임이다. 미안, 시로. 믿고 있을게.

「루비아, 어땠어?」

「틀림없어요. 라인은 확인했고, 시로의 의식은 저 궤짝에 빨려 들어간 거에요. 린, 그쪽은?」

「한 마디로 말해서 아까의 마정궤가 한층 더 커진 거야. 잠깐 이거 볼래?」

주위의 경계와 방비를 세이버에게 맡기고 나와 루비아는 손에 있는 기재를 풀로 동원해서 시로와 궤짝을 조사했다.
루비아에게 말한 대로 크기 자체는 다르더라도, 이 새로운 궤짝은 아까 전까지의 마정궤와 거의 똑같은 구조라 할 수 있었다. 여섯 면을 바탕이 된 원소의 색으로 물든 크리스탈로 형태를 이룬 입방체. 그리고, 그 윗 면, 뚜껑에 해당하는 부분에……

「이건……」

「그래, 자물쇠야」

그곳에는 여섯 개의 자물쇠. 물론, 물리적인 자물쇠가 아니다. 아까 전의 궤짝과 똑같이, 주각과 작은 보옥으로 만들어진 주식정(呪式錠)이다.

「두 배나 늘어나 있잖아요…… 그래서 열쇠는?」

「내가 가지고 있는 토오사카의 열쇠는 맞지 않았어」

곤란했다. 아마도 이 궤짝의 뚜껑을 열어야 시로를 구할 수 있을 테지만, 열쇠는 없고, 시로도 없고, 이 만큼 복잡한 주식정은 나로선 어찌할 방도가 없다. 무슨 실마리라도……

「린, 한 가지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주위를 경계하면서 우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세이버가 입을 열었다.

「뭔데?」

「아까 전 린이 6개의 문을 닫기 전입니다만, 그 방 안에서부터 이쪽으로 희미하게 마력의 연결이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지금은 느껴지지 않아 단언은 할 수 없습니다만……」

세이버의 말에, 나는 여섯 개의 서가에 시선을 던졌다. 이 궤짝의 바깥 판도, 그곳에서부터 날아왔다. 그렇다면……

「린, 저 원소의 방에는 그 원소에 어울리는 것들이 있겠지요?」

「있어. 아니, 그렇다기보단 그런 물건 투성이지」

어찌되었든 대사부의 서고다. 인외마경이라는 점을 보면, 떨어져 있는 작은 돌멩이 하나라 해도 무언가 일어날지 알 수 없는 것들뿐이라고 해도 좋다. 하지만 혹시 자물쇠에서 라인이 이어져 있다면 그것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한 번 더 문을 열겠어. 세이버, 루비아. 라인을 확인해 줘」

「알겠어요」

「맡겨 주십시오」

두사람의 굳은 결의. 시로의 일이라 생각하니 눈물이 나올 정도로 기쁘다. 하지만 지금은 아직 할 일이 있다. 기다리고 있어, 시로.

「――――Anfang(세트)」

세 번째로 서가가 이동한다. 열린 것은 원소 사이로의 문. 이어서 눈을 뜬 것처럼, 궤짝의 자물쇠로부터 무언가 가느다란 힘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것입니다. 아까전의 라인은」

「저쪽으로부터도 흘러나오고 있군요」

세이버가 궤짝을, 루비아가 원소의 방을 바라보고 중얼거리듯이 말한다. 그에 따라서 나도 라인을 확인했다. 궤짝과 방, 쌍방에서 뻗어 나온 가느다란 라인은 “저쪽”과 “이쪽”의 경계선에서 딱 하나가 연결되어 있다.

「적어도 이 끝에 무언가 힌트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로군요」

마력의 라인을 잡아가며 루비아가 팔짱을 끼고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루비아도 눈치 채고 있는 거겠지. 이건 함정이긴 하지만, 동시에 대사부의 숙제 중 하나이기도 한 것이다.
대부분 똑같은 상자에 두 배의 열쇠, 그 힌트는 똑같은 서고 안 인외마경. 집행유예에 의한 추가시험이라는 거겠지.
아아, 분하다. 난 추가시험 따윈 태어나서 처음이란 말야. 시로가 앞질러 나간 것이 조금 원망스럽다.

「잔소리를 하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해야겠지」

「그래요. 정말로 저렇게 무리를 하니」

소파에 뉘인 시로를 향해 그런 생각들을 하며 중얼거리고 있으니, 옆에서 루비아도 똑같은 소리를 했다.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어딘가가 부드러운 표정이라 화가 났다. 루비아 녀석도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휙 하고 얼굴을 돌려버렸다. 아마도,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겠지, 나도.

「린의 얼굴을 보고 있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지요」

「그건 내가 할 대사야. 세이버, 조금 힘 써줘야겠어」

「예, 린. 맡겨 주십시오」

서로 투덜투덜 거리는 나와 루비아에게 세이버가 힘차게 끄덕였다.
자, 그럼 한 번 기합을 넣어서 가 볼까요.

「――의 그림자 비슷한 것일 까나」

「예?」

「흠, 모르겠는가?」

대사부에게서 중압감이 사라지자, 대신 심술궂은 미소가 떠올랐다. 아아, 이건 기억난다. 토오사카의 선생님 모드와 무지 닮았다. 여기에서 대답하지 않으면 귀신 모드로 들어가는 거지.

「그러니까, 제가 여기에 있는 건……」

어쨌든 생각했다. 우선 어째서 내가 이런 곳에 있는 가부터. 분명 대사부의 보석 상자를 열려고 하다, 뚜껑은 열었지만, 그 뚜껑이 열림에 따라 안으로 빨려 들어가 버린 듯한…… 아.

「이거, 꿈입니까?」

「마술사로서는 상당히 막연한 대답이로군. 그래서는 합격점을 줄 수 없어」

대사부는 시시하다는 눈초리로 나를 보았다. 아, 위험해. 다음에 확실하게 대답하지 않으면 어떤 취급을 당할지 눈에 선하다.

나는 다시 한 번 이 세계를 둘러보았다. 부드러운 무지갯빛의 세계. 마치 그 궤짝 안에 있는 듯하다. 그럼, 정말로 안일까? 나는 예전에 루비아 양의 내면세계에 빠져든 때를 생각해냈다. 아마도 그 때와 똑같을 것이다. 감각적으로는 리얼하지만, 아마도 이것은 가상현실, 나는 정신만이 이곳에 있는 것일 테지.
그렇다고 한다면 눈앞에 있는 대사부도……

「당신이 토오사카 가문의 “숙제”로군요?」

다시 말해 그런 것이 아닐까. 내 눈앞에 있는 대사부는 본인이 아니다. 자기도 “그림자”라고 말했듯이, 이곳으로 들어온 내 존재처럼 “대사부”와 똑같이 반응하듯이 설정한 일종의 주식일 것이다.

「아슬아슬했지만 합격으로 해둘까」

나의 대답에, 너무나도 어쩔 수가 없다는 얼굴로 대사부가 일어섰다. 하지만, 뭐라고 할까…… 저 눈동자 속에서, 이 녀석은 꽤나 재미있겠다는 기색이 보이는 건, 기분 탓이 아니겠지.

「그럼 시작할까. 이것이 토오사카에게 준 숙제다」

「린! 루비아젤릿타! 각오를 굳히십시오!」

말하기가 무섭게 세이버는 나와 루비아를 마음껏 집어던졌다.

「꺄아!」
「와아!」

집어던져진 방향의 끝은, 흙의 공간(시지포스·케이브)의 출구. 어떻든 낙법은 취할 수 있었지만, 그대로 서고의 중앙, 시로가 누워있는 소파 옆에 둘 다 부딪혔다.

「읏……」
「큭……」

나와 루비아는 일어서지 못하고 그 곳에서 머리를 감쌌다.

―― 쾅! ――

이어서 굉음과 함께, 바위가 부딪히는 소리. 다행히도 “흙의 공간”의 입구는 이 바위보다 작았다. 작은 파편들은 날아왔지만, 바위 자체는 문에 가로막혀 서고 안까지 굴러 들어오지 않았다.

「세, 세이버?」

하지만, 여기서 깨달았다. 그럼, 아까까지 우리들과 함께 저 바위에게 쫓기고 있던 세이버는?

「린, 영령을 얕보지 말아 주십시오」

허둥대는 우리들의 바로 옆에서 세이버의 조금 기분나쁜 듯한 목소리.
우리들을 집어 던짐과 동시에 가속해, 우리들 보다 한 발 먼저 서고로 빠져나온 듯하다. 아니, 잠깐.

「그럼 우리들을 받아줘도 되었던거 아냐?」

「정말…… 혹이 생기고 말았어요」

집어 던진 것을 그대로 받아 든다. 마치 만화책의 이야기같지만, 세이버라면 실제로 그 정도는 가능할 터다.

「그건 실례. 두 분 모두 저보다 먼저 걸어가시는 것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 사양을 한 터입니다만」

허나, 우리들의 항의에 세이버는 입가를 살짝 올리고 눈을 가늘게 떠 대답했다. 으, 그렇게 말하면 대답할 말이 없지…….

「시로우를 위한 일이니, 두 분이 서두르고 싶은 기분은 이해합니다」

세이버는 엄하면서도, 어딘가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허나 그 때문에 린이나 루비아젤릿타가 상처를 입으면, 시로우를 더욱 슬프게 만드는 일이 될 것입니다. 아닙니까?」

다음부터는 좀 더 제가 하는 말을 들어주십시오, 라며 훈계하듯이 우리들을 바라본다.

「미안……」
「사과드려요……」

이렇게까지 당연한 말을 들으면, 사과할 수밖에 없다. 분명히 조금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흙의 공간(시지포스·게이브)”. 구르는 바위가 왔다 갔다 하는 지하동굴. 우리들은 라인을 더듬고, 바위를 피하고, 어째서 이런 곳에 있나 하고 말할 수 있을 듯한 서가나 책장 사이를 지나, 목적이던 “열쇠”를 발견했다.
거기까지는 이상한 공간의 왜곡도, 마수魔?같은 장해물도 나타나지 않았던 탓도 있어서, 나는 부주의하게 그걸 손에 들고 말았던 것이다.
그 직후 지금까지 무작위로 구르고 있던 바위가, 마음껏 속도를 올려, 우리들을 쫓아오기 시작했다.
그것을 세이버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여기까지 도망쳐 올 수가 있었기 때문에, 강하게 나갈 입장이 아니다.

「하지만, 이걸로 하나」

루비아가 일어서, 손에 든 흑요석을 수정궤의 열쇠에 맞춘다. 거울 같이 연마되어서, 빨려 들어갈 듯이 검은 흑요석의 코인. 마술사가 아니라면 그 중앙에 틈을 벌려 새긴 주각의 존재는 깨닫지 못할 것이다.

철컥

녹아들어가듯이 흑요석이 자물쇠에 잠긴다. 우선은 하나.

「자, 그럼 다음으로 가자. 세이버, 부탁해」

「예, 맡겨주십시오」

「어라?」

「딴 곳 보지 마라!」

고개를 들자마자 후두부를 강타당했다. 아니, 대사부님, 아까 앞에 있지 않았나?

「어딜 보고 있나. 지금은 중요한 부분이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왠지 색이 변한 듯해서……」

「응? ……호오, 현 당주는 너와는 달리 우수한 듯하군」

뒤통수를 문지르면서 중얼거리는 나에게, 대사부가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리며 놀리는 듯한 시선을 던진다.
주위의 무지갯빛 반짝임에 아주 조금 변화가 생겼다. 일곱 가지 색이 여섯 가지가 되었다, 그 정도의 변화지만.

「흠, 조금 서두르자. 나가토도 영 마음에 안 들었던 놈이지만 너는 한 술 더 뜨는구나」

왠지 엄청난 소릴 들은 것 같지만, 사실 그러니 불만도 말할 수 없었다. 나는 다시 대사부의 손안에 있는, 일곱 빛깔로 반짝이는 주식으로 시선을 돌렸다.

「――풍왕결계(인비지블·에어)―― 해방! ――」

몰아치는 바람이, 폭풍을 우그러트리고, 번개를 찢어발긴다.
용권을 튕겨내고, 번개구름을 물러나게 한 풍왕이 만든 하나의 길이 “바람의 공간(스톰·스피어)”를 일직선으로 관통했다.

「루비아」

「준비는 되었어요. 빨리 가세요」

꽤나 저항감이 있었지만, 루비아와 얼싸안은 채로 나는 마법진 중앙에서 주문을 외웠다.

「――――Anfang(세트)―― Hurrah wir springen(바람의 날개)!」

발해진 주문은 바람과 중력제어. 껴안은 루비아와 함께 한번에 풍왕의 길을 돌파한다.

「큭…… 찾았다」

뚫고 들어간 곳의 끝은, 어떻게 하면 이게 방안에 들어가 있는 거냐는 의문이 들 정도로 커다란 소용돌이의 중앙. 그 중앙에 떠있는 창옥(蒼玉, 사파이어)의 단검을 나는 단단히 손에 붙들었다.

「잡았어, 루비아!」
「――――Le temps a(시간이여!) laissie son manteau(지금이야 말로 옷을 벗고 날아라)!――」

내가 외치자마자 루비아가 끝을 내지 않고 영창하고 있던 주문을 발동시킨다. 뛰어 들어왔을 때는 마법진의 보조가 붙었던 주문도. 여기에서 돌아가기 위해서는 영창만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야 말로, 이렇게 서로 부둥켜안은 꼴로, 루비아에게 계속해 주문을 영창시키게 한 것이다.

―― 쿵! 쾅! ――

「나이스 캐치」

“바람의 공간”에서 서고로 뛰쳐나오는 것과 동시에, 세이버가 풍왕결계로 지탱하고 있던 길을 무너트리고 나와 루비아를 받아들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꼬옥 부둥켜안은 채인 나와 루비아를, 가볍게 안아든 세이버가 안심했다는 듯이 말한다. 이걸로 두 개. “바람의 공간(스톰·스피어)”는 세이버의 힘을 빌려 편안하게 클리어 할 수 있었다. 다만 여자 셋이서 부둥켜안은 모습은 별로 보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여름이 온 건 아니겠지요……」

사파이어의 단검을 두 번째의 자물쇠에 넣었다. 우리들은 다시 다음 열쇠를 찾아, “불의 공간”에 도전했다. 내열 주문으로 감싸고 있다고는 해도, 이렇게까지 더우면 절대 쾌적하다고 할 수가 없었다.

「마력이 아니라 자연 용암이야, 이거」

나는 발밑에 깔려있는 마그마의 흐름을 보고 투덜거렸다. 어떤 구조로 되어있는 건지, 유황 냄새와 작열하는 용암으로 뒤덮인 이 방은 위도 좌우도 끝이 없이 굉장히 넓었다.
곳곳에 손잡이처럼 붙어있는 서가가 태연하게 떠있지 않았더라면 어딘가에 있는 화산의 화구라 착각해버리고 말 것 같다.

「하지만 정말로 배려가 없는 곳이군요」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서가를 노려보며 루비아가 눈썹을 찡그렸다.
남 말은 할 수 없지만, 대사부도 정리정돈에는 자유스럽지 못한 사람인 것 같다. 혹시 이것도 물려받은 건가?

「린, 눈치 채셨습니까?」

그런 상태로 주위를 탐색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자니, 열쇠로 연결된 라인을 더듬던 세이버가 찌푸린 표정으로 나에게 얼굴을 돌렸다.

「응, 움직이고 있네. 그것도 꽤나 빨라」

땅도 바람도 열쇠의 위치는 대체적으로 파악하면서 방을 찾았지만, 이 “불의 공간”은 밖에서는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안에 들어와 찾고 있는 참이지만, 아무래도 원인은 열쇠의 위치가 이동하기 때문인 듯하다.

「옵니다!」

그런데, 선두에서 걷고 있던 세이버가 발을 멈추고 하늘을 노려보며 자세를 잡았다. 우리들도…… 헤? 하늘?

―― 후웅! ――

그대로 우리들의 위를 통과하는 붉은 금빛의 불꽃.

「그러니까……」

「……불사조(피닉스)?」

……저런게 어떻게 있는 거야! 불사조야, 불사조! 환상종幻想種이잖아!

「린, 쫓겠습니다!」

잠시 동안 얼을 빼놓고 있던 우리들에게, 세이버의 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목소리에 등을 떠밀려 우리들은 불사조의 뒤를 쫓았다. 그래, 환상종이라고 포기할 순 없잖아.

「여기도예요」

「뭘 하는 거지?」

그렇다고는 해도 상대는 하늘을 난다. 그리 간단하겐 뒤쫓을 수 없다. 기회를 잡아 달려들어도 이미 다음 장소로 옮겨간 뒤. 우리들이 찾고 있는 것은 불사조가 지나간 흔적뿐이다.
허나 그 흔적이 조금 묘한 것을 깨달았다. 불사조가 멈춰 섰다 추측되는 곳은 서가가 있는 곳 뿐. 게다가 서가는 벌레 먹은 상태. 불사조가 책을 쪼아 먹고 있다고 밖에 생각되질 않는 것이다.

「불사조의 먹이가 책이었습니까?」

「그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어요. 불사조는 식사를 하지 않으니까요. 기껏해야 유목乳木의 꿀 정도…… 라는 건?」

「환상종이 아냐. 불사조의 형태를 하고 있을 뿐」

세이버의 질문에 답하며 루비아도 나도 깨달았다. 이런 폐쇄공간에 환상종이 있을 리가 없다. 애초에 이곳은 불사조가 생식할 환경이 아니다.

「그렇다면, 정령?」

「너무 특수해서 잊고 있었지만, 여긴 원소서고 였어. 수호를 하는 원소정령의 형태가 아닐까?」

「그렇다면 어떻게든 될 것 같군요」

나는 루비아와 얼굴을 마주했다. 모습은 불사조라도 본질은 불의 정령, 그렇다면 우리들이라도 제어가 가능할 것이다.

「세이버, 뒤쫓는 건 여기까지. 이번엔 저쪽에서 오게 해야겠어」

아무리 대사부의 서고라고 해도, 언제까지고 함정에 걸리기만 하는 건 성미에 맞지 않는다. 이번엔 이쪽의 차례라는 거지.

「이쪽은 다 그렸어. 루비아 그쪽은?」

「그리는 건 다 그렸지만, 서둘러 주세요. 이 열에선 보석이 버티질 못해요」

땅에는 오망성의 소환진, 하늘에는 육망성의 퇴거진. 그 어느 쪽도 우리들의 피를 촉매로 해 보석의 굴절로 띄워 올린 것이다. 역시 마그마가 흐르는 곳 바로 위에 직접 진은 세울 수 없다.
본래 이계에서의 소환과 퇴거에 사용되는 진, 그것을 불러낸 이계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불의 공간”에 짜 넣는 것으로, 일종의 우리로 쓰려고 하고 있다. 다시 말해 마주선 거울, 소환처와 퇴거처가 같은 이상, 상대는 어디로도 움직일 수 없다는 이치다.

「허나, 그를 위해선 우선 이곳으로 불러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세이버의 질문은 당연한 것. 소환이라고 해도 상대는 이미 이곳에 있는 놈이다.

「그래서 먹이를 뿌렸지」

나는 소환진 중앙에 서고에서 엄선해 뽑은 마도서를 산처럼 쌓았다.

「조금 아깝다는 기분도 들긴 하지만」

「하지만, 결국은 그 불사조의 뱃속에 들어갈 것이니까요」

그 불사조 자체가 이 서고의 본체. 이것이 나와 루비아가 내린 추론이다.
잘 조사해 보면, 불사조에게 쪼아 먹힌 책은 아무래도 분명한 순서가 있는 듯 했다. 분류 코드 앞부분부터 어느 책장이나 쏙 빠져있었던 것이다.
즉 그 불사조는 책을 정리하는 사서를 겸한 새로운 서가, 언젠가 책을 전부 먹어서 제대로 정리된 모습으로 이용할 수 있는 형태가 될 것이다.

「그래서, 세이버. 우리들은 붙잡는 걸로 정신없을 테니까, “열쇠”를 부탁해」

「그건 상관없습니다만, 어떤 형태입니까?」

「지금까지 두 개의 예로 보아선, 아마도 루비일거에요」

「미안, 형태까지는 추측할 수 없어. 그 녀석을 붙잡고 있는 사이에 찾아줘」

「알겠습니다. 맡겨주십시오」

「그럼 시작할게. ――――Anfang(세트)――」

땅에 그려진 오망성의 귀퉁이에 서서 마력을 흘려 넣는다. 불러내는 것은 화염, 촉매는 책. 자, 와라…….

―― 후웅! ――

왔다!

열풍이 땅으로 불어온다. 그 역할을 식욕이라는 형태로 대신해, 정리한 책을 소화기관에 짜 넣은 불사조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소환진으로 춤추듯 내려온다.

좋아, 지금!

나는 루비아에게 신호를 보냈다. 의심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불사조는 천천히 책을 쪼아본다.

「――――En Garand(레디)――」

걸렸다!
루비아의 영창에 맞춰, 소환진의 바로 위에 비추어진 육망성의 퇴거진이 빛을 낸다. 순간, 불사조의 움직임이 멈춘다. 마치 포박당한 듯이, 억눌리는 듯이, 빛을 내며 떨기 시작한다.

「세, 세이버!」

소환진으로 연결된 고삐를 힘을 주어 쥐고, 나는 세이버의 이름을 불렀다. 이 녀석, 엄청 강하다. 조금이라도 긴장을 풀면 금세 우리 한 가운데를 찢고 날아가 버리고 말 것이다.

―― 후웅! ――

뜨아아, 또야! 왜 이리 날뛰는 거야! 나와 루비아의 전력을 떨쳐 버리려는 듯이 불사조가 날개를 펼쳤다. 조금만 더 얌전히 있어! 나는 더욱 힘을 주었다.

「린, 루비아. 조금만 더!」

불사조의 정면으로 뛰어오른 세이버가, 인상을 쓰며 불사조를 주시했다. 아아, 빨리 해줘, 이대론 튕겨나갈 것 같다구…….

「안 돼! 버티질 못하겠어요!」

「찾았습니다!」

루비아의 비통한 외침. 이제 기다릴 수 없다. 허나, 우리가 부서지기 직전 세이버가 갑자기 뛰어올랐다.

―― 스릉! ――

―― 후웅! ――

「「꺄아!」」

불사조는 나와 루비아젤릿타를 떨쳐내고 팔랑팔랑 춤추는 한 개의 날개를 남겨두고 새빨갛게 타오르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뭐야? 실패? 늦은거야?

「늦지 않았습니다……」

떨어져 내리는 깃털을 쥐고, 세이버가 안심한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손에 있는 깃털은…… 아아, 다행이다. 늦지 않은 거구나.

「홍석紅石의 깃털? 이게 열쇠인가요?」

「예」

축 널부러진 나와 루비아에게 세이버가 불사조의 깃털을 내밀었다. 새빨간 루비로 이루어진 깃털. 단단한 줄기에 불꽃을 닮은 공작의 깃털 같은 장식, 그건 마치 지팡이 같았다.
이걸로 3개. 우리들은 어떻겐가 “화염의 공간(피닉스·게이지)”의 클리어에 성공했다.

「자, 알겠는가?」

점점 어두워지는 세계 안. 대사부는 꽤나 지친듯한 얼굴로 나에게 물어보았다.

「그러니까……」

대답이 궁하다. 대사부가 나에게 전하려 하고 있는 물건. 뭐라고 할까, 내가 알고 있는 마술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질적이라고 하기 보단, 이미 이놈은 이성계異星系. 예를 들면, 그것이 하늘을 나는 원반이라는 것은 알 수 있어도, 어떻게 나는 가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가와 똑같다.

「정말로, 네 녀석 정도의 실력으로 잘도 그 자물쇠를 열었군」

그런 나에게, 대사부는 이제 기막힘을 넘어 감탄조차 하고 있다. 팔짱을 끼고 눈을 감으며, 음, 하고 신음하고는 침묵하고 말았다.

「아니, 내가 한 건 마지막 단계뿐이라……」

「알았다, 이건 나에게 하는 도전이로군? 좋아, 재미있어. 어떻게 해서든 그 닭대가리 같은 두뇌에 집어넣어 주지」

허나, 대사부님. 내 말 따위는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 다시 뜨인 눈동자를 빛내며, 나에게 향하고, 쫓아올 수 있을까, 라며 설명을 재개한다.
역시, 이 사람은 토오사카의 스승님이다. 따라…… 갈 수 있을까아…….

「이걸로 4개」

“물의 공간(리바이어던·큐브)”에서 나온 것은, 전신이 홀딱 젖은 쥐 꼴이 된 미인 삼인방.

「정말, 시로우가 없어서 다행이에요. 적어도 수영복 정도는 입고 싶었는데」

사전에 준비해 둔 수건으로 몸을 감싸고 투덜거리는 루비아.

「하는 수 없잖아. 생물밖에 들어갈 수 없으니까」

나는 입에 문 취옥(翠玉, 에메랄드)의 잔을 뱉어내면서 대답했다.
그래, “물의 공간”에는 옷을 입은 채 들어갈 수 없었다. 우리들은 수중호흡의 주문만으로 몸을 감싸고, 전라로 이 방에 도전했던 것이다.

다만 “물의 공간”의 탐색 자체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열쇠의 위치가 “불의 공간” 때와 똑같이 이동하고 있어서, 그 위치가 아까 보았던 거대한 물고기라는 것을 금새 알 수 있었다.
그렇다 한다면 남은 일은 간단. 물고기의 입으로부터 뱃속으로 뛰어들어서, 그곳에 늘어서 있는 분류 책장에서 에메랄드의 잔을 얻고, 그 후엔 아가미로 빠져나와 돌아왔을 뿐. 조금 생선 비린내가 나긴 하지만.

「이걸로 남은 건 2개로군요」

우리들에게 수건을 건네고 자신은 재빨리 완전무장한 세이버가 상당히 안심했다는 듯한 어조로 말한다. 저거 이런 때는 편리하네. 내가 한다면 은기술식?器術式(물품을 숨기는 술식)일까. 조금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

「아뇨, 나머지 하나만 있으면 충분해요」

불과 바람의 술식을 일으켜 머리카락을 말리고 있던 루비아가 겨우 긴장을 풀었어요, 라며 중얼거렸다. 이런 건 드라이어를 쓰는 편이 훨씬 편리하지만, 이 서고엔 전기가 들어오질 않는다.

「토오사카의 술식건(術式鍵). 마지막 하나는 이걸로 대용할 수 있어. 말했었지? 자물쇠의 조합은 똑같다고」

어디, 라며 손가락을 굽히고 세보는 세이버에게, 나는 틀림 없다며 설명했다.

「괜찮은 것입니까?」

「하나라면」

「게다가, 저희들로선 허수의 공간에 도전하기엔 조금 역부족이에요」

유감이지만 나에게도 루비아에게도 허수는 취약하다. 간단한 그림자 사용 정도라면 힘겨루기로 갈 수 있지만, 대사부의 원소정령을 상대로는 두 명으론 불안하다.

「자, 그럼 서둘러 끝내자」

「제5원소로군요. 게다가 아무래도 이곳의 구성은 보석. 저희들의 특기분야에요」

몸을 완전히 말리고 치장까지 끝내고, 우리들은 마지막 방의 조사에 착수했다. 조금만 더 하면 되니까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시로.

「이걸까요?」

「아마도, 이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조금 맥이 빠진다. “무지갯빛 공간”은 너무나 간단하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미로의 안쪽 깊은 곳, 유백색으로 빛나는 작은 방 중앙, 그곳에는 받침대에 끼어있는 달걀 크기의 알이 있었다.
물론, 똑바로 올 수 있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가는 도중에 길이 구부러지고, 구부러진 곳은 직진으로 가게 만든다. 곳곳에 설치된 굴절과, 허상의 환영. 아무 것도 모르는 자라면 설령 마술사라 하여도 헤매게 만들 수 있는 종류의 술식이었을 것이다.
허나 나와 루비아에게 있어서 보석이 가진 투과성과 결계성은 말하자면 전문분야. 환영을 통과하고, 굴절을 다시 구부려 트려 실상으로 맺는다. 그렇게 최단거리를 찾아, 이렇게 중심까지 다다랐다는 것이다.

「오팔의 알이로군. 틀림없어, 라인도 이어져 있고」

하지만 훌륭한 오팔이다.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탄성을 질렀다. 나는 슬그머니 오팔을 받침대에서 꺼냈다. 어라? 왠지 묘하게 따뜻한데, 이 오팔.

빠직……

「린, 기다리세요. 그 오팔……」

빠직빠직빠직……

그대로 주머니에 넣으려다 이변을 깨달았다. 손안의 오팔에 순식간에 금이 뻗친다.

「헤?」

―― 슉 ――

「――읏!」

그게 갑자기 튀었다. 아니, 안에서 흘러나온 빛으로 손을 베인 것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오팔을 떨어트렸다.

「린!」

「괜찮아, 세이버, 그것보다 그걸 붙잡아!」

뛰어오는 세이버에게 나는 상처입은 손을 누른 채로 지시했다. 발밑을 재빠르게 이동하는 작은 생물. 도마뱀? 아냐, 아까 그 빛은……

「오팔의 빛과 똑같아요. 제5원소광第五元素光?」

제5원소의 고유파동수固有振動?를 가진 빛. 무지갯빛 절단광선. 위험해!

「세이버, 엎드려!」

「예? ――읏!」

나의 외침에 살짝 몸을 당신 세이버의 코끝을 무지개 색의 빛이 스쳐, 한 순간 움직임이 늦은 오른 팔에 열상을 입힌다. 그 사이에 작은 도마뱀은 미로 안으로 도망쳐 버렸다.

「린, 루비아. 이건 도대체」

상처를 누르며 세이버의 얼굴이 조금 찌푸려진다. 역시…… 성처가 낫지 않는 모양이다.

「제5원소광선第五元素光線. 다시 말해 세이버의 신체는 저 녀석에게 저항할 수 없어」

아아, 이미 낸 추론에 의하면.

「라인은 아직 이어져 있어요. 저 도마뱀이 “열쇠”로군요」

재빨리 나와 세이버의 상처에 치유의 주문을 쓰면서 루비아의 눈썹이 찌푸려진다.

「뭐라고 생각해?」

「제5원소룡(第五元素龍, 바르곤)이겠죠. 성가시게 됐어요」

제5원소룡(바르곤). 용이라 해도 용종龍種은 아니다. 화염정령(살라만더)와 똑같이 제5원소가 구현 된 하나의 형태다.
제5원소의 반짝임을 흡수해, 그 반짝임을 동일한 파동으로 모아 방출한다. 살아있는 광학병기 같은 존재다.

「어쨌든 뒤쫓다. 자라기 전에 잡아야 해」

「이곳은 제5원소의 빛을 흡수하기에 어려움이 없으니까요」

하고 일어서려는 순간, 방안의 빛이 하나의 파장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위험해!

「――――Anfang(세트)!」
「――――En Garand(레디)!」

아슬아슬하게 늦지 않았다. 방안에서 난무하는 무지개 색의 빛을 나와 루비아의 술식이 닥치는 대로 구부려트린다.

「아아, 정말. 이 방의 특성을 이용하고 있어요」

미로의 벽을 구성하는 크리스탈. 그 굴절과 투명함을 이용해 제5원소룡은 우리들의 전 주위에서 절단광선을 마구 퍼부어 왔다.

「린, 똑같은 요령으로 상대의 거처를 찾을 수 없습니까?」

몸을 굽혀 우리들의 술식에 방어를 맡기며 세이버가 물어왔다.

「한 번 더 공격당할 필요가 있어요」

「하지만 누구 한 명이 이 술식 밖에 있어야 해. 닥치는 대로 구부리고 있으니까 안에 있으면 관측할 수가 없어」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밖으로 나가겠습니다」

「세이버, 너도 저 빛에는 베이는데?」

「린, 걱정은 필요 없습니다. 맞지만 않으면 아무런 상관이 없지요」

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이버는 심안으로 광선을 피해주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자신감을 담은 눈동자로, 진짜 용에 비하면 대단한 건 아닙니다, 라고 크게 끄덕이며 나의 결단을 기다린다.

「알았어. 세이버의 라인을 통해서 탐색의 주문을 짤게. 루비아, 방어를 맡아줘」

「알겠어요. 세이버, 잘 부탁해요」

「예, 알겠습니다」

작전은 세워졌다. 다음은 제5원소룡의 2번째 사격을 기다릴 뿐.

―― 샤앙…… ――

왔다.

「――――Wir suchen uns Wege(탐색)!」
「――――Maint diamant d’imperceptible ecome(금강황金剛煌 굴절屈折 투화透化)!」

동시에 세이버가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뛰어오른다. 날아서 교차하는 무지개 색의 빛. 그 빛을 세이버는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하며 춤춘다.
어디? 나는 탐색의 주문으로 닥치는 대로 광선을 더듬어 갔다. 안 돼, 세이버에게 다 피할 수 없을 만큼의 수의 빛이 집속되어 간다.

「세이버!」

―― 촤악! ――

허나, 세이버에겐 맞지 않는다.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세이버는 재빨리 보이지 않는 검으로 광선을 튕겨낸 것이다. 그래, 세이버의 검이 보이지 않는 것은 풍왕결계로 빛을 굴절시키기 때문, 그렇다면 광학병기를 우그러트려 되돌려 주는 것이 가능. 아, 그래…… 나는 여기서 세이버가 무엇을 하려 하는지 깨달았다. 그렇다면……

찾았다.

「세이버. 다음, 3시 방향. 정면으로 반사시켜」

「알겠습니다!」

더욱 더 난무하는 광선다발을 묶고, 세이버가 뛰어오른다. 왔다.

―― 샤악! ――

일부러 틈을 만들어, 세시 방향에서의 공격을 이끌어 낸 세이버는 멋지게도 광선을 반사시켰다. 한 치도 틀리지 않고 왔던 때와 똑같은 궤적을 그리며 돌아가는 무지갯빛의 광선.
순간, 그때까지 빛나고 있던 주위 벽의 반짝임은, 마치 스위치를 끈 것처럼 사라졌다.

「세이버, 12시 방향의 벽을 쪼개줘」

「예」

한 숨 돌린 나의 지시에 따라 세이버가 정면의 벽을 갈랐다.
유리가 깨지듯이 무너져 내린 벽 너머, 그 바로 아래 바닥에는 딱 둘로 갈라져, 움찔움찔 경련하는 무지갯빛 도마뱀.

「이걸로 5개에요」

자그마한 도마뱀의 코끝에서 아직 희미하게 잔광이 남아있는 오팔 색의 뿔을 뽑은 루비아가 소리 높여 선언하고는 미소 지었다.
그 웃음에 답하듯이 나와 세이버도 웃었다. 이걸로 “무지갯빛 공간(바르곤·레어)”는 클리어 했다. 겨우 이걸로 시로를 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라?」

「음……」

드디어 세계는 흐리멍텅한 색이 되고 말았다. 옅은 회색빛. 그런데도 나는 아직 대사부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흠, 토오사카의 현 당주가 상당히 우수한 건지, 그렇지 않으면 네 놈이 멍청한 건지, 어쨌든 이래선 늦을 것 같군」

곤란하게 되었어, 라고 말하며 어딘가 즐거운 듯이, 애초에 난 나머지 공부를 가르치는 건 잘 못하니까, 라며 중얼거리는 대사부. 아니, 어떻게 생각하냐니, 제게 물어도…….

「하는 수 없군. 마지막 수단으로 가자. 확실히 봐 둬라」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사부의 손안에서 단색의 세계가 무지갯빛으로 번쩍였다.

「――에?」

뭐야, 이건.

본 순간 이해했다. 이건 이해할 수 없다.

이건 이 세상의 이치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검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이상한 형태로 이루어진 보석을 칼날로 만든 단검.
그것은 어디에나 있으며, 어디에도 없는 것.

해석 따위가 가능할 리 없다. 이념의 이치조차 이성異星의 것이다.
단지, 머릿속에 새기는 것이 겨우. 그것마저도, 뇌수가 삐걱거리며 타오를 것 같다.

「아, ――아, ――」

말이 나오지 않는다. 나는, 서서히 가라앉아가는 나 자신조차 깨닫지 못했다.

「하나만 칭찬해주지. 용케도 미치지 않았구나」

마치 환청처럼 울리는 대사부의 목소리.
반짝반짝하고 빛나는 이해불능의 검과, 그 너머로 씨익 미소 짓는 대사부의 얼굴.
그것이, 이 불가사의한 세계에서, 내가 본 마지막 광경이었다.

「자, 그럼 간다」

나는 마지막 주식을 자물쇠에 맞추었다.
제5원소룡의 뿔에서 뽑아낸 주각을, 토오사카의 술식건으로 변환한 마지막 열쇠.
혹시 이걸로 열 수 없다면, 나는 루비아와 함께 “허수의 공간”으로 뛰어들 생각이다. 아무리 5대원소의 약점이라고 해도, 우리들 둘이서 도전하면, 어느 쪽은 열쇠를 손에 넣어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마술사의 결단이라 할 수는 없지만, 나도 루비아도 이 결단을 내리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Anfang(세트)……」

부탁해. 나는 기도를 담아 열쇠를 기동했다. 떠올라 있는 주각이 서서히 자물쇠 안으로 잠겨들어 간다…….

철컥

열렸다. 일제히 여섯 개의 자물쇠가 빛난다. 또 동시에 6개의 면도 빛을 되찾더니…….

「린! 루비아! 엎드리십시오!」

―― 촤아아 ――

동시에 여섯 개의 방으로 되돌아 간다. 아, 위험했어…… 혹시 세이버가 밀어 넘어트리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목을 가져가 버렸겠지.

「열린…… 거겠죠?」

「응. 하지만 닫혀버렸어」

조심조심 얼굴을 드는 나와 루비아. 그 시건 끝에는 아까까지의 수정궤는 이미 없었다. 그곳에 있는 것은 시로가 열었을 터인 마정궤. 다시 입을 단단히 닫고,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이 놓여있다. 아무래도, 열쇠 역시 초기화되어 있을 것이다. 아까와 똑같은 절차를 취하면 열 수는 있겠지만, 결국 안을 확인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린! 루비아! 시로우가!」

에?

세이버의 다급한 목소리에, 나와 루비아가 동시에 돌아보았다.

한 순간, 세계가 새하얗게 변했다. 소파에 누워있을 터인 시로. 그 시로가…… 가라앉아 간다…….
주륵주륵, 마치 늪에 잠겨가듯이, 소파에 생긴 자신의 그림자에 먹혀간다.

「시로!」
「시로우!」
「시로우!」

셋이 동시에 시로를 향해 뛰어갔다.

「시로우!」

잡았다!
최후의 오른손 끝. 아슬아슬하게 세이버가 잡았다. 단단히 붙잡은 오른손의 손가락. 나와 루비아도 필사적으로 그 손을 당겼다.

「시로! 지금, 꺼내줄게!」

「큭! 무거워요」

「어째서!? 어째서 내 힘으로도 올라오지 않는 건가!」

위험해, 위험해, 위험해, 허수공간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어째서? 왜 이런 곳에 허수공간이??

「어~이……」

그러자, 셋이서 나란히 필사적으로 시로의 손을 잡고 있는 참에, 위쪽에서 얼빠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
「……」
「……」

얼굴을 마주보는 우리들. 지금 그건…… 시로의 목소리지?
셋이서 함께 위를 보니, 그곳에는 오른손 끝자락만 천장에 움푹 들어가 있고, 그 상태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시로의 모습.

「……뭐 하고 있는 거야?」

「아니, 그 손 놓아주면 고맙겠는데. 아마도, 그대로 그곳으로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니까」

나의 한심한 질문에, 그 이상으로 긴박감이 없는 시로의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세이버, 루비아. 하나 둘 셋하면 놓자」

「예……」

「알겠어요……」

바로 다음 순간, 가슴 속 깊이 상쾌해지는 비명을 지르며 시로가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

——————————————————————————–

「다들 너무하는데. 적어도 세이버만은 받아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로우는 저 정도의 높이에서 떨어져 내려도 별 일 없을 거라 생각했으니까요」

생긋 웃는 세이버 씨. 미묘하게 말투에 가시가 돋쳐있다. 아니, 걱정하게 만든 건 미안하지만, 그렇다고 화풀이는 하지 말아줘.

「그것보다 시로. 그거 정말? 대사부를 만났다고?」

처음엔 반 쯤 눈을 뜨고 수상하다는 듯이 듣고 있던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이었지만, 내가 그 세계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이야기 하자, 표정이 점점 진지하게 변해갔다.

「아아, 정말이야. 엄청나게 말도 안 되는 할아버지더군. 이상한 검을 보여주더니, 위험하게시리 돌아오지 못할 뻔했어」

순간,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의 안색이 변했다. 아마도 진지한 얼굴. 마술사의, 설령 피를 뒤집어 쓴다 해도 주저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마술사의 얼굴이다.

「시로, “봤어”?」

토오사카가 그런 표정의 시선으로, 한 마디 한 마디 확인하듯이 물어온다. 이건, 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다. 나에게 “투영”이 가능하겠는가 묻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모르겠어」

한 마디로 대답했다. 솔직히 말해 정말로 알 수 없었다.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 보았다고 해도 그것을 투영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 설령 가능하다 해도, 그것이 그 검이 될지 되지 않을지 알 수 없다.

「……해 볼 생각은 있어?」

나의 대답을 듣고, 잠시 손가락을 입가에 대고 생각에 잠겨있던 토오사카가 결심한 듯이 입을 열었다.

「괜찮겠나요, 린?」

여기서, 그때까지 가만히 있던 루비아 양이 조용한 목소리로 토오사카에게 물었다. 두 가지 의미다. 나에게 실험해 봐도 괜찮은 것인가, 그리고 자기가 이곳에 있어도 괜찮은 것인가.

「상관없어. 애초에 안 되는 거였다면 이곳으로 불러 들이지도 않았을 걸」

「알았어. 해 보지」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서서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투영개시(트레이스·온)」

「우와아, 전혀 안 돼」

결국, 나의 투영은 실패했다 할 수 있다. 형태는 만들었지만, 반짝이지도 않고 내용물도 없다. 내가 그 광기를 발하는 광경 안에서 손에 넣은 것은 이것 뿐, 나머지는 전부 흘리고 말았던 것이다.

「어떤가요, 린?」

「……」

그러나 토오사카는 그 텅 빈 물건을 손에 들고 미간을 찡그리며 골똘히 생각에 빠져, 가만히 검을 바라보았다.

「완전히 헛수고는 아니야……」

문득 어깨에서 힘을 뺀 토오사카가, 루비아 양에게 검을 건넸다.

「재질과 구성은 파악할 수 있어. 하지만 그걸 조합하는 술식은 보이지 않아. 1:1 스케일의 모형 같은 거라 할 수 있을까? 설계도 같은 거야」

아마도 이게 시로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의 보석검 이겠지, 라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 마정궤에 대해서, 나의 이야기를 듣고 내린 토오사카와 루비아의 추측은, 아마도 그것을 연 자의 수단과 레벨에 맞춰 그 궤짝 자체가 보석검에게 향한 도표나 설계도를 제시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나의 경우는, 해석을 하면서 직접 마력을 흘려 넣었기 때문에, 대사부의 환영으로 상대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나를 가두어 두었던 저 수정궤도, 가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외부의 방해나 누설을 막기 위해 전개되는 것이 아닐까 말한다.

「그럼, 우리들이 한 일은 완전히 쓸데없는 일이라는 건가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해. 혹시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간, 시로가 하는 일이니 뻔하지. 이해할 때까지 도대체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지 알 수가 없잖아」

뭔가 지독한 소릴 들은 것 같다. 토오사카 뿐만이 아니라, 루비아 양이나 세이버까지 아아, 과연, 그건 큰일이겠군, 이라는 표정을 짓고 있다. 왠지 석연치 않다. 사실이지만.

「하지만 분명히 엄청난 수확이야. 원래 시로의 레벨로는 이렇게 까지 자세히 가르쳐 주지 않았을 텐데」

「이만해도 대단한 일을 한 거예요. 보석검의 설계도라니, 분명 대사부의 유물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로군요」

왠지 나 때문에 엄청나게 큰일이 있었던 것 같지만, 토오사카도 루비아 양도 그런 기색은 조금도 비치지 않고 웃으며 나를 맞이해 주었다.
보석검을 사이에 두고 자신만만하게 웃는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 문득, 그 웃음에서 이 두 사람 이상으로 자신만만하고 유아독존인 성격 나쁜 대사부의 웃음이 겹친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있으니, 토오사카의 손에 들린 보석검이 정말 이상하게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색으로 빛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 그곳이 저 두 사람이 향하는 곳이구나.

이 두 사람이, 언제쯤 그 곳에 다다를 수 있을지 나는 알 수 없다.
단지, 혹시 그런 때가 온다 하여도, 이 두 사람은 지금과 변함없는 이 미소를, 자신만만하게, 그 대사부처럼 심술궂은 표정과 함께 짓겠지.
그 사실만은, 결코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END

—————

기, 깁니다. 무지 깁니다. 졸라 깁니다…. 이건 아냐!;;
어쨌든 천천히 할게용; 이렇게 길어서야 의욕이;;;;;

아, 그리고 눈치채시는 분이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만, 린 처럼 일본인은 士郞, 루비아나 세이버처럼 외국인은 シロウ라 이름을 부릅니다만, 저는 이 차이를 ‘시로’와 ‘시로우’로 하고 있습니다.
실제 Fate 한글판에서도 그런 식으로 구분하고 있으니 참고하세요.

아침. 나는 발소리를 죽이고, 정원 구석에 있는 창고로 향한다.
시각은 아직 오전 6시 전. 태양의 열기를 품은 태양도, 이 시간엔 그리 강하지 않다.
나는 아까울 정도로 상쾌한 아침 공기를 들이쉬고, 창고의 문을……

“……에?”

열려 있었다.
아침부터 부지런한 거미라도 있었는지, 이미 자그마한 거미집이 쳐진 창고 입구. 분명히 어젯밤에 닫혀있는 것을 확인했을 텐데. 물론, 확인한 건 닫혀있다는 것 뿐만은 아니었지만.

“누구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에 나는 숨을 죽였다.
아침, 창고에서 자고 있는 선배를 깨우는 일. 이것은 선배님이 토오사카 선배와 사귀게 된 후에도, 나만의 특권이었다. 토오사카 선배는 아침이 너무나 약하기 때문에, 이렇게 선배님이 창고에서 잠든 때만은, 나와 선배님 두 사람만의 시간이었을 터. 그런데……
나는 살짝 거미줄이 쳐져있는 곳을 피해, 문 뒤에서 토장 안쪽을 바라보았다.

“……!?”

그곳에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황금장식품이 있었다.

창고의 문에서 스며든 여름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황금 상감으로 장식된 인형(비스크 돌).
그 푸른 눈은 천계의 빛, 하얀 서머드레스는 등에 돋아난 순백의 날개, 가볍게 웨이브 진 금빛 머리카락은 성스러운 빛의 고리.
기분 좋게 자고 있는 선배의 머리맡에 앉아있는 그 인영은, 마치 아침 햇살 그 자체를 형체로 만든 듯한, 화려한 천사의 모습이었다.

검은 고치

「요술사妖術師의 후예」 -MAKIRI- 제 1화 전편

Beelzebul

“사쿠라 씨, 이신가요?”

숨 막힐 것 같은 아름다움에 멍한 듯이 바라보고 있던 나의 귀에, 영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배님을 깨우지 않을 정도로 작은, 그러면서도 나의 귀에는 확실하게 들릴 정도의 목소리. 그것은 내 상상에 너무나 어울려, 정말로 천상에서 들려오는 듯한 울림이었다.
한 순간, 터무니없이 비참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천상에서 내려온 천사를, 그늘에서 수치심도 모르고 탐욕스레 바라보고 있는 요물(벌레).
지금 내 모습은 완전히 그런 모습이 아닐까. 얼굴을 붉힌다. 이 얼마나 추잡한 모습일까.

“어서 오세요. 시로우를 깨우러 오신 건가요?”

그런 나의 기분 따위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듯이, 금색의 빛은 나를 그늘에서 백렬하는 햇살 아래로 끌어온다.

“저, 저기, 에델펠트 씨께선 언제?”

“글쎄요, 30분 정도 전일까요?”

아무런 배려도 없는 나의 말에, 에델펠트 씨는 선배의 얼굴을 상냥하게 바라보며 대답했다. 마음 어딘가에 푹하고 무언가가 꽂힌다.

“혹시 선배님을 깨우러 오신건……”

“그건 당신의 역할이 아닌가요?”

어딘가 가시가 돋쳐있는 나의 말에, 그걸 침범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 라며 에델펠트 씨가 이상하다는 듯이 반문했다.

“저기, 하지만……”

“린이나 미스 후지무라에게서 들었습니다. 시로우를 깨우는 것은 당신의 권리. 저는 단지 시로의 잠든 모습이 보고 싶었을 뿐인걸요.”

기절하는 모습이라면 몇 번인가 본 적이 있지만요, 라며 어딘지 신경 쓰이는 말을 하며, 에델펠트 씨는 선배의 얼굴을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이 사람은…… 또, 마음 속 어딘가가 푹하고 찔린다.
이 사람은, 선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숨기려고도 하지 않는다. 내가 얼마나…… 검디검은 생각이 자그마한 상처에서 솟아오른다.

“선배님은 토오사카 선배님을 좋아하시는 데도요?”

그래서 말하고 말았다. 너무나도 아름답고, 너무나도 깨끗한 그 표정을 일그러트리고 싶었으니까. 아무리 아름다운 것이라 해도, 땅에 떨어지면 더러워진다고 생각하고 싶었으니까.

“알고 있어요.”

하지만, 금빛 천사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희미한 쓴웃음을 참으며, 그런 건 상관없다고 거리낌 없이 말한다.

“화가 날 정도로 반해 있죠. 제가 다 부끄러워 질 정도인걸요. 너무나도 마음을 여니까, 린이 솔직해 지지 못할 정도로요.”

정말로, 화가 나는 건 아니지만요, 하고 미소를 지은 채 중얼거린다.
어째서…… 어째서 이 사람은 이런 원망의 말조차 이렇게 상냥한 얼굴로, 말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러면!”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거칠어진다. 그럼 어째서 언니를…….

“시로우가 깨겠어요. 그런 목소리로 시로우를 깨우고 싶은 것은 아니겠지요?”

그런 나에게 에델펠트 씨는 손가락을 입술에 세우고, 그래서는 당신이 곤란하겠죠, 하고 조금 눈썹을 찌푸린 채 말했다.

“분명히, 지금의 시로우의 마음속에서 가장 커다란 부분은 린이 차지하고 있어요.”

한숨과도 같은 말. 가볍게 기울인 고개를 따라, 사락사락 황금빛 머리카락이 흘러 천사의 고리를 만든다.
다음 순간, 천사의 빛이 다른 무언가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마음속 어딘가에서 바라고 있던 어둠이나 그림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지금의 상황일 뿐. 앞으로 영겁인 것은 아니지요. 내일은 오늘과는 달라요. 오늘과 똑같은 내일이 올 것이라는 건 그 누구도 보장할 수 없지요.”

그것은 또 다른 빛. 타오르는 듯한, 강렬한 자신감에 넘치는 빛. 너무나도 눈부셔, 나도 모르게 그림자에 몸을 숨기고 싶어진다.

“그건…… 선배님이 변심할 거라는 말씀인가요?”

그래도 계속 물고 늘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무나 비참하게 느껴져…….

“시로우가 그렇게 간단히 변심할 분이라면, 저나 당신이 이렇게까지 빠질 리가 없지 않나요?”

하지만, 알고 있다는 듯이, 마치 꿰뚫어 보는 듯한 빛이 나를 향해 쏟아 내린다.

“저, 저는…….”

“그러니까, 시로우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변하게 만들어 보이겠다고 말한 거랍니다. 저는 반드시, 언젠가 시로우의 마음속에서 린보다 커다란 부분을 차지해 보이겠어요.”

나는 무심코 내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생각 따윈 상관도 없다는 듯이, 금색 빛은 그 찬란함을 가진 채 보다 더 강력하게, 보다 더 맹렬하게 빛나고 있다. 그늘에 숨는 것도, 그림자로 피하는 일도 없이, 언제나 찬란한 빛.
부러웠다. 그것과 동시에, 어찌할 바 모르는 질투심을 느꼈다. 푹, 푹 하고 가시가 찔러온다. 주륵주륵 무언가가 솟아오른다.

“당신도, 언니의 상대라 해서 사양할 필요는 없지 않나요?”

더욱 다그쳐 오는 에델펠트 씨. 알고 있다고, 나의 사정을 알고 있다고.

“에? 에델펠트 씨…….”

“예, 들었어요, 마키리의 마술사라는 것도.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시로우에겐 숨기고 있는 듯하군요. 그러니 전날엔 말하지 않았습니다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향해 조용히 시선을 던져 온다. 꿰뚫어 보는 듯한, 어딘가 무서운 눈동자.

“훌륭했어요. 그림자와 실체를 바꿔 넣는 그 은형술隠形術은.”

“어떻게!?”

들켰다. 선배 앞에서 필사적으로 숨기고 있던 나의 비밀. 더렵혀진 나를 미봉했던 베일이, 여기서도 한 장, 황금의 빛으로 벗겨지고 있었다.

“어제, 시로우와 린이 자리를 떴던 때, 당신은 기분을 풀고 있었지요. 그 때에 아주 조금이었지만 흘러나왔어요. 그게 없었으면 저 역시 몰랐겠지요. 지금도 용케 그렇게나 힘을 숨기고 있군요.”

나는 스러질 것 같은 기분인데도, 마치 칭찬하는 듯한 가벼운 미소를 보내온다. 마키리가 허수虚数의 술을 다룰지는 몰랐어요, 하고 가차 없이 나의 가슴에 빛의 칼날을 찔러 온다.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이 빛은 싫다. 내가 필사적으로 숨겨온 것들을, 너무나도 가볍게 폭로해 온다. 숨을 수가 없다. 숨을 수가 없다. 숨을 수 있는 곳을 남겨주지 않는다.

“……으음…….”

그리고, 선배님이 무언가 중얼거리듯이 잠꼬대를 흘렸다.

“그럼 전 이만. 시로우의 잠든 모습은 충분히 탐닉했으니까요. 이제부터는 당신의 영역이겠지요.”

빛의 경쾌함을 품은 채, 나머지는 부탁드려요, 하며 에델펠트 씨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기, 에델펠트 씨.”

“사쿠라 씨. 루비아라 불러도 좋아요. 저도 당신을 사쿠라라 부르고 있으니까요.”

“……아, 예. 루비아…… 씨.”

시로우와 똑같네요, 라며 미소 지으며 루비아 씨는 창고를 뒤로 하였다. 금색 빛은 사라지고, 후에 남은 것은 옛날처럼 나와 선배 두 사람. 무언가 꿈에서 깨어난 듯한 기분이다.

“……응…… 아아, 좋은 아침, 사쿠라. 깨우러 와줬구나.”

“안녕히 주무셨어요, 선배님?”

멍하니 깨어나는 선배님께,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아침 인사를 했다. 평소의 미소를 보이기 위해, 나는 황금의 빛에게 헤집어진 나의 마음을 다시 깊숙한 곳으로 숨겼다.
어떤 때라도 앞을 바라보며 나가가는 빛. 그것은 너무나도 아름답고, 너무나도 눈부셨다.
땅에 떨어트려, 진흙투성이로 만들고 싶을 정도로 부러웠다.

“린, 도착했습니다.”

나는 세이버가 운전하는 차로 후유키 교회의 정면에 다다랐다. 이쪽에 온 다음 날 루비아가 뿅하니 사온 살롱(*BMW Saloon)이다. 눈꼽만큼도 부럽지는 않지만, 편리한 것은 써줘야 하는게 인지상정.

“하아, 못 견디겠네……”

차에서 내린 순간, 나는 조금 비틀거리고 말았다.
덥다. 무심코 내리쬐는 태양을 노려보았다. 여름에도 선선한 시로네 집에 비하면, 체감온도가 10도는 올라간 거 아닐까.

“그럼 세이버, 뒷일을 부탁해.”

“알겠습니다, 린. 그럼 2시간 후에 마중 나오겠습니다.”

마중 시간을 확인한 후, 나는 세이버와 헤어졌다. 세이버는 에미야 저택으로 돌아가, 오늘은 그대로 시로네들을 태우고 신토로 쇼핑을 간다고 한다.
일이 있다고 아침부터 나간 미이나를 제외하고, 시로, 루비아, 후지무라 선생님과 사쿠라에 세이버, 거기에 어째서인지 랜스까지 대동해 총출동한 외출이다. 자리가 모자라 사쿠라의 차까지 가지고 간다고 한다. 하지만, 사쿠라가 검은 콜벳을 몰 줄이야. 조금 의외.

“건강해 보여서 뭣보다 다행이지만.”

세이버의 차가 떠나가는 걸 바라보며, 혼잣말을 했다. 너무 기운이 넘치는 것도 좀 그렇고, 묘하게 루비아와 사이가 좋은 것도 조금…… 열 받는 원인 중 하나. 시로의 일도 있고, 내 쪽에서 끌어들인 점은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루비아는 아니지 않냔 말야.

“으, 무슨 바보 같은 생각이람.”

가볍게 머리를 흔들어 잡념을 떨쳤다. 분명 이 부끄러운 지도 모르고 내리쬐는 태양이 나쁜 거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후유키 교회의 문으로 들어갔다.

“일부러 불러내 미안하네. 허나, 업무상 이야기라서. 이러는 쪽이 좋겠지?”

신부님이 커다란 몸을 숙이며 인사해 온다. 이곳은 지하에 있는 성구실(聖具室, 교회에서 쓰는 도구들을 놓는 곳). 바깥과는 달리 조금 어질러져 있는데다 거미줄까지 쳐져있지만, 지금 후유키의 영지霊地를 관리하고 있는 곳은 이 방이다.

“예, 신부님. 그건 별 문제가 아니니까요.”

오늘 이 후유키 교회에 찾아온 이유는, 토오사카 가문의 관리지인 후유키에 대해서다. 그렇다고 다시 내가 업무를 맡기 위해선 아니다.
여기 이 신부님에겐 내가 런던에 갔을 때 동안 관리 대행을 부탁했었지만, 이번 귀성은 단 한 달의 일시귀국. 이 정도로 일부러 관리권을 되돌려 받는 건 너무 번거로운 일이다.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연락이나 전달사항의 확인. 내가 방문자가 되니 이쪽에서 찾아오는 것은 당연하다.

“허나, 이쪽의 두 분에 관해선 다르지만요. 설명해 주시겠어요?”

난 신부님과 나란히 앉아 있는 두 사람의 인물에게 시선을 던지고, 신부님에게 물었다.
마토우 신지와 미이나, 이유에 대해선 여기에 들어왔을 때부터 대강 파악이 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듣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변함이 없다.

“여전히 매정하기 그지 없구만, 넌. 오랜만이니까 조금 더 대접해 줘도 좋지 않냐.”

그런 나에게 변함없이 이죽거리는 얼굴로 신지가 호들갑스레 팔을 벌린다. 다만 변함없는 것은 그 태도 뿐, 홀쭉 마른 모습은 어딘가 위험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래? 그럼, 축하한다고 말해둬야 하려나. 염원하던 마술사가 된 모양이니.”

“아아, 토오사카에겐 감사하고 있어. 예전 그 사건의 후유증 때문인지 나에게도 보잘 것 없긴 하지만 마술회로가 열린 것 같아.”

그 성배전쟁에서 성배가 되었던 일의 영향일 것이다. 억지로 열렸던 마술회로의 전재가 고착되었다고 하던가. 그렇다고 쳐도 신지의 외견 변화는 이상하다. 과거 런던에 갈 때까지는 이렇게까지 야위지는 않았었는데.

“그래서, 그 일을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말하는 건, 어떻게 된 일인가요?”

나는 더욱 뭐라 말하고 싶어 하는 신지에게가 아니라, 신부님을 향해 질문했다.
마술사가 된 마토우 가의 장남(신지)와, 협회의 섭외 부문 담당자(미이나). 전날, 마토우의 은거자가 죽었다는 사실을 고려해 본다면, 협회에 낼 정식 신청과 수속에 대한 수리에 대한 것이라는 것은 예측이 간다. 단지 나의 질문은, 내가 오늘 여기에 올 때까지 그 사실을 전혀 알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안하다고는 생각하고 있네. 지금까지 연락하지 않았던 것을 사죄하지.”

“거기에 마토우의 그 노인이 죽었을 시점에서 곧바로 보고가 있어야 했을 텐데요.”

내가 아직 후유키에 있는 시점에서 보고가 오지 않았다는 것은 하는 수 없다. “관리자”라고 해도, 제대로 등기되어 있는 마술사 가문의 ―― 이 경우는 마토우 가문이지만 ―― 내부의 사정에까지 불만을 말하는 건 불가능하다. 당주야 어쨌든 그 가족의 누군가가 마술사인지를 “관리자”에게 연락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당주의 판단에 맡기고 있으니까.

“그것에 대해선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후계자의 교대입니다. 그 신청과 수리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리고 말았거든요.”

여기서 이제 겨우 미이나가 신부님을 도우는 것처럼 입을 열었다.

“후계자의 교대?”

“예. 협회 쪽에 통지되어 있던 후계자는 마토우 사쿠라 양이었습니다. 마토우 조우켄 옹이 사망한 시점에서, 마토우 신지 씨에게 후계자 교대의 신청이 있었기 때문에, 조금 특수한 처리가 되었거든요.”

미이나의 이야기로는 수속이 끝나 수리된 것은 이번 달 초쯤이라는 것 같다. 시기적으로는 내가 귀성한다고 말했을 때 쯤, 그렇다면 정식 관리자 입회하에 처리하는 것이 좋을 거라고, 오늘 회합에 맞춰진 거라고 한다. 나 참, 그럼 저번에 말해줬으면 됐잖아.

“당연하잖냐. 마토우의 혈통에 마술사가 없다면 모를까, 이 몸이라는 훌륭한 마술사가 있다고. 다른 피의 녀석을 당주로 앉힐 수 있겠어?”

미이나의 설명에 신지가 말허리를 끊었다. 제멋대로인 소리이긴 하지만 일단 말은 된다. 하지만, 그럼 사쿠라는…….

“애초에 사쿠라는 원래부터 단순한 태반胎盤(태아와 모체를 연결해 주는 그 태반)이라고? 후계자라고 해봐야 명목 뿐이었으니까 말이지.”

“잠깐 신지…… 너 방금 무슨 소리를 한 거지?”

더욱 홍수처럼 쏟아지는 신지의 말. 한 순간, 시야가 일그러진다. 태반? 무슨 소릴 하는 거지, 이 녀석? 사쿠라는 마토우에게 마술사로서 양자로 들어간 게 아니었어?

“어이, 이봐, 토오사카. 그런 무서운 얼굴로 보지 말라고. 당연하잖아? 마토우는 계속 할아버님이 당주였다고. 후계자의 역할은 마토우의 피를 가진 마술사를 만드는 것. 그러니까 여자 마술사를 가져 온 건 내 아이를 배게 하기 위한 게 당연하잖냐.”

마치 애완동물이나 가축에 대해 이야기를 하듯이, 사쿠라에 대해서 이야길 계속하는 신지. 스스로도 안색이 소리를 내며 변해가는 걸 자각할 수 있었다. 농담이 아니다. 그런 짓을 위해 사쿠라를…….

“너희들…… 남매면서…….”

“토오사카, 관리자라고 남의 집안일에 끼어들지 말았으면 하는데. 혈통의 조절 정도 마술사라면 어디나 다 하잖냐. 남매? 그게 뭐야. 우리 엄마도 할머니도 모두 그렇게 마토우 가문에 들어왔다고.”

“큭…….”

무심코 새어나온 신음을 억눌렀다. 그런 말을 들으면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실제로 마술사들에겐, 마술회로나 충실한 마력량을 위해, 모자에게 손을 가하는 가문 따윈 얼마든지 있다. 나는 단지 신지를 노려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아버지…… 당신은 설마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하지만 토오사카. 난 이미 사쿠라와 아이를 만들 생각은 없어.”

그런 나에게 마치 생색내듯이 웃는 신지. 짜증나는 웃음이다. 마치 날 꿰뚫어 보고 있는 듯이, 내려다보는 듯한 웃음.

“그러니까, 네 동생에 대해선 안심해도 된다고.”

한 순간, 공기가 얼었다. 나뿐만이 아니다. 미이나도, 신부님도. 웃고 있는 것은 눈앞의 신지뿐. 때려눕히고 싶을 정도인 회심의 웃음이다. 이 녀석, 단지 이것만을 위해 지금까지 이 사실을 숨기고 있었던 거겠지.

“……알고 있었구나……?”

“당연하지. 난 마토우의 후계자라고? 가문에 대한 건 전부 파악하고 있어. 뭐 나도 처음 알게 된 때엔 엄청 놀랐지만.”

목에서 짜내는 듯한 나의 말에, 자신의 우위를 확신한 신지의 교만한 웃음이 번져간다.
이 녀석은…… 나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허나, 이대로 얌전히 물러설 수는 없다. 원한에 얽혀 찐득찐득하게 무신경한 언어의 폭력. 소심한 너로선 조금은 해주는 군? 하지만 애송이 씨, 나는 마술사야.
나는 숨을 고르고, 극상의 미소를 얼굴에 띄웠다.

“동생에 관해 마음씀씀이, 감사드려요. 하지만, 아무리 제가 당신의 목숨을 구해줬다고 해도, 나는 마토우 가문의 일까지 뭐라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큭…….”

사쿠라의 일은 거래 재료가 될 수 없다. 더욱이 목숨의 대가는 아직 받아내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선언해 두었다. 흥, 안색이 변했군? 그러니까 넌 소심남이라고 하는 거야.
단지, 마음 속 어딘가에 가시가 박혔다. 미안, 사쿠라. 난 널 지켜줄 수 없어. 마음의 군살이라고는 알고 있어도, 지금의 나는 그게 아픔이라는 것을 알고 말았다.

“신지 군, 그 쯤 해두지 않겠나.”

그런 차가운 분위기 속에, 신부님은 기회를 잡은 듯 성급한 어조로 끼어들었다. 그대로 험악한 눈초리로 신지를 바라보고 있자니, 신지도 어깨를 움츠리고 창을 거두었다.

“미스 슈트라우스, 수속을 끝내주게나. 토오사카 양, 입회를 부탁하지.”

이번엔 그걸로 됐겠지, 하며 나에게 시선을 던진다. 아무래도 신지에 관해 신부님이 무언가 관련되어 있는 것 같다. 여기선 신부님의 체면을 세워주자. 자세한 사정은 나중에 들으면 되니까.
내가 말없이 끄덕이자, 신부님도 꽤나 안도한 듯한 얼굴로 미이나에게 수속을 진행시켰다.

“그럼 수속을 진행하겠습니다. 마토의 당주로서 마토우 신지 씨는 정식으로 협회에 등록되었습니다. 마토우 가문의 마술사는 마토우 신지 씨, 이어 마토우 사쿠라 양으로 된 것이겠죠?”

온화하게, 그러면서도 사무적인 미이나의 목소리가 울린다. 미이나도 마술사이면서 마음의 군살이 많구나. 이건 미이나가 화냈을 때의 목소리잖아.

“아, 마토우의 마술사는 나뿐이야. 사쿠라는 마술사 같은 게 아니니까.”

“어떻게 된 일인가요? 원래 후계자가 마술사가 아니라니?”

“아아, 분명히 사쿠라는 마술회로도 가지고 있는 데다 마력도 있어. 거기에 마토우의 사람으로 체질개선도 받았으니, 마토우의 비적을 이어갈 수도 있지.”

신지는 비웃는 듯이 입가를 일그러트리고, 마치 오늘의 유머라도 말하듯이 가볍게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마술의 지식도 마술사로서의 마음가짐도 전혀 없어. 그 년에겐 나도 곤혹스러웠다고. 할아버님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사쿠라라면 마토우의 마술을 잘 알거라고 생각해 물어봤더니, 아무것도 모르고 있더라고.”

사쿠라는 어디까지나 마토우의 마술을 다음 세대로 전할 뿐의 일시 보관소라는 말. 다시 말해, 사쿠라는 마술사로서가 아니라, 마토우를 위한 살아있는 마구魔具라고 지껄이는 것이다.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한계점에 도달하는 것 같다. 부글부글 위험한 무언가가 마음속에서 끓어오른다.
마술사가 된다. 그것만으로도 괴로운 일이다. 그렇다 해도, 나에겐 아버지의 애정이 있었고, 마술사가 된 다는 것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지식을 얻는 기쁨도 있었다. 무언가를 이루어 낸다고 하는 목표와, 이루어 낸 때의 즐거움이 있었다. 허나, 사쿠라에겐…….

나는 그런 생각들을 필사적으로 마음속에 눌러두었다. 결코 여기서 그런 것을 얼굴에 내선 안 된다. 신지같은 녀석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마토우 신지 씨, 이것이 협회의 정식적인 통지서입니다. 오늘을 기해 발효됩니다.”

“아아, 고마워. 나 이거 참, 이걸로 겨우 나도 정식 마술산가.”

미이나가 내민 한 장의 양피지. 그걸 자못 소중한 듯이 품고는, 신지는 만면에 웃음을 띄운 채 일어섰다.

“그럼, 토오사카.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그러면서 신지는 즐거운 듯한 웃음을 띄우며 나에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별로 친하게 지낼 필요는 없을 텐데? 난 마토우 군이 문제만 일으키지 않으면 관여할 생각 일절 없으니까.”

“……뭐라고.”

한 순간 신지의 얼굴이 굳었다. 허나, 즉시 원래 웃음으로 돌아와 포기한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하하, 뭐 됐어. 그런 걸로 해두지. 계속해서 상담거리가 생길 거라고 생각하니까.”

사쿠라의 일로 말이지, 하고 신지는 그렇게 조그맣게 토를 달곤, 그대로 방을 나섰다.

“미안하네, 토오사카 양. 분명히 다소 성격에 문제가 있었긴 하다만, 보통은 좀 더 예절 바른 인간이었을 터인데.”

신지가 방을 나가자, 신부님이 크게 한숨을 쉬며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다지 마토우 군의 태도에 불평할 생각은 없어요. 그것보다, 보통이라고 말씀하시는 걸 보니 신부님, 마토우 군과 무언가 관계가 있는 건가요?”

신지가 저런 녀석이라는 건 이미 훨씬 전부터 알고 있었다. 허나, 신부님의 말에 조금 걸리는 점이 있었다.

“흠. 실은 내가 그의 마술 스승으로 일하고 있어서.”

신부님은 형편상 어쩔 수 없었다만, 하고 찌푸린 얼굴로 팔짱을 끼고, 말을 이었다.

“그 성배전쟁 후, 뒷정리가 거의 단락이 지어졌을 때, 신지 군이 퇴원해 나에게 고해를 하러 왔었다네.”

고해의 내용에 대해선 직책상 말할 수 없지만, 하고 말을 끊은 신부님은 지금까지의 경위를 설명해 주었다.
무언가 마토우의 그 노인은 성배전쟁 때에 무언가 있었던 듯, 그 때부터 휴면 상태인 듯했다. 그런 상황에서 마술회로가 열리고 만 신지는, 아까 신지가 말했던 것처럼 사쿠라가 마술사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신부님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신지 군은 입으론 저렇게 말을 해도, 그 나름대로 사쿠라 군을 걱정하고 있더군.”

그 때, 신지는 자신이 마술사가 되어, 사쿠라를 마토우의 주박에서 해방시키겠다고 말한 모양이다.
그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긴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쿠라가 이미 마토우에 구속될 필요가 없는 입장에 있는 것은 확실하다. 사쿠라를 속박하고 있던 주술이 무언가는 모르지만, 그건 아마도 불가역적인 것이겠지. 그렇다 해도 이걸로 태반으로서의 역할을 맡는 것만은 피할 수 있는 것이 된다.

“알겠습니다. 신부님의 말을 믿죠. 신지와 사쿠라에 대해선 이제부터도 신부님께 맡겨도 되겠지요?”

“음, 마토우 남매에 대해선 내가 성직자로서 옆에 서겠네.”

신지가 아닌 신부님을 신용해 사쿠라를 부탁한다는 나의 말에, 신부님도 마술사로서가 아니라 신의 사자로서 책임을 가지겠다고 답해주었다.
나는 아주 조금 어깨의 짐이 가벼워 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신부님은 신용할 수 있다. 적어도 내가 런던에 가 있을 동안은 괜찮겠지. 내 마술사의 마음이, 그건 단순한 집행유예에 지나지 않는다고 호소해 왔지만, 그래도 조금 기분이 가벼워 진 것은 사실이었다.

“그럼, 미스 빌헬미나. 당신은 뭐 하고픈 말 없나요?”

더욱 그 기분을 가볍게 만들기 위해, 신부님의 옆에서 뭔가 잘못 먹은 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미이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 참, 일본에 온 것만으로도 놀랄 노자인데, 거기에 이런 일까지 숨기고 있다니, 장난이 도를 넘겼다니까.

“아, 에? 그게, 린 씨, 그러니까 수비의무(업무에 대해 비밀을 지킬 의무)라는게…….”

“없어. 관리자는 나니까.”

“아하, 그랬었죠…… 죄송해요. 일이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점점 어깨가 움츠러드는 미이나. 뭐, 미이나를 이 이상 괴롭혀 봐야 나오는 것도 없고. 이걸로 조금은 반성했을 테니, 이 쯤 해두자.

“아, 그리고 사쿠라가 내 동생이라는 사실은 아직 시로에게 비밀로 해줘.”

“그런가요?”

“응. 그 녀석 사쿠라를 그냥 일반인이라 생각하고 있거든. 언젠가 내가 말하긴 하겠지만, 그때까지는 말하지 말아 줬으면 해.”

“알겠습니다. 그런 사정이라면.”

이걸로 마토우에 관한 이야기는 끝났다. 마음속에 새겨둬야만 하는 일이 있긴 하지만, 지금은 아직, 그것만으로 됐다.

“행방불명 사건?”

“음, 신토新都를 중심으로, 요즘 반 년 정도 전부터 젊은 여성만 10명에 달하네.”

마토우 가문에 대한 이야기가 대충 마무리 된 후의 사무연락. 그것은 사무라고 부르기엔 조금 비린 냄새가 나는 내용이었다.

“표면적으로 경찰은 뭐라 말하고 있나요?”

“어디까지나 행방불명이라더군. 유체도 유류품도 발견되지 않은 데다, 공통점도 젊은 여성이라는 것뿐이야. 피해자가 최종적으로 확인된 지점이 후유키 시 전 지역에 산재해 있다는 점도 있어서, 최근까지 관련사건으로도 취급하고 있지 않은 모양이다.”

신부님도, 바로 며칠 전 마력적인 상흔을 발견하고 나서야 처음으로 이것이 마술적인 사건이라는 것을 눈치 챘다고 한다.

“센트럴 파크 호텔?”

신부님의 입에서 나온 장소. 그것은 반 년 전에 오픈한 신토의 중심에 잇는 시티 호텔. 그 성배전쟁 후, 중앙공원에 건축된 호텔이다.

“음, 그곳에서 희미한 잔재를 발견했다네. 아니, 몇 시간만 더 늦었더라면 그 잔재도 그 장소에 먹혀서 사라졌을 걸세.”

후유키의 영맥 중 하나를 형성하고, 아쳐에게 고유결계같다는 소리까지 들은 장소에 건축된 호텔. 그런 곳에 건축된 것 치고는 그다지 건설 중 사고도 없이 완성되었지만, 그래도 역시 꽤나 커다란 왜곡이 남이있다.
분명히, 그 장소에 잘만 숨어들고 있으면, 상당한 마력을 숨기기엔 용이할 것이다. 나뭇잎을 숨기려면 숲에 숨기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앞으로도 조사를 속행할걸세. 무언가 특별히 지시할 점이 있으면 들어두고 싶네만.”

생각에 잠긴 나에게 신부님이 물었다. 관리대행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배려다. 본래라면 조사해결의 보고만으로도 좋지만, 지금은 관리자인 내가 이 장소에 있는 것이다.

“제가 움직여 보겠어요.”

잠시 생각 후, 나는 그런 결론에 도달했다. 물론, 관리자라 하여도 지금의 내 입장은 손님이다.
허나 자신의 정원에 이상한 것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소리를 들었는데도 가만히 방관하고 있을 수는 없다. 세이버도 있고 시로도 도와줄 것이다. 루비아도 “계약” 중에 있다. 부탁하면 거부하진 않을 것이다. 게다가 그 녀석은 자신의 눈앞에 수상한 무리가 있으면 가만히 놓아줄 녀석이 아니니까.

“알겠다. 그럼 나는 외곽의 정보수집을 맡지.”

“잘 부탁드려요.”

이걸로 끝. 내일이라도 시로를 데리고 가보자. 그 녀석은 이런 조사 일에는 꽤나 정통하니까.

“아, 저도 도울 수 있을 까요?”

그런 생각을 하며 사무처리를 계속하고 있자니, 평소의 태평한 어조로 미이나가 말을 걸었다.

“괜찮겠어?”

미이나에겐 이곳에서 날 도울 이유는 전혀 없다. 마술사이긴 하나, 어디까지나 후유키에의 주재는 여행자로서의 일시 주재다. 미이나 자신이 일본에서 예정되어 있는 협회의 일과도 전혀 관계 없다.

“예, 식객이기도 한데다, 오늘 일에 대해 사과도 하고 싶거든요.”

과연, 빚은 남기고 싶지 않다는 건가. 역시 상인인 미이나 답다. 돌려줄 물건은 이자가 붙기 전에 재빨리, 라는 거군. ……본받아야지.

“고마워, 그럼 부탁할게.”

어떤 자가 숨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들이 돌아온 때에 발견된 것이 운이 다 했다는 증거. 조금 마음에 쌓인 것도 있으니까, 마음껏 비참한 꼴을 당하게 해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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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습한 어둠 속, 그것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을 기준으로 늘어서 있는 누에고치, 그 하나하나를 사랑스러운 듯이 점검한다.
이것은 소중한 아이들의 “먹이”. 죽어버리면 안 된다. 죽이지 않도록, 살리지 않도록, 확실하게 점검한다.
활발하게 움직이면 다시 송곳니를 꽂고, 약해진 것들에겐 희고 탁한 꿀을 입구멍에 흘러 넣어 죽음을 연장시킨다.

하나, 또 하나 확인한다. 괜찮아, 아이들의 먹이는 아직 충분하다.
확인을 끝내고, ‘그것’은 사랑스럽다는 듯이 배의 알을 문지르곤, “먹이”에 낳는다. 이걸로 좋아. 허나 아직 알이 있다. 또 사냥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새로운 아이들을 위해서, 새로운 “먹이”를 찾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마치 춤추는 듯한 발걸음으로 어둠에 휩싸인 장소를 뒤로 하였다.

―― 타앙 ――

남겨진 어둠 속에서, ‘그것’이 떠나길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다른 무언가가 기어 나온다. 그림자에서, 어둠에서 우르르르 기어나와, 그대로 엉겨 붙어, 마치 핥듯이, 문지르듯이 고치 안으로 몸을 가라앉힌다. 꿈틀거리고, 어루만지고, 주무르고, 희롱하기 시작한다.

――아, 아아………… 흐으으으으…… 하윽…… 아아아아아아아……

음울한 어둠은, 곧바로 교성嬌声과도 같은 신음소리에 휩싸인다.

―― 슈욱! ――

꿈틀거리는 무엇과 교체되듯이, 고치의 틈에서 무언가가 토해 나온다.
떨어져 뭉개지며, 썩은 듯한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알.
젖을 빼앗겨 부화할 리 없는 알은, 마치 비웃는 듯한 교성에 휩싸여, 보이지 않는 어미를 미워하는 일도 없이, 어둠의 빛깔을 띤 진흙 속으로 잠겨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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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의 Fate/in FUYUKI!
다시 한번 말합니다만, 이거 너무 길어요! 도대체 한 화당 몇 줄을 잡아먹는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런고로 업로드 주기는 매우매우매우 불규칙합니다.

그나마 있는(대부분 동정표의) 신지 팬들도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저 빌어먹을 태도!!

아, 역시 신지는 개새끼입니다. 핫핫핫(유쾌해 하고 있다)

「내일 수영장에 갈 테니까 준비해.」

토오사카 씨께선 언제나 갑작스럽다.

그 날의 토오사카는, 교회에서 돌아오고 나서 계속 정서불안정한 상태였다. 나 지금 기분 나쁘니까 가까이 오지마, 라는 오러를 발하면서, 쇼핑을 다녀온 루비아 양을 포획해 그대로 토오사카 저택으로 갔다고 생각했더니, 갑자기 돌아와선 이렇게 선언하는 것이다.

「무슨 일이야, 토오사카. 너 오늘 뭔가 이상하다?」

묘하게 안절부절 하다고 해야 할지, 초조해 하고 있다고 해야 할지, 특별히 화내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추측조차 가지 않는다. 이런 상태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아직 그 날은 멀었을 텐데…….」

「시로……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무심코 흘러나오고 만 중얼거림을, 토오사카는 잽싸게 캐치하고 말았다. 거의 집음기 수준이다.

「아니, 별건 아닌데. 이 시기에 위험한 건 분명 루비아 씨…….」

「시로우…… 당신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가요.」

아니, 종자로서 주인의 신체관리도……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실언이었슴다.
눈을 치켜뜨고 노려보는 두 분의 존안 앞에서 나는 후퇴하며 퇴로를 물색했다.

「……선배님. 어째서 그런 것까지 알고 계신가요.」

퇴로는 끊기고 말았다. 그런 내 뒤에 얼굴을 숙이고 앞머리로 표정을 가린 사쿠라가 그림자에 가려 서 있었다. 으아아, 보이지 않는 오러가 풀풀 솟아오르고 있어!

「시로는 옛날부터 그런 거에 눈치가 빨랐지.」

후지 누나는 그런 수라장을 거실 문 쪽에서 얼굴을 내밀며 바라보고 있었다. ‘사쿠라 쨩도 나도 분명 파악하고 있을걸’이라며 불에 기름을 붓고 계십니다.

「……시로우니까요.」

그런 후지 누나의 머리 위에서 세이버 역시 ‘또 입니까’라면서 한숨을 쉬었다.

―――주인이여, 그 마음씀씀이는 상당히 훌륭하지 않은가.

그 세이버의 더욱 위에, 랜스 녀석까지 만족스런 얼굴로 끄덕이고 있다. 입에 낸 것만은 아직 수행이 부족하다는 증거다…… 라니, 난 그런 수행 쌓고 싶지 않아!

「시로 군이니까요. 정말로 점점 키리츠구 씨를 닮아가네요.」

마지막 마무리는 미이나 씨. 어째서인지 후지 누나와 세이버까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버지. 정말 당신 어떤 마술사였던 겝니까?

검은 고치

「요술사妖術師의 후예」 -MAKIRI- 제 1화 후편

Beelzebul

「……다시 말해 탐색이라는 거군.」

풀 사이드에서 후르츠드링크를 손에 들고, 나는 겨우 토오사카에게서 사정의 경위를 들을 수 있었다. 어찌됐든 어제 하루 종일 생각도 안하고 내뱉은 발언 탓에 에미야 저택의 접근불가 혐오생물로 분류되고 말았으니까. 집 주인인데도.

「그래서 어때, 시로. 여긴?」

나의 옆에서 비치 체어에 누워있는, 수영복 차림의 토오사카가 코끝에 내려온 선글라스 너머로 물었다. 탐색이라는 것 치고는 엄청 편하게 있구만.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지만 말야. 분명 일그러졌다고 해야할지, 어딘가 이상한 부분이 있어.」

분위기는 분명 확 변해있었다.
이곳은 후유키 센트럴 파크 호텔의 수영장. 시티호텔이면서도 리조트 호텔에 버금가는 규모에, 숙박객 뿐만이 아니라 외래객에게도 개방되어 있지만, 그래도 꽤나 높은 이용료 때문에 그다지 붐비지는 않았다.
여름의 태양빛을 한껏 머금은 이 풀 사이드. 이곳이 12년 정도 전에 그 ‘검은 진흙’으로 오염되었던 장소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이 장소에서 수많은 죽음을 바라보고, 죽을 뻔 한데다, 거기에 목숨을 구원받은 나조차 처음부터 여기가 그곳이라는 사실을 몰랐더라면 눈치 채지 못할 정도의 변모다.

「뭐라고 할까…… 뚜껑을 덮어 억누르고 있는 느낌이야. 표면적으론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정도지만, 역으로 안쪽은 부글부글 끓고 있달까. 응축되어 있는게 아닐까?」

이곳에서 이렇게 탐색을 해보면, 다른 면이 보인다. 그 장기瘴氣를 깨끗하게 몰아낸 것이 아니다. 단지, 어딘가에 억눌려서 나오지 못하고 있을 뿐. 그런 느낌이다.

「일종의 영적인 벌레독? 우리들이 조사를 나와서 다행이야. 꽤 위험한 상황이잖아.」

시공주에 대해서도 조금 조사해야겠는데, 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토오사카 씨께선 맛있다는 듯이 데코레이션 왕창 올린 후르츠 드링크를 쪽쪽대고 계셨다. 대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면이다.

「――응?」

좀 맛있어 보였기에 나한테도 줘, 라며 손을 뻗으려던 때, 등골에 ‘무언가’가 내달렸다. 무언가 이상한 기척. ……있다. 뭔가가…… 가까이…….
토오사카도 똑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손에 든 후르츠 드링크를 쪽쪽 빨며 파라솔을 아래로 내렸다. ……응? 파라솔?

―――― 촤아악! ――――――

「――푸하앗!」

갑작스러웠다. 느닷없이 풀에서 일직선으로 밀려오는 물의 분수. 뭐야, 이건! 숨을 쉴 수가 없어! 아, 토오사카, 치사하다! 나도 파라솔 안에 들어갈 거야!

「후하하하하하하하하! 수둔水遁의 술이다!」

고무튜브에 물안경에 슈뇌르켈(물 속에서 호흡을 할 수 있는 대롱), 거기에 손에는 배구공을 두 개 겹쳐 놓은 정도의 에어 펌프를 장착한 물대포. 그런 유쾌한 차림으로 크게 웃는, 이제 삼십대 바로 코앞인 여성은 후지 누나 이외에 있을 리 없다.

「무슨 짓이야! 풀도 아니고 풀 사이드에서 물에 빠진 꼴이잖아!」

「그런 곳에서 늙은이처럼 일광욕이나 하지 말고 시로도 수영하자!」

나의 저항은 한 귀로 흘리며 헤실헤실 웃는 후지 누나는 유쾌한 차림을 한 채로 풀 사이드에 턱을 올리고 있었다.
이 아줌만……, 난 주의 한 마디 하기 위해 일보 전진했다.

「적습! 공격 개시!」

우리의 유쾌한 누나는 나의 습격을 감지했는지 풀 사이드를 박차 뒤로 빠지면서 물대포를 난사했다.
허나, 나 역시 언제까지고 당하고만 있진 않는다. 만약을 위해 뒷짐을 지고 들고 있던 파라솔을 펼쳐, 빙글빙글 돌리면서 더욱 앞으로 전진한다. 보았는가, 치천의 하늘을 뒤덮는 일곱의 원환의 위력을!

「각오해, 후지 누나!」

「우오~, 쨘쨘쨘쨘!」

이대로 한 번에 밀어붙여 줄까 하고 생각하던 때, 후지 누나가 실로 기묘한 행동을 시작했다. 유쾌한 효과음을 소리지르며 마치 신호라도 보내는 듯이 물대포를 좌우로 흔들었다.

「으억!」

순간 후지 누나가 아까까지 있던 풀 사이드 옆 수면 좌우에서 무언가가 물거품과 함께 날아올랐다. 그리고는 그대로 아까 후지 누나가 쏘았던 물기둥이, 나를 좌우에서 협공해 왔다.

「시로 군, 걸렸군요!」

「죄송해요, 선배님. 하지만 걸려든 선배님이 잘못이라구요.」

미이나 씨에 사쿠라…… 젠장! 이제 화났어!

「으가악!!」

나는 파라솔을 내던지고 풀로 뛰어들었다. 그대로 좌우의 협공은 신경쓰지 않고 후지 누나를 향해 단숨에 헤엄쳤다.

「니노옴이 주모자로구나!! 각오해랏!!」

「우와아! 시로가 자기 누나를…… 푸웁……」

코앞에서 크게 외치고는, 물 밑으로 잠수해 후지 누나를 힘껏 물속으로 끌어 내린다.
그 후는 말하지 않아도 알 대소동. 노성과 환성, 교성과 웃음소리, 물보라와 거품에 뒤섞여, 나는 셋을 상대로 난투를 반복했다.

「기운 넘치네?」

기운이 빠져 풀 사이드까지 되돌아오자, 내 머리 위에 토오사카가 타올을 덮어주었다.

「역시 셋을 상대론 벅차…….」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말야, 하고 찡그린 체 노려보고는, 토오사카의 손을 빌려 풀 사이드로 올라왔다. 으아, 다리가 풀렸어. 역시 수중운동은 빡세군. 나는 한숨을 쉬며 시선을 올렸다.
그 앞에는 내가 아까까지 상대하고 있던 세 사람. 지금은 파도 풀에서 수다를 떨고 있다. 후지 누나는 변함없이 검정과 황색의 줄무늬 원피스. 미이나 씨는 은색과 검정색의 투피스 수영복. 사쿠라는 핑크색 비키니인가. ……사쿠라, 너 또 가슴 커진거 아니냐…….

「에미야 군, 어딜 보고 있는 거니?」

내 시선을 뒤쫓던 토오사카가, 생긋 아름다운 미소를 짓는다. 어디냐니…… 토오사카, 너, 가슴이 관련되면 신경과민이라고. 난 네 가슴도 좋아한다니까.

「신경쓰지 마시길, 전 성장하지 않으니까요.」

라는 생각에 토오사카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던 순간 시합용 풀에서 휙휙 수영하고 있던 세이버가 어느샌가 옆에 서서 눈을 내리깔고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세이버, 네 가슴은…… 죄송합니다. 이제 말 안할게요.

「그런데, 토오사카.」

「뭔가요, 에미야 군?」

엇흠, 하고 헛기침을 한 후 화제를 돌렸다. 토오사카 씨는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무슨 말씀을 해주실 건가요, 라며 팔짱을 끼지만, 여기서 질 수는 없다.

「이런 식으로 놀아도 괜찮은 건가?」

「그건…… 저도 느끼고 있습니다만…….」

실컷 헤엄치고 와서 뭔가 캥기는 게 있는지, 세이버는 조금 주늑든 모습이다. 나도 엄청 놀아 재꼈지만…… 응,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아마도 괜찮을 거야. 지금까지는 낮에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어.」

어깨를 으쓱이며 시원스레 답하는 토오사카. 그래도 표정이 한 층 더 심각해진다. 우리들은 풀 사이드의 테이블에 앉아 의식을 널리 퍼트리며 낮은 목소리고 이야기하였다.

「승부는 밤. 시로는 호텔 건물 전부를 뒤지도록 해. 우리들은 마력을 끌어올 테니까.」

「알겠습니다. 저는 시로우와 동행하겠습니다. 린과 이어져 있으니까요.」

「그래. 그렇게 한 번 돌고 나서 결과를 맞춰보자.」

다시 말해 나와 세이버가 기동부대,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이 후방지원이라는 거군.

「후에 ID카드를 넘겨줄게. 신부님에게 부탁해서 종업원용 공간에도 출입할 수 있도록 할 테니까.」

하나하나 순서를 확인해 나가며, 우리들은 밤에 할 행동에 대해 상담을 계속했다.

「그런데, 토오사카.」

허나, 나에겐 계속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었다.

「후지 누나나 사쿠라를 데리고 온 건 좀 그렇지 않나?」

표정을 굳힌 체 난 토오사카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자칫하다간 피를 흘릴 수도 있는 장소에 그 두 사람을 데리고 가는 것은 찬성할 수 없다. 혹시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면 결사반대했을 것이다.

「물론 생각했어. 하지만 시로, 우리들만 여기서 자고 가겠다는 소리를 그 두 사람이 납득하도록 설명할 수 있어?」

「으음.」

그런 나에게 토오사카는 정면으로 맞부딪쳐 왔다.
분명 수영장에 오는 것뿐이라면 에미야 저택에서도 충분이 다닐 수 있는 장소다. 오늘 여기서 묵는다는 것도 신부님이 티켓을 줬다는 핑계이다.
거기에 고집을 부려 데리고 갈 수 없다고 우겨도 이유가 명확하지 않은 이상, 저 행동력에 관해서는 범인의 몇 배를 넘는 후지 누나가 자비부담으로 따라올 수 있다. 사쿠라 역시 마찬가지. 저래보여도 묘하게 고집센 면이 있으니까.

「게다가 행방불명 그 자체는 후유키 전체에서 일어나고 있어. 그러니까 차라리 눈 닿는 곳에 있어주는 편이 안심이지 않아?」

거기에, 뭣하면 후지무라 선생님과 사쿠라의 방에 결계를 깔아둘까? 하고 물어왔다.

「그렇군, 생각해 보니 그쪽이 안심이네. 그럼 난 랜스를 맡겨둘게. 그 녀석이 있으면 다소한 일엔 괜찮을 테니까.」

라인이 이어져 있는 사역마는 시각이나 마술도 통할 수 있다. 거기에 무엇보다 랜스라면 대부분의 일에 대처할 수 있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그 녀석을 여성만이 있는 방에 놓아둔다는 사실이나, 역시 까마귀이니 이상한 실수는 일으키지 않겠지.

「오늘까지의 조사내용을 정리해서 신부님이 보내주기로 했어. 후지무라 선생님과 사쿠라가 잠들면 모여서 마지막으로 확인하자.」

「지금부터라도 가능한 일은 해둬야 하지 않나? 미이나 씨는…….」

저쪽에서 후지 누나나 사쿠라와 놀고 있다. 그것도 진짜로. 저 사람은 여러 가지 의미로 적당히라는 단어가 없으니.

「그러고 보니, 루비아젤릿타가 보이지 않는군요.」

그건 나도 신경 쓰이고 있었다. 루비아 씨는 토오사카와 똑같이 놀 수 있을 때에 바쁜 척 하는 사람이 아니다.

「아~, 루비아는 지금 잠깐 풀에서 나갔어.」

「왜? 몸이 좋지 않은 건가?」

묘하게 어물거리는 토오사카의 대답에 조금 불안해진다. 여름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일 텐데. 지금부터 큰 일이 될 지도 모르니까.

「오늘 아침까지는…… 아.」

나와 똑같이 궁금해 하던 세이버가 갑자기 말을 끊고 토오사카의 얼굴을 바라본다. 뭔가 마음 가는 것이라도 있나?

「뭐야, 나한테도 알려줘. 루비아 씨 어디 아픈거야?」

토오사카와 세이버가 이런 얼굴을 하다니, 점점 더 불안해 진다. 수영장에는 올 수 있을 정도니 그리 나쁜 상태는 아닐 것 같지만…….

「방에 있는 거야? 잠깐 방에 다녀올게.」

「기다려, 시로.」

하고, 일어서려던 참에 토오사카에게 제지당했다. 뭔가 복잡한 표정이다. 정말로 어제부터 토오사카 너 복잡하기 그지없다고. 왜 그러는 거야?

「정말로, 그렇게 예리한 주제에 왜 그리 둔한거야.」

그대로 찌릿하고 노려본다. 어째서?

「시로우, 당신은 어제 모두에게 비난받았던 것은 어째서인지 기억하고있습니까?」

거기에 세이버가 기가 막히다는 듯이 물어온다. 뭐냐니, 그건 달걸…….

「――아.」

내 머릿속에서 달력이 팔락팔락 넘어간다. 아아, 그래, 분명히 루비아 양은…….

「그런 거야. 아까 전에. 그러니까 풀에는 오지 않았어.」

「저기…… 그게…… 미안.」

토오사카와 세이버가 뭔가 벌레라도 보는 듯한 눈초리로 나를 본다. 우우, 미안해요. 부탁이니까 그렇게 다가가선 안될 것이라도 보는 눈은 참아주세요.

「그럼 토오사카 양과 세이버 쨩과 시로의 귀국과, 루비아 양과 미이나 쨩의 방문을 축하하며, 건배~」

후지 누나의 목소리가 탁자 위에 밝게 울린다.
오늘의 저녁 식사는 중화식. 이 호텔의 최상층에 있는, 후유키 시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레스토랑에서의 저녁식사다.

「귀국환영식은 이미 했잖아.」

「에~, 축하는 몇 번을 해도 좋은 거야.」

「매일 연회하고 싶은 건 후지 누나뿐일걸.」

「으, 그럼, 그럼, 저기…… 그래, 사쿠라 쨩의 쾌유 일주년으로.」

「잠깐 기다려, 후지 누나. 쾌유라니 무슨 소리야?」

나의 딴지에 후지 누나가 갑자기 묘한 소리를 했다. 되물었더니 드러나게 낭패한 표정이 더욱 수상하다.

「사쿠라. 병 걸렸었니?」

토오사카도 똑같이 의심스러운 얼굴이다. 런던에 갔던 우리들은 그런 이야기를 전혀 듣지 못했으니까.

「으으, 미안, 사쿠라 쨩.」

「아, 괜찮아요. 보세요, 지금은 그렇게 건강한걸요.」

우리들의 추궁에 추욱 어깨를 늘어트리는 후지 누나에게, 이미 개인 접시 한 가득 요리를 담은 사쿠라가 팔을 들어 알통을 만드는 시늉을 내며 대답했다. 분명히 지금은 건강한 것 같은데. 알통 쪽이 아니라 저 수북하게 쌓인 요리가.

「어쨌든 후지 누나, 빨리 토해.」

「으으, 시로가 차가워어. 흥이다! 토오사카에게만 말할 거야!」

흑흑흑흑, 하고 어딜 보나 연기인게 분명한 울음으로 토오사카에게 안기는 후지 누나. 나 참, 이제 곧 30줄이니까 그런거 하나도 귀엽지 않다고.

「예, 예, 후지무라 선생님. 여자끼리의 비밀로 하도록 하죠.」

쓴웃음을 지으며 어르는 토오사카에게, 후지 누나는 퉁퉁 부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사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뭐, 토오사카와 나의 자리는 바로 옆. 토오사카에게만 이야기한다고 해봐야 당연히 나한테도 들려온다.
그 말에 의하면 작년 여름, 사쿠라는 위장 쪽이 좋지 않아 한 달 정도 입원했다는 것이다. 나와 토오사카는 입학 전의 중요한 시기, 사쿠라는 걱정끼치고 싶지 않다고 연락하지 말라고 후지 누나에게 부탁했던 모양이다. 다행히 목숨에 관련된 병이 아니라, 여름방학이 끝나기 전에 퇴원해, 지금은 전과 다름없는 사쿠라로 돌아왔다는 이이기다.

「섭섭한데, 사쿠라.」

「죄송해요, 선배님. 정말로 별 일 아니었는걸요.」

그래도 걱정조차 할 수 없었던 건 조금 쓸쓸하다구.

「다음번에 무슨 일이 있으면 반드시 연락해. 알았지?」

그러니까, 나는 사쿠라에게 명심시켰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아무 것도 모르고 있을 때 사쿠라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것만은 절대로 싫다.

「……예, 선배님.」

어깨를 움츠리며 고개를 숙이면서도, 사쿠라는 확실히 대답해 주었다.

「아~, 왜 시로가 사정을 알고 있는거야.」

「그렇게 큰 목소리로 말하는데 누가 못 듣겠어.」

한 편 이쪽은 여전히 변함없는 후지 누나. 흥이다, 흥이다 하며 눈물을 글썽이며 요리를 쓸어 담는다. 나 참, 조금은 어른이 되어주지 않음 동생으로서 슬프기 그지없다니까.

「사쿠라, 당신도 오빠와 함께 교회에 다니는 것이 어떤가요?」

식사가 일단 끝이 나고, 우리들은 후지 누나와 사쿠라의 잔에 술을 채웠다. 술을 취하게 해 그 사이에 일을 치루자는 작전이었지만, 두 사람 다 술이 꽤나 세다. 뭐 그래도 이제 슬슬 되겠군 하던 참에, 문득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루비아 양이 사쿠라에게 말을 걸었다.

「에? 저는…… 그다지 갈 필요가 없을 텐데요.」

「그래선 안 되지요. 교회에서의 가르침은 당신에게 있어 중요한 것이 될 거에요. 근 시일 내에 교회에 다니는 것을 권해드려요.」

교회라니, 그 교회겠지? 신지 녀석은 성배전쟁 후의 일이 있어서 그곳에서 신세를 지고 있을 텐데, 사쿠라가?

「사쿠라, 교회 믿었었어?」

「아, 예. 오빠가 신세를 지게 되었을 때 함께.」

아아, 과연. 그 때는 신지가 꽤나 신세를 졌는데다, 신부님은 종교자로서는 코토미네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상냥하니까. 여러 가지 불안한 일이 있었으니 사쿠라가 교회에 다녀도 이상하지 않다.

「미스 에델펠트. 종교를 강요하지 말아주시겠나요.」

하고, 여기서 토오사카가 상당히 차가운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어제부터 때때로 보여주는 태도다. 신경을 곤두세우고는, 그런데도 어딘가 연약함을 가진 미묘한 분위기.

「어머나, 미스 토오사카. 사쿠라는 이미 신도인데요. 저는 먼저 믿고 있는 입장에서 조언을 하고 있을 뿐이에요. 당연하지 않나요.」

「그래도 때와 장소를 가려주셨으면 하는군요.」

「가렸어요. 지금이니 말씀드린게 아닌가요.」

뭔가 공기가 미묘하게 변했다. 지금까지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이 벌였던 싸움과는 다른, 좀 더 긴장되는, 굉장히 험악한 분위기다.

「린 씨, 루비아 씨, 시로 군이 무서워하잖아요~.」

「햐웃!」
「뭐, 뭔가요!」

그런 공기가 한 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선 미이나 씨가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의 뒤에서 껴안았던 것이다. 뺨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흐리멍텅한 눈으로 히죽 웃는 미이나 씨. 자, 잠깐, 당신까지 취하면 어쩌라는 겁니까!!!

「미이나…… 취했군요?」

「안 취했어요.」

「거짓말 하지 마세요. 새빨갛잖아요!」

「아이 차암, 빨강은 린의 색이잖아요.」

킥킥하고 웃는 미이나 씨. 어~이, 돌아와~.

「린, 루비아젤릿타. 빌헬미나를 부탁드립니다. 타이가와 사쿠라는 저와 시로가 방까지 옮기겠습니다.」

기회라 보았는지 한숨을 흘리던 세이버가 얽혀있는 세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에~, 나 아직 안취했어어.」

아까전부터 이미 자작 모드에 들어간 호랑이. 아아, 취하지 않았어. 그러니까 조끼에 스카치를 붓는 건 그만 둬.

「잽싸게 자자. 내일부터 궁도부의 합숙이잖아? 숙취에 걸린 인솔자라니 농담이 아냐. 세이버, 후지 누나를 부탁해. 난 사쿠라를 데려가지.」

뭐, 후지 누나는 아무리 마셔도 아침에는 말짱할 테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 여름 합숙은 평소의 류도우 사가 아니라 전차로 약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곳의 산에 건다고 한다. 오랜만에 돌아온 보호자(동생)으로선 지각하게 할 수 없다.

「으~, 모처럼 시로가 돌아왔는데 내일부터는 잠시 이별이네~. 이 누나는 슬퍼요~.」

류도우사에 독거미가 나왔다고 한다. 옛날에 이야깃거리가 되었던 무슨 검은독거미라고 하는 녀석들인 듯하다. 제대로 치료받으면 생명에 이상은 없다고는 해도, 학생들을 상대할 때 신중을 기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저기, 하지만 선배님. 토오사카 선배님이랑 루비아 씨, 저 때문에…….」

한 편 이쪽은 뺨을 발갛게 물들인 사쿠라가 어깨를 움츠리며 툭탁거리는 시계탑의 세 괴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신경쓰지 마. 토오사카와 루비아 씨의 싸움은 그루밍(grooming, 동종간의 털 고르기 등을 지칭. 원숭이의 세계에선 사회관계의 확인을 뜻한다)같은 거니까.」

「사람을 원숭이 취급하다니!!」
「농담이 아니에요! 누가 린이랑.」
「린 씨는 침팬지인가요? 그럼 루비아 씨는 금모후(노란털원숭이)네요. 손오공?」

미이나 씨, 이제 뭔 소린지 모르겠습니다.

「뭐, 보다시피 이모양이야. 가자, 사쿠라.」

「……아, 예. 꺄…….」

하고, 일어서려던 사쿠라가 비틀거렸다. 얼굴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상당히 취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재빨리 사쿠라를 붙잡았다.

「괜찮아, 사쿠라?」

「괘, 괜찮아요, 선배님. 혼자서 걸을 수 있어요.」

그렇게 말했지만 역시 사쿠라의 걸음걸이는 불안했다. 할 수 없군. 난 각오를 굳히고 사쿠라를 안아 들었다.

「……뭐, 뭐야?」

순간, 모두가 침묵에 빠졌다.

「……선배님…….」

「뭐냐니…… 아아, 정말. 빨리 사쿠라를 방까지 데려다 줘.」

「타이가, 우리들도.」

「아, 응. 시로, 어른이 되었구나.」

「……단숨에 술이 깨는군요…….」

「역시 키리츠구 씨의 아들이라니까요.」

모두에게 뭔가 이상한 소리를 들으면서 난 사쿠라를 방까지 옮겨다 주었다. 뭐냐고, 도대체.

「타이가와 사쿠라는 잠들었습니다.」

「랜스를 놓고 왔어. 결계 쪽을 부탁해.」

사쿠라와 후지 누나를 방으로 옮기고, 나와 세이버는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 미이나 씨의 방에서 합류했다. 예정으로는 이곳에서 작전회의를 하고 호텔 안을 돌아보는 것으로 되어 있다.

「아, 시로우 군, 수고했어요.」

우리들을 맞이한 것은 방 중앙에서 의자에 앉아 있는 미이나 씨. 술은 완전히 깬 모양이지만, 왜 마법진 중앙에 앉아있는 거야?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도 뭣도 아냐. 이 녀석 술 깨게 하려고.」

「아까전의 취기는 몸 속의 수분을 한 순간에 날려서 알코올의 농도를 높였던 거에요. 그런 짓을 하면 아메지스트amethyst(술깨기) 정도로는 부족하니까요.」

나의 질문에 마법진 양 사이드에 진을 치고 있던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이 낙담한 얼굴로 대답했다. 어이, 그거 엄청 위험한 거 아냐?

「왜 그런 짓…… 아.」

거기까지 생각하고야 깨달았다. 그래, 미이나 씨, 일부러…….

「린, 루비아젤릿타. 저도 아까 전의 싸움은 보통이 아니었다 느꼈습니다.」

세이버도 사정을 깨달았겠지. 엉뚱한 짓을 한 미이나 씨에게가 아니라, 조금 부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고 있는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에게 엄한 표정을 향했다.

「별로 싸움한 건 아냐.」

「에에, 견해의 차이일 뿐이에요. 이제 괜찮아요.」

「응, 일단 대충 끝냈어. 침착하게 서로 이야기 했으니까.」

이제야 겨우 서로 마주보며 끄덕이는 두 사람. 이러면 괜찮겠지. 감정적인 걸로 언제까지고 질질 끄는 두 사람이 아니니까.

그리고는, 간단한 정리가 끝났다. 우리들은 행동을 개시했다.
우선은 사쿠라와 후지 누나의 방에 결계를 치고, 그 후 나와 세이버는 호텔 건물을 순회,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은 방에서 마법진을 짜, 원시遠視와 투시透視를 구사하는 마법 해석이다.

「어떻습니까, 시로우?」

「아, 응. 아니, 위엔 상관없어. 좀 고여있긴 해도.」

한 바퀴 돌고 나서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공기는 분명 다소 정체된 장기 비슷한 것이 보이긴 하나, 건물 자체에는 그리 왜곡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 역시 지하란 말씀입니까?」

「그게 이상하게 출입구가 보이질 않는단 말이지. 밑에 뭐가 있다고 해도 이 건물에선 갈 수가 없어.」

뭐랄까 묘한 감촉이다. 마치 이 건물 자체는 통 빈 결계처럼 느껴진다.

「시로우, 린이 방으로 오라하는 군요.」

그 때, 문득 시선을 멍하니 띄우던 세이버가 고개를 끄덕이곤 나에게 말했다. 뭔가 알아낸건가?

「쯔케모노이시(漬物石, 쯔케모노(절임류 반찬)를 절이고 위에 눌러두는 돌)야.」

「잉?」

토오사카 씨는 언제나 느닷없다. 부탁이건데 주어와 술어를 다오.

「이 건물 자체를 말하는 거에요. 뭔가를 누르기 위한 오모시(重石, 쯔케모노이시와도 같은 돌을 지칭. 우리나라에선 김칫돌을 생각하면 된다). 시로우가 말한 것처럼 건물 자체엔 특별히 무언가가 있는 것은 아니에요.」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의 조사 결과는 그렇다고 한다. 이 건물 자체를 결계로 하나로 집중해, 안에 살고 있는 인간의 정신 전체를 집약하는 오모시가 된다. 정신을 일그러트리거나 변환시키지 않고 단순히 총량을 집계할 뿐이라, 눈치체일 일도 없이 극히 간단히 할 수 있다고 한다. 다만, 그렇기에 그야말로 쓸데없는 술이라, 본래라면 그닥 의미 없는 물건인 것이다.

「영맥의 바로 위에 있으니까. 문제는 바로 그 찍어 누르고 있는 대상. 다시 말해 쯔케모노 쪽이야.」

미이나 씨가, 그것에서 추측할 수 있는 결론을 설명해 주었다. 쯔케모노라면 쯔케모노를 누르고 있는 오모시를 치우면 되는 일이나, 건물 자체가 오모시여선 그럴 수가 없다. 그러기에 쯔케모노를 꺼내거나 집어넣는 장소가 있을 것이라 한다.

「시로, 짚이는 곳 없어?」

그리하여 구조해석이 나오면 나의 순서가 된다만.

「아니, 건물 자체엔 그런 곳이 없어. 어떤 곳을 찾아야 하는데?」

「이만한 오모시이니까.」

「꽤나 넓은 공간이 필요할 거에요.」

「완전히 별개여선 의미가 없어. 무언가 연결점이 있을 거야.」

「결계도 필요하겠군요. 어딘가 그걸 설치할 수 있는 설비가…….」

차례차례 생각나는 대로 튀어나오는 필요조건. 뭔가 엄청 한정되지 않나?

「그렇게 경우가 좋은 장소같은게…… 아.」

「……수영장…… 입니까.」

생각났다. 이 호텔의 부지 내에 있으면서, 건물과 연동하면서도 독립된 설비를 가지고 있는 넓은 공간. 분명, 이 호텔의 수영장이라면 알맞다.

「하지만 낮엔 그런 기척은 못 느꼈는데?」

「시한식(時限式)일지도 몰라. 가보자.」

우리들은 장비를 갖추고 호텔의 수영장으로 달려갔다.
밤에는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희미하게 비치는 가로등 정도의 빛밖에 없는 인기척 없는 수영장. 힐끗 보기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허나 조명 탓인지, 수면은 낮의 반짝임과는 정 반대로 타르라도 흐르고 있는 듯이 천천히, 무겁게 흔들리고 있었다.

「……심상치가 않은데.」

「‘뚜껑’이 덮여 있는 거군요, 이건…….」

허나 우리들의 눈에 이미 수영장에 넘실거리고 있는 그것은 이미 물이라 부를 수 있는 것조차 아니었다. 어둠으로 충만한 원념의 그림자. 평범한 사람이 지금 이 풀에 뛰어들면 그대로 쇠약해져 죽어버릴 지도 모를 정도의 농도다.

「시로?」

「기관실의 옆에 있는 경기용 풀이다.」

지금도 펑펑 솟아 나오고 있는 장기의 근원. 부패한 달콤함이 흘러나오고 있는 곳은 그 방향이다.

「서두르죠.」

길을 따라 가는 건 번거롭기 때문에 우리들은 나무울타리나 펜스를 뛰어넘었다. 이걸 빠져나가면 경기용 풀이기에 우거진 나무울타리를 빠져나가…….

「푸훕!」
「꺄!」

거미집 덩어리에 머리부터 처박고 말았다.

「뭐야, 이거?」

「입에 들어갔어요…….」

「으아아, 이거 안 떨어져. 아주 착착 감겼는데.」

「……잠깐 기다리세요…….」

겨우 수풀을 빠져나와 머리에 감긴 거미집을 떼어내고 있을 즈음, 루비아 양이 오싹한 느낌이 담긴 목소리를 올렸다.

「……지나치게 굵지 않나요?」

그러고 보니, 이거 거의 면사 수준이잖아…… 으아, 또 걸렸어. 응? 또?

「시로우!」

갑자기 세이버의 흰 칼날이, 내 머리 바로 위를 일섬한다. 윽, 머리카락 끝이 잘렸다.

「「피해(요)!」」

뒤이어 바로 정면에서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의 복합 간드. 크악!
나는 황급히 앞으로 굴러, 그대로 위를 향해 드러누웠다.

―― 쉬익! ――

가까이서 무언가를 긁는 것과 같은 절규. 드러눕게 되어 위를 보게된 시야의 앞, 방울져 떨어져 내리는 희고 탁한 액체. 그리고, 그것을 떨구는 것은…….

「윽…… 거미?」

사람 머리 정도 크기의 푸둥푸둥 부푼 거미의 머리.
거기에 이어 송아지만한 배에서, 아까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두꺼운 실이 토해 내려온다.

「크아!」
「시로 군!」

자세가 나빠! 이 자세론 옆으로 구르는게 최대. 틀렸어, 이래선 늦어!

―― 촤악! ――

허나, 어떻겐가 늦지 않았다. 옆으로 굴러 1회전 한 순간, 손발을 모아 한 번에 뛰어 피한다.
한 숨 돌릴 틈도 없이 바로 눈앞에 떨어지는 실 끝. 그곳에는 한 다발의 은빛 머리카락이 감겨 있었다. 미이나 씨의 머리카락이다. 아까 소리를 지름과 동시에 날려보내 주었던 것이다. 이게 없었으면 늦었을 것이다.

「――투영개시(트레이스 온)」

허나, 감개에 젖어있을 틈은 없다. 나는 곧바로 발밑을 굳히고, 양손에 간장干将과 막야莫耶를 투영한다.

「린, 루비아젤릿타! 저것은!?」

그런 내 앞 한 걸음 앞, 똑같이 거미와 대치하는 세이버. 시선을 돌리지 않고 이 거미에 대한 정보를 청해온다.

「땅거미(아라크네Arachnē)…… 의 일종이라고 생각해. 실과 이빨만 주의하면 그리 성가신 상대는 아냐.」

「속성에 조금 혼란이 보이긴 하지만, 괜찮아요. 세이버의 적수는 되지 않아요.」

곧바로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의 대답이 돌아왔다. 순식간에 간드로 시간을 벌고, 지금은 본격적인 주문의 준비와 보석주머니를 꺼내들고 있었다.

「그럼 단숨에 해치우겠습니다.」

두 사람의 말을 확인하고 검자루를 움켜쥔 세이버는, 그야말로 눈이 따라가지 못할 속도로 간격을 좁히곤 그대로 거미를 둘로 쪼갰다.

―― 촤악 ――

「――에?」

분명히, 분명히 세이버의 검은 거미를 둘로 나누었을 터. 나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다.
허나, 마치 물을 자르는 듯이 손에 느낌이 없었다.

―― 파앙 ――

정말로 물을 자른 듯한 감촉이었을 것이다. 너무나도 손에 걸리는 게 없어 한 순간 밸런스를 잃고, 헛걸음을 짚고 만 세이버. 그 위에 거미가 마치 물풍선처럼 튀어 올랐다.

「――큭!」

「세이버!」

피할 수 없다. 세이버는 다음 순간 거미의 진흙에 휩싸여 버렸다.

「에? ――하윽!」

거의 동시에 보석을 준비하고 있던 토오사카가 세이버를 따라하듯이 무릎을 꿇는다. 어떻게 된 거지!?

「――풍왕결계(인비지블 에어)―― 전개!――」

그리고, 세이버를 감싸고 있던 진흙이 다시 튀어올랐다. 그 대로 내 옆까지 뛰어 물러난 세이버는, 토오사카와 똑같이 무릎을 꿇었다.

「―――― Ich heisse LEGION(나의 이름은 레기온). ……」

그럴 즈음, 튀어 흩어진 진흙은 다시 거미의 모습을 취하면서 다시 모이려 하고 있었다. 그걸 곧바로 눈치챈 미이나 씨의 머리카락이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으려는 듯이 가시처럼 덮쳤다.

「준비부족이에요. 모자라요!」

미이나 씨의 분한 듯한 목소리, 그래도 다소 없엔 모양인지, 모인 거미는 아까보다 한 둘레 정도 작아진 거미로 모습을 바꾸어, 그대로 경기용 풀로 뛰어들었다.

「세이버, 괜찮아?」

「……예, 마력이 다소 빠져나가 버렸습니다만…….」

나는 어깨를 헐떡이는 세이버에게 달려갔다. 꽤나 괴로웠던 것이리라. 이미 무장이 해제되어 있었다.

「배수구로군요. 그 앞으론 쫓아갈 수 없었어요.」

이미 뒤를 쫓고 있던 미이나 씨가 분하다는 듯이 돌아왔다. 나는 세이버에게 어깨를 빌려주고, 미이나 씨와 함께 쓰러진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과 합류했다.

「토오사카!」

「……아아, 시로. ……괜찮아, 조금 마력이 빠져나간 것 뿐이니까.」

주종끼리 아주 간단히 말해 주시는 구만, 나 참.

「루비아, 우선 세이버 쪽을 부탁해.」

「알겠어요. 세이버, 이쪽으로.」

토오사카의 말에 루비아 양은 입술을 가볍게 앙물고 끄덕인 다음 나의 어깨에서 세이버를 안아들었다.

「시로 군, 잠깐 저쪽을 향해주세요.」

아니, 나도 이걸 보는 건 처음이 아니…… 예이, 저쪽 볼게요. 본다구요.

「정말로 괜찮아, 토오사카?」

조금 얼굴이 붉지만 어찌 회복한 세이버를 포함해 우리들은 호흡을 가라앉히며 앉아있는 토오사카의 주위에 몰려들었다.

「응, 이제 괜찮아. 갑작스러워서 조금 몸이 놀란 것 뿐이야.」

「그래서, 린. 당신의 견해는?」

루비아 양의 질문에 토오사카는 한 번 끄덕이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마력을 빼앗겼을 때에 그 라인을 오히려 되타고 올라가 그쪽 안으로 침투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일종의 사역마인 것 같으나, 그쪽의 라인은 되짚을 수 없었다 한다. 조금 분한 것 같다.

「땅거미(아라크네)야. 단지 썩은 물로 억지로 수水 속성으로 변환되었어. 반은 미쳤다고 봐도 돼.」

땅거미(아라크네)라고 하는 마수는 그 이름대로, 토土 속성의 존재다. 베틀을 짜는 아가씨가 여신의 질투로 거미가 되었다고 하는 전승을 가진 존재로, 본래는 그 모습과는 반대로 그다지 흉폭한 존재는 아니다. 토지에 의해서는 모성의 신격마저 가지고 있을 정도다. 그런데…….

「세이버나 토오사카의 마력을 가져간건? 그런 이야긴 들은 적 없어.」

토오사카의 등을 살살 문지르며 물어보았다. 나 참, 이렇게 작은 몸으로 용케 그런 것까지 할 수 있다니.

「응, 시로는 성배의 진흙을 기억하지?」

「아아…… 그거였어!?」

「그대로는 아냐. 혹시 그거였다면 지금쯤 세이버가 녹아버렸을 거야. 하지만 원리는 똑같아. 에테르에 장기를 한껏 뒤섞어 물에 녹인 것 같은 거. 세이버의 신체 역시 에테르의 현현체잖아. 저항력이 낮아.」

하지만 이번처럼 허를 찔리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될거야, 하고 세이버에게 미소지었다.

「물론입니다. 이런 불찰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입니다.」

「오케이. 그럼 정리하자. 시로, 어딘가 이 부근에 지하로 통하는 출입구가 있을 거야. 그걸 찾아줘. 세이버는 마무리 역할. 우리들은 시술의 준비를 할게.」

자, 하고 정리를 제안하며 일어서는 토오사카. 미이나 씨와 루비아 양도 한 번 끄덕이고 보석이나 마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찾는 건 그렇다 치고, 마무리? 세이버의 검이면 그 녀석 또 진흙이 되는 거 아냐?」

그렇다고 해도 난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정체를 안 이상 쓰러트릴 수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꽤나 성가신 상대 아닌가?

「아아, 그거?」

여기서 토오사카는 한가득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 마음 속 깊이 악한 회심의 기회를 품은 미소다.

「시로, 진흙이라는 건 말야, 물을 빼면 단순한 흙덩이가 되는 거야.」

「발밑을 조심해.」

풀풀 기분 나쁜 냄새가 풍기는 물방울이 떨어지는 하수도를, 나는 선두에 서서 나아가고 있다.
그 후, 조사해 보니 풀의 기계실에 보통보다 큰 맨홀이 있었다. 그곳에서 하수도에 내려와, 호텔 뒤로 이어진 하수도관을 따라 거미의 거처를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지독한 냄새로군요.」

「이 옷은 이제 글렀어. 빤다고 어쩔 수 있는 냄새가 아냐.」

투덜투덜 불만 많은 두 사람에 비해 미이나 씨는 괜찮은 것 같다. 물어보니 익숙하니까요, 라고 한다. 도대체 뭐하는 곳입니까, 슈트라우스라는 건?

「시로우…….」

「아아, 여기다.」

내 구조해석도 필요없었다. 눈앞에 무너진 하수관 벽, 그 안쪽에서는 아래에 흐르고 있는 하수의 냄새조차 향기롭다 느껴질 정도의 악취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자, 이게 시로 군의 몫이에요.」

코를 쥐고 마지막 준비를 하고 있자니, 미이나 씨가 나에게 결계의 기점을 주각한 돌을 건네 주었다.
방법은 단순. 세이버가 거미를 상대하고 있을 때에 나와 미이나 씨가 거미 주위에 결계를 새긴 돌을 배치하고,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이 주문을 발동, 마지막에 세이버가 마무리를 짓는다.
이걸로 그 거미는 쓰러트릴 수 있을 것이다. 토오사카로서는 할 수만 있다면 그 녀석의 주인을 찾고 싶다고 말하지만, 그렇게까지 할 수 있을지는 운 나름이겠지.

「준비는 됐겠죠?」

작은 목소리로 토오사카가 속삭였다. 살짝 들여다 본 구멍 중앙 근처에 탁하고 붉은 광점이 몇 개, 더욱이 무언가 질척질척 핥는 듯한 소리가 낮고 음험하게 울리고 있다.

「그럼…… 갑니다!」

중앙에 세이버, 좌우에 나와 미이나 씨, 나란히 서서 단번에 돌입.
동시에 상대의 눈을 현혹시킬 광탄이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의 손에서 발해진다.

―― 샤아! ――

흙거미(아라크네)가 비명과도 같은 절규를 울리는 도중, 단번에 간격을 좁힌 세이버와 차례로 돌을 배치하는 미이나 씨. 나는 한 순간 멈춰서고 말았다.
마치 교회의 현관과도 같은 벌레구멍. 바닥은 온통 복사뼈까지 빠질 것 같은 썩은 물과 진흙, 그리고 양쪽 벽에 늘어서 있는 것은, 고치?
허나, 단순한 고치가 아니었다. 사람 정도 크기의 고치, 반투명해 그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것은…… 사람.
쇠약해져 유령처럼 된 여성들이, 뭔가를 바랄 수도 없이 꿈틀거리고, 괴로워하고, 소리가 나오지 않은 절규를 지르고 있었다.
혹시, 그 얼굴에 떠오른 것이 고통의 표정이었다면 나는 그렇게까지 충격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허나 그곳에 떠오른 것은 환희. 꿈틀거리면서도 그 여성들은 쾌락에 몸을 맡기고, 음란할 정도의 환희에 몸을 떨고 있었다.

「시로!」

토오사카의 목소리에 정신이 돌아왔다. 세이버는 거미의 본체에 닿지 않도록, 재빠르게 몸을 놀리며 검면으로 필사적으로 거미를 상대하고 있었다. 미이나 씨도 착실하게 돌을 놓고 있었다. 이런,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도 영창을 시작했어.

나는 되도록 벽에 시선을 주지 않도록 하며 돌을 배치하였다. 미안, 곧바로, 곧바로 구해줄게!

「――――Heisen Sonnenbrand(불꽃에 타올라라)――Hebt jetzt ein groses Jagen an(위대한 사냥이 시작되리라)」
「――――Transfoment l’eau.(물은 모습을 바꾸어)――Morte est la Seine(강은 죽음을 맞이하리라)――」

주문이 형성되었다. 우리들은 재빨리 진 바깥으로 나왔다. 차례차례 발광해 빛의 선을 엮는 진을 쌓는 돌들. 이어서 일어나는 일곱 개의 빛의 줄. 얽히고 묶여, 마치 뱀의 머리처럼 땅거미(아라크네)에게 얽혀간다.

―― 샤아! ――

땅거미(아라크네)가 몸부림친다. 몸을 꿰뚫고 얽히는 광선은 땅거미(아라크네)의 신체에 닿을 때마다 증기를 발하며 수분을 수증기로 변환한다. 땅거미(아라크네)는 점점 수분을 빼앗겨, 쭈그러진 피부에 균열이 생겨난다.

「수속분리水属分離(hydrogen destroyer)」

존재의 구성원소에서 수분을 강제로 끌어내는 주문. 본래 이런 주술로 마력의 덩어리인 마수를 처리할 수는 없다. 기껏해야…… 그래, 저녁식사 때의 미이나 씨처럼 수분을 날려, 알코올 농도를 높이는 정도가 전부다.
허나 이 땅거미(아라크네)는 다르다. 원래는 토 속성의 존재를 억지로 일그러트려 수 속성으로 바꾸었기 때문에, 부자연스러운 연결을 촉매로 한 구성물질도, 아까 전에 미이나 씨가 손에 넣었다. 제대로 준비만 해두면 그 불안정한 결함을 부술 수 있는 것이다.

―― 치익 ――

술식이 완성되었다. 결계내의 수분은 전부 공기로 환원되고, 증기가 되어 비산한다. 남은 것은 강아지 크기의 말라붙은 거미와, 똑같이 말라붙은 썩은 진흙.

―― 꺄앙! ――

마무리를 지으려 세이버가 검을 치켜든 순간, 바싹 마른 거미가 울었다. ‘짐승의 울음’이 아니라 ‘슬픔의 울음’이었다.

「……!」

땅을 덮고 있는 것은 썩은 진흙이 아니었다. 마른 진흙에서 나타난 것은 깨지고, 짓눌리고, 찌부러진 무수한 알들. 세상에 나왔으면서 부화하지 못한, 땅에 짓눌린 거미의 아이들.
그 아이들을 부둥켜안고, 바싹 마른 거미가 마른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었다. 잠깐 기다려, 이래선…….
난 재빠르게 양쪽 벽의 고치에 시선을 던졌다. 고치의 틈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이 파도처럼 어둠 속으로 가라앉아간다. 곧바로 표정이 사라져가는 여성들. 나는 다시 한 번 거미에게 눈을 향했다. 아아, 이 녀석도…….

「세이버!」

「……예.」

토오사카의 목소리에 치켜 올라가, 한 순간 멈추었던 검이 내리쳐진다. 거미는 갈라지고, 그 아이들과 함께 흙으로 되돌아간다.

「토오사카!」

알아. 알고 있어. 하지만 이건 너무나 슬프잖아.

「시로, 불만은 나중에. 지금은 살아있는 인간을 생각해. 아직 살릴 수 있을 지도 모르니까.」

험악한 표정의 토오사카가, 벽 쪽의 고치에 예리한 시선을 던졌다.

「……어떻겐가 될지 몰라요. 꽤나 쇠약해져 있지만 숨은 붙어있으니까요.」

재빨리 고치를 베어버린 미이나 씨가, 안에 있는 여성의 맥을 짚으며 우리들에게 말했다.

「신부님에게 연락을 취하지요. 우리들만으로 옮기는 건 무리에요.」

「아아…….」

나는 흙덩이로 돌아간 거미의 부모자식을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토오사카는 이 녀석이 누군가의 사역마라고 말했다. 설령 사역마라고 해도, 억지로 일그러트리고, 기만하고, 이용하고, 버리는 것은, 그것은 절대로 용납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딘가에서 이곳에 있는 모든 것을 조소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그게 누군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허나 나는 결심했다.

「난 네 놈을 절대 용서하지 않겠어…….」

——————————————————

벌레가 꿈틀거리고 있다.
어둡고, 혼탁하고, 문드러진 방에서, 마치 민달팽이 같은, 거머리 같은 벌레가 꿈틀거리고 있다.

다만, 벌레가 아니다. 이것은 마물. 사람의 정을, 피를, 골수를 먹는 벌레.
‘음충淫蟲’. 그것이 이 거머리의 이름이다.

한 번 이것들에게 걸려들었다간 남자는 골수와 뇌를 먹힐 것이다. 여자는 형태를 바꾸어 신경과 동화해, 구석구석에 촉수를 뻗쳐, 그 정을 탐욕스레 먹어치우리라.

음충은 여성의 육체는 먹지 않는다. 단지, 뚝뚝 흐르는 점액으로 여성의 피부를 범하고, 정신을 농락하고, 고기에는 없는 쾌락을, 절정을 먹는다.
더욱이 음충은 어떤 이유에선지 여성의 신체에서 단 한 곳, 좋아하는 기관이 있다.
자궁, 아기를 기르는 주머니. 그곳만은, 자궁만은 먹으려 한다.

피부를 범하고, 이성을 쾌락으로 오염시키며, 음충은 여성의 자궁에 스며들어, 그곳만을 먹는다. 여성의 육체를 먹지 않는 음충의 행동은 단 하나.
여성의 마음과 몸, 그 모두를 범하고, 먹어 부순다. 그리하여 이 벌레는 음충이라 불리는 것이다.

「……흠…….」

그 벌레들의 한 가운데. 모여들에 탐욕스레 꿈틀거리는 음충의 무리 중앙에서 치적치적한 소리를 내며 꿈틀거리는 고깃덩어리가 입가를 일그러트렸다.

「그 녀석의 술책은 도저히 구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어리석다고는 생각하고 있었다만…….」

부패의 덩어리가 벌레들에게 먹히면서도 더욱 형태를 만들며 몸부림친다.

「생각 외로 재미있는 소재가 있군. 흠, 과연, 이거라면 시간을 보낼 여흥으로 어울리겠어.」

영맥을 하나 버리는 것은 아깝지만, 하고 썩은 내가 풍기는 웃음소리를 울리며, 고깃덩어리는 즐겁다는 듯이 몸을 떤다. 그 웃음에 현혹된 듯이 벌레가 더욱 모인다. 차칵차칵 소리를 내며, 마치 꿀에 모이는 벌처럼 고깃덩이에 모여, 먹는다. 이 고깃덩이가 어떠한 존재이며, 이만큼의 음충에게 먹혀서는, 그리 길게…….

아니, 무언가가 달랐다.

벌레가 모일 때마다 고깃덩이는 힘에 충만해진다. 먹히고 있는 것이 아니다. 먹고 있는 것이다.
물어뜯기고 잠겨가면서도 고깃덩이는 벌레를 먹고, 소화해, 고깃덩이로 바꾸어 간다.
결국 방안의 벌레가 모두 먹혀,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이 썩은 고깃덩이 하나 뿐이 되었다.

「이런이런, 불초이리. 조금 모자라지 않는가. 뭐 됐어. 잘만 굴리면 다음까지는 버틸 수 있으니까.」

잘 가지 않더라고, 버틸 기술도 있다. 그것까지는 조금 준비가 필요한가, 이것 참. 다 늙어서 고생이로군.
썩은 고기가 조소한다.
썩으면서, 부풀면서, 먹히면서, 먹으면서. 썩은 고기는, 큭큭, 하며 마치 사람처럼 비웃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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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무식하게 길군요 젠장 OTL
간만에 시로 군 열혈 모드입니다. 이런 면도 있어야 주인공이죠. 맨날 여주인공들에게 짜부러져 살아선 […]

중간에 다 좋은데 프랑스어와 독일어로 주문 잘 말해놓고 왜 마무리는 영어인지 궁금하게 만드는 주문입니다;
Hydrogen destroyer라고 하면 ‘수소 제거’…. ‘수분’과 ‘수소’는 다르지만 여기선 언급하지 않는 센스.

Attempt easy tasks as if they were difficult, and difficult as if they were easy; in the one case that confidence may not fall asleep, in the other that it may not be dismayed. Dressing up is inevitably a substitute for good ideas. It is no coincidence that technically inept business types are known as "suits." To find yourself jilted is a blow to your pride. Do your best to forget it and if you don't succeed, at least pretend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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