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나라로 여행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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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한없이 펼쳐진 맑고 푸른 하늘.
그리고 또 끝없이, 끝도 없이 펼쳐진 한 점 흐림 없이 맑은 비취색 바다.
내려쬐는 태양은 푸른 세계를 따갑게 또는 부드럽게, 밝게 느긋하게 비춰주고 있다.

하얀 모래사장은 그 파란 빛에 절묘하게 어울려 눈부실 정도로 빛나서 그림자까지도 밝게 비춘다.
프라이빗 비치라서 그런지 사람도 적지만, 여름을 연단한 것 같은 이 해변은 누가 뭐래도 리조트 기분을 가득 느끼게 해 준다.

[날씨 죽이네…….]

그런 모래사장에 길게 누워, 런던의 회색 하늘과는 정반대인 푸른 하늘을 멍하게 바라보면서 혼잣말.
여기는 에게 해. 미코노스 섬.
우리는 지금, 북쪽의 브리튼에서 멀리 떨어진 남쪽 지중해의 절경에서 한여름의 태양을 즐기고 있다.

정의의 아군
[최강의 마술사용자] ―Emiya Family― 제 5 화 전편
Heroic Phantasm

[이렇게 푸른 하늘은 처음 봐.]

나는 모래사장에서 몸을 일으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한 번 더 하늘을 올려다본다.
런던은 이렇게 푸른 하늘은 커녕, 맑게 갠 하늘도 잘 보기 힘들다. 일본에 있던 때는 가끔씩 푸른 여름 하늘을 올려다 본 기억은 있지만, 역시 이 정도로 맑고 푸른 하늘은 본 적이 없었다.

――Cow

그런 푸른 하늘을, 바닷새와 어울려 높이 나는 랜스. 까마귀인 주제에 한없이 높고 푸른 하늘과 꽤나 어울린다.
파란색과 비취색, 흰색과 검은색. 눈부신 원색의 세계. 그야말로 세계가 날아오를 것 같다.

[시로우는 수영하지 않을 겁니까?]

거기에 하나 더, 순백의 세계가 솟아오른다.
흰색의 수영복으로 몸을 싸고 비너스도 무색할 것 같이 바다에서 올라오는 세이버. 젖은 머리카락에서 바다의 조각을 방울방울 떨어뜨리며 나를 향해 춤추듯 걸어온다.

[아, 응…….]

순간 넋을 잃고 봐 버렸다. 세이버 자신은 비너스라고 하기 보다는 아테나인 듯, 백자 같은 피부가 아깝지도 않은 듯이 따가운 태양빛을 받으며 작은 머리를 갸웃 하는 그 모습은, 건강미가 넘치면서도 묘하게 요염하다고 할까……. 아니, 어쨌든 눈을 둘 곳을 모르겠다.

[시로우, 저기, 역시……. 이상한가요?]

내가 그렇게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보고 세이버는 조금 착각한 것 같다. 살짝 뺨을 붉히며 사랑스러운 가슴을 감싸듯이 하며 부끄러워하고 있다. 그것이 또 사랑스럽다고 할까, 아니, 저기……. 더더욱 눈 둘 곳을 모르겠다.

[아, 세, 세이버. 여기, 타월.]

[고, 고맙습니다. 시로우.]

어쨌든 어색함을 없애려고 나는 타월을 꺼내 세이버에게 내밀었다. 세이버는 그것을 머리부터 덮어 쓰고, 내 옆에 앉아서 몸을 감싸듯이 움츠린다. 그대로 흘낏흘낏 나를 바라보는 것으로 어떻게 분위기를 수습하려던 내 노력을 무산시켜 버린다.

[역시, 이 색은 나에겐 어울리지 않습니다.]

세이버는 그대로 쓸쓸한 듯 가슴에 달린 리본을 손가락으로 쿡쿡 찌른다. 이거 꽤나 반칙이다. 그렇다곤 해도 오해는 풀어야 한다.

[아니, 그건 절대로 아니야. 세이버는 핑크라도 어울릴 거야.]

세이버의 수영복은 흰색 원피스로, 가슴과 허리에 핑크색 리본이 달려 있는 것이다. 라인 자체는 심플하지만 그 별 거 아닌 악센트가 아직도 소녀티가 채 없어지지 않은 세이버에게는 너무 잘 어울렸다.

[리, 린도 그렇게 말해 주긴 했습니다만.]

덧붙이자면 이 수영복을 고른 사람은 토오사카다. ‘언제까지나 같은 색이라면 질리겠지’ 하고 귀여운 색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나이스, 토오사카.

[토오사카 말이 맞아. 언제나 같은 색이면 질리겠지? 그리고.]

내가 ‘봐’ 하며 하늘과 바다로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 끌려 세이버도 그 쪽을 바라보며 눈부신 듯이 눈을 깜박거린다.

[이곳에 푸른색은 하늘이랑 바다가 전부 가져가 버렸으니까. 그 색은 저 애들한테 맡기고 가끔은 다른 색을 입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구. 좋잖아, 핑크. 잘 어울린다구, 세이버.]

응, 세이버, 굉장히 예쁘니까. 안 어울리는 색 같은 거 없어. 나는 안심시키듯이 세이버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자…….

[…….]

왠지 세이버는 놀란 것처럼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며 새빨갛게 되어서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어쩐지 괜히 부끄럽네.
잠시 동안 멍하게 서로를 바라보던 우리. 그러다 세이버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시로우……. 알고 있었다는 건가요?]

아주 조금 슬픈 듯한 표정에, 엄청 요염한, 마치 훨씬 연상의 여인 같은 목소리다. 그렇게 말해도…….

[뭘?]

전혀 모르겠다. 세이버는 내 대답을 듣자마자 추욱 어깨를 떨구고는, 다시 타월에 얼굴을 푹 묻는다. ‘아니, 모르니까 아직 괜찮은 거겠죠’ 라든지, ‘역시, 시로우가 랜스를 부를 수 있었던 것도 당연하죠’ 라든지 하며, 어쩐지 투덜투덜 거리고 있다. 잘 모르겠다는 건 변함없지만, 굉장히 심한 소리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뭐야, 내가 뭔가 이상한 소리라도 한 건가?]

[시로우가 깨닫지 못했다면 그걸로 됐습니다. 만약 의도하고 한 말이었다면 그거야 말로 범죄입니다.]

[뭐야, 그게.]

[삐지지 말아요. 칭찬하고 있는 겁니다.]

내가 잔뜩 불만스런 표정으로 묻자, 세이버는 마치 다 이해한다는 듯이 생긋 웃어준다. 왠지 찝찝하네.
그러면서 내가 궁시렁거리자, 세이버는 ‘그러니까 시로우는 이대로가 좋습니다’ 라고 대답하며 계속 웃는다. 드디어 결국엔 희한하게도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도대체 뭐지.

[토오사카랑 루비아 씨도 여기 왔으면 좋았을 텐데.]

뭐, 덕분에 조금 전까지 있던 왠지 부끄러워하던 분위기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나도 세이버도 평소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어깨를 맞대고 느긋하게 바닷바람을 즐기게 되었다.

[산토리니 섬이었나요? 린과 루비아젤릿타가 간 곳이.]

[응. 어제 해저 화산이 어쨌다던가 하던데.]

산토리니 섬. 에게 해에 위치한 화산섬이지만, 그곳은 하루아침에 바다로 가라앉았다고 전해지는 초고대 문명 아틀란티스의 잔영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즉, 가라앉고 남은 곳이 바로 이 섬이라는 것이다. 지금도 활화산이 있는 이 섬에서 어제 또 분화가 일어나, 해저 융기가 있었다던가 뭐라던가.
그래서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은 아틀란티스 탐험이라며 오늘 아침부터 크루저로 거길 간 것이다.
아틀란티스인지 뭔지는 제쳐 두더라도 그 섬의 해저에는 어떤 고대 유적이 있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아무튼 오래된 역사가 있는 유물에는 거의 틀림없이 뭔가 마술적인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즉, 보물찾기라는 거지.]

[그것 참……. 정말로 린 답습니다.]

에게 해에 바캉스 와서까지도 결국 하는 건 연구 같은 것 뿐이다. 그 두 사람은 정말로 뼛속까지 마술사다.

[모처럼 이렇게 멋진 곳에 왔으니까 좀 더 날개를 펴면 좋을 텐데.]

푸른 하늘에 떠 있는 랜스에게 눈을 돌리며, 세이버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린다. 이런 모습에 살짝 미소를 지어 버렸다. 진지함 일색으로 잔뜩 굳어 있었던 세이버가, 좀 더 즐기라는 말을 하게 되다니.

[시로우, 어째서 웃고 있는 겁니까?]

[아니, 별 거 아냐. 그냥 즐겁다고 생각해서.]

‘남의 얼굴을 보고 웃지 말아요’ 하고 므――하고 볼을 부풀리는 세이버를 바라보며 나는 더더욱 활짝 웃었다. 틀림없이 이건 좋은 현상이겠지.

――Cooow

그렇게 나와 세이버가 사이좋게 일광욕을 하고 있는데, 기분 좋은 듯이 하늘을 날던 랜스가 춤추듯이 내려 왔다.

[왜 그래? 배고프냐?]

――아니, 그건 조금 전에 저쪽의 귀부인께 대접을 받았다.

휙 하고 부리로 가리키는 곳에는, 아아, 해변에 길게 누워 있는 아름다운 미인이 손을 흔들고 있다. ……. 너 말야, 어지간히 껄떡대고 다녀라. 보라구, 세이버가 노려보고 있어.

[랜스, 당신이 자꾸 그러니까 시로우가 이렇게까지 된 겁니다.]

잠깐 기다려, 세이버! 그 ‘그러니까’와 ‘이렇게까지’는 도대체 뭐야?!

――아니, 마스터와 왕이여. 사이가 좋은 것은 좋지만 우선 그건 제쳐 두고.

랜스, 나는 그렇게 자신의 일을 가볍게 제쳐 둘 수 있는 네 성격이 엄청 부럽다.

――앞바다에 마녀들이 탄 배가, 오오, 이러고 있는 동안에 벌써 보이기 시작했다.

함께 랜스를 노려보던 나와 세이버는, 그 말을 듣고 바다로 눈을 돌렸다. 아, 정말이다. 저 희고 미끈한 선체, 마스트에 표시된 배 표시.

[정말 그렇군요. 저것은 틀림없이 던 스탈리온호 입니다.]

루비아 양의 간청으로 세이버의 애마의 이름을 받은 크루저는, 이것 또 세이버의 문장이기도 한 붉은 용이 수놓인 깃발을 높이 펄럭이며 해변으로 다가온다.

[어떻게 된 걸까요?]

[오늘 하루는 계속 산토리니에 있을 예정이었을 텐데?]

뭐지, 하고 얼굴을 마주 보는 나와 세이버. 우선 원시로 바라보자, 앞쪽 갑판에 금강신처럼 우뚝 서서 이쪽을 노려보는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의 모습이 보인다. 그렇다곤 해도 수영복 위에 재킷을 걸친 모습. 머리카락도 약간 젖어 있다.
뭐야, 조사라고 하곤 제대로 즐기고 있잖아. 그리고 뭐랄까. 수영복 위에 재킷을 걸치고 있는 모습을 이렇게 보고 있자면, 미묘하게 언밸런스하다고 할까……. 죽 뻗어 나온 다리가 눈부시다고 할까……. 어쨌든 매력적이다.

[시로우, 뭘 보고 있는 겁니까?]

[우왓! 아니, 아무 것도 아냐.]

어느 새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세이버가, 도끼눈으로 수상한 듯이 노려본다. 그러네, 세이버도 매력적이다.

――마스터. 귀부인을 감상하고 있는 것을 방해하긴 미안하지만.

참 나, 랜스 너 까지. 별로 그런 게 아니라니까.

――마중이 온 것 같은데?

이거 또 어느 새 선미에서 보트가 내려져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몰랐다…….]

[나는 아까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시로우, 당신 도대체 어딜 보고 있었던 겁니까?]

다시 또 찌릿 하고 노려본다. 어디라니, 봐 뱃머리에 예쁜……미안, 내가 잘못했어.
뭔가 미묘하게 갈굼 당하는 동안에, 보트는 그대로 해변에 닿고, 평상시와 전혀 다르지 않은, 빈틈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옷차림을 한 슈프란 씨가 내려섰다.

[에미야 님. 세이버 님. 휴가 중 매우 실례입니다만.]

거기다 평상시와 전혀 다름없는 말투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이 더운 날씨에 땀 한 방울 흐르지 않는다. 역시 집사. 존경할 만하다.

[아가씨와 토오사카 님께서, 급한 용건이 있다고 하십니다. 자세한 것은 배에서 말씀하신다고 하니, 배까지 안내해 드리려고 합니다. 함께 가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하고는 그대로 인사를 하며 대답을 기다린다. 나는 다시 세이버와 얼굴을 마주 보았다.

[무슨 일일까요?]

[아틀란티스라도 발견했나? 아무튼 가 보자. 이야기는 배에서 한다니까.]

[네.]

나와 세이버는 그 자리에서 짐을 정리하고 수영복 위에 재킷을 걸친 모습으로 슈프란 씨와 함께 보트를 타고 크루저로 향했다. 어쩐지 결국 네 명 똑같은 차림이 되어 버렸네.

[무슨 일이야? 아틀란티스라도 발견한 거야?]

농담을 던지며 크루저로 건너가서 두 사람과 마주 섰다.

[…….]

[…….]

조금 전 갑판을 본 대로, 팔짱을 낀 채 금강신처럼 우뚝 서 있는 두 사람. 왠지 묘하게 기분 나쁜 것 같다. 화내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지만. 왜 그러지?

[린, 루비아젤릿타. 무슨 일입니까?]

‘괜찮습니다’ 하면서도 내 손을 잡고 크루저로 건너온 세이버도, ‘어라’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다.

[벼, 별 거 아니야.]

[그, 그렇습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나와 세이버가 정말로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자, 두 사람 함께 갑자기 부끄러운 듯 뺨을 붉히며 눈을 돌렸다. 정말 뭐지?

――마스터. 그대는 정말로 아가씨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군.

웃음소리가 들려올 듯이 날갯짓 소리를 내며 랜스도 마스트로 춤추듯 내려앉았다. 뭐야, 그게.

――뭐, 조금 전까지 마스터와 왕은 그야말로 친밀해 보이는 모습이었지.

그런 나를 향해 랜스는 진심으로 즐거운 듯이 운다.

[세이버와 나? 별로 그런 거 아닌데.]

정말,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야.

[……. 둔탱.]

[……. 시로우니까요.]

[……. 왠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고 내 불평에, 세이버까지 포함해 아름다운 용모의 세 미인이 함께 크게 한숨을 쉰다. 도대체 뭐냐니까.

[뭐, 아무튼. 자세한 이야기를 할 테니까 캐빈으로 와.]

[네, 가능한 한 빨리 델로스로 갈 거예요.]

델로스? 델로스 섬인가? 확실히 이 미코노스 섬의 근처에 있는 섬으로 아폴론 신전인가 뭔가 하는 유적이 있는 무인도였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난파선?]

[응. 델로스 앞바다에서 발견됐다는 것 같아.]

[네. 산토리니 근처에는 눈에 띄는 게 없었지만요.]

의기양양해서 즐겁게 산토리니로 아틀란티스를 도굴하러 갔던 두 사람이지만, 결국 거기선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헛수고였으니까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해변에서 삐져서 자 버리려고 하는데, 델로스 섬에서 난파선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받았다는 것이다.

[맹점이었어. 산토리니 근처 뿐만이 아니라 에게 해 전체가 보물산 같은 곳이었는데.]

[뒤집어엎으면 어딘가에서 뭔가는 나온다는 것이죠.]

결국 이 난파선도 어제 화산의 영향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무래도 묻혀 있던 것이 해저 융기로 드러나서 조사가 가능한 곳까지 밀려 나온 것 같다.

[그렇지만, 여기서 난파선이란 거 별로 신기한 것도 아니잖아?]

에게 해는 비교적 조용한 바다다. 그런데도 기원 전 시대부터 끊임없이 배가 왕래해 온 바다. 특히 고대의 배는 현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약하니, 이 바다에 가라앉은 배가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다.
실제로 대영박물관 등에서 소장하고 있는 자기나 문물도, 발굴품과 함께 이러한 난파선에서 회수한 것이 상당수이다.

[뭐, 확실히 2천년 정도 전의 것은 흔하지만.]

[이 난파선은 3천년 이상 전, 추측으로는 기원 전 13세기라고 하네요.]

내 의문에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이 정말 즐거운 듯이 대답해 주었다. 이 녀석은 특별, 보물의 산이야, 하는 표정이다. 그렇다곤 해도, 확실히 기원 전 13세기라면 굉장하다. 그야말로 신화의 시대잖아.

[일리아드의 시대군요.]

그 때까지 아무 말 없이 듣고 있던 세이버가,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세이버, 알고 있었어?]

어쩐지 의외다. 세이버는 영국의 왕이었으니까 그리스와는 인연이 없지 않나?

[시로우. 그리스-로마의 고전은 당시의 기초 교양이었습니다.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브리튼도 일단은 로마 문명의 끝자락에 있기는 합니다.]

그야말로 왕의 의무라며 메이거스(마술사)에게 주입받은 세이버 씨.

[무엇보다, 호메로스(일리아드, 오디세이아)와 플루타르코스(영웅전)는 공부와는 다른 의미로 흥미진진한 것이었죠.]

‘피가 끓어오르고 살이 튀는 영웅들의 활약은, 오래 전부터 동경했던 것이니까요’ 하며 미소 짓는다. 아니, 어울리긴 하지만, 여자 아이가 읽을거리로는 좀 그렇지 않냐?

[아, 세이버는 오디세이아는 별로 안 좋아하지?]

흥을 탔는지 ‘나는 그게 재미있었지만’ 이라는 토오사카 씨.

[확실히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렇지만 나는 왕. 모사의 필요성을 외면할 만큼 도량이 좁지는 않습니다.]

허리에 손을 대고 ‘얕잡아 보지 말아 줬으면 좋겠군요’ 라는 세이버 씨. 그렇지만 수영복에 재킷을 입은 예쁜 여자 아이가 그렇게 폼을 잡아도 박력 없다구. 오히려 너무 귀엽다.

[단지, 왕명이라고는 해도 아군에게까지 책략을 부리는 그런 모습에는 별로 공감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그런 식으로 가릴 것 없는 왕명은 내리지 않습니다’ 하고 분개하는 세이버. 그러고 보니 아가멤논은 꽤나 제멋대로인 왕이었지.

[그리스 쪽일지 트로이 쪽일지는 모르겠지만, 트로이 전쟁과 관련된 배일 가능성이 높아요.]

‘역시 세이버는 금삐까 임금님과는 궁합이 안 좋구나’ 하고 중얼거리며 토오사카가 옆길로 새고 있는 것을, 루비아 양이 다시 끌고 온다. ‘금삐까라니 그게 뭐예요’ 하며 조금 기분 상한 것 같다. 아니, 루비아 씨 이야기가 아니야.

[델로스 앞바다라면, 아폴론 신전에서 도망치려고 한 트로이 쪽, 아니면 개선하는 길에 아폴론의 노여움을 산 그리스 쪽, 양쪽 모두 가능성은 있어요.]

[아무튼 서두르자. 시계탑에서 델로스 박물관 사람들도 그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연락이 왔었으니까.]

어쨌든 델로스 섬은 유명한 아폴론 신전이 있었던 만큼, 에게 해의 영맥의 중심지라고 한다. 그곳에 있는 박물관도 마술 협회와 관련된 시설이라고 한다.
뭐, 시계탑과 관련이 있는 이상, 찾아낸 것을 우리가 먹어 버릴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조사와 해석의 최우선권이 주어지는 것 같다. 어떤 물건이냐에 따라서는 사용 권리까지 주어진다고 하니, 이건 꽤나 큰 권리라 할 수 있다.

[그 박물관 관장은 확실히 “관리자”이기도 했었지?]

즉, 후유키처럼, 그 관장이라는 사람은 이 섬의 영주인가 보다. 나는 눈앞에서 씩씩하게 가슴을 펴는 아름다운 미인이며 방약무인인 두 마술사를 바라보며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너희들, 싸우지 말라고.

[칫, 늦었나.]

[정말, 레이디 퍼스트라는 말을 모르는 걸까요?]

어쩐지 금방이라도 싸울 것 같은 기세다.

[어쩔 수 없잖아. 거리가 다르니까.]

이미 그 장소에는 다른 배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저곳에 부이가 떠 있고, 다이버인가? 부이나 배 주위에 몇 사람의 머리가 보인다. 배 자체도 꽤나 제대로 된 조사선 같다.
당연하다고 하면 당연한가. 눈앞의 델로스 섬에서 오는 것과, 백 킬로미터 가까이 떨어진 산토리니 섬에서 오는 것이 승부가 안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 말을 하자, ‘너는 누구 편인거야’ 하며 두 사람이 나란히 므――하고 볼을 부풀린다.

[린이 잘못했어요. 수영하자는 말이나 하니까 그렇잖아요.]

[무슨 소리야. ‘에게 해까지 와서 일광욕을 하지 않는다니, 즐길 줄 모르는 군요’ 하고 옷 아래 수영복 미리 입고 있었던 건 루비아잖아!]

[완전히 똑같이 하고 있던 린에게는 그런 말 듣고 싶지 않군요.]

결국엔 같은 편끼리 싸움을 시작한다. 에휴.

그런 중에도 우리가 탄 크루저는 조사선으로 다가간다. 미리 통신을 넣지 않아도 되는 건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역시 소리가 닿을 거리가 되자, 저쪽 배에서 스피커가 울렸다.

[여기는 델로스 섬의 학술 조사선. 현재 해저 유물 조사 중이므로 관광객은 출입을 자제해 주시길 바랍니다.]

뭐, 확실히 산뜻한 크루저에 수영복을 입은 여자 아이가 타고 있으니 재미있는 듯이 보고 있다. 아마도 어딘가의 부자의 별난 취미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관광객이 아닙니다. 시계탑(대영박물관)에서 연락을 받고 온 학술 회원입니다.]

[동업자예요. 루비아젤릿타 에델펠트, 린 토오사카 두 사람입니다. 조사 협력을 위해 파견되었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조금 전의 싸움은 어디로 갔는지, 두 사람 모두 훌륭할 정도로 돌변해서 멋지게 내숭을 떤다. 환하게 빛나는 미소를 띠며 부드럽고 나긋나긋하게 응답하고 있다. 역시 대단하다. 보통 내숭이 아니다.

[이, 이거 어서 오십시오. 지금 관장님은 아래로 내려가 있습니다만. 잠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순간 침묵, 미묘한 분위기가 흐른 뒤, 저쪽도 당황해서 다시 말을 이었다.
어쩐지 “이거”라든지 “바로 그”라든지 하는 수상한 지시어가 들린 것 같기도 하지만, 틀림없이 기분 탓은 아닐 것이다. 왠지 안절부절 못하고 있고.

[아니오. 올라 올 때까지 그쪽에서 이야기를 들으며 기다리지요.]

[현상을 파악해두어야 하니 자료를 대충 훑어보게 해 주시겠습니까? 아무쪼록 부탁드립니다, 여러분.]

녹일 것 같은 미소를 지은 채로 표현만은 정중하지만, ‘기다릴 수 있겠냐, 뿌리까지 벗겨 먹어 주겠다’라는 기세다.

[그렇다면 저희들이 보트를…….]

[아니오. 이대로 그쪽으로 갖다 대겠습니다.]

이제 완전히 두 사람의 페이스이다.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몰아붙인다.

[세이버, 바로 옆에 붙여. 옮겨 탈 테니까.]

[알겠습니다.]

루비아 양에게 저쪽 상대를 맡기고 토오사카가 세이버에게 살짝 지시한다.
키를 잡은 세이버는 그대로 부드럽게 배를 조종하여 크루저를 조사선 바로 옆에 갖다 대었다. 대단하네, 이 배 꽤나 큰데 말야.

[잘 오셨습니다. 에게 해는 잔뜩 즐기셨습니까?]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인사는 나중에 하죠.]

[우선 난파선 상황을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영업용 미소를 띤 채 빈틈없이 찌를 곳은 찔러 대는 두 사람.
보통 이런 장면은 강압적인 분위기가 흐를 텐데, 최고 레벨의 미녀 두 분이 그야말로 배경에 꽃이라도 피어날 듯한 미소를 띠며 말씀하신다. 저쪽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그만 두 사람의 수법에 넘어가 버리고 만다. 미인은 이득이네.

[그럼 이쪽으로. 해저의 영상입니다.]

우리는 그대로 마중 나온 사람에게 안내를 받아 갑판에 설치된 관측 기기 같은 것이 있는 곳으로 갔다.
아무래도 단순한 기계가 아닌 것 같다. 반원형 돔 같은 수정구가 설치되어 있고 거기에 해저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다.

[어머? 두 척 있네요?]

[한 척은……. 조금 깊군요.]

빨려 들어갈 듯이 들여다보는 두 사람. 확실히 두 사람의 어깨 너머로 들여다보니 얕은 곳에 한 척, 조금 떨어진 곳에 또 한 척. 가늘고 긴 갤리선 같은 배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다.

[가까운 쪽에 있는 배 옆구리에 구멍이 뚫려 있네요? 충각에 당한 건가요?]

그 영상을 바라보고 있으니, 내 뒤에서 들여다보던 세이버가 중얼거렸다.

[잘 알고 계시는군요.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아마, 이 두 척이 서로 싸우다가 얽힌 채로 침몰했겠지요. 저쪽 배에도 그런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미인 세 명에게 둘러싸인 안내역은 묘하게 즐거운 듯이 설명해 준다. ‘뭘요, 감사합니다’ 하고 고개를 숙이는 세이버에게 ‘천만에요’ 하며 미소를 지어 준다. 역시 미인은 이득이구나.

[그래서 어느 쪽 배인지 확인했습니까?]

[선체 샘플을 채취했습니다. 기원 전 13세기 무렵의 이타카 섬의 삼나무입니다.]

마치 아끼는 장난감을 보여주는 것 같은 미소를 띠며 뭔가 의미심장한 듯이 작게 속삭이는 안내인.

[이타카라고요?]

[그렇다는 건…….]

그 속삭임에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은 연기가 아니라 정말로 눈을 크게 뜨고 서로 마주본다.

[그렇습니다. 오디세우스의 선단. 그 중의 한 척이라고 보는 것이 타탕하겠지요. 이건 대발견입니다.]

여기에는 두 사람도 할 말을 잃었다. 세이버도 와아~ 하며 감탄만 하고 있다.
아무리 나라도 오디세우스는 알고 있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이며 고대 그리스 최대의 책략가. 바로 그 목마 작전을 발안한 사람이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전리품을 산처럼 실은 선단을 이끌고 귀국하던 중, 무슨 신의 기분을 해쳤다던가 해서 지중해 각처를 떠돌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귀향할 때까지 20년. 그 때까지 12척의 선단은 전멸하고 돌아간 것은 오디세우스 한 명 뿐이었다고 한다.
여기 가라앉아 있는 것이 그 중 한 척이라면, 확실히 이건 대발견이다.

[그래서? 실려 있던 것은?]

[트로이의 전리품이라면, 단순한 보물 밖에 없으리라곤 생각할 수 없는데요? 뭔가 발견 된 것 없습니까?]

하아~ 하고 감탄한 것 같은 한숨을 쉬고 나자, 태도를 바꿔 눈을 빛내며 잡아먹을 듯이 달려든다. 타산적이구만.

[아아, 일리아드의 이야기를 눈앞에서 볼 수 있으리라고는…….]

우와아, 세이버까지 눈동자에 별을 반짝거리고 있다. 그렇게 대단한 건가. 나로선 그리 실감이 나질 않는다.

[아니, 그게,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물이나 식료품을 담는 항아리나 그릇은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도굴 당한 것은 아닌 것 같지만…….]

[과연. 그래서 관장이 스스로 들어간 거구나.]

[뭔가 가치가 아주 높은 것 하나를 싣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군요.]

만약 오디세우스의 배라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갑자기 기대가 높아지는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 그런데 이 때 갑자기 선내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아, 아무래도 관장님이 올라오시는 것 같습니다.]

미인 세 명에게 추궁 당하며 전방 고지에서 버티고 있던 안내인이 그 자세 그대로 들고 있는 통신기에서 전해 오는 말을 중계해 주었다.

[그래서? 뭔가 발견 되었어요?]

[뭐가 있었습니까? 트로이의 유물 같은 어중간한 게 아닐 텐데요.]

소리가 날 듯한 기세로 안내인에게 다가서는 두 사람. 어이, 내숭은 어디로 간 거야, 내숭은.

[그게. “지금부터 올라간다. 성과는 기대하라”고…….]

[애타게 하네…….]

[별로 좋은 취미는 아니군요.]

쓰고 있던 가면도 완전히 벗어던지고, 므――하고 토라지며 안내인에게 더더욱 다가서는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 어이어이, 너희들 요즘, 내숭 장벽이 너무 낮아져 있어.

[저희도 모른다니까요. 봐요! 올라왔어요!]

배 측면까지 아슬아슬하게 밀려서 당장 바다에 떨어질 듯하던 안내인이 갑자기 수면의 한 곳을 가리킨다.

[우와아…….]

거기에는 서서히 사람이 떠올라오는 거품이 보였다.
하지만 그 뿐이 아니다. 뭔가 기묘한 빛도 올라온다. 이건 그냥 빛이 아니다.

[이 마력…….]

[평범한 마구가 아니에요. 유물, 아니…….]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이 숨을 삼키는데, 그것은 마침내 해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하나의 세계였다. 대지가, 하늘이, 해가, 달이, 별들이, 모두 거기에 있었다.
중앙에는 하늘, 주위에는 인간 세상, 혼례와 전쟁, 풍작과 축제. 고대 그리스 세계가 둥글게 돌아가며 새겨져 있었다.
이 녀석은 3천년 동안 바다 속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끼 하나 나지 않고 부식의 ‘부’자도 없이 빛나는 광택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뛰어난 장인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오묘한 라인. 아니, 이 녀석을 만들려면 인간 이상의 기술이 필요하다…….

[이거 설마, 보구……. 게다가 멀쩡해.]

[설마……. 트로이 전쟁에서 이 정도의 물건이라고 하면…….]

두 명이 함께 신음하듯이 중얼거린다. 이거 설마…….

[일리아드에 표현된 그대로군요. 이것은 아킬레우스의 방패.]

마지막에 감동한 듯한 세이버의 음성.
비록 검은 아니지만, 이 녀석은 나라도 알고 있다.
그렇다. 이 녀석은 대장장이 신인 헤파이스토스가 단련한 불패의 방패. 최고의 전사라는 증거. 영웅 아킬레우스의 방패다.

[해냈어, 선장! 보라고, 이 훌륭한 방패를!]

방패를 끌어 올린 다이버가 장비를 벗는 것도 귀찮은 듯이 안내인에게 말을 건넨다. 이 사람이 이 배의 선장이었구나.

[해냈군요, 관장님!]

그대로 덩치 큰 남자가 춤이라도 출 듯한 기세로 포옹을 하고 있다. 이야, 굉장하구만.

[축하합니다.]

[대단한 발견이에요.]

그렇게 흥분한 두 사람에게 말려들지도 않고 다시 내숭을 떠는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이 예의 바르게 축하한다. 이런 연기는 정말 대단하다.

[선장, 이쪽은?]

관장이라 불린 남자가 노골적으로 의심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선장에게 묻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학술 조사선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배 위에서 수영복 차림이 눈부신 미녀 세 명이 싱글벙글하며 서 있으니 말이다.

[아, 이쪽은…….]

[시계탑에서 왔습니다. 루비아젤릿타 에델펠트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린 토오사카입니다.]

[미스 에델펠트와 미스 토오사카? 고명은 익히 들었소. 저는 델로스 박물관(그리스 협회) 관장으로 있는 우티스라 하오.]

서른 정도일까, 예상 외로 젊은 관장은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과 부드럽게 악수를 주고받았다.

[이쪽은 제 제자 시로우 에미야와 패밀리어인 세이버입니다.]

[아, 잘 부탁하오.]

이쪽에는 모양뿐인 인사. 뭐, 마술사란 이런 거겠지.

[그건 그렇고, 오디세우스의 배에 아킬레우스의 방패라니요.]

[저것은 아킬레우스의 아들에게 주어졌다고 전해지고 있을 텐데요.]

[하지만, 그 후에 사라졌소. 그 오디세우스니, 가짜를 전해 주었든지, 아니면 트로이 전쟁 후에 잘 구슬려서 다시 돌려받았겠지. 어쨌든 이런 물건이니 어린 아이의 손에 있어 봤자 보물의 가치를 썩힐 뿐 아니겠소?]

아주 당연하다는 얼굴이다. 어쩐지 심한 이야기다.
그런 생각이 표정에 드러났는지, 세이버가 더 심한 이야기를 해 준다.

[오디세우스가 그 방패를 손에 넣은 것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아이아스가 아킬레우스의 시체와 함께 단신으로 필사적으로 되찾아 가지고 돌아온 무구를, 오디세우스가 아가멤논과 공모해서 가로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거 정말 너무하는군. 아까 세이버가 말했던 아군에게까지 책략을 부린다는 건 이걸 말한 거였나.

[그렇군요. 이 정도의 유물이 발견되었다고 하면, 시계탑의 교수진도 아주 기뻐하겠지요.]

[눈에 선하네요, 다음 학기는 틀림없이 축제 분위기일 거예요.]

하지만 자신들이 찾아낸 것이 아닌 이상, 이 방패의 조사권은 토오사카나 루비아 양에게 돌아오지 않는다. 그 다음은 이것을 런던으로 보낼 뿐이다. 보구를 직접 눈으로 봤다는 흥분도 사그라졌는지, 두 사람 모두 묘하게 재미없다는 듯한 말투가 되어 있다. 정말 타산적이구만.

[아, 그거 말인데, 이 방패는 시계탑에 보낼 생각은 없소.]

순간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이 굳어졌다. 시계탑의 지시는 어디까지나 발굴과 조사. 이 사람은 그것을 자기가 가지겠다는 것이다. 잘못하면 배신자로 취급당할지도 모른다.

[그거 좀 위험하지 않을까요?]

[응? 아아, 별로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소.]

하지만 관장은 태연하다. 에게 해 전체를 안으려는 듯이 팔을 벌리고 연극을 하듯이 과장된 어조로 계속 이야기한다.

[그리스의 바다에서, 그리스의 마술사가, 그리스의 영웅의 보구를 손에 넣은 것이오. 델로스 박물관(그리스 협회)에 보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소?]

‘이제 마술계도 대영제국의 시대가 아니오’ 하며 차가운 눈으로 바라본다.

[그렇다곤 해도, 시계탑에서 문제 삼을 수 있습니다. 괜찮습니까?]

[아아, 괜찮소. 별로 보고까지 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오. 게다가 두 번째 배에서 뭔가 발견되면 그것은 당신들에게 맡기겠소. 그것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당신들이 판단할 일이오. 이거라면 불평할 게 없지 않겠소?]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저는 굳이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저희가 조사에 참여하는 것도 동의하시는 거겠지요?]

[물론이오. 시계탑의 이번 학기 공동 차석인 두 분의 협력이라면 대환영이오. 당신들에게도 좋은 공부가 될 것이오.]

[그, 그건 고맙군요…….]

[고맙습니다. 감사드려요…….]

우와아, 이 사람 말해 버렸어.
순간,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의 웃음이 바뀌었다. 엄청 예쁘지만 엄청 무서운 미소. 땅속에서 마그마가 끓어오르는 듯한 미소다.
될 수 있으면 생각 안 나게 하려고 했는데, 역시 신경 쓰고 있었잖아, 그거.

[관장님! 잠깐 이쪽으로!]

그렇게 위험한, 일촉즉발의 미묘하게 험악한 공기를, 선장의 경악하는 목소리가 깨뜨렸다.

[왜 그래? 뭘 그렇게 당황하고 있는 건가?]

[두 번째 배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뭐? 무슨 말도 안 되는.]

지금까지의 여유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관장은 당황해서 조금 전에 본 관측 기기 옆으로 달려간다.

[린, 시로우. 우리도 가 보죠.]

잠깐 서로 얼굴만 쳐다보던 우리들이지만, 루비아 양의 한 마디에 관장의 뒤를 따라가기로 했다.

[세이버, 가자……. 세이버?]

우리들은 다시 또 얼굴을 마주 본다. 세이버가 이렇게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다는 것은…….

[시로우, 린. 여러분은 느껴지지 않습니까?]

[느끼다니?]

토오사카가 이상한 듯이 묻자, 세이버는 더더욱 심각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토오사카도 뭔가 고민하는 것 같다고 할까, 곤혹스러워하는 표정이다.

[지금 뭔가 강력한 힘을 느꼈습니다……. 그게, 저기……. 그럴 리 없겠지만, 서번트와 동질의 힘이었습니다.]

[설마 그럴 리가.]

성배 전쟁은 끝났다. 아직도 현계하고 있는 서번트는 세이버뿐이다. 금삐까 같은 경우도 있었지만, 그 녀석 외에는 그런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착각이 아니라?]

역시 루비아 양도 이 말에는 반문한다. 세이버의 말이라고 해도 그렇게 간단히 믿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렇지만 확실히……!]

――Crooow!

뭐라 말할 수 없는 표정으로 뭔가 말을 시작하려는 세이버의 표정이 다시 경직되었다.
동시에 상공에 떠 있는 랜스가 날카롭게 울었다.

[옵니다!]

세이버가 경고한 직후, 몸을 사릴 사이도 없이 조사선의 옆에 큰 물기둥이 솟아올랐다.

――쿠궁!――

[꺄아!]
[우왓!]

갑자기 배가 심하게 흔들린다. 뭔가 대포알이라도 떨어진 듯이 물기둥이 솟는다. 하지만 그 직전, 나는 확실히 보았다.

[시로, 루비아. 봤어?]

[네, 봤어요. 뭐에요, 저거?]

[바위다…….]

조사선의 옆으로 떨어진 것은 단순히 큰 바위였다. 아니, 단순하다고 하기엔 어폐가 있다. 무섭고 강력한 마력이 담긴 바위. 저 정도라면 거의 보구급이다.

――Croooow

상공을 선회하던 랜스가 한 번 더 날카로운 소리로 황급히 울부짖는다. 이번엔 뭐지 하고 올려다보자, 좌현 전방을 가리키며 일직선으로 날아간다.

[뭐야, 저거?]

토오사카의 넋 나간 소리에 고개를 돌려 그 쪽을 바라보았다. 10 킬로미터 정도 앞의 바다에 떠 있는 쌀알 같은 점. 나는 원시를 최대한 늘려 그것을 바라보았다.

[갤리선?]

그것은 도감에서 본 갤리선이었다. 양쪽 현에는 지네 같은 노. 펜치를 날카롭게 만든 것 같은 흉악한 충각. 그것이 이쪽을 향해 덤벼들듯이 다가온다.

[또 옵니다!]

세이버의 목소리와 동시에, 그 갤리선에서 다시 바위가 발사되었다.

[말도 안 돼…….]

나는 그 순간을 분명히 보았다. 한 아름이 더 될 것 같은 바위. 그것을 틀림없이 뱃머리에 서 있는 사람이 손으로 휙 던진 것이다.

[배를 떨어뜨리시오. 이대로는 좋은 표적이 될 뿐이오!]

멍하게 갤리선을 바라보는 우리들에게 관장이 외친다.

[그게 좋겠습니다. 이대로 여기에 멈춰 있어서야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루비아젤릿타, 던 스탈리온을 빌리겠습니다.]

힘껏 고개를 끄덕이고 세이버는 루비아 양에게 한 마디 던지고는 날듯이 크루저로 건너갔다.

[기다리세요, 세이버. 당신 뭘 할 생각인가요?]

[가까이 다가가서 한 번에 끝내겠습니다. 린, 괜찮겠죠?]

이미 크루저의 브리지에 올라간 세이버가 큰 소리로 대답한다.

[‘괜찮겠죠’라니. 너, 날 수도……앗!]

토오사카는 세이버가 뭘 할지 깨달은 것 같지만, 원래 바다 위에서 세이버가 싸울 수 있는 건가? 토오사카는 아니지만 날 수도……. 세이버, 너 설마.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끝없이 푸른 하늘, 끝을 알 수 없는 푸른 바다. 장애물은 전혀 없으니 여기라면 해방해도 다른 곳에 피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진심인가?

[한 번이야. 루비아가 있다 하더라도 그 이상은 무리니까.]

[뭘 할지 알겠어요. 해 봐요, 세이버.]

그렇게 말하자마자,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은 결의가 깃든 눈빛으로 크루저로 건너뛰었다.

[린, 루비아. 위험합니다!]

[마스터와 서번트는 일련탁생(운명을 같이 함)이니까.]

[제 배니까요. 타지 말라는 말은 듣지 않겠어요.]

세이버가 항의하자, 토오사카도 루비아 양도 한 마디로 받아 넘긴다. 뭐, 말해도 듣지 않는 사람들이니.

[시로우, 당신까지…….]

뭣보다 나부터 들을 생각이 없다. 단번에 브리지까지 뛰어 올라, 세이버 옆에서 예비 키를 잡는다.

[마상 시합이 아니니까, 여기서는 싸울 수 없겠지? 똑바로 전속 전진이라면 나도 할 수 있을 거야.]

――왕이여, 내가 선행하겠소. 잘 따라오시오.

거기에 상공에서 랜스가 운다. 이걸로 모두 모였다. 달릴 거야, 세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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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제가 적극 추천하는 몇 안 되는 화 중 하나입니다!

주는 없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와 일리아드, 오디세이아를 꼼꼼히 읽어 보면 전부 알 수 있습니다.
사실은 전부 주를 달다가…… 지쳐서 말이죠……. 그냥 안 달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중간에 괄호 쳐서 간단히 써 놓은 게 있을지도 몰라요.

그나저나 저 박물관 관장의 이름이 재미있어요. 우티스라고 했죠?
그런데 우티스는 오디세이아를 보면 나오는 이름입니다. 우티스란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고향을 향해 떠난 후, 키클로프스의 나라에 도착합니다. 키클로프스란 “둥근 눈”이라는 뜻인데, 바로 눈이 하나인 거인족을 말하는 것이죠.
오디세우스가 키클로프스에게 잡혀 있을 때, 술을 주어 거인을 취하게 만드는데, 그 때 거인이 오디세우스의 이름을 물어봅니다. 그러자 오디세우스가 대답했죠.
“내 이름은 우티스(아무 것도 아니다)입니다.”
그리고 나서 거인이 잠들자, 막대기를 불에 달군 후, 자고 있는 거인의 외눈을 깊숙이 찔러 장님으로 만듭니다. 자던 거인이 울부짖자 주변 동굴에서 다른 키클로프스들이 와서 무슨 일이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눈을 찔린 거인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우티스(아무 것도 아니다)! 우티스가!”
거인의 친구들은 아무 것도 아니면 그냥 자빠져 자라며 가 버리죠.
아무튼 이 작가, 재미있는 부분을 잊지 않고 등장인물의 이름으로 썼군요. 크크크.

요즘 이 브리튼 시리즈 번역한다고 온갖 신화나 전설들은 골고루 섭렵하게 되는군요. 그리스, 로마 신화나 북유럽 신화야 워낙 유명하니 그렇다 치더라도……. 겸사겸사 다른 신화들도 자주 보게 됩니다. 솔직히 번역하는 시간보다 이런 자료들 읽는 시간이 더 드는 것 같네요. 재미있으니까 상관없지만.

네타가 될지도 모르니 우선 여기까지 하고, 일리아드나 오디세이아에 대한 몇 가지 다음 편에 계속 이야기 하죠. 그나저나 리플 달아 주시는 거 아주 감사합니다. 나름대로 반응이 보이니 번역하는 게 즐겁네요. 그런데 그 중에 다음 내용 아시는 분들. 리플 달 때 혹 네타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

――――――――――――――――――――――――――――――――――――――――

[우리는 델로스로 피하겠소. 가능하다면 정체를 확인해 주기 바라오.]

바위가 쏟아지는 가운데 조사선과 크루저는 서서히 거리를 벌린 후, 우리는 갤리선으로, 조사선은 델로스의 항구로 항로를 바꾸었다.
조사선도 역시 마술 협회의 배 답게, 주술식에 의한 방어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아슬아슬하게 직격은 면하고 있다. 그렇긴 해도 지근탄(至近彈)만으로도 상당한 피해를 입고 있는 듯하다. 무사히 항구까지 갈 수 있을까?

[목표는 아무래도 저 배인 것 같네.]

[네. 진행 코스도 저 배를 뒤쫓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달리는 배에 불어 드는 바람을 받아 머리카락과 재킷을 휘날리는 토오사카에게 세이버는 교묘하게 키를 다루어 갤리선과 조사선의 사이에 끼어들면서 대답한다.
확실히 저쪽은 목적은 우리는 아닌 것 같다. 조사선과 떨어진 후 이쪽으로 날아오는 바위는 거의 없다. 젠장, 골치 아프게 됐군.

[세이버! 그대로 돌진해.]

이렇게 되면 정면승부다.

정의의 아군
[최강의 마술사용자] ―Emiya Family― 제 5 화 후편
Heroic Phantasm

[린, 도와 줘요.]

‘장비를 가져오겠어요’ 하고 캐빈으로 내려가 있던 루비아 양인 양손에 트렁크를 들고 올라왔다. ‘귀찮네요’ 하면서 재킷은 벗어 던지고 수영복 차림이다. 루비아 양은 옷을 입으면 말라 보이는 타입이었구나. 파란색 비키니를 입은 채 그렇게 씩씩하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니 좀 눈 둘 곳이 없다.

[아직 꽤나 떨어져 있어. 뭔가 쓸 만한 거라도 있는 거야?]

그런 나를 보며 ‘어차피 나는 흔들리지 않아’ 등을 중얼거리며 한 번 노려보고 토오사카는 루비아 양에게 다가간다. 아니, 나는 별로 그런 건…….

[꺗!]
[읏!]
[으앗!]

갑자기 크루저가 요동쳤다. 이유는 명백하다. 지금까지 일직선으로 돌진하던 세이버가 전속력인 채로 키를 꺾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미끄러지듯 움직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첨벙!――

지금까지 배가 있던 자리에 차례차례 떨어져 내리는 바위 덩어리들. 좋아, 걸려들었다. 드디어 목표를 우리로 바꿨군.

[아무래도 이 배를 부수지 않으면 저쪽을 쫓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는 꽤 흔들릴 겁니다.]

세이버의 심각한 목소리. ‘어차피 이 정도로는 나는 흔들리지 않습니다만’ 하고 한스러운 듯이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이어서 들린다. 세이버, 너도 보고 있었냐…….

[이렇게 흔들리면 공격 주문은 무리네.]

[세이버, 우리는 방어에 치중할 테니까 공격을 부탁해.]

심하게 흔들리면서도 대담하게 웃는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 양 옆 갑판에 힘껏 매달린 채, 차례차례 보석을 부수어 배의 방어를 강화한다. 역시 직격에는 못 버티겠지만, 지근탄이라면 어떻게 될 것이다.

[단번에 거리를 좁히겠습니다.]

역시 세이버. 옆으로 미끄러지면서도 어느 새 거리가 좁혀져 갤리선을 자세히 볼 수 있게 되었다.

[고대 그리스? 아니, 좀 더 오래 된 거네요.]

[선박 표시는 성벽에 독수리인가……. 뭔가 짐작 가는 거 있어?]

[……. 만약 이것이 트로이 전쟁과 관련이 있다고 하면…….]

이 정도로 가까워지자 저쪽의 조준도 정확해 진다. 그야말로 아슬아슬한 차이로 쏟아져 내리는 바위를, 보석을 물 쓰듯이 하며 상쇄하는 두 사람. 이마에 땀을 흘리면서도 확실히 상대를 관찰하고 있다니, 역시 일류 마술사다.

[시로우, 앞으로는 일직선으로.]

거리는 거의 1 킬로미터. 저쪽 항로와 우리 항로를 딱 맞추고 세이버가 씩씩한 목소리로 나에게 지시를 퍼붓는다. 이제 말은 필요 없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세이버는 재빠르게 브리지를 뛰쳐나와 단번에 뱃머리까지 달려갔다.

[갑니다!]

뱃머리 끝에 선 세이버는 정면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퍼덕거리는 재킷을 방해된다며 벗어던졌다. 뱃머리에 가만히 우뚝 선 세이버는, 지고 있는 태양 빛을 받으며 수영복 차림인 채로, 그 손에 엑스칼리버를 현현(顯現)시킨다.
그 자리에서 바람이 감겨 올라간다. 풍왕결계(인비저블 에어)는 이미 검을 감추는 역할을 그만두고 정면에서 오는 바람을 휘감아 일직선으로 거센 바람을 찢어발긴다. 이제 이것으로 피할 필요도 없어졌다. 바람의 정령을 뒤따르는 바람은 마력이 담긴 바위의 궤도를 보기 좋게 바꿔버린다.
소용돌이치는 거센 바람의 위력을 깨달았는지, 저쪽도 이제 바위를 던지지 않는다.

찰나의 침묵, 매서운 바람을 휘감아 올리는 보구를 내지르며 세이버의 목소리가 바다 위에 울린다.

[약속된(엑스)――]

세이버의 외침에 맞추듯이 갤리선 뱃머리에 서 있던 사람이 벽이라고 착각할 정도의 방패를 내세웠다.

[――승리의 검(칼리버)!]

바다를 가르며 일직선으로 내달리며 격렬하게 빛나는 빛의 칼날.

――[불타는 하늘을 덮는(로―)――]

에?

――[――일곱 원환(아이아스)]

하지만 그 빛이 도달하기 전에 쉬잉 하고 붉은 빛이 펼쳐진다.

꽃이 피듯이 춤추듯 펼쳐지며 빛나는 일곱 개의 방패. 설마, 이건…….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섬광의 칼날은 달려드는 사자처럼 붉은 장벽으로 돌진한다.

한 장, 두 장, 세 장.

차례차례 붉은 광채를 찢으며 돌파하여 앞으로 앞으로 뻗어가는 빛의 칼날.
하지만 그 때마다 기세가 약해져 간다.

네 장, 다섯 장.

뚫고, 뚫고, 뚫어 간다.

여섯 장.

찢어발기며 드디어 최후의 벽으로.

마지막 빛의 방패. 마지막 빛의 칼날. 둘 다 힘을 쥐어짜내어 이제 거의 닿기 직전. 양쪽 다 힘이 다 한 것처럼 흔들리며 깜박거린 후, 순간 마지막으로 섬광을 내뿜으며 사라졌다.

[이럴……수가.]

[――큭…….]

토오사카가 새파래진 얼굴로 비틀거린다. 거기에 호응하듯이 세이버마저 무릎을 꿇었다.

――에미야! 위다!

어안이 벙벙한 내 마음에 랜스의 질타가 울린다. 위?
정신을 차린 나는 직감만으로 힘껏 키를 돌렸다.

――콰르릉!――

[――큭!]

엄청난 벼락이 크루저의 옆에 떨어진다. 동시에 거대한 물기둥이 솟는다. 잠깐! 어째서 번개가 떨어졌다고 물기둥이 솟아오르는 거지?

[바위예요! 바로 위에 번개를 동반한 바위가! 호메로스의 노래에서 [크로니온(뇌신(雷神)의 바위)]이라고 하고, 트로이의 용사가 기절하게 만든 마암(魔巖)이에요! 린, 정신 차려요! 방호진이 완전히 날아가 버렸어요. 다음 공격이 오기 전에 다시 구축해야 돼요!]

쓰러지는 토오사카를 부축하며, 루비아 양이 비명을 지르듯이 외친다. 젠장! 나는 갤리선을, 그 뱃머리에 서 있는 사람을 노려보았다. [로 아이아스]라니? 게다가 거의 동시에 다른 보구를 하나 더 해방하다니. 도대체 어떤 녀석이지?

[시로우! 한 번 더…….]

세이버가 분한 듯이 이를 악물며 몸을 일으켰다.

[세이버, 그만해. 무승부야.]

자기도 다리가 휘청거리면서, 그런데도 냉정하게 대답하는 토오사카. 이제 이 배로는 싸울 수 없다. 직격을 피했다곤 해도, 방금 전의 뇌격으로 이미 침수가 시작되고 있다. 델로스 섬까지 갈 수 있을지 어떨지도 문제다.

[세이버도 알고 있잖아? 지금 우리들로는 엑스칼리버로도 이 이상의 위력을 내는 건 무리야. 똑같은 결과만 나올 뿐이야.]

토오사카의 말에 입술을 깨무는 세이버. 영령의 힘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상상 이상이지만, 성배의 보조가 없는 지금은 같은 마력을 사용해도 위력은 반감되어 버린다. 효율이 나쁜 것이다.

[그래도!]

[해가 지고 있어. 그리고 저쪽도 상처가 없지 않으니까. 믿을 수 없는 방어였지만 엑스칼리버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던 것 같아.]

그래도 다시 공격하려는 세이버에게, 토오사카가 상대편 배를 가리켰다.

――진정하시오, 왕이여. 마녀 아가씨의 말이 옳소.

랜스도 내려와서 세이버를 달랜다. 확실히 저쪽도 마찬가지다. 마스트는 부서지고, 노는 반 정도가 없어지고, 선체에서 희미하게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뱃머리에 서 있던 사람도, 우리와 석양을 번갈아 바라보며 비통한 표정으로 뒤돌아섰다.

[역시 황혼이 되니 돌아가는군요.]

[전승대로라는 거야? 그렇다면 목적이 뭔지도 알겠네.]

[아킬레우스의 방패. 대단한 집착이네요. 영령급 힘을 가지는 망령이라니요.]

[일곱 겹의 방패에다 뇌신의 마암, 그리고 성벽과 독수리가 새겨진 문양이라. 그 사람에 외에 다른 사람이 있다면 그게 더 신기할 정도야.]

[아카이아의 성벽. 철벽의 아이아스.]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의 대화의 마지막에 세이버가 끌려 대답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 경악하고 있는 상태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아스라는 거야 [로 아이아스]를 봤을 때부터 알았다. 내가 놀란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마스터. 그대도 보았는가.

[아아…….]

바위를 던지고, 탑과 같이 거대한 방패를 들고 있는, 마치 헤라클레스 같이 거친 그 영웅이, 설마 저렇게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 여자 아이였을 줄이야.

[과연. 아이아스란 말인가.]

점점 가라앉아가는 배를 겨우겨우 조종해서 델로스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날이 완전히 저물었을 때였다. 보고를 겸해 초대받은 저녁식사 자리에서 우리는 관장에게 일의 경과를 이야기해 주었다.

[아킬레우스의 무구에 대한 집착. 이게 인과의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미쳐버릴 정도로 원했던 물건이니 무리도 아니지.]

그리스의 영웅 아이아스. 트로이 전쟁에서 아킬레우스에 비견될 정도인 그리스 측의 용장. 아킬레우스가 바로 그 뒤꿈치의 부상으로 쓰러진 후, 이 영웅은 혼자 트로이의 군세를 막으며 아킬레우스의 시체와 무구를 지켜서 회수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사적으로 가지고 돌아온 그 무구는 그리스의 대장 아가멤논과 책략가 오디세우스의 책략에 의해 빼앗겼다. 치욕을 받은 아이아스는 그 복수를 하기 위해 두 명을 야습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행위는 여신 아테나의 노여움을 샀다. 여신의 힘으로 광기에 빠져 양 무리를 아가멤논과 오디세우스라고 믿고 참살해 버린 것이다. 모든 일이 끝나고 제정신으로 돌아간 아이아스는 자신의 행동을 부끄러워하며 자살했다고 전해진다.
결국 아이아스의 비극은 모두 아킬레우스의 무구로 인해 비롯된 것이었다.

[그것을 끌어 올려서 인과의 방아쇠가 당겨져 망령이 현현한 것이겠죠.]

라고 토오사카가 추측하여 말한다. 영령급 망령을 현현시킨다니. 그 방패에 그 정도의 힘이 깃들어 있다는 건가.

[그렇다면 오디세우스의 배에 돌진한 것이 아이아스의 배라는 것인가. 그런데 어째서 이제 와서? 아킬레우스의 방패는 오디세우스의 배에 남아 있었는데 말이오.]

[서로 얽힌 채로 가라앉았다고 하셨죠? 그러니까 같은 배라고 생각한 게 아니었을까요?]

[아마도 그렇게 있다가 이번 해저 융기 때문에 끌려서 두 배가 떨어져 버린 거겠죠? 게다가 방패를 발굴해 올린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틀린 곳이라도?’ 하며 고개를 갸웃하며 눈으로 묻는 루비아 양.

[흠……. 그럴 듯하오.]

관장은 턱에 손을 괴고 두 사람의 의견에 수긍한다. 뺨에 주름을 지으며 그야말로 귀찮다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이걸로 더더욱 대영박물관으로는 보낼 수 없게 되었소. 이곳은 트로이의 수호자인 아폴론의 성역이오. 아카이아의 무장이 그렇게 쉽게 들어 올 수 있는 땅이 아니오. 그렇다고 해서 밖으로 가지고 나간다면 계속 추적해 올 거 아니겠소?]

[그렇군요.]

[하지만 날이 새면 또 올 거예요? 어떻게 대처할 생각인가요?]

[지금은 뭐라도 해야지.]

관장은 태연한 얼굴로 쓴웃음을 짓고 어깨를 으쓱하곤 말을 이었다.]

[방패는 오늘 밤에 아폴론 신전으로 옮겨서 방호진을 굳힐 걸세. 아이아스는 결국 방어의 장수. 그 바위도 힘의 근원의 신인 아폴론의 성역에는 떨어뜨릴 수 없을 테고, 방패로는 방어를 부술 수는 없지. 기껏해야 섬 주위를 도는 것 밖에 할 수 없을 걸세.]

[하지만 상대는 영령이라구요?]

문제는 그것이다. 세이버의 보구를 받아 넘기는 녀석이다. 어설픈 상대가 아니다.

[영령이 아니오.]

희미하게 모멸감을 담은 시선으로 관장은 입가를 비틀어 올렸다.

[어디까지나 영령급 망령일 뿐이오. 망집에 사로잡혀 광기에 가까운 감정에 충동을 받고 있는 현상에 지나지 않소. 정체도 알고 있는 이상 인과를 풀면 사라져 버리는 존재일 뿐이오.]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산 제물로 양이라도 준비하는 건 어떻소? 수치를 느끼고 자살해 줄지도 모르니까.]

아마도 농담을 할 생각이었을 것이다. 관장은 재미있는 듯이 말하고는 즐거운 듯 웃기 시작했다.

[그렇게 된다면 좋겠지만요.]

왠지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는 웃음이다. 뭐랄까, 세이버가 오디세우스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다고나 할까, 조금 열 받는다. 토오사카나 루비아 양도 마찬가지 기분일 것이다. 왠지 머쓱해진 표정이다.
그래서 이런 소릴 해 버렸을 것이다.

[저기, 아킬레우스의 방패를 그 녀석에게 돌려준다는 선택지는 없는 겁니까?]

인과의 근원이 그 방패라면 그 소원을 성취시키면 망령은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그게 제일 좋다고 생각했다.
물론 마술사 여러분에게 통하는 도리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훗, 하, 하하하하하. 아니, 자네. 그게 꽤 멋진 농담이구만.]

[시로우. 이상한 소리 하지 말아요.]

[시로답다면 시로답지만.]

봐.
뭐, 이런 반응이 나올 줄 알았지만, 역시 열 받는다. 하지만 제일 화가 나는 것은 기가 막힌 듯이 보고 있는 토오사카나 루비아 양이 아니라, 정말로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관장이다.

[시로, 여기서 할 말이 아니야. 자중해.]

토오사카는 살짝 충고까지 한다. 미안, 그래도 말하지 않을 수 없었어.

[하지만.]

에?

[나쁘다고 잘라 말할 수도 없겠군. 나도 목숨은 아까우니까. 마지막 수단으로는 결코 나쁜 방법은 아니오.]

갑자기 웃음을 거둔 관장은 내 의견에 동의해 주었다. 진심인 것 같다. 뭔가 떠올린 듯이 골똘히 생각하고는 ‘흠흠’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다시 생각에 잠긴다.

[아니, 실례했소. 여러분은 오늘은 이만 쉬도록 하시오.]

아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 우리들을 남겨 두고 관장은 뭔가 급한 일이 있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아니, 고맙네’ 하고 어깨를 탁탁 두드리고 ‘그럼’ 하고는 식당을 나갔다. 이것으로 저녁 식사도 끝이라는 것이다. 우리도 관장의 뒤를 따르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무 갑작스럽게 끝내서인지 왠지 미묘하게 인상에 남는 회식이었다.

[정말, 너무 이상한 소리는 하지 마.]

그래서 방에서 나와 문을 닫자마자 화를 낸다.

[그래도 동의해 줬잖아.]

사람을 그리 나쁘게 보지 않는 나로서도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 관장이었지만, 그런데도 동의를 해 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까 이상해요. 마술사가 한 번 손에 넣은 것을 그렇게 간단히 놔 줄 리 없으니까요. 정말, 그 너구리.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요…….]

루비아 양도 샐쭉한 표정이다. 으으.

[그래. 저 사람, 시로랑 세이버를 사람 취급도 안 했어. 눈치 채지 못한 건 아니겠지?]

아니, 그건 그렇지만.

[어서 와요. 무슨 일입니까?]

하고 저녁식사에는 초대받지 못하고 방에서 랜스와 식사를 배달시켰던 세이버가 마중하러 나왔다. 결국 그런 것이다. 나는 어찌어찌 초대했지만 패밀리어는 초대하지 않는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로가 또 바보 짓 했어.]

[아아, 역시…….]

세이버, 그거 너무한데.

[그래도 역시 돌려주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해.]

나는 배 위에서 봤던 그 비통한 표정을 생각해 내고는 중얼거렸다. 역시 여자 아이가 그런 표정 짓는 건 보고 싶지 않다. 될 수 있으면 소원을 들어 주어 돌아가게 하고 싶다.

[아무튼 시로우의 기분은 알겠어요. 그렇지만 우리로는 어쩔 수 없어요.]

[협회에 그렇게 보고한다고 해도 비웃음을 살 뿐이야. 그래도 놀랐어. 아이아스가 여자 아이였어?]

루비아 양과 토오사카는 그런 나에게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말씀하신다. 그런데 어라? 토오사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어떻게 알았어? 내가 이야기했던가?]

[시로는 말한 적 없어.]

[그렇지만 시로우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압니다.]

[시로우니까요…….]

‘봐, 그럴 줄 알았어’ 라는 토오사카. 그리고 다시 한숨을 쉬는 세이버와 루비아 양. 아니, 저기, 내가 그렇게 알기 쉬운 표정 하고 있었나?

[어쨌든 오늘은 이만 자자. 내일이 되면 다시 아이아스가 올 거라고 생각하지만 대응은 어떻게든 될 것 같으니까.]

지친 것처럼 토오사카가 말한다. 사실 토오사카는 꽤나 지쳤을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행동하고는 있지만, 어쨌든 세이버가 보구를 해방했던 것이다. 마력도 이제 바닥을 보이고 있다.

[그러죠. 뭘 한다고 해도 우선 힘을 비축해 놓아야죠.]

루비아 양도 마찬가지다. 텅텅 빈 세이버에게 마력을 보충한 것은 루비아 양. 이전 언젠가와 같은 방법으로 일시적인 패스를 통해 어떻게든 세이버의 활동력을 유지하고 있다. 수영복 미녀의 뜨거운 포옹. 정말 눈에 독인 광경이었지…….

[아아, 잘 자. 어쨌든 내일 생각하자.]

어쨌든 내일. 날이 밝으면 뭔가 해야 할 텐데.

――미스터 에미야.

한밤중이 지나, 어딘가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미스터 에미야.

달빛이 밝게 비추는 델로스 섬. 비틀비틀 일어선 내가 도착한 곳은 우리들이 묵고 있는 박물관을 조금 지난 곳. 섬의 유적 거의 중앙에 있는 아폴론 신전.

[잘 왔소. 미스터 에미야.]

이미 주춧돌 밖에 남지 않은 신전의 유적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지금 막 깔린 마법진 중앙. 아킬레우스의 방패 옆에 서 있는 관장이었다.

[무슨……용건이야.]

갑자기 유인하던 실이 끊어진다. 제정신으로 돌아온 나는 날카로운 눈으로 관장을 노려본다. 한밤중에 이런 수단으로 불러내다니, 어쩔 작정인가.

[그렇게 노려보면 말하기 힘들잖은가. 무례는 사과하지. 아가씨들이 알게 되면 좀 귀찮아서 그랬네.]

관장은 엷은 미소를 띠며 나에게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나에게 토오사카를 배반하라고 할 생각이라면 번지를 잘못 찾았어.]

나는 힘껏 배에 힘을 주고 잘라 말했다. 좋아, 이걸로 다음은 간단히 조종되지 않는다고.

[아니아니, 그런 뜻이 아니네. 내가 부끄러워져서 그런 거네. 내가 내린 결단은 마술사로서는 그리 칭찬받을 만한 게 아니니까.]

호감이 가는 웃는 표정으로 관장이 달래는 듯한 말투로 방패를 가리켰다.

[자네에게 이걸 맡기려고 하네.]

[에?]

이거엔 깜짝 놀랐다. 그렇다면 저녁식사 때 내가 말한 것처럼.

[넘겨주어도 괜찮다는 건가?]

[어쩔 수 없잖은가. 귀찮은 덤이 붙어 버렸으니.]

관장은 어깨를 움츠리며 그렇게 말하고는, 방패를 진에서 꺼내어 천으로 감싼다.

[내일 녀석이 온다며 자네가 건네주게. 아무튼 망령이라고는 해도, 영령급이니, 영령의 도움이 없다면 가까이 접근할 수도 없을 테니까.]

[아, 그…….그런 거라면.]

그대로 관장은 천으로 포장한 방패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묵직한 그 꾸러미에는 나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확실히 마력이 느껴진다.

[자네라서 부탁하는 걸세. 아가씨들은 너무 마술사다우니까.]

그리고는 내 양 어깨를 움켜잡는다.

[자네 손으로 방패를 녀석에서 건네주었으면 하네. 약속해 주게.]

[아, 네. 반드시.]

내 대답에 관장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약속한 거네’ 하고 한 번 더 말하고는 돌아가 버렸다.

[나쁜 녀석은…….아니었구나.]

조금 걸리는 곳이 있었지만, 나는 납득하기로 했다. 그 아이에게 방패를 건네준다. 그것은 분명히 내 바람이기도 했으니까.

[누구야? 방패로는 방어를 부술 수 없다고 한 사람이…….]

[관장이었죠. 설마 이런 방법이 있으리라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바다에서 울려오는 엄청난 굉음에 억지로 눈을 떴다.

[방패를 파성추(破城鎚)로 쓰리라곤…….]

계속해서 울려오는 진동 사이에서 창문으로 보이는 에게 해에 떠 있는 것은 어제의 그 배. 뱃머리 앞에 일곱 겹의 빛의 원환을 드러내고 섬 같은 것은 부숴버리겠다는 듯이 섬의 결계에 충돌해 오고 있다.

[세이버, 부탁해.]

어서 가야겠군. 갑작스레 내 마음이 경종을 울린다. 빨리 가서 건네주어야지.

[에? 아, 네!]

세이버의 대답은 듣지도 없고 나는 방패가 들어있는 꾸러미를 움켜쥐고 뛰쳐나가고 있었다. 세이버도 따라오고 있는 것 같지만, 그쪽을 신경 쓰고 있을 틈은 없다.

[기다려! 시로!]

[저희도 가요!]

세이버에 이어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까지 따라와 버린다. 말리고 싶지만 말려도 듣지 않을 테니, 지금은 말리지 않는다. 어쨌든 빨리 방패를 건네주지 않으면 안 된다. 빨리 건네주지 않으면 큰일이 생긴다.

[세이버, 배를 부탁해.]

나는 부두로 달려가 크루저로 뛰어든다. 거의 동시에 세이버도 뛰어 올랐다. 배는 응급처치밖에 하지 않았지만, 아주 먼 바다까지 가는 게 아니다. 이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뭘 할 겁니까?]

순간 헛바람이 나왔다. 세이버, 무슨 소리……. 아, 그렇지. 세이버에게 아직 말하지 않았구나.

[뭐라니, 방패를 넘겨 줄 거야.]

이거 또 묘한 표정이 된 세이버지만, 주저는 잠시, 순간 늦게 따라온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이 배로 뛰어들었을 때에는 이미 크루저는 부두를 떠나고 있었다.

――마스터여, 무슨 일인가?

이른 아침부터 산책을 하고 있었겠지, 킨토스 산 방향에서 랜스도 태연하게 물으며 날아온다.

――[먼저 갈 거야! 따라올 수 있으면 따라 와.]

그래도 기다리고 있을 수 없다. 나는 세이버에게 전속력으로 아이아스의 배로 향하도록 지시했다.

[어째서 그렇게 서두르는 거야?]

[옷 갈아입을 시간 정도는 주세요!]

급발진으로 물을 뒤집어썼는지, 두 사람 다 평소에 입는 고양이 파자마나 하얀 나이트 드레스 차림인 채 흠뻑 젖어 있는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 ――그런 채로 나에게 사납게 달려든다. 응? 아, 그러고 보니 말하지 않았구나.

[방패를 건네주러 가. 서두르지 않으면 큰일 나니까.]

이제 일직선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 나는 크루저를 세이버에게 맡기고 두 사람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큰일? 뭐가 말이야?]

뭐가 라니. 어이, 저기……. 뭐였지?

[나한테 묻지 마! 잠깐 시로. 정신 차려!]

[그것보다 방패? 방패라니……. 아킬레우스의 방패 말인가요?]

아, 그렇지. 방패다.

[아아, 관장이 어젯밤 나에게 건네주었어. 내가 저 녀석에게 건네주라며.]

크루저는 서서히 속도를 올려 단번에 곶을 돈다. 그러자 곧바로 아이아스의 배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관장이? 못 믿겠는데.]

[그렇지만 사실인걸. 봐.]

나는 두 사람에게 꾸러미를 가리켰다. 진지한 표정으로 얼굴을 마주보던 두 사람도, ‘그럼’ 하고 방패 꾸러미를 손에 들었다.

[시로우! 슬슬 준비를!]

세이버다. 그 사이에도 크루저는 달리고 있다. 이제 곧 이다. 계속해서 뱃머리를 갖다 박는 아이아스의 배. 이제 뱃머리의 사람의 모습까지도 보일 정도가 되었다.

[오우! 자, 토오사카, 이리 줘.]

나는 세이버의 목소리에 대답하며 토오사카가 열어 본 꾸러미의 내용물을 받으려고 했다.

[뭐야, 이거…….]

[닮기는 했지만……. 다른 거예요.]

뭐라고?

나는 당황해서 토오사카가 들고 있는 방패를 바라본다. ……. 제길…….

방패는 확실히 아킬레우스의 방패와 아주 비슷했다. 하지만 문양이 다르다. 중앙에는 하늘을 나타내는 제우스 대신에 메두사의 목을 들고 무장한 아테나. 주위에는 새겨져 있던 인간의 삶 대신에, 미친 영웅, 도살되는 양, 제정신으로 돌아온 영웅, 그리고 땅에 엎드려 자살하는 모습까지. 즉, 이 방패에 새겨져 있는 것은 아이아스의 최후의 모습.
그게 지금, 기다리고 있었던 듯이 빛난다. 그와 동시에 나를 몰아대던 초초함이 사라졌다. ……. 나는 어째서 그렇게 급하게 서둘러 달려 온 거지?

[주물(呪物)?! 아이아스의 최후를 재연할 생각이야!]

[그 관장! 우리들을 희생양으로 삼을 생각이군요!]

아연실색하는 중, 아이아스의 배가 뱃머리를 이쪽으로 돌려 돌진해온다.

[Οδυσσεασ(오디세우스)!]

게다가 저쪽 배 위에서 들려오는 원망이 깃든 절규. 젠장, 사람을 보기 좋게 속여 넘겼구만. 때가 너무 잘 맞아 떨어져 완전히 방심해 버린 것인가!

――Crooow!

분해서 이를 악무는 우리들 귀에 섬 방향에서 랜스가 크게 운다. 그 날개 아래에는 델로스의 고속선. 뭐 저런 놈이 다 있지! 우리를 미끼로 던져 놓고 도망갈 생각이다. 젠장, 그런 거였나!

[시로우! 키를!]

세이버가 브리지에서 일어선다. 결의에 찬 표정. 지금까지 생각해서 결국은 보구를 해방할 생각이다. 젠장, 그렇게 되면……. 에에잇! 이렇게 되면…….

[세이버, 내가 할게!]

[시로우!]

세이버가 말리는 것도 듣지 않고, 나는 크루저의 뱃머리로 달려간다. 눈앞에 육박해 오는 것은 일곱 개의 빛의 원환에 싸인 아이아스의 배.
그리고 뱃머리에는 무서운 눈초리로 입술을 깨무는 아이아스의 모습.

[――투영 개시(트레이스 온)]

이전에 딱 한 번, 나는 이 녀석을 사용한 적이 있었다.
내 세계의 한쪽 구석에, 마치 거기에 있나 하는 것처럼 놓여 있던 것.
하지만 그것은 내가 꺼낸 것이 아니다.
그 때 이후, 내가 내 안에서 그것을 찾아낼 수 없었다는 것이 그 증거.

아아, 그렇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것은 내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녀석의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눈앞에 있는 것은 “진짜”, 그리고 나는 어제도 그것을 보았다.

그렇다면 나도 이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간다.

나는 눈앞의 붉은 빛을 주시하며 방패의 이념을 감정…….

――에?

갑자기 무엇인가가 흘러들어 온다. 아이아스의……젠장…….

나는 그대로 골자를 정하고 재료를 복제한다. 기술을 모방, 경험을…….

……젠장……젠장……. 그런 것이었나!

나는 흘러들어오는 것을 필사적으로 참으며 세월을 제현하고 행정을 능가하고 환상을 짜 올린다.

[――불타는 하늘을 덮는 일곱 원환(로 아이아스)――]

순식간에 일곱 개의 꽃잎이 벌어진다. 본래 만들어지지 않을 정도로 동질의 빛.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추억이 낳은 환상. 일곱 개의 붉은 빛이, 똑같은 일곱 개의 붉은 빛에 거울에 비추듯이 육박해 간다.

[큭!]

진짜와 가짜, 내 방패와 아이아스의 방패가 맞부딪친다. 한 장, 또 한 장씩 달라붙듯이 겹쳐지며 밝기를 더한다.

――Αχιλλεασ……

순간의 충돌, 한 장 한 장 겹쳐질 때마다 시대를 쌓아가듯이 보다 선명히 재현되어 흘러들어오는 아이아스의 추억.

신들과 같은 지체를 가지는 소년. 위태위태하고 개구쟁이였던 친동생 같은 사촌 동생.
전장에서 언제나 옆에 서서 늘 승리를 계속 거머쥐는 청년.

――첫 번째 한 장의 방패가 함께 녹아내리듯이 사라진다.

하지만 그래도 어릴 때의 그 장난기어린 위태로운 면은 없어지지 않았다.
그대로 둘 수 없다. 언제나 누나로서 옆에 서서, 그 자유분방한 모습을 지키는 아이아스.

――두 장.

하지만 지켜야 할 것은 그 몸만이 아니었다.
또 한 사람의 동생 같은 사촌 동생을 잃어 실의에 빠진 아킬레우스.
지킬 수 없었다. 그 몸은 지킬 수 있어도 그 마음은 지킬 수 없었다.

――세 장.

그러니까, 그렇기 때문에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아킬레우스는 창. 예리해서 어떤 것이든 꿰뚫는 창. 그러나 그 자루는 허무하게 부서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까 방패가 된다. 아킬레우스라는 창을 지키는 방패가 된다.
이제 두 번 다시 꺾이게 하지 않는다, 부러지게 그냥 두지 않는다. 그러니까 맹세한다.

[나는 당신의 방패가 되겠어.]

――네 장.

운명의 날. 결국 맹세는 깨어지고 아킬레우스는 쓰러졌다. 하지만 끝나지 않았다, 끝낼 수 없다.
그렇다면 아킬레우스의 유품만이라도 지킨다. 단지 혼자서 무수한 적을 향하는 방패.

――다섯 장.

하지만 그것도 책략과 파약 앞에 허무하게 잃어 버렸다. 아킬레우스의 유물은 책략가의 손에 넘어가 버렸다.
다시 깨진 맹세는 아이아스를 광기로 몰아넣고, 절망은 죽음을 불러온다.

――여섯 장.

하지만.
하지만 한 번만 더. 세계여, 내 남은 반신(半身)과 계약하라.
최후의 맹세. 아킬레우스의 추억만은 끝까지 지켜낸다.

지키기 위해 태어나 끝까지 지키지 못했던 친구와 함께.

――일곱 장.

모든 방어가 떨어져 나가고, 드러난 마음이 호소한다. 지키고 싶었다. 끝까지 지켜 주고 싶었다.

붉은 빛 모두가, 붉은 광채와 함께 사라졌다. 혼신의 마력을 다 써버리고 나는 털썩 무릎을 꿇는다. 크루저도 아이아스의 배도 힘을 잃고, 이제 그저 파도에 떠돌 뿐이다.

젠장.

뭐가 깨지지 않는 방패인가, 어디가 최강의 방어구인가. 너덜너덜하잖아.
최강의 방패라면 단 한 장으로 충분하다. 아이아스의 방패가 일곱 장인 것은 이유가 있다.

끝까지 지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끝까지 지킬 수 없었기 때문에 수없이 몇 번이나 찢어지고 찢어져서 그 때마다 다시 봉하고 다시 단련했기 때문에 일곱 장인 것이다.

몇 번을 찢어지고, 몇 번이나 부서져도 지키는 것을 단념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곱 겹의 방패인 것이다.
지키려고 하던 것인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가 버리는 허무함. 그것을 알고 계속해서 다시 일어서서 앞을 바라보았다. 그 결과가 바로 “방패”.

그런 방패를, 그런 기억을 이런 시시한 잔머리로 또 다시 찢어발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인가…….
나는 눈앞의 아이아스를 바라보았다.
물질화할 정도로 에테르가 빛난다. 그것은 망령이면서도 영령급의 존재.
하지만 그 얼굴에는 그런 빛은 눈곱만큼도 없다. 배신당하고 책략에 빠지고, 상처 받아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로 뺨을 적시며 실의에 빠진, 마치 강아지 같이 가련한 여성.

지금은 아무런 방어 하지 않는다. 여기서 일섬. 세이버가 보구를 휘두르는 것으로 끝난다. 진명을 해방할 필요도 없다.

[세이버. 닿을 수 있지? 해…….]

[알겠습니다, 시로우.]

세이버는 내 지시에 따른다. 엑스칼리버를 세워 들고 풍왕결계를 단번에 해방한다.

[――풍왕결계(인비저블 에어)――해방!――]

파도를 건너간 바람의 칼날은 훌륭하게 상대의 심장을 꿰뚫었다.

[약속을 지키러 왔다.]

엔진을 뚫려 파도를 떠돌고 있는 고속선 위로, 나는 세이버와 함께 내려 섰다.

[무, 무슨 소린가!]

방패를 안은 관장은, 세이버에게 압도되듯이 몇 걸음 물러선다.

[약속이다. 나는 방패를 그녀에게 넘겨주겠다는. 자, 이리 내 놔.]

[무슨 바보 같은 소릴! 네 녀석이 넘겨줄 건 이 방패가 아니야!]

관장은 몇 걸음 더 물러선다. 하지만 나도 끌어당길 생각은 없다. 한 걸음 더 다가간다.

[기아스(마법에 의한 제약)까지 걸고 약속을 시키다니, 그건 좀 심한 거 아냐?]

[그것도 남의 제자에게 멋대로, 마술사라면 약속이라는 것의 의미는 알고 있겠죠?]

궁지에 몰린 관장을 더더욱 몰아붙인다. 옆에 댄 크루저 옆 갑판에 금강신처럼 우뚝 선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 비록 흠뻑 젖은 잠옷 차림이지만, 진심이 되어 있는 두 사람을 앞에 두고 웃는 녀석은 없다.

[시로우와 한 약속. 틀림없이 지키겠습니다.]

게다가 세이버도 엑스칼리버를 현현시키며 한 걸음 앞으로 나온다.

[이, 이런 짓을 저지르면 시계탑이 가만히 있을 것 같나! 이 정도의 유물을 그냥 버리게 놔주겠나?!]

잘도 지껄이는군. 어제까지는 시계탑은 이제 한물갔다고 하던 놈이. 이제 참을 수 없다. 힘으로라도 넘겨준다.

[그러네. 강탈해서까지 할 필요는 없겠네.]

[토오사카!]

그러나 막 관장에게 덤벼들려고 했더니 토오사카가 엉뚱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그러네요. 우리가 관여할 필요는 없겠죠.]

토오사카를 노려보는 나를 무시하고 루비아 양까지 우울하게 말을 내뱉는다. 역시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너희들, 이제 됐어!

[나는 혼자라도 하겠어.]

[저도 시로우에게 동의합니다.]

세이버는 내 편이다.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 두 명만이라도 반드시 방패를 그 아이에게 넘겨준다.

[세이버, 안 돼. 시로도 얼른 이리로 돌아와.]

[린…….]

[어째서! 토오사카는 분하지 않아?!]

[별로?]

별로라니……. 뭐야! 당하면 당한 만큼 갚아주는 게 마술사 아니었냐!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하, 하하하하. 그거 고맙군. 자, 빨리 돌아가게. 이건 내 배니까.]

[이 자식…….]

[그러니까 괜찮다구, 시로.]

머리까지 핏발이 오른다. 이제 못 참겠다. 그런데도 토오사카도 루비아 양도 관심 없다는 얼굴이다. 아니, ……뭐냐, 이런 장난기 어린 눈빛은?

[그러네요, 왜냐하면…….]

[보복은 아이아스가 해 줄 테니까.]

뭐라고?

입가를 미묘하게 비틀고 눈에 가학의 빛을 띠운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은, 저기 봐, 하며 눈으로 바다를 가리켰다.

[히익!]

관장의 입에서 넋 나간 비명이 흘러나온다. 거기에는 아이아스의 배가 다시 빛의 방패를 빛나게 한다. 이 배를 노리고 돌진해 온다.

[자, 시로. 알겠지. 우리는 방해되니까 비켜 주자.]

[그렇죠. 말려들면 큰일인걸요.]

그런 건가. 이 녀석이 방패를 건네주지 않으면 결국 아이아스가 끝장을 내 준다. 그래도…….

[자, 빨리 결정하는 게 좋아요.]

[그래도 방패를 넘겨준다고 용서해 줄까요?]

[그러네. 증오스런 오디세우스(허풍선이) 같은 책략도 부렸지, 그녀도 그냥 넘어갈 수 없겠지.]

토오사카가 급소를 찌른다. 그래도 역시 화나네. 엄청 열 받아 있던 나랑 세이버가 바보 같잖아.

[아, 알았네! 방패는 넘겨주겠네! 넘겨줄 테니까 어떻게든 해 줘!]

[어머? 그건 델로스 박물관 관장으로서의 정식 의뢰인가요?]

[구두 계약으로는 나중에 실수라도 생긴다면, 우리들 시계탑에 혼날 테니까요.]

화는 나지만……. 훌륭할 정도로 지독하네. 아니, 역시 대단하다고 해야 되나. 상대의 약점을 찔러 철저하게 때려 눕혀 주는 거라면 이 두 사람 앞에 설 자가 없지 않을까?

[알았네! 서면 계약이든 뭐든 할 테니까. 빨리 넘겨줘버려!]

[훌륭하신 결정이에요.]

[그러면 잠깐 [계약]을 해 볼까요? 별거 아닙니다. 간단한 기아스예요.]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은 방패를 넘겨받고, 관장의 심장 부근에 가볍게 손을 댄다.

[시로. 얼른 정리하고 와.]

[그, 그래!]

그대로 방패를 건네받은 나는, 어디선가 양피지를 꺼내 관장에게 들이대는 두 명을 남기고 다시 크루저의 뱃머리로 뛰어 오른다.

[……여기 있어.]

육박해 오는 아이아스의 배를 향해, 나는 한 번 심호흡을 하고 꾸러미에서 꺼낸 금빛으로 빛나는 방패를 머리 위로 들었다.

아침 해를 받으며 빛나는 아킬레우스의 방패. 그 빛은 한 줄기 빛이 되어 곧바로 아이아스의 배까지 뻗어 나간다.
그리고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 아이아스의 배가 속도를 줄인다. 일곱 장의 빛나는 방패도 한 장 한 장 사라져 가서, 눈앞에 뱃머리를 바라볼 수 있을 무렵에는 마지막 한 장까지 사라지고, 거의 같은 높이로 나와 아이아스는 똑바로 서로 마주보고 서 있었다.

[이제 잃어버리지 마.]

바로 정면에서 멍하게 방패를 바라보는 아이아스의 팔에, 나는 아킬레우스의 방패를 들이 밀었다. 이번엔 확실히 지키라구.

[Αχιλλεασ……]

내 얼굴을 바라보며 방패를 가슴에 안은 아이아스가 당장 울 듯한 표정으로 작게 중얼거리자, 자꾸자꾸 키가 줄어들어 간다. 아니, 그게 아니다. 배가 가라앉고 있다.

[Εχαριστω……]

어이없을 정도로 조용하게 배는 바다로 가라앉아 간다.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 말을 하고는, 아이아스도 바다에 녹아들어가듯이 사라져 간다.
소원은 이루어졌다. 이제 두 번 다시 그녀는 저것을 놓지 않을 것이다.

[역시 좀 아까웠지?]

[린, 이제 와서 무슨 소리에요?]

[그래도 영령을 한정적이나마 현현시킬 정도의 아티팩트인 걸. 적어도 잠깐만이라도 조사해 보고 싶었는데.]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내 옆에서, 토오사카 씨와 루비아 양이 손가락을 입에 문채 바라보고 있다. 참 나, 너희들 정말로 뼛속까지 마술사구나.

――Crow…….

하고 랜스가 운다. 그대로 저공으로 날며 지금 배가 가라앉은 곳을 가리키듯이 원을 그린다.

[뭘까요? 나무판입니까?]

[아니, 저건…….]

판은 아니다. 그것은 잠자듯이 조용히 마력을 가득 채우고 있는 탑 같이 거대한 가죽 한 장.

[아이아스의 방패?]

루비아 양이 한숨을 쉬듯이 중얼거렸다. 그렇다, 틀림없다. 나는 알 수 있다. 저것은 진짜 [아이아스의 방패]다.

[아, 아킬레우스의 방패보다는 떨어지지만, 저것도 최고급 아티팩드지. 이걸로 체면이 서겠군.]

어느 샌가 우리 옆에 와서 바라보던 관장이, 부들부들 떨면서도 기쁜 듯이 얼굴을 내민다. 이 자식…….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어머? 죄송합니다만, 저 방패는 우리들 거예요.]

내가 한 바탕 고함을 치려고 한 걸음 가까이 갔더니, 루비아 양의 차가운 목소리가 관장을 후려갈긴다. 계속해서 토오사카의 라이트 훅.

[그래요. 당신은 관계없어요. 그렇게 약속했었죠?]

멋진 말의 콤비네이션 블로우. 뭐, 내가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넉살좋은 말을 이 두 사람이 인정할 리 없나.

[무, 무슨 소릴! 약속은 아킬레우스의 방패를 내 의지로 건네주겠다고 한 것 뿐이네. 다른 유물에 대해서는…….]

[너무하시네요. 잊어버리셨나요?]

[그래요. [두 번째 배에서 뭔가 발견되면 그것은 당신들에게 맡기겠소] 라고 말씀하신 건 관장님이었어요.]

[저것은 아이아스의 배에서 나온 유물. 즉, 두 번째 배에서 발굴된 것이지요.]

‘말은 확실히 해야죠’ 라며 말하며 밝게 웃는다. 그러고 보니 그런 말도 했었군. 관장도 그렇지만, 마술사라는 건 정말 방심할 수 없는 녀석들이구나.

[하, 하지만…….]

[어머어머, “또” 약속을 깨려고요?]

[마술사의 ‘ㅁ’ 자도 붙이기 아까운데요.]

[큭……. 알았네! 마음대로 하게!]

이 두 명에게 말로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관장은 분한 듯이 그렇게 내뱉고는 자신의 배로 돌아가 버렸다. 저쪽의 엔진, 부서져 있었는데.

[시로?]

아주 만족스러운 얼굴로 토오사카가 나를 돌아보고, 슥 턱을 올리며 방패를 바라보았다. 아아, 그럼.

[갔다 올게.]

나는 그대로 주저하지 않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

한없이, 한없이 펼쳐진 맑고 푸른 하늘.
그리고 또 끝없이, 끝도 없이 펼쳐진 한 점 흐림 없이 맑은 비취색 바다.
내려쬐는 태양은 푸른 세계를 따갑게 또는 부드럽게, 밝게 느긋하게 비춰주고 있다.

[날씨 죽이네…….]

그런 모래사장에 길게 누워, 푸른 하늘을 멍하게 바라보면서 혼잣말.
그런 나에게 문득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또, 노인네처럼…….]

새빨간 원피스 수영복을 입은 토오사카가 조금 지루한 듯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내려다본다.

[시로우는 수영 안 해요?]

바다보다 깊은 푸른 비키니를 입고 푸른 바다에서 올라온 루비아 양이 훌륭한 금발에서 바닷물방울을 방울방울 떨어뜨린다.
그대로 토오사카 옆에 나란히 앉아 내 얼굴에 바닷물을 똑똑 떨어뜨린다.

[차가워.]

[그야 바닷물이니까요.]

[미지근하면 싫잖아.]

두 사람은 함께 깔깔거리며 즐거운 듯이 웃는다. 지당하십니다. 그래도 낮잠은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두 사람 모두 억지로 잡아끌지는 않는다. ‘놀러 왔으면서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하고 쓴웃음을 지으면서 내 양 옆에 바싹 앉아서 세이버가 건네 준 음료수를 맛있다는 듯이 마시고 있다.

[시로, 그래도 괜찮아?]

[그건 시로우가 가져도 문제는 없었다구요?]

아아, 뭐야. 두 사람 모두 그거 말하는 거야?

[괜찮아. 그것도 이제 여기에 있으니까.]

나는 몸을 돌리며 두 사람을 안심시키듯이 내 가슴 가운데를 탁 쳤다.

결국 바다에서 끌어올린 아이아스의 방패는 그대로 대영박물관으로 보냈다.
그리고 우리는 크루저 수리가 끝날 때까지 여기 미코노스에서 바캉스를 계속 즐기고 있는 것이다. 모처럼 온 에게 해니까 조금 즐겨야지.

아이아스의 방패. 나는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크고 여기 저기 기워져 있던 가죽 방패를 생각해 냈다.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은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려고 했지만 나는 그것을 거절했다. 그 방패는 그녀 자신이다. 빌릴 수는 있어도 받을 수는 없다.

[시로우도 한 잔 어떻습니까?]

세이버가 나에게도 음료수를 건네준다. 영령, 서번트. 세이버도 마찬가지다. 힘을 빌릴 수는 있어도 세이버는 세이버 자신의 것이다.

[세이버.]

음료수를 받으며 나는 세이버에게 말을 건넸다.

[네?]

[영령은 슬프구나.]

지키려고 했던 것을 지킬 수 없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지키려고 노력하고, 그 때마다 패배했다. 아이아스의 인생은 단지 그것 뿐이었다. 단지 그것 밖에 없는 여성이 완벽한 방어로 치켜세워졌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데도 영령은 꺾이지 않습니다.]

마치 자신에게 들려주려는 듯이 세이버는 가슴에 손을 모으고 한 마디 한 마디 확인하듯이 말한다. 아이아스도 꺾이지 않았다. 몇 번을 깨져도 다시 일어서서 방패를 고치고 계속해서 앞으로 향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었던 거죠? 세이버는 눈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시로우, 그 누구도 당신을 꺾을 수 없는 겁니다.]

그, 그건 너무 과대평가 하는 거라구. 나에게는 아직 깨어지고 부서지면서도 다시 일어서서 앞으로 계속 나아갈 자신은 없다.

[에미야 시로우…….]

그런 우리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루비아 양이 속삭이듯이 중얼거렸다.

[당신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죠?]

그대로 루비아 양은 생각에 잠긴 눈동자로 내 눈을 들여다본다.
그런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나는 루비아 양과의 추억을 다시 떠올렸다. 루비아 씨에게는 상당히 여러 가지를 들켜 버렸다. 그렇지만 후회는 없다. 언젠가 그녀에게는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그저, 지금 질문에는 대답할 말이 하나밖에 없다.

[나는 에미야 시로우.]

[시로우는 에미야 시로우니까요.]

[그래. 시로는 에미야 시로야. 루비아, 그 밖에 또 뭐가 필요해?]

[그러네요. 시로우는 에미야 시로우인 걸로 충분해요.]

루비아 양은 결국엔 어깨에 힘을 빼고 웃기 시작한다. 토오사카도 세이버도 뭐가 재미있는지 깔깔거리며 웃는다.

그렇다. 나는 에미야 시로로 충분하다. 이 웃는 얼굴들을 지키기 위해. 나는 끝까지 에미야 시로로 계속 남아 있자. 그것만은 틀림없이 꺾이지 않고 있을 수 있을 것이다.

(END)

――――――――――――――――――――――――――――――――――――――――

이야. 드디어 2쿨이 끝났네요. -_-;;;

멋진 이야기였습니다. 아아. 감동.

그리고 마지막에 린과 루비아의 수영복 투샷에 모에. 큭! 부러운 넘… ㅠ_ㅠ

그나저나 다들 일리아드 자세히 읽어 보셨나요? 대부분 아시겠지만 간단히 이야기 해 보죠. (물론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로.)

멍청한 세 여신과 멍청한 한 남자 때문에 일어났다는(물론 전승에서) 트로이 전쟁에서 그리스 측에서 유명한 사람은 아가멤논, 아이아스, 아킬레우스, 오디세우스가 있습니다. 물론 그밖에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요……

저는 그 중에 아이아스가 가장 마음에 들더군요. 성격이 불같다는 걸 빼면…… 엄청난 공적을 세웠다고 할 수 있죠. 제일 성실하게 전투에 참여했고. 일리아드를 보면 크게 헥토르와 아킬레우스가 양대 주인공처럼 보이는데, 아이아스는 일리아드 전체에 걸쳐 꾸준히 열심히 등장합니다.

당시 파리스의 형이었던 헥토르는 트로이의 끗발 좋은 장수였는데, 전쟁 초반에 아이아스와 크게 한 판 붙습니다. 아이아스가 가지고 있던 방패는 쇠가죽 일곱 겹과 청동 한 겹으로 된 방패였죠. 먼저 헥토르가 창을 던지게 되었는데 방패의 쇠가죽 여섯 장을 뚫고 일곱 장째에 박히죠. 그 다음 아이아스가 창을 던져서 헥토르의 방패를 뚫고 흉갑을 뚫었지만 약간 빗나가서 스친 상처만 주게 됩니다. 그 다음 접근해서 계속 싸우다가 헥토르가 목에 심한 상처를 입는데, 이 때 이다이우스가 나와서 밤이 오니 싸움을 그만 거두라고 하죠. 둘 다 응락하고 헥토르는 아이아스에게 칼집과 가죽 식대(어깨띠)를 주고, 아이아스는 헥토르에게 허리띠를 선물합니다.
여기서 밤이 오자 싸움을 그만 두었다는 말이 나오죠. 브리튼 세계의 아이아스도 석양이 지자 뱃머리를 돌립니다. 그걸 보고 전승대로 행동한다고 하죠. -_-;;;

그리고 그 다음에 또 한 번 크게 붙는데, 그 때는 아이아스가 배를 매 두는 바위를 던져 헥토르의 목에 맞추어 기절시킵니다. 아마 여기서 브리튼 세계의 아이아스가 [뇌신의 마암]이라는 보구를 쓴다는 상상이 나왔을 겁니다. 뇌신의 마암의 진명이 크로니온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번개로 심판한다는 제우스의 별명입니다, 사실은.

이 때 아킬레우스는 어떤 사건 때문에(찾아 보세요, 다 쓰면 너무 길어요) 아가멤논과 틀어져서 트로이까지 오긴 했지만 전쟁에 참여하지는 않고 있었는데,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파트로클로스가 그리스군이 계속 패배하자 아킬레우스에게 부탁해서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전장에 나갔다가 너무 깊숙이 트로이군을 추격하는 바람에 헥토르의 창에 찔려 죽습니다. 그 후에 헥토르가 파트로클로스가 입고 있던 무구를 벗겨 가고, 두 진영 사람들은 파트로클로스의 시체를 탈취하려고 오랜 시간을 싸우는데, 이 때 아이아스가 원군이 올 때까지 시체를 지키며 버티고 자신의 방패를 시체에 덮어 시체가 더 훼손되지 않도록 보호하죠.

나중에 파리스의 화살에 아킬레우스가 죽었을 때, 아이아스가 단신으로 들어가서 시체와 무구를 찾아서 오는데 오디세우스가 도우러 가서 적을 막아 줍니다. 이 때 아킬레우스의 무구는 이전에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입고 나갔다가 갑옷을 헥토르에게 빼앗겼기 때문에, 아킬레우스의 어머니 테티스가 헤파이스토스에게 부탁해서 만든 무구였죠. 그런데 테티스는 이 갑옷을 그리스의 생존자 중 그것을 받을 만한 가치를 인정받은 영웅에게 주라고 합니다. 이 때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 두 사람이 후보로 나서게 되는데, 심사위원으로 뽑힌 무장들은 지혜가 용기보다 뛰어나다고 해서 오디세우스에게 표를 주죠. 결국 무구는 오디세우스에게 돌아갑니다. 이에 아이아스가 화가 나서 아가멤논과 오디세우스를 죽이려고 들어갔는데, 아테나가 이것을 알고 양떼를 두 사람의 병사들로 보이게 해서 아이아스는 양떼를 도륙하고, 정신을 차린 후 부끄러움으로 자살합니다. 다른 설도 있는데, 아이아스가 아킬레우스와 같이 파리스의 화살을 맞았는데, 아이아스는 불사신이라 죽지 않자 트로이 군이 아이아스를 땅속 깊이 묻었다는 이야기도 있죠.
또 오디세우스의 배가 표류하다 난파되었을 때 아킬레우스의 갑옷이 떠다니다가 트로아스에 있는 아이아스의 무덤 부근 해변에 떠밀려 왔는데 신의 심판으로 아이아스가 그토록 고대하던 물건을 사후에나마 손에 넣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왠지 지금 이번 화랑 비슷한 것 같죠? ^^;;

재미있는 건, 일리아드에 나오는 아이아스의 묘사 인데요. 트로이로 끌려간 헬레네에게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가 성 아래 진을 친 그리스 장수가 누군지 일일이 묻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거기에 보면 왕이 아이아스가 누군지 물을 때,
“저기 사람들의 머리 위로 넓은 어깨와 머리 하나만큼 더 있는 미남은 누구냐?”
이렇게 묻죠. 헬레네는,
“그 거인 남자는 힘을 표상하는 인물입니다.”
라고 대답해요. 음…… 이렇게 묘사된 아이아스가 여자라면, 아스트랄하군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이아스의 방패 진명이 좀 골치아팠는데, 원문은,

–> 熾天覆う七つの円環

이라고 돼 있습니다. 뭐라고 해야 될지 고민하다가 전에 페이트 전문을 번역하신 “사신이라 불리우는 H”님께서는 어떻게 하셨는지 봤더니, 치천(熾天)을 치천사(세라핌)를 나타내는 걸로 생각하셨더군요. 그래서 ‘치천을 덮는 일곱 고리’로 번역하셨더라구요.
그런데 아무리봐도 천사라면 치천사라는 단어 전체가 다 표기됐을 것 같아요. 게다가 그리스 신화는 천사라는 개념이 없잖아요. 신들이 그렇게 많으니…… 그래서 치천사는 아닌 것 같더라고요. 치천사는 유대교 계열에서 이야기가 나오죠. 그래서 저는 그냥 치천을 “불타는 하늘”이라고 했습니다. 세라핌이라는 단어가 치천사라고 번역된 이유가 바로 세라핌의 뜻이 ‘불타고 있는 이’이기 때문이죠. 결국 “불타는 하늘을 덮는 일곱 개의 원환”이라고 했습니다. 혹시 다른 좋은 번역이 있으면 가르쳐 주세요~

그 외 중간중간에 우리말로 번역하기 곤란한 문장이 몇 개 있었는데… 그냥 대충 대충 비스므리하게 고쳤습니다. 원문과 다르다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시길… -_-;;;

이제 이 다음에 미츠즈리가 영국에 와서 린과 시로의 염장에 보구를 꺼내 들고 응징한다(^^;;;)는 외전 24.5 편을 하고, 그 다음 3쿨 시작인 25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후유키…… 이거 했으면 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어쩔까요……
별로 땡기지가 않아서 고민되는군요. 게다가 생물체님께서 멋지게 시작해 놓으셨으니…… ^^;;;
일단은 외전하죠. “미츠즈리, 영국에 서다!!!”

그럼 이만… -_-;;;

 

――――――――――――――――――――――――――――――――――――――――

시로가 낮잠을 자고 있다.

그 날, 나는 아침부터 공방에 틀어박혀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리스와 후유키에서 멋들어진 여름방학을 보낸 직후. 어떻게 해서든 오늘 안에 끝내지 않으면 안 되는 과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어찌어찌해서 대체적인 가닥을 잡고 나서, 차라도 한 잔 하려고 나왔더니, 거실의 융단 위에서 벌렁 누워 낮잠을 자고 있는 시로와 마주쳤다는 것이다.

[정말 이렇게 덩치가 커져서……. 방이 좁아 보이네.]

큰 대(大)자로 뻗어 자고 있는 시로의 잠자는 얼굴은, 덩치에 비해서는 귀여울 정도로 어려 보였다. 그렇기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나는 조금 장난을 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옆에서 몸을 숙여 시로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베개는 베고 자라구.]

바닥에 깔린 것은 최고급 페르시아 융단이다. 서양식 저택이지만, 이곳만은 신발 신은 채로는 출입금지. 그래서 여기서는 모두 직접 바닥에 주저앉아 느긋하게 지내지만, 아마도 시로는 그대로 벌렁 드러누워 잠들어 버렸을 것이다. 베개도 이불도 없이, 그저 천정을 보고 누워 깊이 잠들어 있다.
어쩔 수 없네. 나는 쿠션을 베개 대신 괴어 주려고 조금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시로의 머리를 살짝 들어 올렸다.

[정말……꺗!]

그 순간, 갑자기 시로의 손이 내 허리를 껴안았다. 나는 밸런스가 무너져 그대로 시로의 품으로 쓰러졌다.

[……잠깐…….]

그 때문에 쿠션을 놓치고, 대신에 내 팔이 시로 머리 아래에 푹 묻혀 버렸다. 뭐랄까, 그……시로의 머리에 팔베개를 한 채 안아 주듯이 옆에 누운 자세가 되어 버린 것이다.
무심코 시로의 얼굴을 노려 보았지만…….

역시 깊이 잠들어 있다.

[……노리고 한 짓이 아니라는 게 또 화난다니까.]

나는 행복하게 자고 있는 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후우 하고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조금 전에 내 허리를 끌어안은 손도 잠에 취해서 한 것이겠지, 지금은 풀어서 허공을 안고 있다. 일어나려고 하면 일어날 수 있지만, 그러면 아무리 시로라도 잠에서 깨 버릴 것이다.

[……요즘 바빴으니.]

뭐, 어쩔 수 없나. 여름방학이 되고 나서, 그리스에서 그 난리, 일본에서 대소동, 게다가 런던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바이트라든지 다음 학기 준비로 쉴 틈도 없이 바빴다.
이렇게 낮잠을 자고 있는 시로는, 그야말로 초봄 이후에는 본 기억이 없을 정도다.

[어쩔 수 없네…….]

그러니 이대로 깨워 버리는 것은 불쌍하다. 게다가 이렇게 시로의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나도 어쩐지 졸리다.

다른 급한 일도 있을 리 없고. 나는 그대로 시로와 함께 낮잠을 자는 멋진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뭔가 한 가지 중요한 일이 있었던 것 같은 생각도 들지만……응, 틀림없이 큰일은 아닐 거야. 나는 시로의 머리를 껴안고 그대로 꿈나라로 여행을 떠났다.
응, 좋네, 이거…….

……………….

…….

검붉은 눈동자
[오렌지색 방패] ─Ayako Mituzuri─ Fate/in Britain 외전─4 전편
Αιγιζη

[저기, 항상 이래?]

[아니오. 평소에는 이런 적이 없습니다. 두 사람의 사적인 곳에서는 어찌 됐든, 이런 공동 장소에서는 두 사람 모두 금욕적일 정도입니다.]

[헤에, 고생이네.]

[그 정도는 익숙해져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조금 자중해 주면 좋겠습니다.]

몽롱한 상태인 귀에, 멀리서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자가 두 명……한 사람은……아아, 세이버네.
왠지 불평하고 있는 것 같네. 괜찮잖아, 내 집이니까. 다른 사람이 볼 리도 없고…….

……다른……사람……?

뭔가가 걸린다. 그러고 보니 세이버는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있다. 모르는 목소리가 아니라 어디선가 들었던 적이 있다. 예전부터 알고 있어……그래, 최근에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앗!]

힘껏 일어났다. 갑자기 꿈나라에서 현실로. 자다가 일어나는 거 엄청 못하는 나지만, 여기에는 뛰어 오를 듯한 기세로 일어나 버렸다.

[여, 토오사카. 일어났네? 방해해 버린 건가.]

내 옆에서 뛰어 오를 듯이 일어나는 기세에 튕겨져 나간 시로가 테이블에 머리를 부딪쳐 소리가 나오지 않는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하지만 그런 건 신경 쓸 겨를도 없다. 나는 세이버 옆에서 히죽히죽 웃고 있는 사람에게 천박하게도 손가락을 들이대어 버렸다.

[미, 미, 미, 미, 미…….]

[지금 막 일어났으니까 머리가 멍한 건 알겠는데, 내 이름 정도는 제대로 말하면 좋겠는데.]

완전히 잊고 있었다. 이 녀석, 어제부터 내 집에 묵고 있었지. 세 명 모두 쉬는 날이었는데도 세이버가 없었던 것도 이 녀석 때문이다. 오전 중에 다음 학기 준비로 손을 뗄 수 없는 시로 대신 런던 관광 안내역을 떠맡았었지. 오후에 모두 만나서 저녁 식사를 하러 갈 예정이었는데……작업에 몰두하느라 완전히 잊어 버렸다.

[미츠즈리…….]

[잘 잤냐, 토오사카. 뭐야, 역시 에미야와 문란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잖아.]

내가 쥐어짜듯이 소리를 내자, 아야코는 팔짱을 끼고 잔뜩 장난기 어린 미소를 띠면서 즐거운 듯이 대답한다. 젠장, 반론을 못하겠잖아…….
한숨을 쉬며 쓴웃음을 짓는 세이버와, 아직도 머리를 감싸고 대굴대굴 구르는 시로 사이에서 나는 하늘을 향해 마음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이런 때 낮잠을 자는 시로가 잘못한 거야!

엉뚱한 화풀이이긴 하지만…….

[저기, 토오사카는 내일 어쩔 거야?]

[루비아 집에서 하는 파티? 시로는 파티의 스태프였지?]

[응. 슈프란 씨의 조수로 파티를 꾸려나가기로 했어.]

이야기는 전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날, 우리의 아침은 그런 대화로 시작되었다.

[그렇구나. 어떻게 할까……. “가면무도회”였지?]

[응. 루비아 씨는 사교계를 좋아하니까.]

마술사가 개최하는 “가면무도회”라고 하는 것은 가면을 쓰고 모이는 파티가 아니다. 아니, 가면을 쓴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은 마술사가 일반인 행세를 한다는 의미의 가면. 즉, “대외적”인 얼굴이라는 의미이다.
주최자인 루비아부터 해서 참가자는 모두 마술사라는 것을 모두 숨긴 채로 즐긴다. 이번엔 어느 정도 참가할지는 모르겠지만, 대외적인 얼굴인 이상 일반인도 참석하는 파티다.
일반인에게는 마술을 비밀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곤 해도 마술은 일반적으로 무시무시하게 돈이 든다. 대외적으로도 그만한 경제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지 않는 마술사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끔씩 이런 형식의 모임을 개최해서 대외적인 부분에서 인맥을 쌓아 둘 필요가 있지만, 그래도 꽤나 위험해서 무섭고도 별난 행사라는 것은 변함없다.

[여전히 별난 취미라니까. 일단 참가한다고 해 줘. 세이버도 갈 거지?]

[네. 저도 따로 초대장을 받았으니까요.]

‘꼼꼼하군요’, 하고 왠지 기쁜 듯한 세이버. 요즘 우리 주위에 있는 녀석들은 세이버를 전혀 패밀리어 취급하지 않고 있다. 뭐, 시로는 그렇다 치더라도, 나까지도 어느 샌가 그런 식으로 되어 버렸으니까 어쩔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바로 그 때였다. 문제의 전화가 걸려 온 것은.

[네, 토오사카입니다.]

별 생각 없이 시로가 받은 전화. 받은 순간, 왠지 반가운 듯이 상당히 거친 말투로 일본어를 하기 시작했다.

[누구? 시로랑 아는 사람?]

이쪽으로 오고 난 뒤 시로는 꽤나 친구가 많다. 전과에 다니는 사람들이랑 슈트라우스, 그리고 루비아의 저택에 있는 사람들까지, 그냥 얼굴만 알고 지내는 이상으로 친한 사람은 일본에 살 때보다 많지 않나 할 정도다. 뭐, 그런 건 나나 세이버도 마찬가지지만. 이 전화는 일본어. 일본에 이곳의 번호를 아는 사람은 확실히 한 손에 꼽을 정도일 것이다.

[아, 미안, 토오사카에게 온 전화야. 미츠즈리다. 오랜만이라 생각보다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말야.]

[미츠즈리?]

시로는 ‘미안, 미안’ 하며 나에게 전화기를 건네주었다. 그렇다 해도 아야코라니, 그 녀석이 이곳 전화번호를 알고 있었나? 뭐, 그 녀석이라면 사쿠라나 후지무라 선생님에게 물어서 쉽게 알 수 있었겠지만.

[네, 토오사카입니다.]

[여~ 토오사카. 건강하잖아.]

건네받은 수화기에서 들려 온 것은, 변함없이 싹싹한 말투인 아야코의 목소리.

[오랜만이네, 미츠즈리. 어쩐 일이야?]

[이야아~ 런던으로 건너 간 뒤로 소식이 없었잖아? 어떻게 된 건가 해서.]

듣고 보니 런던에 온 뒤로는 계절이 변할 때 안부 편지 정도이고 직접 이야기한 건 정말 오랜만이다. 어라? 그러고 보니 후유키에 갔을 때도 이 녀석 없었지…….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깨달았다. 통화중인 전화기에서 흘러나오는 주위의 소리. 이야기 소리도 섞여 있지만, 그것은 일본어가 아니다. 그렇다는 건…….

[미츠즈리, 너 지금 어디 있는 거야?]

[하하하, 알아버렸어?]

[모르니까 물어보고 있는 거잖아. 일본이 아니네?]

[빙고. 사실은, 지금 빅토리아 역.]

[헤에……. 잠깐, 런던이잖아!]

놀랐다. 뭐라든가, 대학을 일 년 휴학하고 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배낭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그럼 우리가 후유키에 돌아가 있었을 때는…….]

[그러네. 정확히 엇갈렸다고 할까? 미국을 돌았지.]

그렇게 혼자서 미국을 다 돌고 이번에 유럽 상륙. 그 시작으로 런던에 왔다고 한다. 여자 혼자서 해외 배낭여행이라니……. 아야코답다고 할까 위태위태하다고 할까. 호쾌한 이야기다.

[그래서? 런던 안내라도 해 달라고?]

[그것도 있지만 말야. 네 집에서 좀 재워 주지 않을래?]

[하아?]

[아니, 그게 말야. 배낭여행이니까, 아직 잘 곳을 못 정했어. 런던에 아는 사람이라고 해도 너밖에 없으니 말야.]

[‘그게 말야’가 아니잖아! 갑자기 그런 말 해도…….]

잠깐 기다리라고. 그야 재워 달라고 하면 재워 주지 않겠다는 건 아니지만. 이쪽도 이래저래 사정이…….

[그야, 토오사카가 런던에서 에미야와 문란한 생활을 하고 있는 건 알고 있어.]

[안 해!]

[그럼 OK지?]

[우…….]

크으, 전화기 저편에서 히죽히죽 웃고 있는 아야코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하지만 이런 말을 듣고도 재워주지 않으면, 이 녀석의 말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그거야 확실히 시로는……아냐!
뭐, 별로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지만, 이렇게 해서 어물어물거리는 사이에 아야코는 며칠 동안 우리 집에 머물게 되었다는 것이다.

[헤에, 영국 요리도 듣던 것보다 먹을 만 하네.]

[네. 영국 요리라고 무조건 맛이 없는 건 아닙니다. 결국 어떤 걸 먹어 봤는가가 문제죠.]

저녁식사는 시티의 변두리에 있는 올드 체셔 치즈라는 퍼브 레스토랑. 격식이 있는 장소는 아니지만 19세기부터 변함없는 영국의 퍼브 요리를 내 온다. 영국 요리이지만 맛도 세이버가 합격이라고 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그야말로 영국이라는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가게다. 치킨 치카 마사라(치킨 카레)와 스테이크 앤드 키드니 파이는 정평이라서, 아야코는 기분 좋을 정도로 신나게 먹고 있다.

[그렇다곤 해도, 미츠즈리는 꽤나 남자처럼 되어 버렸는데.]

그런 모습을 왠지 즐거운 듯이 바라보면서 시로가 중얼거렸다.
정말. 일본에 있었을 때는 기풍이 좋은 여장부 타입이면서도 어딘가 여자다운 모습이었던 아야코였지만, 대학에 간 뒤로는 상당히 변했다.
아무래도 지금은 캐주얼한 복장으로 갈아입고는 있지만, 역에 마중을 나갔을 때는, 군용 바지에 정글 부츠. 상의도 야전 점퍼에 그 위에는 군용 조끼를 껴입고, 거기에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있어, ‘이 녀석 도대체 어디의 용병이었나’ 싶은 모습이었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은 여자답게 단정하게 묶어서 모자 안에 밀어 넣고 있었지만. 멀리서 봤을 때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이 안가서, 나도 순간 누군가 했다.

[그야, 역시 여자 혼자 여행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위장한 거지.]

‘남자 혼자 여행했더라도 역시 위험했겠어. 아무래도 실수한 건가’하고 아슬아슬한 이야기를 하며 호쾌하게 웃어 준다.

[그럼 미국에선 계속 히치하이크 한 거야?]

[그렇지도 않았어. 나, 이런 저런 무도 하고 있잖아? 그 사부들의 소개로 각지의 도장에서 신세를 지며 다녔지.]

[와, 그럼 무사 수행이라는 건가?]

[응, 나보다 강한 녀석을 만나서……일 리가 없잖아!]

[이야아, 미츠즈리는 여전하네.]

카앗──하고 찔러 들어오는 아야코에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는 시로. 어이, 너무 스스럼없이 보이는데.

[자, 토오사카. 계속 그런 얼굴 하지 마. 정말로 문란한 관계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니니까.]

아야코를 노려보고 있자, 짓궂은 미소를 띠며 말을 걸어온다. 흥, 마음대로 말 하라구.

[별로 기분 나쁜 거 아냐, 미츠즈리.]

[미츠즈리. 그런 말투, 토오사카에게는 오히려 역효과라구. 토오사카가 삐져 있을 때는 전혀 다른 화제를 꺼내서 은연중에 신경 쓰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게 제일이야.]

내가 싱긋 웃으며 미츠즈리에게 대답하고 있는데. 시로, 어째서 네가 여기서 걸고넘어지는 거야.

[누가 삐졌다는 거야!]

[과연. 이야, 에미야는 꽤나 토오사카를 잘 알고 있구나.]

[그야, 잘 알게 되지. 토오사카, 꽤나 복잡하니까.]

[어이, 잠깐!]

이 녀석들, 내 말은 무시? 아야코, 뭐야, 그 ‘잘 먹겠습니다’하는 눈빛은? 시로도 즐거운 듯이 말하지 마!

[그렇군요. 린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만큼 쿨─하지도 않습니다만.]

세이버까지 가세한다.

[……너희들. 본인을 눈앞에 두고 술안주로 삼지 마.]

내가 노려보아도 아야코 녀석은 뭐라 말할 수 없는 눈으로 되돌아본다.

[뭐, 뭐야.]

그게 너무 부드러운 눈빛이라 무심코 물었다.

[뭐야, 토오사카, 이렇게 표정이 풍부했었구나.]

아야코는 ‘나도 네 내숭은 알았지만, 그런 나에게도 이 정도까지 솔직하게 속을 보이지 않았으니까’ 라고 왠지 감개가 서린 미소를 지어 준다. 그야, 확실히. 아무리 속이 알려졌다고는 해도, 아야코는 일반인이다. 마술사인 진짜 나를 그렇게 모두 보여 줄 리가 없다.

아아, 그렇구나.
런던에 온 뒤로는 주위에는 마술사 뿐. 그러니까 이런 위장이 약해지고 있었다는 건가. 좀 어리석었을 지도. 나는 다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런가? 내 앞에서는 토오사카 언제나 이런데.]

그런데 시로 녀석은 이런 때 그런 말을 내뱉는다.

[헤에. 그렇다는 건 토오사카는 남자 앞에서는 솔직해 지는 타입이라는 건가. 의외라고 하면 의외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드는군.]

[린은 솔직합니다만 솔직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니─까! 본인을 앞에 두고 그런 이야기 하지 말라니까!]

시원스럽게 웃는 아야코. 스리슬쩍 짓궂은 미소를 띠며 장난기어린 눈빛을 반짝이는 세이버. 그리고 생각한 걸 아무 생각도 없이 내뱉는 시로. 내가 안주라는 것은 좀 신경이 쓰이지만, 그 날 저녁은 왠지 묘하게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미안, 미츠즈리. 오늘은 같이 못 있어주겠어.]

[별로 신경 쓸 거 없어. 연락도 없이 갑자기 온 건 나니까.]

아침 식사 때. 씩씩한 세 명과는 달리, 나는 조금 머리가 무겁다. 아침에 약한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어젯밤 술의 영향이 계속되고 있다.
어젯밤, 저녁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뒤. 묘하게 고조된 기분과 반가움 때문인지 생각지도 못하게 술자리를 시작해 버린 것이다. 미츠즈리는 꽤나 술이 세고, 세이버는 그 이상으로 술고래, 시로도 금방 빨개지지만 자고 일어나면 멀쩡해진다. 결국, 어젯밤의 술이 남아 있는 건 나 한 사람 뿐. 왠지 엄청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괜찮아, 시로. 오늘 하루는 나와 세이버가 이 녀석이랑 같이 있을 테니까.]

오늘은 아침부터 시로는 루비아의 저택에서 아르바이트다. 나도 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강의 준비나 마구 작성은 둘 다 급한 것도 아니고, 어딘가에 꼭 가야하는 것도 아니다. 뭣보다 아야코 앞에서 마술에 관련된 작업을 할 수도 없다. 게다가 이틀 연속으로 세이버 한 사람에게 미츠즈리를 맡겨 둘 수도 없다.

[그건 괜찮지만, 오늘 밤은 어떻게 할 거야?]

[오늘 밤?]

응? 뭐가 있었어?

[루비아젤릿타의 저택에서 파티가 있지 않았습니까?]

아차, 잊고 있었다. 오늘은 루비아 저택에서 “가면무도회”가 있었지. 그러고 보니, 시로가 루비아 저택에 가는 것도 그 준비 때문이었다. 한심하네, 아직 잠기운으로 머리가 완전히 깨지 않는 것 같다.

[괜찮아, 나는. 갑자기 들이닥친 거니까, 밥 정도는 어디선가 알아서 먹을 테니까.]

[그럴 수는 없어…….]

어쩔 수 없지. 어차피 동료들 모임이다. 시로는 주최측이니까 빠질 수 없겠지만, 나는 세이버에게 대리를 맡기고 아야코의 상대를 하기로 할까.

[미츠즈리도 오지 않을래? 주최자인 루비아 씨라는 사람도 토오사카의 친구야.]

그런데 생각하고 있는 중에, 시로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잠깐, 마술사 파티라고. 거기에 일반인을…….

[토오사카, 정말 아침엔 약하네.]

찔러 주려는 나에게, 시로는 쓴웃음을 지으며 입 모양으로만 “가면무도회”라고 뻥긋거린다.
아, 그렇지……. 그렇다면 마술사로서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것이 관례. 완전히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아야코를 데려가도 상관없다고 하면 상관없나.

[정말 괜찮은 거야?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미츠즈리라면 문제없어. 루비아 씨도 분명히 마음에 들어 할 거야.]

내 걱정은 제쳐 두고, 시로는 ‘어쨌든 토오사카의 친구니까’ 라고 하며 태연하게 웃는다. 나에게 동의를 구해 봤자 오히려 위험해. 그거, 구체적으로 말하면, 내가.

[그럼, 그렇게 할게.]

‘그야, 나도 토오사카의 친구라면 한 번 만나보고 싶어’ 하고 눈을 빛내고 있잖아.

[옷은 어떻게 할 거야? 일단 정식 파티니까 드레스 같은 거 필요할 텐데?]

그렇다고 해도, 역시 군용복 차림의 아야코를 데리고 갈 수는 없다. 내 드레스도 사이즈가 좀……. 젠장, 이놈이고 저놈이고 탱탱해서는…….

[훗훗훗. 준비는 완벽해.]

아야코는 집게손가락을 가볍게 흔들며 웃고는, 큰 배낭의 바닥에서 무슨 상자를 꺼낸다.

[짜짠~!]

안에서 꺼낸 것은 흰 실크 칵테일 드레스와 하이힐.

[……너, 이런 걸 가지고 다니면서 배낭여행한 거야?]

[응. 그야, 봐.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잖아. 호박 마차를 만들어 주는 할머니가 어디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사실은 역시 이브닝드레스가 더 좋지만 말야’ 하고 호탕하게 웃는 아야코. 네가 신데렐라냐. 전혀 티는 안 냈지만, 그걸 입 밖으로 내면 아야코 녀석은 눈이 진심이 되어 버리니까.

[그럼, 갔다 올게. 있다가 전화해 줄 테니까.]

아침 식사를 끝낸 시로를 배웅하고, 우리는 아야코와 셋이 거리로 나갈 준비를 했다.

[그럼 오늘은 어디로? 어제에 이어서 계속 갈까요?]

[아니. 그 전에 잠깐 들러야 할 곳이 있어.]

준비를 마친 세이버의 물음에, 아야코는 그야말로 시원하게 말해 버렸다. 어이, 잠깐 기다려.

[런던에 아는 사람, 우리밖에 없는 거 아니었어?]

[에, 저기, 그게 말이지.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미안, 미안’하면서도 전혀 미안하지 않은 듯한 아야코의 말로는, 아무래도 미국에서처럼 무도의 사부의 소개로, 런던에도 들러 볼 도장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째선지, 그 사부는 거기에서 절대로 묵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뭐야, 그건?]

[잘 모르겠지만, 농담을 잘 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그렇다곤 해도, 소개장을 받았고 연락도 해 주었으니까 얼굴만이라도 내밀어 두자는 것이라고 한다.

[과연. 이곳이었습니까. 아야코의 사부는 옳았습니다…….]

‘여기야’ 하고 아야코가 조금 꺼림칙한 듯이 내민 주소를 보고, 세이버가 왠지 묘한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세이버. 아는 곳이야?]

[네.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안내해 드리죠.]

자세하게 물으려고 해도, 세이버는 왠지 즐거운 듯한 표정으로, ‘가면 알게 됩니다’ 하고 쓴웃음을 짓는다. 좀 신경이 쓰였지만, 세이버가 아는 사람이라면 이상한 곳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그대로 세이버의 안내를 받아 그 도장으로 향했다.

[여기구나. 뭐야, 꽤 멋진 곳이잖아. 깔끔하고.]

도착한 곳은 화이트 채플의 강가. 옛날에는 창고인가 뭔가였을 것이다. 그것을 깔끔하게 고친 도장이었다.

[확실히 깔끔하네. 카페 같은 건 줄 알았어.]

도장은 2층인 것 같다. 그 넓은 플로어 한 쪽에는 정말로 멋진 오픈 카페까지 있다. 그것도 이탈리안의.

[이야, 당신이 아야코? 이야기는 들었어요. 자, 올라와, 올라와.]

그리고 조금 머리가 아파오는 내 옆에서, 환하게 웃으며 스윽스윽 자연스럽게 아야코의 손을 잡아끄는 이 녀석이 이 도장의 주인. 이 녀석은 잘 알고 있다.
쥴리오 에르비노. 시로의 친구인 마술사. 게다가 이탈리아의 종마.
과연, 세이버의 말대로, 아야코의 사부는 틀리지 않았다. 이 녀석의 도장에 여자가 부담 없이 묵어도 괜찮다고는 말할 수 없다.

[헤에. 에르비노 씨도 토오사카와 같은 학교군요?]

[같은 학교라고는 해도 나는 연극 쪽이니까. 전문학교 같은 거지.]

격식을 차리는 얼굴로 묘하게 얌전한 척하는 아야코에게, ‘쥴리오라고 불러’ 라며 지중해의 미소로 회유하는 쥴리오. 반해버릴 정도로 싹싹하다.
확실히 이 녀석은 여자의 적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힘이나 비열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진심으로 여성에게 친절하고 상냥한 것이다. 게다가 쾌활하고 언변이 좋다. 조금이라도 기분을 느슨하게 하면 이 녀석의 페이스에 말려 버린다. 그렇지만 이런 싹싹한 태도는 시로도 조금은……아니, 배우지 않는 게 더 나으려나.

[그럼 몸을 좀 풀고 갈 거지?]

[네. 도복은 가져 왔으니까요.]

[그럼, 탈의실은 전하께 안내를 받아. 나도 갈아입고 올 테니까.]

쥴리오는 미소를 지은 채로 가볍게 윙크하고 스텝을 밟으며 퇴장한다. 그러자 아야코가 한숨을 돌린 듯한 표정으로 내 귀에 입을 가까이 가져 왔다.

[저기, 저 껄떡대는 남자, 정말로 상대가 되는 거야?]

[쥴리오는 강합니다.]

내가 대답하기 전에 세이버가 일어서면서 아야코에게 대답했다. 조금 의미심장한 듯한, 어딘가의 장난꾸러기 어린 아이라도 보는 듯한 말투다.

[아야코도 상대해 보면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대로 자르듯이 말한다.
아야코도 후지무라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일본에 있을 때, 시로의 집에서 세이버에게 도전해 눈 깜짝할 사이에 당한 적이 있다. 세이버의 실력을 알고 있는 이상, 그 말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래도 아직 조금 의심스러운 듯했지만, 아야코는 세이버에게 끌려 탈의실로 사라졌다.

[──핫!]

아야코의 기합과 동시에, 도장 마루가 기분 좋은 비명을 지른다.
무예백반에 정통하고 있다고는 해도, 아야코의 기본은 합기도와 나기나타(언월도 비슷한 무기, 시스프리에서 하루카가 쓰는 무기를 생각하시면 됩니다)라고 할 수 있다. 그 호쾌한 면이 어딘가 아가씨 같은 아야코답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야아~ 굉장하네. 깨끗하게 매어 꽂혀 버렸어.]

마루 위에 내던져진 것에 비해서는 느긋한 쥴리오의 찬사. 하지만 아야코는 조금 전부터 점점 표정이 험악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다다미방이 아니라 마루방. 그런데도 아까부터 펑펑 내던져지고 있는 쥴리오는 몇 번을 메어 꽂혀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얼굴로 일어서서 다가온다. 나라도 알 수 있다. 이 녀석은 일부러 던져지는 것이다.

[에르비노 씨……. 적당히 하지 않겠습니까?]

봐, 드디어 아야코 녀석도 화를 낸다.

[나도 바보가 아닙니다. 당신이 강한다는 것도 압니다. 마지막은 팔과 어깨로 사정없이 날렸는데도 스윽 빠져 나가다니……. 꽤 자신 있었는데.]

도복 차림도 늠름한 아야코는 허리에 손까지 대고, 마루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는 쥴리오를 찌릿 노려본다.

[이래봬도 미국을 다 돌며 꽤나 위험한 경우도 겪어 왔어요. 당신에게 쓰러졌다고 해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러기 위해 이런 곳까지 오고 있는 것이기도 하구요. 조금 더 진지하게 상대해 주지 않겠습니까?]

[어떡한다…….]

미간에 주름을 지으며, 그야말로 닿을 듯이 얼굴을 들이대는 아야코에게, 그 대단한 쥴리오도 머리를 긁으며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다.

[쥴리오, 아야코라면 괜찮습니다.]

그런 쥴리오에게 세이버가 도움을 주었다.

[내가 때려눕힌 적도 있었으니까요. 쥴리오, 한 번 “진심”으로 상대해 주세요.]

다시 생긋 웃으며 황당한 소리를 하기 시작한다. 아야코는 조금 맹하게 있었지만, 쥴리오는 눈을 크게 뜨고 놀라고 있다. 나도 허리를 띄웠다. 세이버는 쥴리오에게 사정 봐 주지 말고 상대해 주라고 한 것이다.

[괜찮겠지요, 아야코.]

[바라는 바야.]

아야코는 그저 진짜 실력을 보여 달라고 하는 뜻 정도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세이버의 말에 활짝 웃으며 대답하고 있다.

[그럼, 아야코. 정말로 간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천정을 올려다보고 있던 쥴리오는 각오를 정했는지, 단숨에 일어나 천천히 미소를 지우며 아야코와 대치한다.

[…….]

동시에 아야코의 얼굴에서도 표정이 사라졌다.
갈색의 도복 차림으로 가볍게 무릎을 굽히고, 양손을 자연스럽게 앞으로 내미는 쥴리오에게, 아야코는 한 걸음에 밸 수 있는 간격을 유지한 채 반신중단으로 대응한다.

[……잠깐, 괜찮겠어?]

완전히 공기가 바뀌었다. 팽팽히 긴장이 되어서, 한 걸음 잘못 디디면 목숨까지 건 공방이 시작될 수도 있는 공기다.
나는 세이버에게 살짝 물었다. 쥴리오는 알고 있었지만, 아야코 녀석은 어느 새…….

[괜찮습니다. 게다가 아야코의 목적은 이것이었을 테니까요.]

세이버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조금 신경이 쓰이는 말투다. 뭔가 알고 있는 건가?

──삭!──

다시 한 번 세이버에게 자세히 물으려고 했을 때, 공기가 움직였다.
쥴리오가 아야코의 반신의 반대편으로 잽싸게 뛰어들었다.

[──핫!]

거기서 아야코는 몸을 돌리지 않고, 몸을 당겨 피한다. 그와 동시에 발을 내딛으며 쥴리오의 턱에 장저(손바닥 하단, 손목 바로 위쪽)를 찔러 올린다.
물론 그런 것은 바로 가드가 되었지만, 그것은 페인트. 장저는 순간 갈고리손이 되어 가드한 손을 잡으며 그 기세로 자신의 몸을 부딪쳐 간다.

[──칫!]

하지만 얕았는지, 쥴리오는 가볍게 몸을 옆으로 피하며, 어떻게 손목을 축으로 역회전하여 아야코의 손에서 손목을 빼낸다. 이 녀석 뭐 이리 탄력이 좋은 거지.

[곤란하네…….]

재빨리 몸을 빼서 간격을 벌린 쥴리오가 가볍게 머리를 흔들었다. 정말 순간 입가에 미소를 띠자, 갑자기 몸을 숙이고 조금 전의 배 정도 빠르게 아야코의 정면으로 육박해 들어갔다.

[──큿!]

차례차례 계속 찔러 들어오는 팔꿈치를, 손을, 아야코는 교묘하게 받아 흘린다. 우와아, 이 녀석 정말로 실력이 늘었네. 나라면 도저히 쫓아갈 수 없는 속도의 움직임을 따라가고 있다.
이길 수 있겠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그런 공방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쥴리오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날카로운 시선으로 아야코를 노려보았다.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운 살기를 품은 마술사의 눈. 그야말로 진짜 쥴리오가 얼굴을 내밀었던 것이다.

[──에?]

무심코 소리를 높였다. 그 순간, 정말 순간이지만 아야코가 얼어붙어 버렸던 것이다.
그런 빈틈을 놓칠 쥴리오가 아니다. 순식간에 간격을 좁히며 틈으로 미끄러지듯이 들어가서 멋들어지게 아야코를 쓰러뜨렸다.

[아야코!]

도장 마루에 조금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쓰러지는 소리가 울린다. 거의 동시에 나와 세이버가 도장 가운데로 뛰쳐나온다. 뭐야, 지금 전혀 손을 못 썼잖아!

[아야코?]

[……응? 아아, 토오사카?]

아야코는 바로 정신이 들었다.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고 바로 뒤로 넘어진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을 것이다. 가벼운 뇌진탕인 것 같다.

[오오! 아야코! 괜찮은가?!]

거기에 틈도 주지 않고 쥴리오가 끼어들어온다. 잔뜩 당황하고 있다. 조금 전의 살기는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할 정도로 허둥거리고 있다.

[아, 괜찮아, 괜찮아요. 내가 정신을 빼고 있었으니까.]

[그렇지 않아, 아야코. 내 잘못이야.]

에헤, 하고 웃는 아야코의 손을 양손으로 잡고 있던 쥴리오는, 눈물까지 글썽거리면서 조심스럽게 안아 올리며 얼굴을 접근해 간다.

[쥴리오, 거기까지. 뒤는 저희들이.]

하고 미소를 지으며 그 양 팔에서 가만히 뺏듯이, 세이버가 쥴리오의 품에서 아야코를 탈환한다. 아, 위험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나나 아야코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네.

[일단 검사를 받는 게 좋겠습니다. 쥴리오, 가까운데 의사는?]

[아…… 그게. 세 블록 떨어진 곳에 4번지. 개업은 하지 않았지만 항상 신세를 지는 의사가 있어.]

왠지 아쉬운 듯이 잠시 두 손을 조물조물 거리던 쥴리오에게, 세이버가 쓸데없는 소리는 꺼내지도 못할 미소를 띠며 말한다. 아야코의 스승은 확실히 틀리지 않았다. 이대로 쥴리오에게 맡겼다면, 몸은 둘째치고 정조의 위기다.

[그럼 가죠.]

그대로 세이버는 도장을 나오려고 했지만,

[저기……세이버 씨?]

세이버에게 공주님처럼 안겨 있던 아야코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혼자서 걸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옷도 갈아입고 싶고 샤워도 하고 싶은데. 꽤 땀에 절어 있으니까. 이대로 의사한테 간다는 것도 좀…….]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허락을 구하는 듯한 눈초리로, 나와 세이버를 올려다보는 아야코. 비탄에 잠긴 쥴리오는 무시하고 우리는 몸을 깨끗이 하고 의사에게 가 보기로 했다.

[여긴가?]

[그런 것 같네. 일반 가정집으로 보이긴 하지만.]

쥴리오에게 소개 받은 집은, 크레센트로 대표되는, 영국의 거리에서는 자주 있는 집합주택(테라스 하우스)의 하나였다.

[어쨌든 물어보죠.]

세이버가 천천히 초인종을 누르자, 귀여운 벨소리에 맞추어, 또 꽤나 귀여운 목소리가 물어 왔다.

[네. 누구십니까?]

[여기에 의사 선생님이 계신다고 해서 찾아왔습니다. 에르비노의 도장에서 머리를 좀 부딪친 사람이 있어서요. 친찰을 받고 싶습니다만.]

[그거 큰일이네요. 지금 열어 드릴게요.]

열린 문에서 얼굴을 내민 것은 역시 귀여운 여자 아이였다. 어머? 이 아이 어디선가…….

[세, 세, 세, 세, 세이버 씨!]

[아, 여기가 일라이저의 집이었군요.]

갑자기 용수철이 튀어 오르듯이 이름을 외치는 여자 아이에게, 세이버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했다. 아, 생각났다. [브라스]의 여동생이다. 잠깐 기다려, 그럼 의사라는 건…….

[개업은 하고 있지 않지만.]

나왔다!

[오랜만입니다. 커티스 씨.]

[음, 오랜만이군요. 레이디 세이버.]

나와 버렸다. 안에서 당당히 나타나서 예의바르게 세이버의 손을 잡고 입맞춤을 하는 이 녀석은, 틀림없이.

[그래서 환자는? 미스 토오사카. 설마 당신이라는 건 아니겠지?]

‘놋쇠(브라스)’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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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아무튼 24.5화 외전입니다. 미츠즈리 영국 데뷰~

음. 아무튼 재미있게 보시길.

그리고 주는 대충 간단히 달았습니다. 일일이 달려니 너무 귀찮아서. 죄송. ^^;;

생물체 님께 여쭤봤더니 후유키 편은 다 하시겠다고 답장을 보내셨길래, 저는 후유키 직후인 24.5화부터 계속 해 가겠습니다.

그나저나 생물체 님 페이트 패치도 엄청 기대 중이니, 우리 생물체 님께 후유키 너무 조르지 맙시다. 크크크.

번역하면서 점점 무성의해진다고 할까… -_-;;; 왠지 그런 느낌이 자꾸 들게 되는데… 죄송합니다. 요즘 다른 걸로 정신없어서 짬짬이 하다보니…

그래도 읽기 불편하지 않도록 그런 쪽으로 신경 많이 쓰고 있으니까 쉽게 읽힐 거예요. 혹시 읽기 어려운 부분이 있으면 리플 달아 주세요~ 그럼 나름대로 궁리해서 다음엔 좀더 낫게 번역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_-;;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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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기……전데요.]

빙글빙글 뭔가가 돌고 있던 내 머리를 현실로 되돌린 것은, 쭈뼛쭈뼛 얼굴을 내미는 아야코의 목소리였다. 안 돼, 안 돼, 아야코는 마술과 관련된 사람이 아니니까 제대로 이야기 해 둬야지.

[이쪽은 미스 미츠즈리입니다. 제가 일본에 살 때 고등학교 친구로, 방금 전 미스터 쥴리오의 도장에서 머리를 좀 부딪쳤어요. 그래서 검진을 받으려고 이곳에 왔어요.]

[미츠즈리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과연, 알았소. 그럼 미스 미츠즈리. 안쪽 진찰실로. 일라이저, 너는 레이디 세이버와 미스 토오사카에게 차라도 내 줘.]

내 소개와 아야코의 인사를 받고, 완전히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브라스”는 아야코를 데리고 진찰실로 들어갔다.

검붉은 눈동자
[오렌지색 방패] ─Ayako Mituduri─ Fate/In Britain외전─4 후편
Αιγιζη

[그럼, 그 분은 일반인이군요.]

“브라스”의 저택의 응접실에서 나와 세이버는 일라이저가 준비해 준 차를 마시면서 아야코를 기다렸다. 여기저기에 도구가 조금씩 보일 듯 말 듯 하긴 하지만, 빅토리아 시대의 품위 있는 가구들에 둘러싸인, 기분 좋은 응접실이다. 변함없이 물건만은 좋은 것을 두고 있다.

[일단 못 박아 뒀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괜찮은 걸까?]

[린, 커티스 씨라면 괜찮습니다. 그런 부분을 착각할 분은 아닙니다.]

[그래요. 오빠는 그런 면에서는 다른 사람 이상으로 칼 같은 사람이니까요.]

내 걱정에 세이버가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고, 일라이저도 휙 고개를 들며 말한다. 일라이저는 남매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시로도 그렇고, 세이버도 그렇고, 요즘 내 주위에서 그 녀석에 대한 평가가 높다. 어딘지 모르게 석연치 않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의사 선생님.]

[특별히 이상한 곳은 없군. 혹시 정밀검사를 받아 보고 싶다면, 대학 병원을 소개해 주지요. 잘 아는 곳이 있소.]

그러고 있는 중에, 안쪽에서 아야코와 “브라스”가 나왔다. 아무래도 아무 이상도 없었던 것 같다. 조금 안심했다. 자, 그럼 용건은 끝났으니 얼른 여길 뜨자.

[그럼, 의사 선생님도 토오사카도 같은 학교 친구였습니까?]

[흠, 나는 조각과 박물관학을 전공하고 있소. 지금은 의사이긴 하지만, 나중에는 큐레이터를 할 생각이오.]

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이런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이상은 없다고 했지만, 머리를 부딪친 것이다. 잠시 동안은 안정하고 있는 게 좋다고 하고, 아야코가 묘하게 이곳에 흥미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차를 마시며 이렇게 수다를 떨고 있게 된 것이지만,

[조각가의 아틀리에로는 보이지 않는데요.]

[공방은 다른 곳에 있소. 이곳은 박물학과 관련된 수집품이 조금 있는 것이오.]

왠지 아야코는 마음에 든 것 같다. 곰곰이 실내를 둘러보며 “브라스”의 득의양양한 설명을 감탄하면서 듣고 있다. 뭐, 그런 쪽 물건은 놓여 있지 않으니까 문제는 없지만. 이 녀석, 이런 취미가 있었나?

[이것은?]

[응? 아아, 소위 부적이라고 하는 것이오.]

아야코가 찾아낸 것은, 액자에 싸여 벽에 장식되어 있는 장신구 콜렉션이었다.
이집트를 중심으로 한, 스카라브(*1)나 앙크(*2), 로터스(연꽃)와 같은 수호구를 귀금속이나 보석으로 조형화한 부적. 물론, 물건만은 최고급품을 자랑하는 “브라스”의 콜렉션. 모두 “진품”이다.
그 때 순간, 아야코의 표정이 굳어진다. 그렇지, 조금 전 쥴리오와 상대할 때 순간 보였던 표정과 같다.

[흠…….]

“브라스” 녀석도 눈치 챘을 것이다. 갑자기 일어서서 아야코의 눈앞에 있는 부적 하나를 손에 들었다.

[“호루스의 눈(우쟈트)”인가. 이게 어떻게 되기라도 했소?]

[저기, 그게……. 조금 노려보고 있는 것 같아서 무섭다고 할까…….]

핫 하며 정신을 차리고, 부끄러움을 숨기듯이 쓴웃음을 짓는 아야코. 조금 놀랐다. 이 녀석은 이런 오컬트 같은 건 전혀 관심도 없고 믿지도 않는 녀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런, 저런.]

아야코의 대답에, “브라스”는 살짝 눈썹을 찡그리고는 부적을 다시 바라 본다.

[그것의 반대라오, 미스 미츠즈리. 이것이야 말로 눈의 공포를 피하는 수호부라오.]

평소처럼 찡그린 얼굴인 채, “브라스”는 호루스의 눈을 아야코의 손에 쥐어 주었다.

[“눈에는 눈”이라고 하지. 당신에게 주겠소.]

[저기, 이걸?]

[의사로서의 처방전이오. 받으시오.]

“브라스”는 그대로, 가볍게 손을 흔들고, 희미하게 입가를 비틀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저게 아야코의 비위를 맞춰주려 웃은 것인가.

[아……아하하. 받아 버렸네.]

잠시 멍하게 있던 아야코는, 수줍은 듯이 웃으며 그대로 부적을 목에 걸려고 한다.

[자, 잠깐 기다려. 나도 좀 보여 줘.]

당황해서 나는 아야코를 말렸다. 어쨌든 “브라스”의 물건이니, 괜찮다고는 생각하지만, 뭔가 이상한 짓이라도 해 놨으면 골치 아파진다.

[왜? 토오사카도 가지고 싶은 거야?]

[그럴 리 없잖아.]

히죽히죽 웃으면서 나에게 넘겨준 부적을 자세히 확인한다. 금과 은, 그리고 터키석으로 만들어진 산뜻하고 섬세한 사안 방어 부적. 특별히 이상한 세공은 없다. 은장식과 터키석은 덧붙여 진 것이지만, 어디까지나 세공품 이상은 아니다. 눈동자 부분만 붉은 색이 감도는 금으로 그 부분이 조금 특이하기는 하지만, 틀림없이 호루스의 부적이다.

[내 조부께서 이집트에서 수집한 물건이오. 원래는 그리스의 유물인 것 같은데, 세세한 세공은 이집트에서 한 것 같소.]

그런 내 옆에서 “브라스”가 주절주절 설명을 늘어놓고 있다. 그리스에서 호루스의 눈이라는 것은 좀 특이하지만, 그걸로 세공이 덧붙여진 이유도 알았다.

[저기, 값이 비싼 물건은 아닌가요?]

[장식품으로는 그리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오. 어디까지나 부적일 뿐이지. 신경 쓸 필요 없소.]

설명을 듣고 있는 동안 불안해졌을 것이다. 조금 쭈뼛거리는 아야코의 물음에 “브라스”는 느긋하게 대답한다.

[그럼, 사양 않고 받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닥터 브란돌.]

그것을 들은 아야코는 “브라스”에게 인사하고 나서, 나에게서 돌려받은 부적을 목에 걸었다. 이상한 곳은 없었으니 괜찮을 것이다, 분명히, 아마……어쩌면.

결국, 그 뒤로는 조심하기로 해서 런던 관광을 취소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돌아가 보자, 이미 아야코 앞으로도 초대장이 도착해 있어, 이제는 저녁에 “가면무도회”에 갈 준비를 하고 기다릴 뿐이었다.

[저기, 미츠즈리.]

샤워를 마치고 몸치장을 하면서, 나는 조금 마음에 걸리던 것을 묻기로 했다.

[너, 그런 거 믿고 있었던 거야?]

[으으응……. 웃지 않을 거지?]

어디에서 꺼냈는지, 속옷까지 고급 실크로 몸을 꾸미고, 아주 기분이 좋아져 목에 걸려 있는 부적을 손끝으로 만지작거리고 있던 미츠즈리는, 조금 표정을 가라앉히며, 왠지 부끄러운 듯이 대답했다. 이전에는 전혀 보지 못했던 표정이지만, 오늘은 자주 보게 되는 얼굴이다. 나는 한 번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계속하도록 재촉했다.

[저기……우리가 아직 2학년이었을 때 말야. 기억해? 뭔가 엄청난 겨울이었잖아?]

그것은 기억하고 있다. 어쨌든 그 소동의 한가운데 있었으니까. “성배전쟁”. 아야코가 말하는 것은 그 때 일이다.

[그 때, 나, 이상한 녀석에게 습격을 당했잖아. 아, 그런 얼굴 안 해도 돼. 소문처럼 강간당한 것도 아니고, 약으로 엉망진창이 된 것도 아니니었으니까.]

아무래도 내가 엄청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야코는 쓴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고, 이건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은 거지만, 하며 진지한 얼굴로 말을 계속했다.

[나를 덮친 상대는 말야. 사실은 괴물이었어.]

[괴물?]

되물었지만, 그 일은 알고 있다. 그 때 아야코를 덮친 상대는 상황으로 추정하면 아마 라이더였을 것이다.

[얼굴은 이상한 마스크를 하고 있어서 몰랐지만, 무서울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였다는 건 확실해. Body conscious(여성의 체형을 강조한 패션) 계열의 이상한 라이더 슈츠(카레이서나 바이크 레이서가 입는 몸에 딱 달라붙는 옷)같은 것을 입고, 땅에 닿을 듯이 긴 머리카락을 한, 정말로 등골이 얼어붙을 만큼 아름다운 여자였어. 한 눈에 알았지. 이 여자는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니다, 괴물이다, 라고.]

아야코는 일단 말을 끊고, 진지하게 들을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듯이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거기에 대답하듯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아야코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래봬도 그런 위험한 일에는 꽤나 자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지, 그 녀석이 한 번 본 순간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어 버렸어.]

[한 번 보다니……마스크를 쓰고 있었다며?]

[응, 하고 있었어. 그래도 말했잖아? 괴물이라고. 마스크를 꿰뚫기라도 한 듯이 보여 버렸어. 무서울 정도로 예쁜 눈동자가.]

호루스의 눈을 꽉 움켜쥐면서, 아야코는 분한 듯이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그게 분해서?]

[아니, 상대가 안 된다는 건 괜찮아. 그런 괴물에게 인간은 절대로 이길 수 없을 거야. 그건 정말 한 눈에 알았어. 분한 건 그런 게 아냐. 나는 그 때 손가락도 까딱 할 수 없었어.]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순수하게 공포와 본능에 의한 것이었다고 한다. 아야코는 ‘습격을 당하고 의식을 잃기 전에, 이미 패닉에 빠져 기억조차 확실하지 않았어’ 라며 입술을 깨물었다.

[당하는 것은 상관없어. 그렇지만 말야, 그 순간까지 나는 나로 있고 싶었어.]

아야코는 거기까지 말하고, ‘무예백반, 강건 미츠즈리 씨라고 잘난 척 해도 결국 그 정도야’ 라며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

[그럼, 무사 수행이란 건.]

[에미야는 변함없이 예리해. 전혀 잘못 본 게 아니야. 그렇지만, 아직 이야. 오늘도 그 껄떡남이 한 번 노려보니까 얼어버렸어.]

다음에는 같은 꼴을 당해도 적어도 마지막까지 자기 자신으로 있고 싶다. 그러기 위해 여자 혼자서 대륙을 횡단하는 위험한 여행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과연. 얼마 전에 후유키에 돌아갔을 때, 나는 라이더가 메두사였다는 것을 들었다. 최강급 사안에 대항할 수 없었다는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것을 모르는 아야코에게는, 자신이 자신에게 졌다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눈동자를 무서워하면서도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기를 쓰고 있다는 것인가.

[호걸이라는 평판을 지키는 것도 꽤나 고생이구나.]

[그건 마찬가지잖아?]

그러니까 크게 웃기로 했다. 머리를 빗으며 속옷 차림의 여자 둘이 마주 보며 웃는다는 것도 어떨까 하고 생각하지만, 상대가 안 되는 적에게 당했으면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려는 아야코를 불쌍히 여기는 것만은 절대로 할 수 없었다.

[우와아, 세레브(**)네.]

[무슨 그런 농담을. 여기는 진짜 상류계급이야. 극동의 모조품과 같은 취급은 하지 말라구.]

아름답게 몸치장을 한 우리가 루비아 저택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초대받은 손님의 대부분이 모여 있는 것 같았다. 롤스로이스가 잔뜩 나란히 주차되어 있는 곳에 미니를 타고 들어간 다는 것은, 상당한 담력이 아니면 못할 일이다. 뭐, 우리는 내용으로 승부하니까 포장 같은 것에 구애 받지 않지만.

[린, 아야코. 그럼 가죠.]

세이버의 선도로 우리는 회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세이버와 나는 색을 바꿔 입어, 세이버가 빨간 머메이드 드레스, 내가 파란 원숄더 드레이다. 거기에 하얀 슬렌더 라인의 미츠즈리가 가세해, 스스로 이런 말 하기는 좀 뭐하지만, 꽤 멋진 라인 업이라고 생각한다. 에스코트가 없다는 것이 좀 골치 아프지만, 시로가 주최측 집사역이니 어쩔 수 없다.

[야아, 기다렸어.]

그렇게 생각한 순간, 우리 쪽으로 멋있는 턱시도가 다가온다. 이어서 위풍당당히 걷는 예복과 종종걸음으로 귀여운 옅은 녹색 드레스도 다가온다.

[어머, 닥터도 참석하시는 거였나요?]

[흠, 시로 에미야에게 들었소. 여러분에게 에스코트가 없다고 하더군. 좀 더 빨리 알았더라면 이쪽에서 먼저 신청을 했을 테지만.]

“브라스”다. 여전히 씁쓸한 표정으로 나에게 시선을 던진다. 이런, 시로 녀석, 쓸데없는 짓을…….

[시로 씨도 회장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어서 가죠.]

뭐, 그렇다고 해도. 쥴리오도 “브라스”도 이런 일에는 빈틈이 없다. 우리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의 에스코트를 받기로 했다.

[그럼, 아야코. 아랫배에 힘주고 따라와.]

[상관없지만, 왜? 여기서 싸움이라도 하는 거야?]

[아냐. 호스트에게 인사하러 가는 거야.]

싸움이 된다면 차라리 깔끔해서 좋을 지도. 나는 그런 생각으로 하며, 아야코를 오늘 밤의 호스트, 루비아에게 데려 갔다.

[우와아, 뭐야? 진짜 공주님?]

루비아를 앞에 두고 아야코는 나를 툭툭 치며 작은 목소리로 묻는다. 뭐, 확실히 대단하다, 루비아. 평소와 전혀 다름없는 슈프란 씨를 뒤따르게 하며, 몇 배나 파워 업 한 금 세공품 같다. 이것은 이제 내숭 같은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가까이 가서 찬찬히 보는 게 좋아…….]

그러니까 나도 작은 목소리로 이것만 말한다. 나는 아야코에게 간파 당했는데, 루비아만 그렇지 않다는 건 조금 열 받기도 한다. 여기서는 아야코가 확실히 가면을 벗겨 주지 않으면 안 된다.

[미스 에델펠트. 제 친구인 미스 미츠즈리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미스 미츠즈리. 만나 뵙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젠장, 오늘은 한층 더 방어가 굳세다. 내가 넋을 잃을 정도로 아가씨답잖아.

[미츠즈리 아야코라고 합니다. 이번에 무리를 받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거기에 아야코도 예의 바르게 무릎을 굽혀 인사한다. 평소에는 거침없는 아야코지만, 이런 장소에서는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게 대단하다.

[괜찮습니다. 미스 토오사카의 친구라면 제 친구이기도 합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아야코에게 생긋 웃으며 반짝반짝 눈동자를 빛내는 루비아. 빨리도 손을 쓰기 시작하는군.

[이야기라고 하면, 미스 토오사카에 대한 것 말인가요?]

[아니요. 일본에 대해서 말이죠. 거기엔 미스 토오사카의 이야기도 들어가겠지만 말이죠.]

[그렇지만, 미스 토오사카는 일본에 있을 때부터 그야말로 재원이었기 때문에, 별로 재미있을 만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어쨌든 빈틈없는 여성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아야코도 보통이 아니다. 뭔가 느껴지는 게 있었을 것이다. 미소를 지으면서 뭔가 적당히 얼버무리는 말투로 탐색에 들어간다.

[그것보다 미스 에델펠트는 미스 토오사카의 학우이시죠?]

[네, 미스 토오사카와 같이 보석 세공을 중심으로 해서 디자인과 관계된 것을 배우고 있어요.]

[그렇다면 지금은 미스 에델펠트가 미스 토오사카에 대해 더 자세히 알지도 모르겠네요. 방금 말씀드린 대로, 일본에 있었을 때에 그녀는 빈틈이 없었으니까요.]

미묘하게 이야기를 비켜나가며 자신의 페이스로 끌어들이려는 아야코. 잠깐, 결국 안주거리는 나야?

[그 정도였나요?]

[네, 저도 그녀와 매우 친하게 지내고 있었습니다만, 눈치 채지 못한 사이에 좀 더 친한 사람이 생겨 버려서 말이죠.]

어이, 이봐. 너 지금 무슨 소릴 하고 싶은 거야.

[그 분이 더 자세히 아실지도 모르겠군요. 미스터 에미야라고 알고 계신가요?]

아아, 젠장. 그렇게 나왔냐. 나뿐만 아니라 루비아도 순간 표정이 변한다.

[미스터 에미야와는 저도 친구였지만, 설마 그 벽창호가 미스 토오사카를 손에 넣으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시로우는 제 시종입니다. 벽창호라고 할 정도로 눈치가 없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상당히 날카로운 남자였지만 자신에게는 전혀 무관심한 사람이었죠. 저래 봬도 여성에게 인기도 있었고, 남 몰래 좋아하던 친구도 한 손으로는 셀 수 없을 정도로…….]

[그랬었나요?]

조금씩 작아지는 아야코의 목소리에, 루비아도 무심코 끌려 들어가듯이 몸을 가까이 해 온다. 나도 그건 몰랐어. 루비아와 함께 무심코 귀를 가까이 가져가 버린다.

[사실은……저도…….]

뺨을 희미하게 붉히며 더욱 더 소리가 작아지는 아야코. 우우, 거짓말…….

[……라는 건 농담~.]

하고, 아야코는 뺨이 닿을 정도로 가까워진 우리에게서 샥 몸을 빼며 히죽 웃었다.

[큭.]
[……미스 미츠즈리.]

자기도 모르게 두 사람은 므─하고 아야코를 노려보았다. 이 녀석, 시로를 미끼로 낚시질 한 건가.

[아가씨.]

무심코 아야코에게 한 걸음 다가서는 우리에게, 뒤에서 슈프란 씨의 가벼운 헛기침이 들려 왔다. 읏, 이런. 나까지 함께 걸려 버리면 어떻게 하냐.

[잘도 해 주셨군요, 미스 미츠즈리.]

루비아도 역시 깨달은 것 같다. 샥─ 다시 내숭을 떨었지만, 아주 잠깐 동안 벌레 씹은 듯한 표정으로 아야코를 노려보고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졌어요. 역시 린의 친구네요.]

[그 정돌 가지고 뭘. 그래도 오늘은 손님으로 와서 다행이네요. 제대로 사귀면 당신과는 틀림없이 죽이네 마네 하는 관계까지 갈 것 같으니까요.]

거기에 아야코도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어이, 너 또 그런 말을. 그 대단한 루비아도 눈을 휘둥그레 뜨며 놀라고 있다.

[그럴 지도 모르죠. 그래도 당신이라면 등 뒤는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군요.]

그렇다곤 해도 루비아는 루비아다. 완전히 자세를 바꾸어 꽃이 피듯이 미소를 지으며 난감한 소리를 하고는, ‘즐거운 시간되시길’ 하고 인사하고는 다음 손님에게 인사하러 간다.

[이야아, 설마 토오사카 같은 사람이 이 세계에 둘이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

남은 내 옆에서 감탄한 것처럼 실례되는 말을 중얼거리는 하얀 드레스의 미인. 루비아의 내숭이 드러난 것은 기분 좋지만, 복잡한 기분이네, 이거.

나는 그 때부터, 아야코를 데리고 아는 사람들에게 소개를 하며 돌았다. 아무튼 이곳에 있는 사람은 반 이상이 마술사. 사람들에게는 제대로 아야코의 입장을 밝혀 두지 않으면, 이상한 참견이 들어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내 주변에는 아무래도 마술사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축제를 좋아하는 사람이 모여 있다.

[여~, 미츠즈리. 어때, 재미있어?]

이래저래 하고 있자, 드디어 시로가 얼굴을 내밀었다. 양손에는 글라스를 들고, 나와 아야코에게 건네주면서 싹싹한 미소를 짓고 있다.

[재미있긴 하지만. 에미야, 너 생각보다 쓸 만하구나.]

여기엔 아야코도 조금 놀라고 있는 것 같다. 깔끔하게 회색 턱시도를 입고, 싹싹하게 여기저기 말을 걸며 손님에게 대응하고 있는 시로는, 집사 같다기보다는 훌륭한 주인(호스트) 그 자체다.

[루비아 씨가 잠깐이라도 얼굴을 비추라고 시끄러워서 말야. 좋아서 이러고 있는 게 아냐.]

미간에 살짝 주름을 지으며 ‘골치 아파’ 하며 입을 내미는 시로. 그렇지만 꽤나 폼이 난다고 생각한다.
6 피트를 넘어 훌쩍 커버린 키. 얼굴도 소년다운 부드러움을 남긴 채 남자로서의 엄격함이 갖추어져 있다. 응, 좋은 남자야. 왠지 기쁜데.

[토오사카, 뭐야, 실실 웃고.]

[벼, 별로 아무 것도 아냐.]

안 되지, 안 돼. 얼굴에 드러나 버렸나. 차갑게 노려보는 아야코에게 나는 웃음으로 넘겼다.

[흐응~, 그래. 나는 아무래도 방해꾼인 것 같네. 잠깐 헌팅이라도 하고 올래. 둘이서 잘 해봐.]

그런 나를 도끼눈으로 바라보던 아야코는, 갑자기 표정을 바꾸어 싱긋 웃고는 손을 흔들며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어라……. 괜찮은 거야? 토오사카?]

[으음……. 괜찮을 거야. 대충 소개는 다 했고. 저쪽에는 세이버도 있으니까.]

[쥴리오나 커티스도 있지. 그렇다면 괜찮겠네.]

잠시 걱정스러운 듯이 눈으로 아야코를 쫓던 시로는, 내 말을 듣고, 아야코가 간 곳에 세이버나 쥴리오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안심한 듯이 웃었다.
그렇다면 잠깐 즐겨도 상관없을 것이다. 나는 우아하게 미소를 지으며 시로를 향해 한 손을 내밀었다.

[그럼, 에미야 군. 지금부터 어떻게 할 거야?]

[에? 으음……. 한 곡 추시겠습니까? 미스 토오사카.]

[네, 기꺼이.]

시로는 잠깐 멈칫했지만, 천천히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 허리를 숙이며 내 손을 살짝 잡았다. 좋아좋아, 그게 정답. 하면 되잖아.

[이야, 왕비님(바로네스). 즐거운 것 같군요?]

그리고 잠시, 시로와 함께 열심히 관계를 만드는데 전념하고 있는 사이에, 쥴리오가 춤추는 듯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쥴리오도 즐거운 것 같네.]

[그거야 뭐.]

시원스럽게 주위에 미소를 날리는 쥴리오에게, 시로가 반쯤 기가 막힌 듯이 대답한다. 능숙하게 빠뜨린 곳 없이 신경을 쓰고 있다. 아무리 나라도 여기에는 감탄했다. 보통 껄떡남이 아니네.

[왕비님(바로네스)도 변함없군요.]

그대로 슬쩍 내 손을 잡아 가볍게 입을 맞추는 쥴리오. 그 때 순간 눈매가 험해진다.

[무슨 일 있었어?]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는 표정이라, 나는 가볍게 잡담하는 사이에 작은 소리로 물었다.

[좀 짜증나는 녀석을 봐서…….]

아무래도 시계탑의 젊은 남자로, 쥴리오와 세력을 양분하는 껄떡남의 얼굴을 봤다는 것 같다. 나도 이름은 들어 알고 있었다. 분명히 그 녀석은 쥴리오와는 다르게 본과였을 텐데.

[왜? 라이벌 등장?]

[왕비님. 그건 심하군요. 저는 여자를 “매료(챰)”하지는 않아요.]

쥴리오는 웃으면서도 눈만은 사납게 한 체 대답한다. 그리고는 작게 “브론즈(구리)”라고 덧붙였다. 과연, 사안을 가지고 있다는 거군. 그것도 “브론즈”라면 꽤나 고위의 사안이다. 확실히 쥴리오는 껄떡대기는 하지만, 마술로 여자를 어떻게 하려는 썩은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런 녀석과 한 세트로 취급되면 열 받을 만 하지.

[뭐, 전하나 왕비님이 걸릴 리는 없겠지만, 일단 조심해요.]

쥴리오는 그렇게 말하고 윙크하고 나서 시원스러운 미소를 날리며 멀어져 간다. 쥴리오의 저것도, 나름대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미츠즈리는 괜찮은 건가?]

기가 막힌 듯이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시로가 불쑥 중얼거렸다. 그 한 마디로 생각이 미쳤다. 아야코는 사안에 형편없이 약하다. 게다가 그 녀석은 마술사가 아니다. 혹시 만에 하나라도 그런 녀석에게 걸리면…….

[찾아보자. 도와줘.]

[그래.]

나는 당황해서 시로에게 말을 던지고 아야코를 찾는다. 사정을 모르는 시로도 내 안색을 보고 뭔가 깨달았을 것이다.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고 나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어쨌든 우선 아야코를 찾아야지.

[아야코랑 같이 있지 않았어?]

[아니오. 아야코는 린과 같이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덩치 큰 “브라스”가 표적이 되어 세이버는 금방 찾았다. 그러나 아야코는 없다. 세이버와 “브라스”, 그리고 일라이저가 같이 있을 뿐이었다.

[린,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내 표정을 보고 세이버도 표정을 딱딱하게 하며 되묻는다. 나는 쥴리오에게 들은 이야기와 아야코에게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 말했다.

[그 부적 말인데, 설마라고는 생각하지만 손을 댄 건 아니겠죠?]

[유감이지만, 그것은 조부께 넘겨받은 그대로지. 상당한 부적이지만, 역시 “브론즈”에는 상대가 안 되오. 발동하면 부서져 버릴 거고, 그대로 끝이겠지.]

문득 부적을 생각해 내고 “브라스”에게 물었지만, 아니나다를까, 그다지 쓸 만한 수호구는 아닌 것 같다. 아쉬운 듯이 ‘이럴 줄 알았다면 내가 직접……’ 하고 중얼거리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게 그야말로 다행이다.
참 나, 아야코 녀석,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저기…….]

[왜 그래, 일라이저?]

이 때 작은 일라이저가 올려다보듯이 시로에게 말을 걸었다.

[아야코 씨라면 방금 전 중앙정원으로 나가는 것을 봤어요. 남자와 함께…….]

잠깐.

[어떤 녀석이었어?]

[그게……시로 씨, 기억해요? 이 전에 런던 거리에서…….]

일라이저의 말에 따르면 전에 나와 루비아에게 뒷 수작을 건 마술사 중에 사안술사 한 명이 있었다고 한다. 한 눈에 전신 마비가 될 정도의 사안술사. 틀림없이 “브론즈” 클래스의 사안이다.

[중앙정원이라. 시로, 세이버.]

만난 적은 없지만, 그런 거라면 그 녀석은 우리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 일행인 아야코에게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 나는 바로 두 사람에게 말하며 중앙정원으로 뛰어 나갔다.

‘나도 상관이 없진 않군’ 하며 따라온 “브라스”, 거기에 오는 도중에 만나 끌고 온 쥴리오까지, 우리들은 중앙정원을 이리저리 돌아봤다.

[어때? 있었어?]

[이쪽에는 없었습니다.]

[중앙정원에서는 저택을 지나지 않고는 밖으로 나갈 수 있소. 그쪽으로 끌고 갔다면 골치 아파지는데…….]

[공주님에게 물어봤어요. 그 녀석의 차는 아직 남아 있다는데. 그 쪽에는 사람을 붙여 놨어.]

하지만 아야코의 모습은 아무데도 없다. 루비아에게 달려가 확인한 쥴리오의 보고가 유일한 희소식이다. 차가 아직 있다는 것은, 적어도 그리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저기……이것이…….]

중앙정원에 있는 분수에 다시 한 번 모여, 지금부터의 수색 방침을 정하려고 할 때, 일라이저가 울 것 같은 얼굴로 두 손에 뭔가를 들고 왔다.

[……미스 미츠즈리에게 건네준 “호루스의 눈”의 파편이군.]

그것을 받아 자세히 보던 “브라스”가 평소보다 더욱 기분 나쁜 목소릴 중얼거린다. 젠장, 그렇단 이야기는 아야코가 벌써 사안에 잡혔다는 거 아냐!

[어쨌든 나눠서 다시 한 번 찾아보자. 시로, 미안하지만 루비아에게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해 주지 않을래?]

[알았어. 바로 갔다올게.]

우리는 다시 한 번 더 중앙정원을 뒤지기 시작했다. 젠장……아야코에게 무슨 일이 있다면, 절대로 그냥 두지 않겠어. 이번엔……악질 병 정도로 끝내지 않을 거니까!
모두가 흩어진 뒤에 나도 찾아보려고 한 걸음 내디었는데,

[──아야야!]

갑자기 넘어졌다. 드레스 자락을 갑자기 당겨져 기세 좋게 앞으로 넘어진 것이다. 크으으, 코를 찍었어. 원 숄더 드레스라고, 위험하잖아! 도대체 뭐가…….

[아, 미안, 토오사카.]

뒤돌아보았더니, 나 같이 엎드려 있는 아야코와 눈이 마주쳤다. 내 드레스 자락을 잡고, ‘이야, 미안미안’ 하며 머리를 긁고 있다.

[잠──음?!]

[아아, 미안. 좀 골치 아프게 됐으니까 조용히 하지 않겠어? 도움을 부탁할 사람이 토오사카 밖에 없어.]

고함을 치려고 했는데 갑자기 손을 뻗어 입을 막아 버렸다. 왠지 곤란한 얼굴로 따라오라는 시선으로 나를 재촉한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갑자기 사라져서 걱정했다고.]

[아니, 그게, 잠깐 헌팅 당해서 말야.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네 발로 엎드린 채 아야코의 뒤를 따라가면서 중앙정원의 관목 사이로 기어 나갔다. 도대체 뭔 일이야, 실컷 걱정하게 만들고는…….

[꽤 멋진 남자였는데, 인기척이 없어졌나 했더니 갑자기 가슴에 손을 뻗어서…….]

소곤소곤 땅바닥을 기어가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드레스 차림의 미녀 두 명. 어쩔 수 없이 이러고 있긴 하지만, 이거 완전히 이상한 꼴이잖아.

[그래서?]

[손목을 꺾어서 휙 던져 버렸는데……그대로 돌처럼 굳어 버렸더라고…….]

여기, 여기라고 이끄는 대로 관목의 아래까지 가보자, 거기에는 강강술래라도 추고 있는 꼴로 완전히 뻗어 있는 미남이 한 명. 그렇군, 이 녀석인가…….

[숨은 쉬고 있는 것 같지만. 봐, 눈은 뜨고 있는데 보이지는 않는 것 같고, 돌 같이 굳어져 버렸잖아…….]

[무서워져서 여기까지 질질 끌고 들어와서 숨어 있었단 말이야?]

[응. 그랬더니 이상한 사람들이 뭔가를 찾아다니고 있더라고.]

그건 우리들이다. 그렇구나, 이 녀석, 우리에게서 도망쳐 다니고 있었구만. 당연히 찾을 리가 없지…….

[알았어. 내가 여기 있을 테니까, 다른 사람들 데리고 와. 우리가 어떻게든 할 수 있을 테니까.]

[정말 고마워, 토오사카.]

박수까지 치며 나에게 감사하고는, 아야코는 황급히 저택으로 돌아간다. 자, 그럼 어떻게 손을 봐 줄까…….

[저기……그 사람 괜찮을 까요. 닥터.]

[흠……. 돌발성 응고형 간질 같은 거요. 미스 미츠즈리가 신경 쓸 필요는 없소. 당신 탓이 아니라 단순한 병이오.]

‘생명에도 전혀 이상이 없소’ 라며 자신이 넘치는 “브라스”의 설명. 그야말로 적당적당한 설명이지만, 이런 때는 이 녀석의 의미 없이 당당한 태도가 도움이 된다.

[다행이다.]

갑자기 긴장이 풀렸을 것이다. 휴우 하고 한숨을 돌린 아야코는 분수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병이라면 어쩔 수 없지요. 그 사람은 호스트인 제가 맡겠습니다. 미스 미츠즈리는 신경 쓰지 말고 파티를 즐기세요.]

시원스러울 정도로 밝게 미소를 지으며 루비아가 고용인에게 지시해서 미남자를 옮기기 시작하고는, ‘그럼, 실례’ 하고는 저택으로 돌아간다.

[큰일이었구나, 미츠즈리.]

뒤에 남은 우리는, 아야코가 진정이 될 때까지 옹기종기 분수대에 걸터앉았다.

[아니, 있는 힘껏 머리부터 내리 꽂았거든. 다행이야, 자칫하면 살인자가 될 뻔 했어.]

가슴에 있는 액세서리를 만지작거리며 샐쭉 웃는 아야코.

[그거, 아무래도 너무 심하지 않아?]

[아니아니, 시로. 여성에게 난폭하게 하려는 녀석은 그걸로 충분해.]

[그런 때는 정면에서 무릎으로 차올리는 게 최고라고 생각해요.]

쓴웃음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말하는 시로에게, 주위에서 아야코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나도 동감. 혹시 아야코에게 무슨 일이 있었다면, 무슨 짓을 해 버렸을지 모른다.

[신사답지 않은 행위지. 간질 발작은 천벌이라 할 수 있을 거요.]

“브라스” 녀석도 가끔씩 쓸 만한 짓을 하는구나. 병이라고 속일 수 있었던 것도 이 녀석이 의사였기 때문이다. 이번만은 감사해 두지.
그러다곤 해도 이상한 게 있다. 그 녀석은 아무래도 자신의 사안으로 굳어진 것 같은데, 아야코는 일반인이고 부적도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도대체 어떻게…….

[에, 저기, 닥터?]

[말해 보시오. 미스 미츠즈리.]

[모처럼 주신 것인데, 부서져 버렸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 옆에서, 아야코가 조심조심 “브라스”에게 말을 건넨다. 아, 역시 부적이 망가졌구나.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아야코가 만지작거리는 부적 조각으로 눈을 옮겼다.

[──에?]

[…….]

저택의 조명을 받아, 은 사슬의 끝에서 반짝이고 있는 황금 원반이 빙글빙글 돌고 있다. 아, 그렇구나. 이것은 “호루스의 눈”의 눈동자 부분. 앞면은 황금 거울. 그리고 뒤는…….

[그렇구나. 본체는 아이기스(*3)였구나.]

뱀의 머리카락을 가진 여성, 메두사의 릴리프. 페르세우스가 메두사의 사안을 그 거울에 비추는 것을 막고, 메두사의 머리를 끼워 넣어 아테나의 방패가 된, 깨지지 않는 방패 아이기스. 이것은 그 아이기스를 본뜬 부적이었다.

[뭔가, 이거 부서지기 전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 같죠? 돌려 드리려고 생각해서요.]

확실히, 이건 단순한 황금이 아니다. 여기까지 징징 힘이 느껴진다. 이것은 오래되곤 깊은 주각이 새겨진 비금(오리할콘)제다. 지금은 제조법마저 없어진 고대의 마구. 이것은 사안살이 아니라, 사안 반사 아티팩트다.

[미스 미츠즈리. 내가 당신에게 한 번 준 것을 다시 돌려받아야 할 정도로 무례를 행한 적이 있소?]

[아뇨, 그런.]

[그렇다면, 그런 슬픈 소리는 하지 마시오. 그것은 내가 당신에게 준 것이오.]

“브라스”는 돌려주려고 내민 부적을 다시 한 번 아야코의 손에 쥐어 주었다. 솔직히 가치를 따지면 아무렇지도 않게 받을 수 있는 정도가 아니다. 이 녀석은 이렇게 배짱이 크다는 점만은 대단하다.

[음, 그럼. 닥터, 감사합니다.]

뭐라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아야코는 다시 한 번 감사하고, 다시 부적을 목에 걸었다. 조금 부럽다. 너는 전혀 모르겠지만, 엄청난 걸 받은 거라고.

――――――――――――――――――――――――――――――――――――――――

[그럼, 신세 많이 졌어, 토오사카.]

[엄청 성가셨다고. 이건 반드시 돌려받을 테니까.]

[어이어이, 토오사카.]

[알고 있어. 머지않아 갚을 테니까.]

시로가 걸고넘어지자, ‘공짜야’ 하는 말을 듣는 게 더 무섭다며 아야코는 손을 흔들고 웃는다. 실례잖아. 빚이라고 한 건 농담이라고.
결국 일주일 정도 머물던 아야코는, 오늘 빅토리아 역에서 프랑스로 출발한다. 이다음에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순으로 유럽을 돌며 무사 수행을 계속하겠다고 한다.
옷차림도 군용 바지에 정글 부츠. 상의도 야전 점퍼에 그 위에는 군용 조끼를 껴입어, 런던에 막 왔을 때와 같다. 단지 목에 걸려 있는 금빛 코인 같은 펜던트만 더해졌을 뿐이다.

[그럼, 나는 짐을 싣고 올 테니까.]

‘금방 올게’라며 시로는 큰 배낭을 화물칸으로 옮겨 간다.
이런 차림으로 아야코는 파리까지 호화 열차 여행을 한다. 루비아가 파티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사과로 티켓을 보냈던 것이다.

[흐흥~.]

[……뭐야.]

그런 시로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 아야코가 묘하게 기쁜 듯이 웃는 얼굴로 코웃음을 흘린다.

[아니, 별로. ‘여자는 남자에 의해 변한다’는 말이 사실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야.]

[흥, 괜찮잖아. 시로는 멋진 남자니까.]

야유하듯이 웃는 아야코에게, 나는 가슴을 펴며 대답했다. 언제까지나 야유만 보내서는 상대가 안 돼.

[어라? 나는 별로 에미야만 이야기 한 게 아니야.]

[응?]

[그 싹싹한 남자와 닥터. 일본에 있을 때와는 다르게, 토오사카는 상당히 괜찮은 남자를 만나게 되었네.]

[그 녀석들이 좋은 남자?]

[그야, 네 눈에는 에미야 밖에 들어오지 않으니까 말야.]

‘옆에서 보면 다들 좋은 남자잖아’ 하고 시원스럽게 웃는 아야코. 인정할 수 없어, 너 눈이 낮아진 거 아냐.

[남자뿐만 아니라.]

힘껏 노려보는 나에게, 아야코는 이번에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잇는다.

[일본에 있을 때는, 너는 내 앞에서도 좀처럼 솔직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었지. 그런데 여기서는 대부분 내숭떨지 않고 있잖아.]

확실히, 그런 말을 들으면 부정할 수 없다. 아야코에게 듣고 깨달은 것이지만, 주위가 모두 마술사이기 때문에 부담을 덜 느끼게 되었기 때문인지, 나는 예전보다 자신을 숨기지 않게 되었다. 마술사로서는 이건 조금 문제다.

[안심했어. 너, 드디어 있을 곳을 찾았구나.]

[뭐야, 그건?]

[일본에서는, 네 집과 에미야 집 정도였지? 네가 있을 곳은.]

‘나도 결국 거기까지는 파고 들 수 없었으니까’, 하며 아야코는 팔짱을 끼며 나를 바라본다. 할 말이 없다. 부정도 할 수 없다. 확실히 그 마을에서는 나는 관리자였지만 이방인이었다.

[그렇지만, 여기는 다르잖아? 네 친구가 있는 곳은 전부 네가 있을 곳이었어. 뭐, 원래부터 일본 사람 같지 않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토오사카는 영혼은 영국인이었네.]

어딘가 빗나간 것 같으면서도 제대로 찔러 들어오는 아야코. 이러니까 궁도하는 녀석은 가볍게 볼 수 없다니까.

[뭐, 다음에 만날 때는, 내가 있을 곳을 찾아내서 거기로 너를 초대할 테니까. 빚진 것은 그 때 갚을게.]

[알았어. 즐겁게 기다릴게. 이자는 안 붙일 테니까.]

‘그거 고맙네’ 하고 웃으며 아야코는 열차의 트랩을 올라간다.
아야코라면 머지않아 자신이 있을 곳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가볍게 손을 흔드는 아야코의 가슴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코인. 머지않아 저것도 필요 없게 될지도 모른다.

[다행이다. 시간에 맞았어.]

그러는데 시로가 돌아왔다. 이미 차에 올라탄 아야코를 향해 ‘제대로 인사 정도는 하게 기다리지’ 라며 조금 투덜거리고 있다.

[늦었잖아. 짐은 제대로 실었어?]

[응, 확실하게.]

내 불평에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하는 시로. 우리는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드는 아야코에게, 함께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자, 그럼 다음에.]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우리는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세계로 돌아간다.
아야코는 열차를 타고 사람들의 세계로, 그리고 나는 시로와 함께 마도 런던으로.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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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도 꽤 마음에 드는군요. 잔잔한 이야기가 좋아요.

다음편 부제는 “세이버 모에모에 대작전” 입니다. 사실 다음편 먼저 읽다가 참을 수 없어서 이번 편 빨리 끝냈어요. 크크크.

드레스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머메이드 드레스는 실루엣이 인어의 하체 같고, 옆에 살짝 트임을 넣은 이브닝 드레스를 말합니다. 원 숄더 드레스란, 한 쪽 어깨가 완전히 드러나고 한 쪽 어깨에만 걸쳐지는 형태의 드레스를 말하죠. 그래서 미츠즈리가 린의 옷을 잡아 당겼을 때, 린이 투덜거리는 겁니다. 원 숄더 드레스인데, 잡아 당겨서 한 쪽 어깨 부분이 찢어지기라도 하면 그냥 훌러덩(!) 아니겠습니까. ^^;;

감기 기운에, 감기약 기운에 반쯤 멍한 상태에서 했습니다. 여러분, 감기 조심하세요. -_-;;;

(*1) 스카라브(scarab : 스캐럽)
─> 고대 이집트인들이 매우 신성시한 갑충의 모양을 본 딴 수호부.

(*2) 앙크(ankh)
─> 고대 이집트의 수호신 중 하나인 아톤(Aton)이 들고 있는 생명의 상징.

(*3) 아이기스의 방패
─> 아테나가 가지고 있는 황금 방패. 페르세우스가 메두사의 목을 베어 그 머리를 아테나에게 바치자, 아테나는 자신의 황금 방패 가운데 메두사의 목을 장식했다고 합니다. 사실 아이기스의 방패는 두 가지가 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아테나의 방패인 아이기스이고, 또 다른 전승에 따르면, 헤파이스토스가 아킬레우스에게 만들어 준 아킬레우스의 방패의 이름도 아이기스라고 하기도 합니다.

(**) 세레브
->セレブ(세레브) -> celebrity의 약자로, 일본의 호화로운 사교계에서 활약하는 여배우나 그 관계자들을 보통 지칭하거나, 그런 파티를 말하는 건데, 좀 속물적~ 이라는 뉘앙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외국의 상류층 파티를 흉내낸 거죠. (생물체님 주)

그럼 이만~

(추가)
사실 말투 때문에 저도 상당히 골치 아파하고 있는데요.
일본 사람들 보면, 특히 남자들은 거의 반말 틱틱 까대는 걸 볼 수 있죠.
그런데 이 반말이 기분 나쁠 정도로 마구 까대는 것이냐 하면, 또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거든요.
뭐랄까. 아무튼 미묘한 차이가 있는데, 우리말로는 좀 옮기기가 힘들어요, 저로서는.
항상 골치 아픈게, 시로가 아닌 다른 남자의 등장인데, 특히 반말을 해도 아무 상관없는 적대적인 캐릭터, 즉 반동 인물이면 반말을 남발해도 별로 어색하지 않죠.
하지만 그렇지 않는 남자 캐릭터, 브라스나 쥴리오 같은 경우는 좀 골치 아픕니다.
일단 토오사카가 쓰는 여성어투도 사실 반말이라고 하기도 좀 뭐하고, 그렇다고 존대말이라고 하기도 좀 뭐한 어중간한 말투라서, 우리말로 번역하면 딱 맞는 느낌이 없어요. 그래서 약간 뉘앙스가 약한 반말 정도로 적당히 번역하고 있었는데요.
남자의 반말은 그게 쉽지 않아요. 구별이 가게 하려면 말투를 다르게 해야하는데, 제가 주로 신경쓰는 건 시로의 말투라서 다른 캐릭터의 말투는 이 시로의 말투에 안 겹쳐지게 해야 하거든요.
그러니 나름대로 궁리를 해서, 쥴리오는 여성에게는 유들유들하게 ~해요 를 쓰게 했는데… 브라스는 나름대로 격식을 차리면서도 퉁명스레 툭툭 던지는 말이라… 아무래도 그냥 딱딱 자르는 반말로는 한없이 X가지 없이 보일테고 말이죠…
그래서 고심한 끝에 적당히 썼어요. 좀더 생각해 보죠. 사실 브라스 말투는 별 생각없이 반말로 그냥 번역하다가, 이전이랑 이번 편 외전하면서 말투에 신경쓰기 시작해서 아직 뭐라 딱 잘라 쓰지는 못하겠군요.

아무튼 보다시피 하는 짓은 엉망이라도 상당히 격식을 따지기 때문에 그냥 반말로 번역하는게 더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했습니다.

나중에 괜찮은 게 떠오르면 적당히 다시 고치죠. 뭐… -_-;;; 그런데 사실 저는 이번에 브라스 말투가 오히려 브라스라는 캐릭터에 더 잘 맞는 것 같아요. ^^;; 외전 두 편으로 브라스도 꽤 맘에 드는 캐릭터가 되어 버려서… 크크크…

(수정) 생물체님의 오역 지적에 따라 몇 군데 고쳤습니다. 물론 안 고친 곳도 있고요… ^^;; 생물체님 감사합니다~

Attempt easy tasks as if they were difficult, and difficult as if they were easy; in the one case that confidence may not fall asleep, in the other that it may not be dismayed. Dressing up is inevitably a substitute for good ideas. It is no coincidence that technically inept business types are known as "suits." To find yourself jilted is a blow to your pride. Do your best to forget it and if you don't succeed, at least pretend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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