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의 성적 발표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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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여, 날씨 한 번 좋군.

[그러게, 란스. 이런 날씨를 ‘하나구모리(*1)’라고 하지. 햇님이 전혀 안 보이네.]

찰랑……찰랑……

평온한 어느 날 아침. 란스와 나는 느긋하게 하늘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무 것도 안 나오니까 말야, 노도 떠내려가 버렸고.]

찰방……찰방……

덥지도, 춥지도 않은, 딱 좋은 기후. 이렇게 보트에 하늘을 보고 누워 있자니, 선잠이 들 것 같다.

――마스터여, 바다는 좋군. 바닷바람이 가슴 속까지 씻어준다.

[호수라고. 오를 수 있는 육지가 전혀 안 보이긴 하지만.]

찰랑……찰랑……

잠깐 동안 아무 말이 없던 란스 녀석이 재주 좋게 어깨를 움츠리며, 쯧쯧 하며 한숨을 쉰다.

――마스터. 그대는 너무 비관적이군.

[란스, 네가 너무 낙천적인 거라고.]

우리 두 사람이 탄 보트는, 육지도 보이지 않는 호수 가운데에서 옅은 안개에 싸인 채로, 목적지도 없이 떠다니고 있다.

임금님의 검
[검왕] ―King Aruthoria― 제 5 화 전편
Saber

[헤에~. 꽤 멋진 곳이네.]

초여름을 알리는 바람을 맞으며 낮은 산 중턱에 서서, 눈 아래 펼쳐진 언덕을 바라보며, 토오사카가 ‘흐흐~응’ 하고 즐거운 듯이 콧소리를 냈다. 저 멀리에는 언덕에 둘러싸인 맑고 푸른 작은 호수도 보인다.

[도즈마리(dawsmere)(*2)입니다.]

세이버가 어딘지 그리운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여기는 세이버의 연고지. 아마 익숙한 곳인가 보다. 기분 좋은 듯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란스. 왠지 기쁜 것 같다.

[그럼, 가자. 오전 중에는 도착해야지.]

휴식은 이 정도면 됐지. 나는 차 옆에서 두 사람과 한 마리를 부른다. 목적지는 저 호수 근처에 있는 캠프장. 우리는 오늘, 이곳 콘월에 캠프를 하러 온 것이다.

[그래도 아쉽네, 미나 씨도 루비아 씨도 못 온다니 말야.]

마지막 휴식을 마치고 세이버 대신 운전을 하게 된 나는, 너무 넓은 차 안을 돌아보았다. 원래 이 캠핑을 제안한 미나 씨가 준비한 것이다. ‘캠핑 하러 가죠!’ 하고 하트 마크를 띄우며 이 차부터 해서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지만, 갑작스런 일이 생겨서, 눈물을 흘리며 우리에게 뒷일을 부탁한 것이다.

[할 수 없잖아. 집안일이라는데.]

‘맞선이라도 보는 거 아닐까?’ 하며 미묘한 웃음을 짓는 토오사카 씨. 뭐, 맞선인지 뭔지는 둘째 치고, 특별히 안 좋은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혹시 맞선이라면, 역시 조금 쓸쓸한데.

[루비아젤릿타도 아쉽습니다. 출발할 때가 다 되어서야 이렇게 됐으니.]

[글세 말야, 어중간하게 프랑스 마술원 같은 곳에 커넥션이 있으니까, 교수가 억지로 끌고 가는 거라구.]

이거 또 기분 좋은 듯이 웃는 토오사카 씨. 어쨌든 그쪽에서 우수한 학생을 보내 줬으면 좋겠다는 부탁이 들어와서,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 두 사람 중에 누군가가 가야하는 처지가 되어 버린 것 같다.
그래서 결국, 발이 넓은 게 원수가 되어서, 루비아 양에게 잔이 돌아왔다고 한다. 하늘을 찌를 듯이 화를 내며 짐을 싸는 루비아 양의 모습은 엄청 박력 있었다.

[그래도 오랜만이네, 우리 세 명 뿐인 건.]

[그런가? 뭐, 모처럼 준비까지 해 줬으니, 그 아이들 몫까지 즐겨 주자구.]

내가 중얼거리자 토오사카가 나를 보며 생긋 웃었다. 응, 역시 이 웃음이 좋아. 그래도, 똑같은 얼굴로 토오사카는 어째서 이렇게 표정이 풍부한 걸까.

[시로우.]

세이버가 복잡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응, 왜 그래, 세이버?]

[란스가 토라져 있습니다.]

슬쩍 보니, 란스가 바깥 풍경을 먼눈을 하고 바라보고 있다.

――마스터, 어차피 이런 까마귀는 신경 써 줄 필요 없다오.

어이어이, 뭘 삐지고 그래, 란스. 정정, 세 명이랑 한 마리지. 너도 우리 가족이라고.

[그렇다곤 해도, 정말로 사냥을 해 오리라곤 생각도 못했어.]

[시로우, 우리를 바보 취급하고 있는 겁니까?]

–까마귀

내 조심성 없는 말 한 마디에, 갑자기 뾰로통해지는 세이버와 란스. 미안,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말이지.
사냥을 하러 간다 하고서 정말로 토끼를 잡아 온 세이버나 란스는, 농경민족인 나로서는 조금 상상하기 힘든 존재라고 하는 거지.

[사냥은 왕의 일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서도 사냥을 소홀히 할 수는 없습니다.]

오후 햇살을 받으며 나란히 가슴을 펴는 세이버와 란스. 너희 둘, 죽이 잘 맞는 왕과 신하구만.
이 캠프장에 도착한 것은 딱 정오 무렵, 우리는 점심 식사를 가지고 온 도시락으로 가볍게 때우고, 한동안 초여름의 자연을 만끽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나는 텐트를 설치하고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그 동안, 토오사카는 호수를 산책하고, 세이버는 내 활을 빌려서 란스를 데리고, ‘사냥 해 오겠습니다.’ 하고 나갔던 것이다.

텐트 설치에 거의 한 시간, 게다가 저녁 준비. 차에는 그야말로 일개 중대를 먹일 요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제대로 된 야외 부엌이 실려 있었다. 그걸 내려서 설치하기까지 약 한 시간. 식사 재료를 요리할 준비에 또 다시 한 시간 남짓 걸렸다. 역시 나 혼자 다 하기는 좀 벅찼지만, 그래도 남자는 나 하나뿐이다. 아무리 남자라고는 해도 란스에게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 그래서 겨우 준비를 끝내고 이제부터 만들어 볼까 하는 참에, 세이버가 토끼를 두 마리 들고 돌아온 것이다.

[그래도 토끼라니, 어떻게 해 먹지.]

오늘의 메인 요리는 세이버의 바람대로 오렌지찜닭이다. 더치 오븐(*3)으로 만드는, 캠프 요리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요리다. 세이버는 미나 씨에게 이 요리를 대접받은 뒤로, 완전히 반해 버린 것 같다. 게다가 토끼 고기까지 넣으라니.

[내가 피를 뽑고 손질하겠습니다. 그 다음엔 끓이든 굽든 시로우가 알아서 하세요.]

그렇게 말하고, 얼른 손질을 시작하는 세이버. 그 솜씨는 흉내도 못 내겠다.

[그럼, 부탁할게. 그럼 한 마리는 로스트로 하고, 한 마리는 훈제로 하자.]

토끼 손질은 세이버에게 맡기고, 나는 훈제 기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런 것까지 세트되어 있다니, 역시 미나 씨가 준비한 도구다.

[다녀왔어. 어머? 세이버, 정말 사냥해 왔네?]

그런 중에 혼자 호수의 자연을 만끽한 토오사카 씨가 돌아왔다. 나랑 똑같은 소릴 하고, 똑같이 세이버와 란스가 뾰로통해지고, 똑같이 ‘미안 미안’ 하고 사과한다.

[어서 와, 토오사카. 너도 도와줘.]

[그럼 닭을 볼게. 토끼는 어떻게 요리해야 되는지 모르니까.]

내가 이제 그만 놀고 도우라고 말하자, 토오사카는 말하지 않아도 도와주려고 했다며 닭에 손을 뻗었다. 그 토오사카도 토끼 요리는 무린가.

[아, 세이버. 발은 버리지 마. 쓸 거니까.]

능숙한 솜씨로 닭을 손질하고 함께 찔 야채를 다듬으면서 토오사카가 세이버에게 말했다.

[토끼 발? 행운의 부적이라고 듣긴 했지만, 효과 있는 거야?]

[집에서 기르는 것은 이젠 효력이 없지만, 야생이라면 아직 효과 있어.]

내 질문에 꽤나 쓸 만하다고 대답하는 토오사카 씨. 게다가, 세이버가 잡아온 토끼라면 살인토끼(보팔 바니)일지도 모르니까 귀한 거라고 말하며 웃고 있다. 토오사카, 너 말야, 그렇게 오래된 소재를 요즘 누가…….(*4)

[역시 그렇진 않겠지요. 내 시대에는 마녀가 토끼로 변신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린도 루비아도 토끼로는 변신 안 하죠. 이것도 평범한 토끼입니다.]

하고 여기서 세이버가 이상한 말을 한다. 뭐라고?

[그런 마녀와 상대한 적도 있었습니다. 분명히 린이 말한 살인토끼(보팔 바니)라는 것은 그런 종류의 이야기가 전승된 것 아닐까요.]

진지한 얼굴로 음, 음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런 전승도 있었군요’ 하는 세이버 씨.

[아, 아무튼 부탁해. 시로, 너도 얼른 준비해.]

여기에는 그 대단한 토오사카도, 순간 독기를 빼버린 듯하다. 멍청한 표정으로 나와 얼굴을 마주보다가, 핫 하고 정신을 차리고는, 휙 얼굴을 돌렸다. 부끄러운 거겠지, 얼굴을 약간 붉히고 입을 쑥 내밀고 있는 모습도 귀엽다. 자신의 멍청한 얼굴도 잊고 무심코 미소를 지어 버렸다.

[너 말야! 웃고 있지만 말고 도와!]

그런 나에게 토오사카가 노성을 지른다. 도우라니, 여기까지 준비해 놓은 건 나라고? 그렇게 말하자 므―하고 토라지는 모습이 또 귀여워서 좋다. 그런 우리를 보며 멍~해진 귀여운 표정의 세이버를 그냥 둔 채, 나와 토오사카는 함께 열심히 저녁 준비를 했다.

[가끔씩은 좋구나, 이렇게 개방적인 것도.]

황혼 무렵, 저녁 식사를 마치고 만족한 듯이 토오사카가 중얼거린다. 붉은 색채에 둘러싸인 호수에서, 잠깐 넋이 나간 듯이 경치를 바라보고 있다. 토오사카는 런던이나 후유키처럼 고풍스런 건물이 죽 늘어선 거리가 어울리지만, 이렇게 석양이 질 무렵에 붉은 빛에 감싸여 있는 것도 꽤나 운치가 있어서 좋다.

[네, 정말 맛있었습니다. 야외에서도 이 정도 요리를 할 수 있군요.]

역시 마찬가지로 만족스런 듯한 세이버. 후우~하고 내쉬는 한숨에도 행복이 묻어 나온다. 정말로 잘 먹는구만.

–까마귀

란스도 하늘 위에서 한 번 운다. 저녁노을과 까마귀. 생각보다 잘 어울리네.

잠시 후 해가 지고, 하늘보다 눈앞의 모닥불이 더 밝게 보이게 되었다. 그런 환상적인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호수를 바라보며 그저 멍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멍하게 시간을 보낸 적이 없었구나. 아니, 나뿐만 아니라. 왕이었던 세이버, 마술사로서 노력해 온 토오사카, 그리고 불패의 신화를 이어온 란스. 모두, 이런 시간을 보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때? 감상은?]

그런 분위기 탓일까, 토오사카가 묘하게 상냥한 말투로 세이버에게 묻는다.

[여기는 별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란스와 얼굴을 맞대고, 살짝 미소를 띠며 세이버가 대답한다.

[일본에 소환되었을 때는, 꽤나 세계가 많이 변해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여기는 변하지 않았어요. 호수의 색도 그 때 그대로입니다.]

그리운 빛이 감도는 눈으로 가만히 호수를 바라보고 있다. 어라?

[세이버는 여기를 알고 있는 거야?]

내가 별 생각 없이 질문을 던지자, 주위 공기가 변했다.
세이버는 므―하는 표정으로 뾰로통해지고, 토오사카는 토오사카대로 ‘바보―’ 하고 손으로 얼굴을 누르고 있다. 우우, 란스까지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왜 그래? 나, 뭔가 이상한 소릴 한 거야?]

[시로우. 알고서 함께 와 준 게 아니었습니까?]

세이버가 한숨을 쉬며 묻는다.

[뭐를?]

[에미야 군. 세이버의 보구가 뭐였지?]

모두 미묘하게 어리벙벙해진 사이에, 토오사카 씨가 딱딱한 표정으로 묻는다. 조건반사적으로 조금 긴장해 버린다. 그래도 어째서 그런 걸 묻는 거지?

[엑스칼리버잖아?]

[그럼, 그 엑스칼리버는 어떻게 세이버가 얻게 되었을까?]

[으음, 칼리번이 부러져서 호수의 아가씨에게 받은 거 아냐?]

그렇다, 호수의 아가씨는 정령의 손으로 단련한 검이라고 하며……호수?
나는 눈앞의 호수로 눈을 돌렸다. 맑고 푸른빛이면서도 깊이를 알 수 없는 푸름. 그것은 매우 신비한 색이었다. 마치 그대로 요정의 세계로 끌려 들어갈 듯한…….

[그렇다면, 혹시, 여기?]

[네, 이곳이었습니다.]

세이버는 아쉬운 듯이 어깨를 떨구고, 한숨을 쉬듯이 대답했다. 옆에서 토오사카 씨가 너무나 아름다운 미소로 나를 노려보고 있다. 으아아…….

[우우, 미안해. 몰랐어.]

[공부 좀 해! 여러 번 말했잖아.]

토오사카가 가아――하고 큰소리를 지르고는 몸을 앞으로 내밀며 흘겨본다.

[그렇다면 여기가 란스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었겠네?]

[에?]

그랬단 말야? 나는 세이버와 란스를 번갈아 보았다.

[란슬롯 경은 어린 시절 호수의 아가씨에게 길러졌고, 이곳에서 무술과 예의범절을 교육받았습니다. 그래서 “호수의 기사”라고도 불렸죠.]

세이버는 어쩔 수 없다는 어조로 설명한다. 헤에~ 그랬구나. 몰랐네.

――마스터. 어차피 이런 까마귀는 신경 써 줄 필요 없다오.

란스는 시원스럽게 그렇게 소릴 내고는, 휙 저쪽을 향했다. 우우, 미안, 란스. 그렇게 삐지지 마. 지금부터 공부 할 테니까.

[하지만, 이제 이계로의 문은 닫혀버린 것 같습니다.]

그런 우리의 모습에 겨우 마음이 풀린 건지, 세이버가 쓴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계속한다.

[그거 아쉽네. 호수의 아가씨면 비비안이었지?]

[비비안은 선대였습니다. 나를 위해 보구 세 가지를 만들어 주셨지만, 그 대신에 마술사를 납치해서 숨어버렸습니다.]

‘그 때는 정말로 골치 아팠죠’ 하고 세이버가 또 다시 쓴웃음을 짓는다. 하지만 조금 전처럼 생각에 빠진 듯한 어두운 느낌은 사라졌다. 그건 그렇고.

[세 가지라니? 둘은 알겠는데.]

엑스칼리버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다. 칼집과 검, 해서 두 개라는 거겠지. 세 번째는 뭐지?

[승리의 검 엑스칼리버와 깨지지 않는 수호구 아바론, 그리고 최강의 기사 란슬롯, 비비안은 나를 위해 이 셋을 단련해 주었습니다.]

팔짱을 끼고 필사적으로 생각하는 나를 보고, 세이버가 장난기어린 미소를 살짝 지으며 가르쳐 주었다.

――마스터. 어차피 이런 까마귀는 신경 써 줄 필요 없다오.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을 꾹 참으며 란스가 운다. 그러니까 미안하다니까.

[아, 그건 나도 몰랐어.]

여기서 토오사카가 추격타를 넣는다. 이번에야 말로 털썩 하고 어깨를 떨구는 란스. 그것을 보고 세이버가 웃고 있다. ‘당신에게는 좋은 약입니다’ 라며 정말로 즐거운 듯이 웃고 있다.

[그래도 남자를 데리고 사랑의 도피? 호수의 아가씨라더니 생각보다 세속적이네.]

[호수의 아가씨라고는 해도 요정이니까요. 왕가 수호 같은 딱딱한 일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고 늘 말했었죠.]

[그랬구나, 그럼 지금은 호수의 아가씨는 없는 거야?]

[아니요. 그 비비안도 그 정도로 무책임하지는 않습니다. 지금 호수의 아가씨는 제 누이들이 계승했을 것입니다.]

[아, 그렇구나. 모르간도 호수의 아가씨였지.]

토오사카가 탁 하고 손을 치며 응, 응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다. 모르간은 분명히 세이버의 언니이고, 마녀였지.

[사이가 안 좋았던 거야?]

[글세요. 누이는 뭔가 이유를 붙여 쓸데없이 나에게 참견했습니다만, 나를 가지고 노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저 내가 고집스러웠을 뿐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만.]

세이버는 뭔가 의미 있는 눈동자로 토오사카를 바라보며 말한다.

[뭐, 뭐야.]

[아니요, 별 거 아닙니다만. 린을 보고 있으면 누이가 생각나는구나 하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 말에 므―하고 볼을 부풀리는 토오사카에게, 세이버는 또 다시 즐거운 듯이 웃는다.

――뭐, 확실히 변변치 않은 마녀였지.

란스도 왠지 토오사카를 보며 운다. 그리고는 이거 또 토오사카와 서로 노려본다. 너희 말야, 정말로 어째서 이럴 때만 서로 잘 통하는 거냐?

[그 때 나에게는 그저 두통 거리였을 뿐이었지만, 란슬롯 경과 누이의 사이가 나빴던 것도, 어쩌면 싸우며 즐기는 친구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르겠군요. 이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지만요.]

――왕이여. 그것은 착각이오. 나는 그런 마녀와 사이좋게 지낼 리가 없소이다.

[어째서 내가 이 녀석이랑 사이가 좋다는 거야!]

세이버의 의미심장한 미소에 두 명이 함께 걸고넘어진다. 토오사카, 너를 말하는 게 아니라고.

[모두 그리운 추억입니다.]

세이버는 그런 모습을 즐거운 듯이 바라보면서 중얼거리고, 눈을 호수로 돌렸다.
서로 흘겨보던 토오사카와 란스도 어느 새 조용해 져서 세이버와 함께 호수를 바라보고 있다.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다. 이곳, 이 시간만은 세이버의 시대로 흘러 들어가 버려, 그곳에 모두 함께 있는 것 같은 그런 신비한 분위기였다.

전설대로라면, 마지막에 세이버가 돌아가는 곳도 그곳이 되는 걸까. 그건 슬프기도 하지만, 기쁘기도 한 것이다.
지금은 세이버에게 성배를 원하던 때의 고집스러운 모습은 남아 있지 않다. 나는 아직은 세이버에게 해 줄 대답을 찾지 못했지만, 그 날까지는 반드시 찾아내 보여주겠다. 나는 다시 한 번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 부드러운 모습을, 표정을 나는 지켜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 때 문득 스며 들어온 한 조각 사념이 왠지 내 마음에 걸렸다.
그냥 작게 중얼거린 란스의 혼잣말.

――문제는, 바로 여왕이지…….

[낚시? 아무튼 별난 걸 좋아한다니까.]

다음 날 아침. 일출과 동시에 일어난 나는, 차에서 재미있는 것을 찾아냈다.
레저용 큰 고무보트와 낚시 도구. 뭐랄까, 철저하게 집착하는 미나 씨의 성격대로, 쓸 만한 도구가 일일이 빠짐없이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정도로 준비가 돼 있으면 이제 낚시하러 갈 수밖에 없잖은가!’ 하고 고무보트에 공기를 넣고 있는데, 토오사카가 온 것이다.

[어때, 토오사카도 같이 갈래?]

고무보트는 4인승이라 세이버가 같이 가도 아직 자리가 남는다.

[그만 둘래. 배에는 약하고, 그리고 낚시는 못하는걸. 이렇게 기다리고만 있는 건 성격에 안 맞는다고 할까.]

아아, 확실히. 아무튼 선공의 인생을 사는 토오사카 씨다. 낚시는 잘 못하겠지.

[세이버는 어떻게 할래? 도구는 있어.]

[나도 낚시는 조금…….]

미묘한 표정으로 눈을 돌리는 세이버 씨. 그랬군요. 세이버도 기다리는 건 못 참는 사람이었지.

[그럼 나랑 란스만 갔다 올게. 무슨 일이 있으면 란스를 보낼 테니까.]

――맡겨 주라고, 마스터. 이 호수는 잘 알고 있어. 옛날에 가끔 빠져나와 여기서 놀았었지.

가슴을 펴며 까악―하고 대답하는 란스. 하지만 그 내용은 수업을 빼먹고 놀러 나가는 학생이랑 같은 것이다. 그렇게 잘난 체 할게 아니잖아. 나도 남 말 할 수는 없지만.

[낚시 결과는 기대 안할 테니까, 점심까지는 돌아와.]

[응, 커다란 무지개송어 낚아 올 테니까 기대하라고.]

토오사카의 따뜻하고 상냥한 격려에 나는 어른스럽게 대답해 주고 호수 저편으로 향했다.

찰박……찰박……

그리고 나서, 뭐,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이다.

처음은 아침 안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거울 같은 호수의 수면을 미끄러지듯이 보트를 저어나가서 느긋하게 낚싯줄을 늘어뜨리고 있던 우리였지만, 아침 안개는 해가 완전히 떠도 개기는커녕 더욱 더 진해졌다.
그래서 좀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돌아가려고 했더니, 거울 같은 수면에 갑자기 큰 파도가 일어나 노가 떠내려 가버린 것이다. 아무리 둔한 나라도 이렇게 까지 되면 지금이 어떤 상태인지 안다.

[란스, 너, 날 수 없어?]

아침엔 날아다니고 있었는데, 방금 큰 파도가 친 후, 뱃전을 떠나지 않는 란스에게 물어보았다.

――흠. 마스터도 눈치 채고 있지 않은가?

[그래. 이계구만. 호수 어딘가에서 흘러들어와 버린 건가봐.]

――그런 거지. 지금 날면 설령 출구를 찾을 수 있다고 해도,
――두 번 다시 마스터를 만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우선은 여기가 어딘지를 아는 것이 급선무다.

즉, 우리는 지금 요정인지 정령인지는 모르지만 누군가의 고유결계에 잡혀 버린 것이다. 어쨌든 돌아갈 방법을 확보해 놓지 않은 이상 어찌할 방법이 없다.
다행히 낚시한 결과는 좋다. 물이나 먹을 것도 “이쪽” 것이 어느 정도 있다. 그렇다면 옛날이야기에서 늘 그렇듯이 어딘가에 도착할 때까지 떠내려가든가, 아니면 저쪽에서 뭔가 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저기, 란스. 역시 여기 말야, “호수의 아가씨”의 세계인가?]

장소가 장소인 만큼, 그럴 가능성이 가장 높다. 그리고 그렇다면 란스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것 같군. 그렇다고 해도, 지금 그녀들이 이렇게 쉽게 문을 열 리가…….

하고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딱 멈췄다.
왜 그러지 하고 생각하며 란스를 보니, 그 녀석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까마귀라고 해도 남자가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 건 그다지 기분 좋진 않은데.

――흠, 이쪽에서 열어 버렸을 가능성도 있군…….

어쩐지 웅얼웅얼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모른다고.]

그렇게 말해도, 장소가 장소니까 세이버나 란스라면 몰라도, 나에겐 짚이는 구석이 없다. 아, 그런 의미인가?

――아, 아니. ……. 흠, 뭐, 그런 거지. 나는 원래 그곳에서 살았었지 않은가.
――어느 정도의 연결이 있었어도 이상할 게 없지.

과연 그렇군. 그럼 나는 말려든 것 뿐인가. 이럴 수가.

――뭘, 지금 이 때만 참으면 된다. 봐라, 보이기 시작한다.

왠지 묘하게 쓴웃음을 지으며, 란스가 소리를 내며 부리로 배가 향하는 곳을 가리켰다.

아아.

확실히 마치 나이프로 잘라낸 듯이 안개가 갈라지고 있다.
하늘은 아직까지 옅은 구름이 가득 끼어 있지만, 수면은 맑게 개어있었고, 섬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안개에 폭 싸인 것처럼 조용한 숲에 둘러싸인 고요하고 평온한 섬의 풍경. 그것이 마치 저쪽에서 다가오는 듯이 가까워지고 있다.

[여기, 역시 그곳인가?]

그대로 보트는 마치 이끌려 가는 것처럼, 스르륵 호숫가에 닿았다. 나는 겨우 도착한 육지를 발로 확인해 보듯이 올라서며, 란스에게 물었다.

――그렇다. 환영한다, 마스터. 이곳은 “호수의 아가씨”의 나라. 내가 그리워하던 별세계다.

뱃머리에서 내 어깨로 날아 앉으며, 란스가 우는 것과 동시에 생각이 흘러들어온다. 그렇구나. 여기가 정령의 섬이구나. 우리는 우선 물과 휴대 식량을 꺼내고, 보트를 근처에 있는 나무에 묶은 뒤, 한숨을 돌렸다.

[일단 돌아다녀 볼까?]

일단 도착한 곳에서, ‘그럼 일단 섬을 탐색해 보자’ 하고 란스를 데리고 호숫가에서 숲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뭐랄까, 평범한 숲이랑 다르지 않은데?]

한동안 숲을 헤쳐 나가다가 정직한 감상을 말했다. 확실히 신선하고 상쾌하긴 하지만, 이거라면 일본의 신산에 있는 숲과 다르지 않다.

――그렇지도 않다, 마스터여. 숲의 생물들이 전혀 숨거나 도망치지 않는다.

그런 나에게 란스가 확인시키듯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아, 그러고 보니. 나는 주위를 다시 한 번 둘러보았다.
숲속에서 신기할 정도로 자주 보이는 것은 개, 아니 늑대다. 토끼도 같이 있지만, 다들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호수로 흘러 들어가는 작은 시내는 곰과 사슴이 뛰놀고 있고, 지저귀는 작은 새도 나를 보고 도망치지 않는다.

그 자리에 서서 바라보고 있으려니, 그 사이에 놀랍게도 가까이 다가온 토끼가 내 발 옆에서 코를 킁킁 거렸고, 란스를 놀리듯이 다가온 작은 새들도 귓가에서 사랑스럽게 지저귀고 있었다. 왠지 엄청 간질간질하다.

――이곳 생물들은 서로 잡아먹지 않는다. 모두 이 땅에서 흘러나오는 젖을 먹고 산다.

[헤에~ 그거 좋은데.]

굶주림이 없는 세계라. 하긴 늑대나 곰도 배가 엄청 부르다면 다른 동물을 덮치진 않지.

――하지만 마스터여. 마스터는 먹으면 안 된다고.

아마 상당히 끌리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란스가 일침을 가한다.
뭐, 아무리 나라도 그 정도까지 멍청하지는 않다고. 전설이나 전승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이계의 음식을 먹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현실 세계를 버리고 이계의 존재가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어라? 그럼.

[그러고 보니, 란스는 여기서 생활했잖아. 여기서 기사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았지? 식사 같은 것은 어떻게 한 거야?]

――뭐, 그걸 위해 가끔씩 바깥 세계로 나갔었다. 그걸 위한 뒷구멍이 있다.
――필요한 것을 바깥에서 조달해 오는 것은 문제없었지.

그렇군. 조금 약삭빠르다는 기분도 들지만, 그게 란스와 이 세계를 유지해 주는 기술이었겠지.
그렇다고 하면, 나에게 조금이지만 부러운 세계이기도 하다. 모두가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낙원, 이곳이라면 싸움 같은 것은 없을 텐데.

――마스터여. 요정의 세계라는 곳은 낙원이 아니다. 여기도 하나의 현실이다.

그런 내 망상에, 란스가 타이르듯이 말한다. 요정이나 정령은 절대로 천사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영령이라는 것도 정령의 일종이지 않은가, 하고 내 기억을 일깨운다.

――그렇다. 이 세상에는 낙원 같은 것은……!

갑자기 란스의 사고가 끊긴다. 왜 그러지 하고 옆을 돌아보자, 묘하게 들뜬 란스가 주위를 살피고 있다.

[왜 그래?]

――마스터여. 흩어지자.

갑자기 란스가 미안한 듯 말한다. 어이어이.

――이대로 마스터와 같이 있으면, 마스터에게 화가 닥칠 것이다. 여기는 일단 헤어지는 것이 좋겠다.

까마귀 주제에 식은땀을 흘리며, 황급하게 날아오른다. 어이, 잠깐 기다리라고.

――뭔가, 아까도 말했잖은가. 뒷구멍도 있다고. 어떻게든 찾아내서, 데리러 이곳으로 돌아오겠다.
――그럼, 마스터여. 잠시 동안 이별이다!

하고는 그대로 하늘 높이 날아올라 가 버렸다. 잠깐 기다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고!

[뭐냐, 도대체…….]

나는 한동안 멍청하게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쨌든 란스가 돌아오겠다고 했으니 안심이 된다. 혼자가 되자 갑자기 불안한 기분에 짓눌린다.

[이러면 안 되지.]

나는 머리를 흔들고, 그런 약한 마음을 떨쳐 냈다. 나는 정의의 아군이 될 것이다. 그러려면 우선 담대한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것으로 약해져서 어쩌겠다는 거냐. 뭣보다, 란스는 출구를 찾으면 돌아오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나는 그때까지는 이곳에서 벗어날 방법을 생각해 둬야 한다.
바로 옆까지 와서 위로해 주는 듯한 사슴의 모습에,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좋아~하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거기엔 까마귀가 날고 있다.

조금 전과는 다른 의미로 힘이 빠진다. 뭐야, 벌써 돌아오는 거냐. 나는 조금 한심하다고 생각하며, 다시 한 번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리고 나는 순간 긴장했다.

――마스터여, 요정의 세계라는 곳은 낙원이 아니다.

눈앞의 광경에, 나는 조금 전 란스가 한 말이 떠올랐다. 하늘에는 두 개의 검은 점. 큰 점과 작은 점이 하나씩. 작은 점은 까마귀였고, 큰 점은 맹금류.
그곳에서 전개되고 있는 것은, 까마귀와 매의 공중전. 확실히 낙원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냥 둘 수 없다. 나는 주저 없이 주문을 외웠다.

[――――투영개시(트레이스 온)]

익숙한 주문식. 그런데.

없다.

주문을 끝내도, 펼쳐진 내 손바닥에는 아무 것도 없다.

――에?

나는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깜짝 놀랐다.

없다. 없다. 없다. 없다. 없다. 없다. 없다. 없다. 없다. 없다.

없는 것이다.

시뻘건 황야. 무수히 꽂혀 있는 검이 없다.

단지, 하나는 [선정의 검(칼리번)]

다음 하나는 [약속된 승리의 검(엑스칼리버)]

그리고 마지막으로, 단상에 꽂혀 있던 [다시 단련된 왕도의 검(Ex 칼리번)]

그 붉은 황야에는 그 세 개가 꽂혀 있다.

나는 황급히 마음속에서 의식을 끌어올렸다. [엑스칼리버] 같은 것은 아무래도 투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Ex 칼리번]도 그렇다. 완성되지 않은 검을 투영할 수는 없다. [칼리번]이라면 어떻든 되겠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검이 아니다.
아아, 그런가. 알아 버렸다. 나는 기억을 되새기다 이유를 알았다.
이곳은 요정의 세계. 즉, 자연의 고유결계. 고유결계 안에서는 여행자의 마술은 전혀 효과를 낼 수 없다. 즉, 그런 것이다.
하지만, 망설임은 잠시, 나는 얼른 보트를 묶어 둔 호숫가로 달려갔다. 아직 손을 쓸 수는 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보트의 커버를 벗기고, 활과 화살을 들었다. 오늘 아침, 세이버에게 돌려받아, 아무 생각 없이 보트에 실어 두길 잘 했다. 늦지 않았는지 일단 하늘을 보았다.

좋아, 아직 괜찮다. 꽤 낮게 날고 있지만 까마귀는 아직 건재하다. 위치도 활의 사정거리 안이다. 저기 있는 것은 그냥 ‘표적’.
마술을 쓸 수 없는 고유결계도, 몸에 새겨진 자세는 막을 수 없다. 움직이고 선회하는 점에 미혹되지 않고, 내 마음은 깨끗이 닦여 있다.

――아아.

그런 내 자세와는 다른 마음이, 눈앞의 광경에 납득하고 있다. 저것은 란스가 아니다. 조용히 떠오르는 마음의 ‘표적’에, 그 까마귀는 몇 번이나 ‘명중’이 뜬다. 한심한 이야기지만, 나는 지금까지 란스를 보며 마음속으로 ‘명중’을 떠올린 적은 없다.

[뭐, 그런 건 상관없나.]

나는 그런 잡념을 떨쳐버렸다. 시작한 이상, 끝을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저 까마귀를 도와주자. 그렇게 정한 것은 나 자신이니까. 나는 가만히 화살을 놓았다.

――슉!――

번뜩이는 빛이 하늘을 가른다. 까마귀가 위에서 덮쳐져 속도를 잃기 직전, 앞의 까마귀의 옆을 통과한 한 줄기 빛은 따라오던 매를 스치고 멀리 허공으로 사라졌다.

이걸로 됐다. 나는 휴~하고 한숨을 쉬고 자세를 풀었다. 바싹 따라오던 매는 휙 밸런스가 무너지며, 숲속으로 사라져 간다. 노린 곳은 날개 끝의 칼깃 하나 뿐. 다시 날아오르지 않는 걸 보니, 이제 추격은 할 수 없을 것이다. 까마귀가 도망칠 시간은 충분하다. 낙원이 아니라고는 해도, 여기서는 가능한 한 생물을 죽이고 싶지는 않다.

[어라라…….]

한숨 돌린 것도 잠시. 매를 쫓아 버린 것은 좋았지만, 까마귀도 이미 상처를 입고 있었던 것 같다. 이 녀석도 힘없이 숲속으로 떨어진다.

[아아, 정말. 어쩔 수 없구만.]

나는 다시 숲속으로 뛰어갔다. 모처럼 도와줬는데, 여기서 죽어버리면 찝찝하다. 게다가 조금 전에 생각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시작한 이상 끝까지 제대로 도와주고 싶었다.

[아아, 여기 있다.]

나는 까마귀가 떨어진 곳까지 단번에 달려가서 숲 바닥에 떨어져 있는 핏자국을 따라가서, 나무 그늘에 몸을 숨긴 까마귀를 찾아냈다.

RowKrow!

그 녀석은 나를 알아차리자 킷― 하고 머리를 들고 노려본다. 란스와는 다르다. 묘하게 요염한 소리로 위협하고 있지만, 날개를 다친 것 같아서 그런 날카로운 기세가 오히려 안타깝다.

[자, 고집부리지 마. 치료해 줄 테니까.]

가능한 한 안심시키려고, 나는 활을 내려 두고 조심스럽게 까마귀에게 손을 뻗는다.

[아얏!]

그런데 그 손을 쪼아 버린다. 아~아, 정말. 왜 이렇게 고집스럽냐. 나는 날뛰는 까마귀가 쪼아대는 것도 무시하고 껴안는다.

[얌전하게 있어! 정말, 다쳤으면 날뛰지 말라고!]

까악―까악 울어대는 까마귀를 가슴에 안은 채로 호숫가로 돌아왔다. 보트에 준비해 둔 구급상자를 사용하기 위해서다. 왠지 아까부터 숲과 호숫가를 계속 왔다 갔다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에고, 이게 무슨 꼴이냐.

[자, 이제 됐다. 참 나, 피곤하게 하지 말라고.]

내가 치료를 시작하자, 겨우 이해했는지 까마귀도 얌전해졌다. 몸 여기저기에 상처가 나 있었지만, 다행히 날개에는 이상이 없다. 이 정도라면 곧 다시 날 수 있을 것이다. 뭐, 나도 덕분에 여기저기 상처투성이가 되어버렸지만, 나는 긁힌 상처뿐이다.

RowKrow

치료가 끝나자, 까마귀는 답례를 할 생각인지 내 상처를 핥아 준다. 하지만 간지럽기만 하다.

[괜찮아. 스스로 치료할 수 있으니까.]

내가 그렇게 말하자, 내 말을 알아듣는 것인지, 상처 핥기를 멈추고 다리를 구부려 우아하게 인사한다. 아마 치료해 준 것에 대한 인사겠지.
이렇게 다시 보니, 이 까마귀는 역시 란스와는 많이 다르다. 아름다운 날개를 가진, 온몸이 칠흑같이 검은 까마귀로, 머리 깃털이 왕관처럼 거꾸로 서 있고 정말 멋지게도 이것도 역시 검은색이다.

[너, 어떻게 된 거야? 왠지 추격당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뭐, 여기는 요정의 세계고, 이 정도로 훌륭한 까마귀니,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Kruuu

역시 통한 것 같다. 하지만 왠지 기분 나쁜 듯이 울면서 노려보고 있다. 어쩐지 그 표정을 보니 토오사카가 생각난다. 아, 혹시.

[너, 암컷이야?]

내 말에 더 기분이 나빠졌는지, 흥― 하며 고개를 돌린다. 뭐랄까, 숙녀에게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하고 말하는 것 같다. 에~, 그렇다면.

[미안. 나는 에미야 시로. 당신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무릎을 꿇고 사과하며 이름을 물었다.

–Kraw

아무래도 제대로 한 것 같다. 만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발밑의 모래땅에 발로 뭔가를 쓰고 있다. 어라, 이건 오래된 글자체네. 어디어디, F……A……Y…….

[페이……씨네.]

왠지 모르게 그냥 부르는 것보다는 “씨”를 붙여 부르는 게 더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 들어(*5), 그렇게 불렀다. 그러자 까마귀 양은, ‘네, 그렇습니다.’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잘 했어요, 착하네요.’ 하듯이 가슴을 편다. 우와아, 점점 더 토오사카 같다, 이 아이.

[그럼, 페이 씨. 당분간 같이 다닐까.]

치료는 했지만, 이대로 페이를 놔두기엔 조금 걱정이 된다. 그렇다고 나도 여기서 막연히 란스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수도 없다. 그러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페이를 안아 올렸다. 상처가 다 나을 때까지는 함께 있어도 상관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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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2005년 새해, 복 많이 받고 하는 일 잘 되는 새해 되길 기도드립니다.

이제서야 한 편 했습니다. 이번 편은 묘하게 힘들더군요. 아무리 해도 번역이 안 되는 문장이 세 개 정도 있어서 며칠을 고민하다가 결국 일본어학과에 다니는 제 여동생에게 물어서 겨우 했습니다.

(*1) 하나구모리
-> 일본에는 벚꽃이 필 무렵에 하늘에 옅은 구름이 깔려 날씨가 흐려지는 때가 있다고 합니다. 이런 날씨를 하나구모리라고 하죠.

(*2) 도즈마리
-> 이것 때문에 또 엄청 고민했습니다. 가타카나… 저주하고 싶을 정도로 짜증나는 일본 알파벳입니다. ㅠ_ㅠ 이 지역은 영국 남서부에 있는 지역입니다. 아마도 dawsmere 맞을 겁니다. 이 지역 근처에는 “왕의~~”라는 지역이 몇 개 있더군요. 그런데 dawsmere를 도대체 뭐라고 발음해야 할지. 사전에도 없고… 도우즈미어… 대략 이런 식으로 발음 되지 않을까요. 잘 모르겠어서 본문에는 그냥 일본식 발음으로 적어놨습니다. 아시는 분 리플을…

(*3) 더치 오븐
-> 다 아시겠지만, 야외에서 쓰는 조리용 냄비… 입니다. 마치 작은 가마솥처럼 생겼는데, 모닥불에 그냥 놓거나 어디에 매달아 놓거나 해서 쓰는 냄비입니다.

(*4) 보팔 바니와 그 아래…
-> 찾아본 바로는 보팔 바니가 위저드리 1편에 등장한 몬스터더군요. 전편에도 나왔지만, 위저드리 1편 타이틀을 인용하는 등… 이 작가, 상당한 RPG 매니아 같아요. 제가 가지고 있는 소드 월드나 로도스도 전기 TRPG Data Book에도 보팔 바니는 없던데… 저도 RPG 상당히 좋아해서 꽤나 많이 해 봤고 자료도 많지만 이 사람 정도는 못되는 것 같군요.
아무튼 시로가 ‘오래된 소재를’이라고 하는 건, 위저드리가 좀 오래된 시리즈입니까? 거기에 등장하는 걸 이야기했다는 것 같고… 그 밑에 세이버가 한 말이 황당한 건, 린이 농담삼아 게임 캐릭터인 보팔 바니를 말한 건데, 세이버는 적당히 해석해서 전승에 남아있는 거라고 감탄하고 있기 때문에 린이랑 시로가 벙 쪄 있는 거죠. 그런데 린이나 시로, 특히 린은 컴맹 아니었나요… -_-;;; 어떻게 린이 보팔 바니를 알고 있는 걸까요… -_-;;;

(*5) 그냥 부르는 것보다는 “씨”를 붙여 부르는 게
-> 원문에는 : “짱”보다는 “씨”를 붙여야 할 것 같은… 이라고 돼 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일본식 호칭은 번역할 때 사람 미치게 만드는 것 중 하나같습니다…. -_-;;;;
번역 하시는 분 중 많은 분들이 “-짱”은 “-양”으로 번역하자고 하던데, 저는 절대 반대하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우리 말에서 “-양”은 상당히 격식있는 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아무래도 맞지 않습니다. 차라리 빼버리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선 저런 식으로 번역했습니다. 호칭 문제는 고정된 규칙보다는 그때 그때 관계에 맞는 우리식 호칭으로 바꾸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상”을 “-씨”라고 번역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요. “-씨”가 잘 어울릴 때는 “-씨”로 하는 게 좋을 거고, 그렇지 않으면 다르게 하는 게 더 좋겠죠.

제가 다는 “주”에는 일본 문장 번역에 대한 건 거의 없습니다. 읽으시는 분은 어차피 본문은 안 보실 테니 굳이 번역에 대한 걸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몇 가지를 빼면 말이죠… -_-;;; 그래서 그토록 저를 괴롭히던 문장에 대해서는 주를 안 달았어요. 아무튼 제 동생의 도움을 받아서 뜻을 알았을 때는 얼마나 기쁘던지… 그리고 이 넘들 왜 이렇게 이상한 말을 쓰나 하는 은근한 원망을…

그럼 다음 편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아무튼 다음 편에 뵙죠. 이상하게 이번 22화는 번역이 잘 안 되네요. 속도가 느려요. 아마도 루비아나 윌헬미나도 안나오고(!), 게다가 린과 세이버도 전반에만 등장하니…… 별루 손대고 싶지 않게 되더군요……-_-;;; 느긋하게 기다리세요.

그럼 안녕히. 부모님께 세배하세요. 저는 떨어져 살아서 세배 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부모님 곁에 있을 때 잘 하는게 좋은 겁니다. ㅠ_ㅠ

――――――――――――――――――――――――――――――――――――――――

[어머, 페이. 여기 있었군요.]

――에?

페이를 품에 앉은 채 일어서자,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내가 아닌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것도 방울이 구르는 듯 맑은, 근심어린 여성의 목소리다. 나는 페이를 안은 채로 얼른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처음 뵙겠어요. 당신이 페이를 구해주셨군요.]

조금 전까지 내가 있던 숲 입구에 그녀가 서 있었다. 웨이브진 촉촉하고 검은 긴 머리카락, 투명하기까지 한 흰 피부, 얇은 비단 한 장을 몸에 두른 듯한 옷은 여유 있게 늘어져 있으면서도, 그 훌륭한 몸의 라인을 숨기지는 않는다. 은으로 만들어진 새장을 손에 들고, 숲의 동물들과 함께 있는 그 여성은, 이 호수 같은 푸른 눈동자로 나를 보며 생긋 웃고 있었다.

[저, 저기……]

마치 요정 같다. 아니, 정말로 요정일 것이다. 분명히 이 사람이 ‘호수의 아가씨’. 만난 적이 없는데도 알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그 눈동자에, 나는 순간 빠져들고 있었다.

[나는 귄. 이 호수를 다스리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아, 저기, 에미야 시로라고 합니다.]

페이 양처럼, 우아하게 허리를 굽히며 인사하는 귄 양에게, 나는 반사적으로 답례해 버렸다.

[시로 님이시군요. 페이를 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장난꾸러기라 곧잘 새장을 빠져나가 놀러 가 버린답니다.]

귄 양은 가슴에 손을 대고 안심한 듯한 말투로 웃어 준다. 아, 그랬구나. 다행이네, 페이.

[……. 왜 그래?]

하지만, 품 안의 페이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뭔가 결심한 것처럼 그 귄 양을 노려보며, 가만히 몸을 굳히고 있다.

[도망쳤다고 해서 혼내지 않을게요. 이리 와요, 르 페이.]

귄 양은 그런 페이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면서, 손에 들고 있던 새장을 내밀었다.

[아, 하지만 이 녀석 상처 입었으니까.]

왠지 좀, 이대로 좁은 새장에 들여보내는 것이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내가 안아서 데리고 가겠다고 하려 했다.

[어머, 시로 님도 여성에게는 상냥하시네요.]

하고, 그 전에 귄 양이 내 말을 끊었다. 미소를 짓고 있긴 하지만, 순간 미묘하게 험악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것도 순간, 귄 양은 곧바로 원래의 온화한 귄 양으로 돌아왔다.

[그럼 페이가 정하게 하죠. 어쩔 겁니까? ―르―페이.]

133 존재

미소를 짓고 있는 귄 양과 걱정스러운 듯 내 얼굴을 번갈아 보던 페이는, 결국 포기한 듯이 울면서 스스로 새장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아, 역시 제가 안고 갈게요.]

하지만 나는 그걸 막았다. 지금 그냥 가게 해서는 안 된다. 내 마음이 어딘가에서 경종을 울린 것이다. 왠지는 모르지만, 페이를 여기서 건네준다는 것은 뭔가 치명적인 실수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녀석을 도와 준 이상, 끝까지 책임을 지고 싶은데. 부탁해요, 귄 씨.]

놀란 듯이 얼굴을 드는 페이를 품에 안은 채, 나는 귄 양에게 말했다.

[할 수 없죠.]

난처한 얼굴로 나와 페이를 바라보는 귄 양.

오싹

[――에?]

순간, 뭐라 말할 수 없는 한기가 달렸다. 뭔가 순간이지만, 세계의 네거티브와 포지티브가 바뀐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시로 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그리고 그러시다면 저희 성에 와 주신다는 거군요?]

하지만 문득 정신을 차리자, 귄 양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말을 계속하고 있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운 채, 나를 자신의 성에 초대하는 것 같다. 요정의 성으로 초대받은 것인가. 왠지 조금 위험할 것 같은 생각도 들지만, 여기까지 와서 양보할 수는 없다.

[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페이를 가슴에 안은 채, 그대로 귄 양의 초대에 응하기로 했다.

왕의 검
[검왕] ―King Aruthoria― 제 5 화 후편
Saber

귄 양에게 이끌려 온 곳은 정말로 요정의 성이었다.
아마 섬의 중앙에 있는 거겠지. 호수에서도, 그 숲에서도 보이지 않았지만, 이곳은 마치 낙원 같았다.
모든 계절의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뜰을 지나, 작은 새가 지저귀며 인도한 앞에는, 각각 특징이 있는 대리암으로 된 하얀 성이 우뚝 솟아 있었다.

[그럼, 이 여왕의 성으로.]

나는 그 중에 가장 휘황찬란한 성으로 인도를 받았다. 부드러운 햇볕을 받고 있는,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이 사이좋게 무리 짓고 있는 그 성은, 사자 뿐만 아니라 표범이나 호랑이까지 있었다.

[아, 귄 씨. 저 탑 같이 보이는 건 뭐지요?]

왠지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인 채로 인도를 받아 가던 나는, 호기심에 다른 성에 대해서도 물어 보았다.

[지금은 없지만, 언니가 살고 있던 마술사의 탑입니다.]

아, 그렇구나. 대리암으로 된 흰 건물이지만, 모양은 동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마술사의 탑 그대로다.

[그럼, 저쪽의 성 같은 것은?]

[그 곳도, 지금은 없지만, 여동생이 살고 있던 기사의 성입니다.]

역시, 높은 성벽과 삼엄하게 늘어선 탑. 그야말로 기사의 성이다. 여동생이라고는 하지만, 란스도 틀림없이 저기서 자랐을 것이다.

[그런 것보다, 시로 님. 연회 준비까지 해 놓았습니다. 어서 가시죠.]

귄 씨는 그대로 내 손을 잡아 당겨, 여왕의 성 더욱 안으로 이끌려고 했다.

[연회? 그런 대접 받을 이유가 없는데요.]

[어머, 내 소중한 페이를 데리고 와 주셨잖아요?]

귄 양은 나에게 순진하게 미소를 지어 주며, 다시 재촉한다.

[게다가 손님은 정말 오랜만이니까요. 모처럼 이니까 저도 즐기고 싶어요. 시로 님은 싫으신가요?]

음, 그런 말을 들으면 거절하기 힘들다. 그래도, 너무 기대해도 곤란한데.

연회는 호화로웠다.
란스 녀석은 [흐르는 젖]이니 뭐니 말했지만, 그것 뿐만이 아니다. 그야말로 온 세상의 과일에, 갖은 고기와 생선이 늘어 놓여 있다.
하지만, 조리법에는 조금 불평을 하고 싶다. 이것도 저것도, 단지 소금을 뿌려 구웠을 뿐이다. 이 정도 재료를 나에게 맡겼다면 좀 더 맛있는 요리를 선보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버렸다. 어쩐지 밥순이 근성이 배어 버린 것 같다. 그렇다곤 해도 그럴 수는 없다. 뭣보다 나는 이 음식을 먹을 수 없는 것이다.

[왜 그러세요? 전혀 식사를 하지 않으신 것 같은데요?]

귄 씨가 이상한 듯이 묻는다. 역시 물어 보는 구나.

[에, 그게…….]

순간 주저했지만, 나는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모처럼 대접을 받았는데 미안하지만.

[저는 곧 돌아가야 되니까.]

그러니까 먹을 수도, 마실 수도 없다. 이계로 간 사람이 가장 주의해야 하는 것이다. 이계에서 이계의 것을 먹는다는 것은 자신이 이계의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어머? 먹었다고 해서 반드시 돌아갈 수 없는 건 아니잖아요.]

귄 양은 미소를 지은 채로, 상냥하게 설득하듯이 대답한다. 하긴, 이계 사람이 된다고 해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시간이 어긋나 버리잖아요? 그것은 이미 제 세계가 아니에요. 저는 저쪽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옆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아무리 좋은 대우를 받아도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다. 나는 내 세계에서, 내 주위의 사람들과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내가 이런 세계에 살 수 있을 때는 모든 것이 끝난 후의 일일 것이다.

[아아.]

귄 씨도 이해해 준 것 같다. 응응,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생긋 웃어 주었다.

[좋은 사람이 있는 건가요?]

네?

[아, 아니. 그거야 없다고도 할 수 없다고 할까. 확실히 있지만요.]

왠지 갑자기 토오사카의 얼굴이 떠올랐다. ‘너, 또 바람피우고 있는 건 아니겠지’, 하고 찌릿 노려본다. 어이어이, 상상 속에서는 좀 더 좋은 얼굴을 보여줘. 게다가 ‘또’라니.
그리고 한숨을 쉬고 있는 세이버나, ‘어머, 시로우, 저를 위해 정절을 지키고 있는 거죠’ 라든가 말하며 루비아 양까지 떠오른다. 루비아 양은 그대로 토오사카와 내 사이에 끼어들어 가만히 서로 노려본다. 우와아, 그러니까 싸움을 그만 두라니까.
거기에 더해, 일일이 따지고 들기 시작한 두 사람에게서 한 걸음 떨어진 곳에 미나 씨까지 떠올라, 나에게 손을 흔들어 주기 시작하니, 더더욱 뭐가 뭔지 모르겠다.

[역시, 그러면 무리해서 강요할 수는 없지요.]

멍하게 머릿속의 대소동을 수습하려는 나에게, 귄 양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뭐, 그렇게 말씀해 주시면 고맙죠.

[하지만 저를 위해 이렇게 훌륭한 연회를 준비해 주신 것에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고마워요.]

그러니까 제대로 감사 인사를 해 둔다. 뭣보다 이런 대접을 해 준다는 것은 역시 기분이니까.

[네. 그러면 언젠가 또.]

오싹

또다. 또 순간 세계가 반전했다. 귄 양의 말, 왠지 그 다음에 [반드시]라고 덧붙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온화하고 상냥하게 미소를 짓는 귄 양은, 그런 말은 전혀 하지 않았을 텐데.

[역시, 여기는 요정의 세계구나. 깨끗하게 나았어.]

연회가 끝난 후 안내받은 응접실. 성의 수많은 탑 중에서 제일 호화로운 탑의 최상층에 있는 침실에서, 나는 페이의 상처를 보고 있었다. 상처는 깨끗하게 나아서, 빠졌던 깃털까지 다시 나 있다. 이거라면 내일에는 귄 양에게 돌려 줄 수 있을 것이다.

오우 코우

붕대가 벗겨져 시원했을 것이다. 페이도 ‘이제야’ 하는 듯이, 날개를 가다듬기 시작했다.

[페이도 란스처럼 말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나는 오랜만에 푸념을 늘어놓았다. 란스가 떠난 후 바로 페이나 귄 양을 만나서 잊고 있었지만, 나는 이 이계에 혼자 표류해 온 사람일 뿐이다.
지금까지는 왠지 정신이 없어서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이렇게 조용하게 혼자 있게 되면, 역시 조금 불안해 진다.

[란스와의 라인이 끊겨 있어. 이건 그 녀석이 저쪽으로 돌아갔다는 건가?]

그래서인지, 이렇게 대답 없는 페이 앞에서 혼잣말을 해 버린다. 혹시 이게 내 꿈이 아니라면 그 녀석은 반드시 토오사카나 세이버와 함께 뭔가 방법을 강구해서 이쪽으로 와 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해야 하는 것은, 될 수 있는 한 체력을 보존해서 란스가 돌아왔을 때를 대비하는 것이다. 응, 그렇지.
나는 보트에서 가져온 물과 식량을 신중하게 가늠하면서 식사를 하고 잠을 청하기로 했다. 덮개 달린 호화로운 침대. 역시 식사와는 다르게, 수면이라면 끌려 들어갈 일도 없겠지.
눈치 채지는 못했지만 상당히 피곤했는지, 나는 눕자마자 순식간에 잠이 들었다.

[……시로우…….]

달콤한 목소리가 들린다.

[……시로우…….]

소리 뿐만 아니라, 꿀같이 달콤한 향기가 비강을 떠돈다. 사락사락 하고 비단 같이 매끄러운 감촉이 피부에 전해진다. 너무 리얼하다. 하지만 현실이 아니다.

[……시로우…….]

그치만.

[……시로우…….]

눈앞에서 물기 띤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잘 익은 과일 같은 입술로 내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은,

[……시로우…….]

세이버였으니까.

[……아아.]

그래, 이것은 꿈. 절대로 현실이 아니다.
소년 같은 구석도 있지만, 그런데도 더욱 소녀의 부드러움을 전해 주는 몸은, 단지 천 한 장을 두르고 있을 뿐이었다. 내 위에서 달콤한 한숨을 흘리는 세이버에게서, 그 천 한 장마저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촉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내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만 두라는 반응을 하고 있지만, 새끼손가락 하나 조차 움직일 수 없다.
하지만 그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만약 몸이 움직인다면, 나는 틀림없이 세이버를 꼭 껴안아 버렸을 것이다.

런던에 온 후로, 세이버는 완전히 누나가 되어 버려서 잊고 있었지만, 세이버는 너무 매력적인 여자 아이었다.
달빛을 짜 올린 듯한 머리카락, 투명한 백자 같은 피부, 기품과 우아함을 겸비한 눈동자.
생각해 보면 그 어두운 창고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는 세이버에게 매료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씩씩한 기품에 숨겨지기 십상이지만, 소녀로서의 부드러움도 흘러나오는 한 명의 여성.
그런 그녀가 눈앞에 있는 것이다.

[씩씩하네요, 시로우.]

황홀한 눈동자로 세이버가 달콤하게 중얼거린다. 아, 젠장, 어째서 이런 걸 잊고 있었지?
나는 움직일 수 없어서 더욱 더 달아오르고 있는 것을 느꼈다. 안고 싶다. 꼭 껴안고 싶다. 지금 여기서 세이버를…….

[정말, 참을 필요 없어요, 시로우.]

세이버가 후훗 하고 미소를 짓자, 갑자기 몸이 자유를 되찾았다. 순간, 나는 세이버를 꼭 껴안았다. 그 가는 몸이 꺾일 정도로 강하고 격렬하게 꼭 껴안고 있었다.

[세이버…….]

순간 흠칫 하고 몸이 떨렸지만, 세이버는 그대로 힘을 빼고 내 품에 가만히 안겼다.

[자, 시로우. 사랑해 주세요. 빼앗아 주세요. 나를 손에 넣어 주세요.]

사랑은 빼앗는 것, 사랑은 손에 넣는 것, 사랑은 꽉 잡고 놓지 않는 거. 세이버의 말이 내 이성을 빼앗는다. 내 품 안에서 천천히 열리는 세이버의 몸이 더욱 더 내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빼앗아라, 탐하라. 사랑이 있다면 이 성스러운 몸을 손에 넣어 보라. 뭔가가 내 의식으로 스며들어 온다. 텅 빈 내 속이 눈앞의 세이버에게, 가득한 금빛에 감싸여 간다.

[……시로.]

세이버를 탐하려 한 순간, 가득 찬 금빛에 내 몸이 덮이기 직전, 붉은 빛이 내 속에서 튀어 올랐다.

[……시로우]

진홍빛이 가득 차오르기 시작해서, 가득한 금빛을 흘려내 보낸다.

[……시로우. 사랑해 주지 않습니까?]

흠칫 하고 움직이지 못하는 나에게, 품안의 세이버가 녹는 듯한 소리로 속삭인다. 달콤한 소리가 쉬에 울린다. 온 마음을 가지고 갈 정도로 매혹적인 소리다. 하지만.

[아니야, 세이버.]

나는 세이버에게 말했다. 마음속의, 품안의 세이버에게 동시에 말했다.

[그것만 사랑이 아니다.]

나는 틀림없이 세이버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단언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세이버를 내 것으로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성배 전쟁 때의 늠름하고 강하고, 그래서 어딘가 외곬이라 위험해 보이는 세이버. 나는 그런 세이버에게 전해 주고 싶었다. 의무가 아닌 바램을. 어떤 혹독한 책임을 떠맡고 있었더라도 사랑받아도 좋다는 것을.
토오사카나 루비아 양과 함께 즐겁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세이버. 슈프란 씨의 케이크를 맛있는 듯 와구와구 먹는 세이버. 스트라우스의 직공들과 엄격하고도 정확하게 일을 하는 세이버. 그리고, 란스와 뾰로통해지면서도 즐거운 듯이 추억을 이야기하는 세이버.
나는 세이버에게 그런 생활을 알려 주고 싶었다. 세이버는 사랑 받기에 충분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하고 싶었다.
그것이, 바로 그것이야 말로, 우리가 세이버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그렇지, 토오사카.

나는 품안에서 몸을 굳히고 있던 검은 머리의 세이버를 온 힘을 다해 밀어냈다.

[하아, 하아, 하아…….]

마치 잠에서 깬 듯한 세계의 반전. 호흡이 거칠다. 방금 전까지의 꿈처럼 멍한 달콤함과는 거리가 멀다. 마치 이 꿈 같은 시간 내내, 뭔가 사력을 다해 싸우고 있었던 것 같다.

[우와앗!]

정신을 차리고 방을 둘러보다가 깜짝 놀랐다. 어느 샌가 방에는 사슴, 일, 곰, 멧돼지와 성 안에 있던 동물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던 것이다.

[이게 대체…….]

당황하며 눈앞의 세이버에게 눈을 돌린다. 허탈한 듯한 그 모습. 세이버는 앞머리로 얼굴을 가리듯이 숨기고 있다.

[…….]

그대로 아무 말 없이 어깨를 떨고 있는 세이버. ……. 에? 잠깐! 어째서 세이버가 검은 머리를 하고 있는 거지?

[……크크크크……후후후후……하하하하.]

그대로 휙 일어서서 침대에서 내려간 세이버에게 나는 오싹했다. 아니, 아니다. 세이버가 아니다. 그 웨이브진 검은 머리. 여성 그 자체인 몸매. 이 사람은…….

[정말 재미있군. 나, 처음으로 그 아이를 만나고 싶어졌어요.]

[……귄 씨?]

가슴을 펴며 싸늘하게 조소를 흘리며 서 있는 것은. 틀림없이 귄 양이었다.
하지만 낮에 보였던 온화함이나 상냥함은 전혀 없다. 오만할 정도로 사람을 업신여기는 눈으로, 천박해 보일 정도로 입술을 비뚤어뜨린 미소는, 정령의 여왕이 아니라 사악한 마녀 그 자체였다.
내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그런데도 귄 양의 몸에 감기는 공기는 거대한 정령. 바로 이 사악한 마녀가 “호수의 아가씨”이다.

[정말 웃기는 군요. 어이없게, 그 아이도 참, 자신의 것을 놓쳐버렸군요.]

오만한 미소를 지은 채로, 귄 양은 아주 즐거운 듯이 웃는다.

[무슨 소릴 하는 거냐!]

귄이 말하는 “그 아이”가 세이버라는 것은 나도 깨달았다. 그러나 그 외에는 전혀 모른다. 조금씩 뒤로 물러서면서도 나는 내뱉듯이 물었다.

[아, 아직 모르고 있는 거야? 마술사 주제에 형편없네.]

순간 무서워하던 것을 잊었다. 왠지 엄청 화나는 말이다.

[처음 뵙겠어요. 나는 귀네비어 펜드래건. 당신이 세이버라고 부르는 아이의 언니이며 아내, 그리고…….]

비웃듯이 고개를 들자, 주위의 동물들은 마치 주인의 시중을 드는 기사처럼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브리튼의 여왕.]

순간, 동물들이 모습을 바꾼다. 모피는 강철의 갑옷으로, 손톱은 차가운 검으로, 차례차례 동물들은 기사로 모습을 바꾼다.

[뭐! 뭐지!?]

나는 당황해 침대에서 뛰어내려 벽으로 몸을 피했다. 열, 스물이 아니라 방 가득히 기사가 귄을 모시고 있다.

[그 아이의 것이었다면 빼앗아 주려고 했지만, 그렇지 않다면 흥미 없어요. 죽여요. 그렇지……안에 있는 것은 돌려받겠어요. 그건 원래 이곳의 물건이니까.]

이미 흥미 없다는 듯이 귄은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일제히 검을 뽑아 나를 향하는 기사들. 무슨 소릴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기서 살해당할 수는 없다. 나는 검을 투영…….

……………….

으아아아아! 할 수 없었지! 당황해서 침대 위의 활을 들었지만, 이걸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젠장, 어떻게 해야…….

――검을…….

문득 머리에 누군가의 사고가 흘러들어왔다. 란스같이 딱딱한 소리. 하지만 색기가 있다. 여성?

――타락했다고는 해도, 그들도 원탁의 기사…….

계속 사고가 흘러들어온다. 원탁의 기사? 이 녀석들이? 아, 그런가……. 생각났다. 최후의 싸움에서 원탁의 기사는 적과 아군으로 갈라져서 싸웠지.
나는 눈앞에 다가오는 기사들에게 눈을 돌린다. 한없이 강해 힘이 흘러넘치면서도 부끄러운 듯이 투구의 면갑을 내려 얼굴을 숨기고 있는 기사. 그렇구나, 이 녀석들은 아직……. 그렇다면.

[――투영 개시(트레이스 온)]

나는 ‘투영’ 했다. 나의 근본, 나의 진짜 ‘투영’. 나는 내 속으로 손을 뻗는다. 물론 지금 그곳에 무한의 검은 없다. 있는 것은 단 세 개. 그 중에서도 지금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은 단지 하나.

[선정의 검(칼리번)]

세이버, 지금은 이 녀석을 빌릴 거야. 생각나게 해 주겠어. 이 녀석들에게 황금의 나날을. 세이버 밑에서 질주하던 그 날을.

――waiting for one’s arrival(단 한 명의 주인을 기다린다).

떨릴 정도의 반동과 함께, 나는 주문을 외운다. 내 속에 손을 뻗어 잡아 올린 손안에는 황금의 성검이 빛나고 있다.

[어째서! 배반한 주제에 어째서 그걸 사용할 수 있는 거지!]

내 손안에서 빛을 내뿜는 성검을 노려보듯이, 귄의 절규가 메아리친다. 아아, 아직 모르고 있군. 당신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나는 세이버를 배반한 적이 없다. 세이버에 대한 내 생각은 틀림없이 진심이다.

나는 빛나는 성검을 높이 든다. 휘두를 필요는 없다. 기사들은 빛에 삼켜져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아아, 그렇다. 생각해 내는 거다. 그 날을. 이 검을 손에 들고 있던, 빛나는 눈으로 미래를 바라보던 당신들의 주인을.
너희는 자신을 위해 그를 따랐는가? 아니다. 그 모습의 미래를, 그 빛이 향하는 곳을 모두 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었나?

[웃기지 마! 자신의 의지로 배반한 주제에! 뭘 이제 와서 충의를 생각하는가.]

그런 기사들에게 귄의 질책이 떨어진다. 조롱하듯이 갉아 들어가듯이 유혹하며 말을 잇는다.

[육체에 빠져 성을 더럽힌 너희들이 이제 와서 다시 돌아간다고? 자, 똑바로 서라, 너희들에게는 그 검을 따를 자격이 이제 없으니까!]

젠장, 조금만 더 하면 됐는데.
기사들은 비틀거리며 검을 다시 잡아 나에게 다가온다.
대치하는 나도 칼리번을 다시 잡았다. 검에서 전해져 오는 기술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서도, 세이버와는 다르다, 나는 이 검을 완벽하게 다룰 수 없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 정도 숫자를 상대할 수는 없구나. 그것을 깨달은 마음이 사실을 냉정하게 들이댄다.

――이쪽으로!

하고 다시 또 내 머리에 말이 흘러들어 왔다.
아니, 느낌도 있다. 목 뒤를 끌듯이 당기는 느낌. 분명히 뒤에는 창문이 있었지.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나는 주저하지 않고 바로 뒤로 뛰었다. 조금 전의 충고는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의심할 이유가 없다.

[――어라?]

아슬아슬하게 기사의 검을 피해 창으로 뛰어 나온 순간, 나는 다른 하나의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이 방은 분명히 탑의 최상층이 아니었나?

[우아아아――――!!]

떨어지는 내 눈에는, ‘어머, 깜박했어요.’라는 표정을 짓는 까마귀. 그게 의식을 잃기 전 내 눈에 비친 마지막 광경이었다.

……………….

………….

[……시로…….]

달콤한 목소리가 들린다.

[……시로…….]

소리 뿐만 아니라, 꿀처럼 달콤한 향기가 비강을 떠돈다. 사락사락하는 비단처럼 매끄러운 감촉이 피부에 전해진다. 너무 리얼하다. 하지만 현실이 아니다.

[……시로…….]

그치만.

[시로…….]

눈앞에서 한심하다는 듯한 눈으로 최고의 미소를 띠우고, 거기다 핏대까지 올리고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은,

[이제 그만 일어나! 시로!]

토오사카였으니까.

[우와아아아!]

깼어, 완전히 깼어. 완벽하게 깼어.

[하아, 하아, 하아…….]

우와, 리얼한 꿈이었다. 토오사카의 최고로 웃는 얼굴은 역시 박력있다.

RowKrow

하고 내 뺨을 찌르는 존재를 간신히 깨달았다. 페이다. 왠지 방금 전의 토오사카 같은 표정으로, 화를 내면서 쪼아대고 있다.

[정말 너는 토오사카를 닮았구나.]

설마 내 인생에서 두 명이나……아니 세 명 째 일지도 모른다. 그런 여자 아이를 만나리라고는 생각해 보지도 못했다.

오우?

그렇다곤 해도, 내 의식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안심한 모습도 알 수 있다. 역시 토오사카를 닮았어. 아무래도 몸은 괜찮은지 묻고 있는 것 같다.

[아, 조금 욱신거리지만, 어떻게 괜찮은 것 같아. 잘도 살았네.]

나는 몸 상태를 확인하며 페이에게 대답했다. 위를 올려보자, 탑의 중간까지 드높고 울창하게 가지를 뻗은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이다. 아마 그 가지 때문에 속도가 줄었을 것이다. 운이 좋았다.

아뇨

그런 나에게, 좋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페이는 어디론가 끌고 가려고 한다.

[어디로 가지? 도망쳐야겠지만, 귄은 이곳의 여왕이잖아?]

이 세계의 주인에게서 무사히 도망칠 수 있을까?

――Kraw

내 질문에 페이는 울면서 눈으로 행선지를 말한다. 시선 끝에는 이 성의 다른 건물, 마술사의 탑과 기사의 성. 그러고 보니 자매가 사는 곳이라고 했었지. 없다고 했지만 그래도 거기라면 완전히 귄의 영지는 아닌 것일까.

[그럼, 어디로 가지?]

한동안 고개를 갸웃거리던 페이는, 결국 기사의 성을 가리켰다. 아, 그렇다면 ‘여동생의 성’이라고 했었지. 즉 세이버의 성이라는 건가.

[알았어. 가자.]

그 성이라면 란스도 연고가 있다. 귄도 그런 곳에 숨어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하얀 성을 향해 조심스럽게 걷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하얀 외관과는 다르게, 성은 살풍경한 모습이었다.
조명은 횃불. 마루나 벽도 그냥 돌이 드러나 있다. 카펫은커녕 나무판자로 마감질도 안 되어 있다.

[너무 쓸쓸한데.]

귄은 지금은 없다고 했지만, 지금은커녕 요 몇 백 년 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던 것 같은 분위기다. 먼지가 모여 있다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살던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이, 도대체 어디 가는 거야?]

페이는 그대로 성의 홀을 지나 안뜰로 나가려고 한다. 불만스런 얼굴을 하고 있어서인가? 입 다물고 따라와요, 하고 찌릿 노려본다. 으음. 아무래도 이런 여성에게는 약하다.

[――에?]

끌려나온 안뜰. 희미한 횃불에 비추어진 적막한, 완전한 원형 광장. 그곳은 묘지였다.
원형으로 무수히 서 있는 묘비. 아니, 조각상인가? 관을 세운 것 같은 묘비에는 살아 있는 것처럼 기사의 조각상이 조각되어 있다. 그렇다. 바로 침대에 누운 기사를 그대로 세운 것 같은, 그런 형태의 묘비였다.

[그런가. 이곳은 원탁이구나…….]

나는 핫, 하고 깨달았다. 이 안뜰도 원형, 그리고 묘비가 늘어선 모양도 원형. 그렇다면 이것은 원탁의 기사의 묘비. 아니, 언젠가 다시 왕이 눈을 떴을 때, 모두 다시 눈을 뜨기 위해 모셔진 기사의 침실인가.

그러고 보니, 한층 더 밝은 횃불에 비추어지고 있는 중앙에는……. 나는 기사들의 사이를 지나 가운데로 향했다.

[없나…….]

중앙의 횃불에 비춰진 큰 바위와 작은 침대. 큰 남자가 눕기에는 조금 작은 그 곳에 사람의 모습은 없었다. 조금 안심했다. 이런 곳에서 긴 잠을 자고 있는 세이버를 만나고 싶진 않았다.

――Kow

그 때, 침대의 베개 옆에 있는 큰 바위에 멈춰 있던 페이가 울었다. 잠깐, 여길 봐요, 하는 느낌이다. 어디어디?

[……앗! 이거 설마.]

큰 바위 옆에는 검 한 개가 놓여 있었다. 푸른 나전과 금 상감. 잘못 볼 리가 없다. 이것은 세이버가 잃어버린 검. [선정의 검(칼리번)]이다.

[그럼 이 바위는…….]

나는 다시 큰 바위를 보았다. 아, 있다. 바위 바로 위, 정확히 검날이 들어갈 것 같은 얇은 구멍. 그렇구나, 이것이 선정의 바위구나.

[그런데 어째서 없는 거지?]

전설에 의하면, 사후 세이버는 호수의 아가씨에 이끌려 불로불사의 나라에서 잠들어 있을 것이다. 실제로 여기에는 침대도 있다. 세이버를 수행하던 기사들도 있다.
어째서 없지, 하는 표정을 짓자, 페이는 당연하지요, 하는 표정을 짓는다. 당연하다고? 아, 그런가. 세이버는 이곳에 있구나. 분명히 이곳에는 “하나” 밖에 없다.
어쩐지 이해는 할 수 있었다. 단지,

[여기는 너무 쓸쓸한데.]

세이버가 자기 위해 도착하는 곳이라면, 좀 더 밝은 곳이라면 좋겠다. 꽃으로 장식을 해도 좋고, 뭣보다 그 기사들의 무뚝뚝한 얼굴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

[참 나, 너희들, 왕이라고 너무 의지하는 거라고. 여자 아이니까 좀 소중히 해라.]

푸념이라는 것을 알고 있긴 해도, 한 마디 하고 싶어진다.

――Kow

페이 녀석도 ‘확실히 그럴지도’하고 운다. 왠지 모르게 기사들이 계면쩍은 얼굴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빛 때문일까.
이 녀석들에 비하면 아직 란스가 더 나을 지도 모른다. 고생시키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너도 남 이야기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란스.

나는 허공으로 눈을 돌리며 의식을 날린다. 희미하게, 그야말로 거미줄같이 보일까 안보일까, 닿을 수 있을지 없을지 정도의 느낌이지만, 그런데도 제대로 닿는 느낌.

――Cow

내 기분에 호응하듯이, 어디선가 까마귀가 우는 소리가 들린다. 좋아, 연결됐다.
아무래도 저쪽에서도 큰 난리가 났나보다. 토오사카도 세이버도 안색을 바꾸어 정신없는 것 같다. 응, 토오사카가? 그렇구나, 미안, 토오사카.
좋아, 방법은 알았어. 이번엔 이 라인 자르지마.

[이걸로 작별이야. 신세 졌어. 왠지 조금 쓸쓸하긴 하지만.]

나는, 흥미로운 듯이 나를 보고 있던 페이에게 말을 건넸다. 손뼉을 쳤다. 이제는 연락을 기다릴 뿐.

[정말, 이걸로 작별이군요.]

순간, 페이가 대답했나 했다. 하지만, 아니다. 무거운 금속음이 몰려 든 것과 동시에 안뜰에 메아리친 것은 아주 차가운 음성이었다. 이런, 벌써 들켜 버린 건가.

안뜰 입고, 거기서 입술을 일그러뜨리고, 검은 옷을 입은 기사들을 데리고 서 있는 것은 흑발의 마녀. 오만하게 가슴을 으쓱거리는 귄이 냉소를 지으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보내 달라고 해도 보내 주지 않으려나.]

나는 일단 물어보았다. 뭐니 뭐니 해도 이 사람도 세이버의 언니다. 싸우고 싶지는 않다.

[무슨 바보 같은. 아아, 그렇군요. 제 것이 되세요. 어차피 그 아이는 차 버렸겠지? 그렇다면 나라도 괜찮잖아요. 인간 세상의 짧은 삶보다 더 재미있게 지낼 수 있어요.]

턱을 올리며 마치 뭔가 대단한 거라도 하사하는 듯한 말투로 귄이 말한다. 아아, 역시 이 사람은 알아주지 않는구나.

[말했잖아. 나는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곁으로 돌아간다고. 당신과는 함께 있을 수 없어.]

설령 세이버라도 나는 이곳에는 있고 싶지 않다. 나는 내 인생을 내 세계와 함께 보내지 않으면, 앞으로 나갈 수 없다. 나는 확실히 텅 비어 있는 남자지만, 그래도 반쪽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그렇다면 죽어요. 이젠 칼리번을 꺼내도 소용없어요. 내 기사들은 그 검에 바친 충의를 깨버리고 온 사람들이니까.]

하지만 그것이 본심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설령 부정하고 있어도, 이 녀석들도 세이버를 좋아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까 같은 방법으로, 깨버리게 한 거 거겠지?]

[죽여라!!]

귄의 날카로운 소리가, 내 대답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그 소리에 검을 뽑아 다가오는 파약(破約 : 계약을 깨뜨림)의 기사들. 나는 검을 거머쥐고 오는 것을 기다린다.

[――검단 개시(트레이스 온)]

――I am the bone of my sword(몸은 검으로 되어 있다).

내 손안의 검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Steel is my body, and fire is my blood(피는 철로, 마음은 유리).

더 말할 것 없이, 이 녀석들은 기다리고 있다.

――I have created over a thousand blades(수많은 전장을 거치면서도 불패).

그렇다면 한 번 더 맹세하게 해 주겠어. 세이버가 왕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겠다.

――Unaware of loss(단 한 번의 패주도 없고).

스물일곱 개의 철퇴가 스물일곱 개의 모루에 부딪친다.

――Nor aware of gain(단 한 번의 승리도 없다).

지금 내 손에 있는 것은 진짜 [선정의 검]

――Withstood pain to create many weapons(무한한 검제의 끝).

자, 다시 한 번 해 보는 거다.

――waiting for one’s arrival(단 한 명의 주인을 기다린다).

와라! 세이버! 네 검이 기다리고 있다.

내 손에 있던 부러진 왕의 검은, 지금 확실히 새롭게 단련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 [선정의 검]이 아니다.
내가 사람의 생각을 담아서 다시 단련했다. 이것은 새로운 맹세를 받아들이기 위한 검이다.

[다시 단련된 왕도의 검(Ex칼리번)]

금빛과 푸른빛과 붉은빛이 물들여진 검이, 황금빛과 함께 눈앞의 바위에 다시 우뚝 솟았다.

지금이다!

[란스!]

나는 외쳤다. 라인을 통해 저쪽 세계까지 닿을 정도의 소리로.

황금빛에 의해 움직임을 멈춘 기사들의 등 뒤에서 무지개가 걸린다. 일곱 색 무지개. 이계로의 문. 나와 란스의 라인을 타고 토오사카가 뚫은 일곱 색의 문(만화경).

[“――약속된(엑스)――”]

무지개 아치 저쪽에서 맑은 목소리가 울린다. 문은 만들었다. 그러니까 다음엔 열쇠를 준비하면 된다.

[“――승리의 검(칼리버)――”]

뭣보다 이래서야 힘으로 밀어붙이는 거잖아. 쓴웃음을 짓는 내 앞에서, 빛의 띠가 압도적인 힘으로 문을 찢는다. 더더욱 몰아닥치는 빛의 띠. 그 것은 마치 왕도를 만들 듯이 곧바로 [다시 단련된 왕도의 검(Ex칼리번)]으로 뻗어온다.

찰나 세계가 하얗게 흐려진다. 흩어진 빛이 주변을 짓누른다. 파약의 기사들을 찌른다.
빛나는 빛에 순간 사라졌던 시야가 다시 돌아왔을 때, 거기 남아 있는 것은 무지개의 문과 거기에서 뻗어 있는 하나의 하얀 길.

그리고, 그것이 닿는 곳에는 [Ex칼리번]이 있다.

[……어째서…….]

압도적인 빛 안에서 엎드리는 파약의 기사들 가운데, 혼자만 서 있던 귄이 중얼거린다.

[언제나 그래! 어째서 언제나 그 아이야!]

이를 악물고 노려보는 그 시선 앞에는 하얗게 빛나는 왕도를 토오사카와 함께 당당히 걸어오는 세이버의 모습.

[시로우…….]

그런 귄이나 기사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세이버는 그대로 내 앞까지 와 주었다.

[뭐하고 있는 거야.]

대단히 기분이 나쁜 것 같은 토오사카와 함께, 잠깐 잠깐,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그런 눈으로 바라본다.

[이야기는 다음에. 세이버, 저 녀석들을 부탁해.]

나는 헛기침을 한 번 하며, 눈으로 부복한 파약의 기사들을 가리켰다.

[어째서입니까? 시로우.]

세이버는 내가 처음으로 듣는 것 같은 엄중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그야말로 조금 전의 귄에게 뒤떨어지지 않는 차가운 눈으로 그 녀석들을 노려본다.
그렇기 때문에, 싫으니까 나는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세이버에게 간언하지 않으면 안 된다.

[확실히 이 녀석들이 세이버를 배반했을지도 몰라. 그렇지만 그게 전부였던 건 아니었을 거야. 사실은 끝까지 세이버와 함께 있고 싶었을 거라고 생각해.]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무릎을 꿇거나 하지 않는다. 기운 없이 부복하여 머리를 늘어뜨리고 세이버를 기다리고 있거나 하지 않는다. 나도 토오사카가 없었다면…….

[시로우는 너무 무릅니다.]

세이버는 딱 잘라 냉철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우우, 역시. 그래도.

[그렇지만, 그 무른 면 때문에 나는 몇 번이나 구해졌습니다. 시로우. 당신의 말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세이버는 그렇게 말하며 상냥하게 웃었다. 그 미소가 조금 딱딱해지며 그대로 [다시 단련된 왕도의 검(Ex칼리번)] 앞에 선다.

[이것으로 나는 다시 왕의 증거를 세운다.]

늠름한 목소리로 세이버는 선언한다. 검의 문양을 부드럽게 사랑스러운 듯이 어루만지다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강하게 거머쥔다.

――척――

소리가 나지 않는 소리가 기사들 가운데서 울리고, 거기에 맞추듯이 세이버는 꽉 움켜진 검을 뽑아냈다.

[이것으로 내 왕권이 정해졌다. 이의 있는 자는 나오라!]

새로운 맹세, 새로운 계약. 기사들은 차례차례 일어서서 검을 바치고 충성을 맹세한다. 맹세할 때마다 한 때 동료였던 자들과 같이 석상으로 바뀌어 가지만, 그 누구도 주저하지 않는다.
마지막 한 명이 석상으로 바뀌는 것과, 시퍼런 얼굴로 입술을 깨문 귄이 세이버를 노려보며 앞으로 나온 것은 거의 동시였다.

[…….]

미소를 지우고, 다시 조금 전과 같이 어두운 얼굴로 돌아온 세이버. 하지만 그 입을 열기 직전에, 귄은 내뱉듯이 말했다.

[오래간만입니다, 폐하. 저를 뭐라고 불러 주시겠습니까? 언니? 아니면 ‘내가 가장 사랑하는 귀네비어’?]

어디까지나 우아하게, 그래서 더욱 독기를 담아.

[귀네비어…….]

[어머, 드디어 아무 것도 붙이지 않고 귀네비어? 하하, 확실히 저에게 딱 맞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막 모두 당신에게 돌아가 버렸으니까요.]

증오가 깃든 눈으로, 휙 얼굴을 들어 세이버를 노려본다.

[언제나, 항상, 어느 누구나 당신, 당신, 당신! 똑같은 혈통을 이어 받아, 같은 운명을 걷도록 정해졌으면서도, 나에게는 아무 것도 없었어요! 남편조차도 여자라니! 어째서 나는 바라면 안 되는 것인가요.]

[나는 당신에게는 할 수 있는 것은 가능한 한 다 해줄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아이를 낳게 해 줘요.]

세이버의 중얼거림에 추악할 정도로 입술을 일그러뜨리고, 귄은 내뱉는다.

[정실이면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여자의 괴로움. 여자로 있지 않았던 폐하는 알 수 없죠? 그럼, 제가 낳았을 아이를 돌려주세요!]

이런……안 되는데. 세이버는 입술을 깨물며 머리를 숙이고 있지만, 토오사카는 이제 참지 못한다. 빠직빠직 혈관이 끊어지는 소리가 분명히 들린다. 어쩔 수 없군. 내가.

[잠깐! …….]

아아, 늦었다.

[너! [아아 정말, 적당히 해 둬, 귀네비어! 결국 이 아이에게 질투하는 거잖아? 알트리어, 너도 그래. 항상 그러니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귀네비어에게 휘둘리는 거잖아!]]

어라?

토오사카의 노성과 함께 뒤에서 같을 정도의 울림이, 훨씬 요염한 소리가 따라 온다.

[누구야, 이 녀석은.]

멍하게 있는 나를, 원수를 보는 듯이 흘겨보며, 토오사카는 매우 기분 나쁜 듯한 목소리로 캐묻는다.

[아, 아니, 몰라!]

[매정하네, 에미야. 그 품에 안아 준 것은 그저 한 때의 놀이였던가?]

에?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릴 것 같은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은 채, 그 여성은 토오사카에게 멱살을 잡혀 있는 내 옆을 지나, 세이버와 귄을 향해 걸어간다. 그런 그녀를 가까이서 보고 나는 간신히 깨달았다. 칠흑의 머리카락은 귄과 같지만, 그 얼굴 생김새, 그 눈의 색, 어느 것이나 세이버를 꼭 닮았다. 그것은 나이는 다르지만, 세이버가 만약 앞으로 10년 정도 더 성장한다면 반드시 이 여성과 같은 용모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눈초리만은 세이버가 아니다. 기색이 완전히 달라, 그것은 오히려 토오사카와 꼭 닮았다. 그렇다는 것은…….

[페이?]

[빙고.]

내 중얼거림에 살랑살랑 손을 흔들며 대답한 페이 씨는, 그대로 방금 전까지 멍하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세이버, 귄 두 자매 사이로 들어갔다. 우와아, 이런 미인이 까마귀였단 말인가.

[누구야! 페이라니!]

하고 그런 나에게 토오사카가 더욱 더 화를 내며 목을 졸라 온다. 잠깐! 목을 조이면 숨이, 숨이!

[뭣보다, 네 질투는 착각이야, 그네비어. 이 아이 정말 바보라서 말야, 저만한 것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전부 무거운 짐으로 여기고 있었어. 너가 멋진 보석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도, 이 아이에게는 등을 짓누르는 무거운 돌이었을 뿐이라고. 이래서야 아무리 질투를 해도 통할 리가 없지. 소용없어, 그만 둬.]

[언니…….]

뭔가 심하게 매도 된 세이버가, 독기를 풀며 뾰로통한 얼굴이 되어 있다.

[언니? ……에, 그럼 그 이상한 여자가 모르간 르 페이?]

토오사카가 맹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이며, 나를 조르던 손을 느슨하게 했다. 아, 페이라는 건 그런 거였구나.
세이버의 언니이며, 희대의 마녀, 모르간 르 페이. 호수의 아가씨이기도 하며, 세이버에게 있어서는 가장 대하기 껄끄러운 상대. 전승이라던 세이버의 마지막 적, 모드레트의 어머니였지만…….

[어……어째서 원래대로 돌아온 거야!]

그런 페이 씨를 앞에 두고, 방금 전까지 세이버에게 다가서던 박력은 사라지고 귀네비어 왕비는 시퍼런 얼굴로 뒤로 물러선다.

[그야 네 저주가 사라졌으니까 그렇지. 아서왕이 돌아와서 원탁의 기사가 모였다고. 네 저주 정도야 간단하게 날아가 버리지.]

뒤로 물러설 때마다, 왠지 안개 같은 것에 둘러싸여 가는 귀네비어 왕비를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면서 페이 씨는 시원스럽게 대답한다.

[어떻게 된 거야?]

그런 모습을 보며 나는 토오사카에게 물었다.

[바보, 주술의 기초잖아. 저주는 깨지면 시술자에게 되돌아간다고.]

그렇다는 건, 까마귀가 되는 것이 저주였다는 거고, 그게 되돌아간다는 것은…….

[나는 속성상 갈가마귀였지만, 너는 무엇일까? 겁쟁이인 주제에 바라는 것만 많은 너니, 틀림없이 이상한 생물이 될 거야.]

[이럴 리 없어! 원탁의 기사는 다 모이지 않았다고. 소중한 사람이 한 명…….]

왠지 솜털 같은 것에 싸이고 있는 귀네비어 왕비가 비통한 절규를 외친다. 그럴 리 없다고. 하지만 거기서 그녀에게 급소를 찌르듯이, 정말로 힘없는 까마귀의 울음이 울린다.

――용서하시오, 왕비.

토오사카의 뒤에서, 면목 없는 듯이 란스가 얼굴을 내밀었다. 도대체 이 녀석은 어디 있는 건가, 하고 생각했더니…….

[……란슬롯.]

귀네비어 왕비의 목소리에 절망이 깃든다.

――포기하시오, 왕비. 이번엔 당신을 구할 수 없소.

[어쩔 수 없군요, 란슬롯…….]

이미 반 정도로 크기가 줄어들어 버린 귀네비어 왕비가 단념한 것처럼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에는 오만함은 사라지고, 처음 만났을 때의 부드럽고 따뜻한 음성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결국, 일시적인 사랑, 왜냐하면 당신이…….]

마지막 말을 하지도 못하고, 귀네비어 왕비는 작고 흰 토끼로 변해 버렸다.

[흰 토끼? 어쩐지 맥 빠지네.]

토오사카가 함부로 말한다.

[아니아니, 아가씨. 토끼를 바보 취급하면 안 돼. 이 세상에는 순간에 사람의 머리를 날려 버리는 토끼도 있으니까.]

토오사카의 중얼거리는 소리에 농담 섞어 대답하며, 페이 씨는 귀네비어 토끼를 안아 올려, 영차 하고 성 밖으로 내던졌다. 그러자.

[페이 씨!]
[언니!]

나와 세이버의 목소리가 같이 울린다. 토오사카는 뭐, 어때, 상관없잖아 하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나는 세이버가 나무라듯 외친 것이 기뻤다. 뭐니 뭐니 해도 역시 자매다.

[아, 그런 얼굴 하지 마. 저 녀석도 마녀니까, 이 정도로 다치진 않아.]

화내는 세이버를 가볍게 달래며, 페이 씨는 세이버에게 생긋 웃어 주었다. 세이버를 가볍게 다루다니, 역시 연륜의 차이인가.

[그것보다, 오랜만이네, 알트리어. 건강하잖아.]

[네, 언니도 변함없이…….]

힘없이 대답하는 세이버는, 왠지 평소보다 어리게 보인다.

[그럼 새로운 얼굴도 있는 것 같으니 소개해 주지 않겠어?]

나와 토오사카의 얼굴을 재미있는 듯이 바라보며, 모르간 르 페이는 마치 여왕님처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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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정말로 변함없었다.
린과 시로우를 소개할 때, 역시 시로우에게 추파를 던져 린을 화나게 하고, 귀네비어 때문인지 힘없이 있던 란스에게 싸움을 걸어 다시 회복하게 하고 있다.

[그건 그렇고, 에미야. 너 여기에 남지 않겠어?]

그러던 중에 언니는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잠깐, 무슨 소리야!]

여기에는 시로우보다 린이 먼저 달려든다. 처음엔 희대의 마녀라는 것에 사양을 하고 있던 린이지만, 실컷 시로우 때문에 놀림을 받은 덕분에 완전히 본바탕이 드러나 버렸다.

[그치만 그이, 머지않아 가 버린다구. 그럴 바에야 여기 있는 게 좋지 않겠어?]

아무렇지도 않은 언니의 말이지만, 그것은 우리에게는 쿵― 할 정도로 무거운 말이기도 했다. [머지않아 가 버린다]니 어디로? 그것은 붉은 기사가 있던 곳…….

[웃기지 마. 나는 이 녀석이 그곳으로 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아.]

조금 전과는 다르게 냉정한 목소리로 린이 대답한다. 그렇지, 그 때문에 나는 남았다. 그것이야 말로 시로우의 대답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면 살아 있을 때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자기 자신을 저 정도까지 단련한 아이라구. 이 정도라면 죽고 나서 아마 끌려가 버릴 거야. 거기까진 생각하지 못했지?]

거기에 언니의 말이 꽂힌다. 살아 있는 동안은 지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죽고 나서는? 행복하게 살았는데도, 그 다음에 그 자리로 가 버린다면?

[알았어. 이 녀석은 머지않아 갈 거야. 그렇지만 그렇다 해도 생각이 있어.]

하지만 린은 견뎌낸 듯이, 언니를 바라보며 단호히 잘라 말한다.

[호~오, 어떻게 할 생각이지?]

[흥, 당연하지. 이 녀석이 간다면 나도 가. 어딜 가도 이 녀석이 변할 리 없으니 내 보구로 삼아서 쭉 같이 있어 줄 거야.]

여기에는 언니도 할 말을 잃었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설마 이런 대답을 하리라곤…….

[하……하, 하하하하! 그거 멋진데! 그렇지, 보구로 삼으면 되는 거네. 뭐니 뭐니 해도 지금도 그거랑 비슷한 것 같고. 그건 생각 못했네.]

잠깐의 침묵 후, 언니는 불이 붙은 듯이 웃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배꼽이 빠질 듯이, 숨이 막힐 정도로 폭소하고 있다.

[토오사카, 뭐야, 네 보구라니.]

언니와 린의 언쟁을 멍하게 바라보던 시로우가, 이제야 간신히 입을 열었다. 언니의 폭소를 보며 화난 듯한 얼굴로 입을 삐죽 내미는 린에게, 그건 좀 아니잖아 하고 불평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함께 가기 위해 자신이 보구가 되겠다고 하는 것과는 다르다. 멋대로 시로우를 보구로 삼겠다고 결정해 버린 것이다.

[좋잖아. 왜? 시로는 싫어?]

스스로도 엄청난 소릴 해 버렸다는 것을 알아챘는지, 린은 조금 얼굴을 붉히며 고집을 세운다. 정말, 정말로 솔직하지 못하다.

[아니, 불만이라든가가 아니라, 이상하잖아? 그거?]

[뭐가 이상해! 뭣보다 여기로 오는 문, 저것 때문에 도대체 어느 정도 보석을 사용한 줄 알아? 보구라도 되어 주지 않으면 안 맞을 정도라고!]

[그, 그런 뜻이었어?]

[그, 그런 뜻도 있어!]

그렇게 조금 핀트가 빗나간 듯한 대화를 주고받는 두 사람을, 언니는 정말로 즐거운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변함없군요, 언니.]

[너는 변했구나.]

내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언니는 가끔씩 보이는 맑고 상냥한 얼굴로 대답해 주었다.

[그럴까요.]

[응, 아주 둥글어졌어. 에미야 덕분이야?]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것 뿐만이 아닙니다.]

린도, 그리고 주위 사람들도 나를 바꾸어 주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을 보여 주었다.

[뭐, 좋아. 자, 가 봐. 머지않아 돌아올 테니까. 그 때까지는 마음껏 즐기는 게 좋아.]

[언니는 언제나 그렇죠.]

이 사람은 무엇이나 즐기는 사람이었다. 괴롭고 괴로워도, 즐기는 것을 잊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 무렵의 나는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지만.

[네가 돌아올 무렵에는 귀네비어도 자력으로 저주를 풀 테니까. 그럼 또 셋이서 놀자구.]

[나는 언니들과 논 기억이 없는데요.]

[귀네비아도 자주 말했지만, 나는 언제나 너희와 놀고 있던 거였어.]

이번 같은 일을 당한 것도 이 사람에게는 놀이의 하나인 것이다. 물론, 생명을 건 놀이다. 그렇지만 이 사람은 그런 내기에 져서 죽을 때도, 아~ 즐거웠어, 하고 죽어 갈 것이다. 하지만.

[모드레트에 대한 것도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아~ 그 아이에 대한 건 사과할게. 내 아이니까 그 정도 풍파는 일으키지 않겠지 했지만, 너무 풀어 놨어.]

역시 아픈 곳을 찔렸을 것이다. 언니는 차분한 표정으로 머리를 숙인다. 그렇지만 ‘내 아이니까’?

[언니?]

[자, 문이 사라져. 대단한데, 그 아가씨. 이건 만화경의 무늬인가. 젊은데도 상당히 가까워 진 것 같네.]

[언니, 뭔가 숨기고 있는 거 아닌가요?]

[돌아오면 이야기 해 줄게. 전부 알고 있으면 재미없잖아?]

또 이런다. 이 사람은 어째서 이렇게 인생을 장난처럼 여기는 것일까. 조금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지금 나는 이 언니가 아무래도 미워지지 않는다.

[알겠습니다, 언니. 그럼 그 때를 기대하며 가 보겠습니다. 선물은 뭐가 좋겠어요?]

평소와 다름없이 장난이 심한 언니에게, 오늘은 나도 조금 농담을 던져 보았다. 나도 이 정도는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언니는 그런 나를 아주 기쁜 듯이 바라보고 있다.

[그럼, 추억을 가득 부탁해. 아주 즐거운 걸로.]

네,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시로우와 린의 뒤를 따라갔다. 지금부터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언니의 기대에는 반드시 응할 수 있을 것이다.
머지않아 돌아올 그 날에는, 양손 가득히 선물을 안고 돌아올 것이다.

틀림없이, 그것이 바로 대답이 될 것이다.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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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상 특별히 작가의 코멘트도 번역합니다…. ㅠ_ㅠ)

네~ 우선은 변명.
이 이야기. [귀네비어는 세이버의 언니로 모드레트의 어머니]라는 Fate의 설명이, 모르간의 오타라는 것을 모르고 써 버렸습니다.
뭐, 귀네비어가 세이버의 언니라는 것은 납득할 수 있겠죠. 세이버가 여성인 이상, 제일 친밀한 혈육을 왕비로 둔다는 것은 비밀을 지키는데 있어 꽤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Britain 세계에서는, 귀네비어는 모르간과 같이 세이버의 언니라고 정했습니다. 사실 모드레트의 어머니는 모르간이지만, 이렇게 정한 결과 모르간의 악행의 반은 귀네비어의 탓이라는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일단, 현재 귀네비어에 대한 설명은 본편에는 없으며, 아슬아슬하게 끼워 맞추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언니가 아니라고는 써 있지 않으니까요.
그럼, 이상을 염두에 두시고, 이번 편 왕의 검, 세이버 자매의 이야기였습니다.
시로 군의 시점이므로, 다양한 수수께끼를 남긴 이야기가 되어 버렸습니다만, 일단 작자로서 생각은 해 두고 있습니다.
세이버는 사후 과연 ‘이곳’으로 오는 것인지? 온다고 하면 어째서 지금은 없는 것인지? 린은 어떻게 문을 만든 것인지? 란슬롯과 귀네비어의 관계는? 등등등등…….
이런 것들은 여러분이 상상의 날개를 펼쳐 보세요.

작성자 : d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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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부터는 번역한 제 글입니다.)

겨우 22장을 끝냈습니다.

나름대로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시로의 망상(?)―귀네비어의 수작―속의 세이버……. 격렬히 모에!!! (코피 푸웃~)

또, 슈프란의 케이크를 맛있다는 듯이 와구와구 먹는 세이버……라는 문장에서도 격렬히 모에!!!

솔직히, 저는 토오사카나 루비아도 아주 좋아하지만, 세이버나 윌헬미나가 더 좋아요. 아니, 토오사카나 루비아도 좋아요… 음. 역시 우열을 가리기 힘듭니다.

세이버의 성실함(모든 면에서)과 루비아의 우아함과 토오사카의 씩씩함과 윌헬미나의 사악함(?)을 모두 갖춘 캐릭터라면 얼마나 멋진 캐릭터가 될까요. ^^;;

아무튼 토오사카나 루비아라면 주고받는 게 너무 즐거울 것 같고, 세이버나 윌헬미나라면 같이 있다는 것 자체가 아주 즐거울 것 같습니다.

왠지 쓸쓸해지는 군요……. 하아……. ㅠ_ㅠ

그건 그렇고, 세이버가 모르간을 부를 때, 언니라고 부르는데. 전편 번역할 때는, 세이버가 말하는 ‘언니’라는 단어는 ‘누이’로 번역했었습니다. 왜냐하면, 세이버는 과거에 남성 취급을 받았고 자신도 거기에 익숙해져 있다면 언니라고 하지는 않을 것 같고, 그렇다고 해서 누나라고 하기도 이상하고……. 그래서 부르는 사람의 성별이 별로 드러나지 않는 누이라는 말로 번역했는데요…….
문제는 이번 편처럼 직접 부를 때입니다. 대놓고 누나를 부르면서 ‘누이’라고 하기도 왠지 어색하고…….
그리고 세이버는 모르간을 姉上라고 부릅니다. お姉さん보다 더한 존칭이죠. 도대체 뭐라고 번역해야 할지…….
일본어에서는 성에 관계없이 연상의 누이는 お姉さん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성을 구별해서 남자가 누이를 부를 때와 여자가 누이를 부를 때가 다르죠. 그래서 가끔 번역하기 곤란해집니다. 왜냐하면, 가끔 성별을 알 수 없는 캐릭터가 나와서 사람을 부를 때, 일본어라면 상대를 부르는 호칭에서 부르는 사람의 성별이 드러나지 않는데, 우리말에서는 드러나게 되어 있으니까요. 참 난감하죠. 일종의 치명적인 네타도 된다고 할 수 있죠….. -_-;;;
특히 남자가 누이를 부를 때는, 누나에 비해 좀 더 존칭으로 누님이라는 말을 쓸 수 있지만, 여자가 누이를 부를 때는 언니라는 말 밖에 없는 것 같더군요. 혹시 다른 게 있다면 가르쳐 주세요.

아무튼 그래서 결국은 세이버가 모르간을 부를 때, ‘언니’라고 그냥 번역해 버렸습니다. 좀 아쉬워요. 뭔가 더 좋은 수가 있다면…….

아! 그리고, 시로가 토오사카의 보구가 된다면, 도대체 진명은 뭐가 될까요? 크핫핫핫핫!!!

에미야 시로(린 전속 요리사) 라던가……. 아니면, 에미야 시로(린 뒤치닥거리 하는 하인)이라던가……. 아니면, 에미야 시로(토오사카 린 전용)이라던가…….

아! 왠지 에미야 시로(토오사카 린 전용)이 필이 오는 군요. 빨갛기도 하고… 나중에 뿔만 붙이면 되겠는데요. 그럼 세 배 더 강해지겠군요. 크핫핫핫핫!!!

……죄송합니다. 왠지 썰렁했군요. -_-;;;

그러고 보니, 뒷부분에 모르간 르 페이가 한 말에서 보팔 바니가 등장하는 군요. 이렇게 해서 보팔 바니가 실제로 있었던 듯한 뉘앙스를 주네요. 음…
[아니아니, 아가씨. 토끼를 바보 취급하면 안 돼. 이 세상에는 순간에 사람의 머리를 날려 버리는 토끼도 있으니까.]
이렇게 말하는 부분에 말이죠. 머리를 날린다는 게 바로 보팔이 뜻하는 거니까, 결국 보팔 바니를 말하는 게 되는군요.

이번에도 잘 이해가 안 가는 문장이 있었지만… 대충 때웠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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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못 참겠는데.]

툭 내뱉듯이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오만하고도 불손하며 유아독존이라는 것을 숨기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은가? 여러분!]

목소리의 주인은 자기 혼자 높은 곳에 서서 내려다보듯이 주위를 둘러본다.
바라보는 청중은 누구나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오만하고도 불손하며, 그리고 유아독존. 단지 누구의 얼굴에서도 고고함을 유지하지 못하는 연약함을 엿볼 수 있다.

[정말이지.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은 계집아이에게 어째서 보기 좋게 발등 찍히지 않으면 안 되는 건지.]

[도대체 어째서 특별 우대생인 거냐고. 아직 수행 중일 뿐 아닌가. 전과에라도 집어넣어서 기초부터 배우게 해야 할 텐데 말이지.]

[도대체 시계탑이 언제부터 유치원이 돼 버린 거지?]

그림자 같이 꿈틀거리는 청중들에게서 모멸과 조소가 가득 담긴 말이 밉살스럽게 울린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 중에 드러나 보이는 것이 있다.

“질투”

자기가 닿지 못하는 앞을 애타게 바라는 마음. 다다를 수 없는 앞을 끝까지 바라보게 되어 버린다면 그것은 동경. 언젠가 도달할 것이라고 다짐하고 노력한다면 목표. 그러나 자신의 눈을 높은 곳으로 향한 그들의 마음에는 닿을 수 없는 앞에 있는 것은 단지 시기와 질투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사역마는…….]

그러나 결국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의 헛된 말. 현실적인 힘을 들이대는 속삭임 앞에서는 한 순간에 무산된다. 아무리 시기나 질투라 해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절대로 그곳에 도달할 수 없다. 몽상 안을 헤엄치는 그 마음에는 현실은 너무 무겁다.

[뭐, 별 거 아닐 거야. 단순한 운이겠지.]

웅성거리며 비웃는다. 그래서 다시 몽상으로 도망친다. 그것은 운일 뿐이다. 어쨌든 즐거운 말, 실력이 아니라 운이라면 머지않아 자신에게도 굴러 들어올 것이니까. 그렇게 정하면 자신은 상처입지 않는다. 이성과 지성을 지향하는 마술사라고해도 결국 인간의 자식. 약하고 무른 마음을 단지 숨길 뿐.

[형편없군.]

그런 진흙탕에서 일어서는 한 사람. 이것 또 방약불손하고 유아독존이다. 그러나 시기나 질투는 이 남자와는 관계없는 것 같다.

[무슨 소린가?]

한 단 높은 곳에 서 있던 조금 전의 그 남자가 내려다본다. 유아독존, 즉, 그것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

[그녀들을 견제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자리라고 하기에 왔다. 무슨 새로운 연구를 위한 모임이라고 생각해서 말이지. 그런데 와 봤더니 단순한 불평과 푸념뿐이군. 나에겐 전혀 의미 없어.]

그렇게 말하고 그 남자는 당당히 이곳을 떠나간다. 거기에는 후회나 주저함은 눈곱만치도 없다.

[……“브라스”가…….]

모인 사람들에게서 모멸하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이번이야말로 진정한 모멸. 주제 넘는 행동에 대한 증오.

[흥, 신경 쓸 것 없다. 저 녀석은 결국 돈 때문에 불렀을 뿐이니까.]

[아아, 역시. 실력은 치졸하기 한이 없지만 돈은 꽤 있으니까.]

[뭐, 상관없다.]

단상 위에 있는 주모자가 과장되게 양손을 벌리고 마치 사이비 종교 교주 같이 청중에게 말한다.

[하던 이야기를 계속 하자. 그 계집아이들에게도 약점은 있다. 아시는 분도 있을 것이다. 전과에 다니고 있는 녀석을…….]

어두운 기쁨에 대한 기대가 청중들에게 퍼져 나간다. 질투, 그것은 때때로 다른 사람을 얕보게 한다. 그 기쁨은, 자신이 한층 더 깊은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것조차도 망각의 저편으로 밀어 넣어 버릴 수 있을 정도니까.

황동 천재
[스프링 장치의 귀족] ―Brandoll― Fate/In Britain 외전―3 전편
Coppelia

내가 시계탑에서 생활한 지도 슬슬 일 년이 다 되어 간다. 역시 꽤나 익숙해졌다. 게다가 전과에는 본과와는 다르게 평범한 대학처럼 젊은 사람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인지 협회원이 아닌 나도 꽤나 잘 섞여 들어가고 있다.
그런 면에서 본과는 종료 연한도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연령 구성만 봐도 꽤나 다양하다. 그렇다고는 해도 토오사카나 루비아 양보다 젊은 세대는 거의 없다.
그래서 본과에 있는 학생 공방에서 그 아이를 만났을 때는 엄청 놀랐다.

[저기, 죄송합니다만. 275호 공방이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토오사카에게 도시락을 가져다주는 길에 나에게 말을 건 것은 열네 살 정도 되어 보이는 귀여운 여자 아이였다.
자그마하고 아담해서 키는 세이버보다 작을 것이다. 또랑또랑한 쪽빛 눈동자에, 갈색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있다. 이런 곳에서는 정말 보기 힘든 소녀였다.

[275호 공방?]

잠깐? 왠지 들은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한동안 생각하던 나는 탁 하고 손을 쳤다. 아, 생각났다. 거기군.

[거기라면 한 층 아래야. 계단을 내려가서 똑바로 가면 돼. 바로 옆에 [볼탁스]라는 멋진 간판이 걸려 있으니 금방 찾을 수 있어.]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여자 아이는 기쁜 듯이 활짝 웃으며 나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그리고 그대로 옆에 둔 커다란 골판지 상자를 메고 영차영차 걷기 시작한다.

[아, 내가 들어 줄게. 그렇게 큰 짐은 무겁잖아?]

[에? 그렇지만 죄송해요. 이거 꽤나 무거운 거라구요.]

그러면 더더욱 그렇지. 그렇게 무거운 것을 여자 아이가 옮기게 했다고 하면 저 세상에 있는 키리츠쿠에게 면목이 없다.

[괜찮아, 괜찮으니까.]

나는 가벼운 기분으로 여자 아이의 작은 어깨에서 골판지 상자를 들어 올렸다.
웃. 무겁다. 여기까지 잘도 지고 왔구나. 이 아이, 의외로 힘이 세네.

[역시 괜찮아요. 무겁죠?]

[괘, 괜찮아. 이 정도면 가벼워, 가벼워.]

그렇다고 해도 여기까지 왔으면 물러설 수 없다. 나는 그 아이의 짐을 지고 275호 공방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다.

[아, 그러고 보니 아직 이름을 말하지 않았네. 나는 에미야 시로.]

[에미야 시로? 아아, 시로 에미야 씨군요. 오빠한테 자주 이야기 들었어요.]

가는 중에 자기소개를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이름을 말하자, 그런 대답이 돌아왔다. 오빠? 그럼 이 아이는 내가 아는 사람의 여동생인가. 도대체 누굴까?

[저기, 커티스 공방에 가는 거지? 아는 사람이야?]

[네. 커티스 브란돌은 제 불초 오빠에요.]

우와아. 좀 의외. 그러고 보니 이목구비라든지, 왠지 모르게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곤 해도 역시 의외다. 이 아이는 예의 바르고 아주 상냥한 것 같다. 전혀 오만불손하거나 방약무인하지 않다.

[그건 그렇고, 이거 뭐야?]

짐의 무게에 푸념이 조금 나온다. 크기는 그렇게 큰 것도 아니지만, 납이라도 들어 있는 것 같은 무게다.

[점토예요.]

네?

[점토라니……점토?]

그 밖에 다른 점토는 생각나지 않는다. 여자 아이는 좀 곤란한 것처럼 눈살을 찌푸렸지만, 차근차근 확인하듯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음, 좀 특수한 점토입니다. 우리 가문에 전해지는 자동인형 같은 것의 외장용으로, 이것으로 자기를 구우면 사람의 피부처럼 부드러운 표면이 된다……것이죠.]

어쩐지 열심히 설명해 준다. 뒷부분 설명이 좀 부족하고 게다가 국어책 읽는 듯한 느낌이지만.

[그런 걸 이렇게 너 혼자서? 힘들지 않았어?]

[이 정도라도 오빠의 심부름 정도는 할 수 있다구요.]

정말 기특한 아이다. 확실히 시계탑에 택배 같은 걸 보낼 수도 없긴 하지만.

[자아, 여기야.]

그런 이야기를 하는 중에 커티스 공방 앞에 도착했다. 에고, 꽤나 힘들었다. 팔이 좀 아프다.

[정말 감사합니다. 폐 끼친 거 아닌가요?]

꾸벅 하고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고는, 정말로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응, 귀엽네. 왠지 그냥 둘 수 없는 타입이다.

[괜찮아, 괜찮아. 여자 아이가 곤란해 하고 있으면 돕는 게 당연하지. 그럼 다음에 보자.]

[아, 잠깐만요. 오빠! 오빠!]

왠지 당황한 듯이 오빠를 부르며 여자 아이는 내 옷 소매를 끌어당긴다. 우와아, 역시 힘세네. 있는 힘껏 끌고 있다.

[뭐야, 시끄럽게.]

눈썹을 찡그리고, 뭐냐, 라는 얼굴로 꼼짝 못하게 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오빠! 오빠 눈은 옹이 구멍인가요?]

그런 얼간이 같은 광경을 무시하고 밑에서 나를 붙잡고 떨어지지 않는 그 아이가 커티스에게 화난 목소리로 소리친다.

[뭐야. 일라이저도 있었냐. 왜 숨어 있는 거야?]

[숨어 있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무슨 일이야?]

변함없이 방약무인한 커티스. 단지 기분이 안 좋은 표정은 약간 누그러진 것 같다. 역시 남매구나.

[……이곳으로 짐을 가져오라고 한 것은 오빠에요. 가져오는 도중에 에미야 오라버니께서 도와 주셨어요.]

여자 아이는 하아~하고 한숨을 쉬며 타이르는 듯한 말투로 커티스에게 말했다.

[아하. 알았어. 야, 시로 에미야. 여동생이 신세를 졌군. 감사하네.]

휙 가슴을 편다. 아무리 봐도 감사의 인사로는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커티스는 이렇게 인사를 하고 있다. 약간 비뚤어진 입꼬리가 그 증거. 아마도 미소를 지을 생각이었겠지. 변함없이 알기 어렵구만.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니야. 그것보다 일라이저라고 하는구나?]

겨우 이름을 알았다. 응, 좋은 이름이네. 하지만 커티스 녀석은 갑자기 얼굴을 약간 찡그렸다.

[동생아, 인사하는 것도 좋지만 이름도 밝히지 않았었냐?]

[당연하죠. 레이디가 소개해 주는 사람도 없이 자신의 이름을 밝힐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오빠를 불러 답례도 할 겸 소개해 달라고 하려고 했습니다.]

가아――하며 조금 떠듬떠듬 둘러대는 일라이저. 그런 것에는 익숙해져 있는지 커티스는 꿈쩍도 않는다.

[흠, 그렇군.]

그렇게 한 마디하고는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내 여동생이고, 일라이즈 브란돌이라고 한다. 보다시피 꼬마지만 내 귀여운 여동생이지. 도와줘서 고맙다고 생각하네. 다시 인사하지.]

이번엔 정말로 약간이긴 하지만 머리가 흔들렸다. 놀랐다. 정말로 여동생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꼬마’는 필요 없는 말이에요, 오빠…….]

하지만 일라이저는 불만인 것 같다. 투덜투덜 볼을 부풀리며 짐을 집어 든다. 뭐랄까, 가볍게 들어 올린다. 정말 보기와는 다르게 힘이 세네.

[그럼 정말로 감사합니다. 불초 오빠지만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커티스에 대한 보복인 것인가. 일라이저는 커티스를 흘낏 노려보고 나서 나에게 꾸벅 인사했다.

[그럼, 다음에 또 기회가 되면.]

왠지 미소를 짓게 하는 남매 싸움을 하면서 공방으로 들어가는 일라이저. 정확히는 커티스 남매. 나는 그런 두 명에게 인사를 하고 275호 공방을 뒤로 했다.

[잠깐, 그 아이 누구야?]

그 순간 나는 바로 옆의 공방, 즉 [볼탁스(미나 씨의 가게)]로 질질 끌려 들어갔다. 토오사카다. 아니, 세이버도 옆에서 숙덕숙덕 거리며 붙어 있다. 잠깐 기다려. 너희들 혹시 엿보고 있었던 거냐?

[뭐야, 너희들 예의 없어.]

일라이저의 레이디다운 모습을 본받으라고.

[그런 건 적당히 넘어가요. 그것보다 그 아이 누군가요? [브라스(황동)]의 공방으로 들어가는 것 같던데.]

루비아 양까지 소곤거리며 문 뒤에서 나타났다. 정말, 전부 모여서 뭘 하고 있는 거야. 예의 없네.

[커티스의 여동생이야. 일라이저라는군.]

그렇다고 해도 여기서 입 다물고 있어도 어쩔 수 없다. 솔직하게 들은 것을 대답해 줬다.

[아, 과연. 커티스 씨의 여동생인가요. 그 말을 듣고 보니 닮았군요.]

흠흠 하고 납득한 세이버. 하지만 왠지 토오사카도 루비아 양도 무뚝뚝하게 기분 나쁜 듯한 표정을 짓는다. 왜 그러지?

[왜 그래?]

[왜 그래, 라니……. 너 잊어 버렸어? 마술사의 뒤를 이을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 뿐이라는 거야.]

토오사카가 증오가 느껴질 정도의 시선으로 노려본다. 아, 그러고 보니.
마술사는 그 힘이 흩어지는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한 대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한정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술 회로를 다음 대로 이어서 계속 단련해서 보다 강하게 만들어 자손에게 계승해 간다. 하지만 마술 각인은 한 사람에게만 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식 한 명에게만 비결을 전수한다. 형제, 자매가 있어도 마술사가 되는 것은 단 한 사람. 그 외의 아이는……아, 그렇군.

[보통 사람이라면 공방에 올 리가 없구나.]

[그런 겁니다. 린, 시로우를 어떻게 교육한 건가요? 기본 중의 기본이잖아요.]

겨우겨우 결론에 도달한 나를 보며 루비아 양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토오사카에게 불평한다. 우우, 불초 제자라 미안.

[알고 있어! 그렇지만 이 녀석, 이렇게 마술사의 생리와 관련된 이야기에 대해서는 완전히 보통 사람이라구! 정말, 남의 고생도 모르면서…….]

어쩐지 엄청난 표정으로 노려본다. 가끔 이상한 부분에서 태클을 건다니까, 토오사카는.

[그래도 말야, 형제 마술사가 전혀 없다는 것도 아니잖아?]

사서 자매들은 세 명이 한 팀이고, 어쨌든 자매이면서 대단한 마술사인 경우도 있으니까. 어라? 마법사도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거야 그렇지만…….]

토오사카는 조금 침울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긴다. ‘재능이 있으면 양자로 들이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같은 집안에 있다는 건 반칙’이라며 왠지 화를 내는 듯하다. 잘 모르겠지만,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라도 있는 것 같다. 그럼, 그건 그렇다치고.

[그것보다 오늘 어떻게 된 거야? [볼탁스]에 모이기로 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나는 도시락 가방을 내밀며 조금 불만인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원래 예정은 토오사카의 공방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었다. 운 좋게 만나기는 했지만 엇갈릴 뻔 했다.

[아, 시로우, 미안합니다.]

[미안, 연락 안 한 건 내 잘못이야.]

내 불평에 세이버도 토오사카도 순순히 사과했다. 우리들 사이에서 암묵적인 룰, 자신의 잘못은 숨기지 않는다. 확실히 솔직하게 사과하고 대응책을 강구한다. 뭐, 그 전에 무의식적으로 숨기려는 사람이 있지만 말야, 토오사카.

[좀 이상한 이야기를 얼핏 들었어요. 그래서 여러분께 알려드리려고 했어요. 어서 와요, 시로 군.]

마침 그 때 미나 씨가 나타났다. 앞치마를 두른 모습으로 달걀을 들고 언제나처럼 느긋한 목소리로 나에게 인사한다. 그런데 요리 중?

[포토푀(고기와 몇 가지 야채로 만든 프랑스의 진한 수프)도 다 됐어요. 점심이나 들면서 이야기할까요? 시로 군도 먹을 거죠?]

아니, 나, 도시락 가져 왔는데……네, 감사히 먹겠습니다. 뭐, 세이버도 있고 남을 리는 없겠지.

[뭐야 그게? 시계탑에서도 그런 이지메가 있는 거야?]

포토푀와 함께 도시락을 먹으며 들은 이야기는 황당할 정도 유치한 이야기였다.

[이지메라고 할까……. 뭐, 비슷한 건가. 둘 다 기막힐 정도로 유치하고 비열한 짓이니까.]

[정말. 그런 짓 생각하고 있을 여유가 있으면, 주문 하나라도 더 배우는 게 건설적일 텐데 말이죠.]

[뭐, 그 전에 이렇게 새어나가게 해 버리는 사람들이니까요. 기껏 알게 되었어도 별로.]

시계탑 두목 트리오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하지만, 이야기 내용은 꽤나 지독한 것이었다.
미나 씨의 말에 따르면, 시계탑 일부에서 토오사카나 루비아 양을 배척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두 사람은 이번 학기 수석 후보, 시계탑의 학생 전부를 놓고 봐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까 말까하는 영재들이다. 대놓고 대항하려하면 그런 생각을 하는 녀석들이야말로 깡그리 두들겨 맞고 쓰러질 것이다.
그러니까 서로 뭉쳐 수군수군 뒷구멍으로 두 사람의 연구를 방해하거나 꼬치꼬치 쓸데없이 간섭해서 골탕을 먹이려고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세 분은 여기서 대책 회의라고 할까, 여기서 수다를 떨고 있다는 것이다.

[주모자는 강령학과 사람들인 것 같아요.]

[아아, 조금 듣고 금방 알았어. 세이버 때문이네. 저 녀석들 질리지도 않는가봐.]

어쨌든 강령학과 녀석들은 우리가 시계탑에 온 이후로 계속 세이버를 노리고 있었다고 한다. 일이 있을 때마다 토오사카에게 말을 걸어 어떻게든 세이버를 데려가려고 했던 것 같다. 뭐, 최고급 고스트 라이너니까 세이버에게 군침을 흘리는 것은 나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물론 토오사카는 그런 이야기에는 대꾸도 하지 않는다. 시간 역행이라도 해서 어제로 돌아온 걸로 착각이 들 정도로 전혀 변함없이 계속 대꾸도 하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이전에 거절할 수 없는 의리 때문에 강령학과와 일을 하게 되었을 때의 대응으로 사태는 결정적인 방향으로 치달았다고 할 수 있다. 상당히 심한 대응이었는지, ‘그 녀석들에게 세이버를 보이면 아기가 생겨 버려’ 하고 마치 쓰레기라도 보는 듯이 한다. 무슨 일 있었던 거야?

[미안합니다, 린. 폐를 끼치고 있는 것 같군요.]

그런 이야기로 흘러가자 맛있게 밥을 먹던 세이버가 조금 어색한 표정을 짓는다. 포토푀를 한 그릇 더 먹고, 다시 세 그릇째다. 신경 쓸 필요 없어.

[괜찮아, 세이버. 원래 그 녀석들 남의 샅바로 씨름하는 것 같은 녀석들이라 마음에 안 들었으니까.]

분하면 자기들 스스로 세이버를 불러봐, 하면서 콧방귀를 낀다. 세이버를 부른 건 난데……무서우니까 태클은 걸지 말자.

[뭐,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니지요. 그래도 그런 만큼 비열하고 음습한 일을 저지를지도 몰라요. 주의는 해 두죠.]

[그럼 조사는 계속 해 둘게요. 움직임이 있으면 바로 연락할게요.]

[움직이면 그땐 끝이야. 꼬리를 잡아서 본때를 보여 주겠어. 이런 녀석들은 한 번 확실히 해 두지 않으면 계속 귀찮으니까.]

어쩐지 이야기가 이상하게 흘러간다. 경계하자던 이야기가 어느 샌가 어떻게 사정없이 때려눕힐까 라는 이야기로 바뀌고 있다.

[어, 어이. 너무 심한 대응은 하지 마. 확실하게 대응 정도를 정해 놓지 않으면 안 돼.]

왠지 자꾸자꾸 무서운 이야기가 되기에 다짐을 받아 둔다.

[괜찮아요. 죽이진 않을 테니까.]

[5년 정도 휴학하게 하는 건 어떨까요? 그 때쯤이면 우리들은 강의를 하고 있을 테니까요.]

[머리와 심장만 남아 있다면 손발을 대신할 건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즐거워하며 괜찮다고 대답하는 시계탑 두목 트리오. 어쩐지 오히려 상대가 불쌍한데.

[세이버, 이 사람들 부탁해.]

이렇게 되면 브레이크는 세이버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다. 이런 때 제일 의지가 되니까.

[안심하세요, 시로우. 적은 두 번 다시 일어설 수 없게 완벽하게 섬멸해 버리겠습니다!]

……이 사람이 제일 과격하잖아! 세이버, 전쟁이 아니니까 적당히 하라고. 나는 있는 대로 열을 올리는 네 사람을 상대로 어떻게든 원만하게 끝내도록 설득해야 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너희들, 범죄는 안 된다고, 범죄는!

[시로우, 저 사람은 커티스의 여동생이 아니었나요?]

그리고 그 때부터 며칠 후, 세이버와 함께 거리로 나왔을 때였다.
그런 이야기가 돌던 이상한 녀석들도 역시 그 세 명에게는 간단히 손을 댈 수 없는 것 같아서, 특별히 무슨 트러블이 생기지도 않고 평온한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곤 해도 상대는 마술사, 경계를 게을리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외출하는 횟수도 최대한 줄이고 있었다.
이 날은 오래간만에 세이버를 데리고 셀프브리지 근처에서 쇼핑을 하러 나온 것이다.

[일라이저? 뭐하고 있는 거지?]

세이버가 가리키는 쪽으로 눈을 돌리자, 우리 조금 앞에 일라이저가 멍하게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어디를 보고 있는 걸까요?]

나와 세이버는 서로 마주보고 일라이저의 시선을 따라가 보았다.
특별히 이렇다 할 만한 것은 눈에 띄지 않는다. 뭐지,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으려니, 신호가 파란색으로 바뀌어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라이저는 아직도 멍하게 서 있다.

[위험하잖아. 갔다 올게.]

정말 위태위태하다. 나는 세이버에게 말하고 그녀에게 서둘러 다가갔다.

[아, 시로우.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그런 세이버의 대답을 등 뒤로 들으며 나는 그대로 일라이저의 옆까지 가 보았다. 음, 역시 상태가 이상한데. 마음이 여기 있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일라이저?]

눈앞에 손을 흔들어 보았지만 역시 반응이 없다. 이런저런 시도를 하는 중에 신호가 빨강으로 바뀌었다. 그 때 갑자기 일라이저가 길을 건너려고 한다.

[우와아아아! 위험해!]

나는 당황해서 일라이저를 끌어안았다. 그런데……뭔 힘이 이리 세! 끄, 끌려간다!

[일라이저!]

[……어, 머?]

다행이다. 눈동자에 빛이 돌아온다. 어떻게든 정신을 차린 것 같다.

[시로 씨잖아요. 무슨 일 있었어요?]

[그건 내가 할 말이야. 신호가 빨강이라고!]

그런데도 나를 질질 끄며 길을 건너려는 일라이저를 필사적으로 말린다.

[네? ……어머…….?]

이번이야말로 겨우 정신을 차린 것 같다. 딱 발을 멈추며 이상한 듯이 그렇게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이상하네요. 조금 전……의식이 끊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만, 그대로였다……는 것인가요.]

[의식이라니……괜찮은 거야?]

의식이 끊어진 채 거리를 돌아다니는 거, 보통 위험한 게 아니라고.

[괜찮습니다. 가끔씩, 저기, 이상한 흐름을 타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라이저는 살짝 뺨을 붉히며 부끄러운 듯이 대답한다. 아, 과연. 역시 일라이저도 마술사였구나.
런던은 마술적으로 여러 가지 이상한 흐름이 흘러 다니고 있으니까. 분명히 점이라던가, 그런 쪽으로 민감한 자질을 가지고 있는 거겠지.
그런 걸 물어보자 약간 멍하게 있다가 힘차게 대답했다.

[그래요. 시골에 있었을 때는 괜찮았지만, 런던에 오고 나서는 언제나 이래요. 좀 더 확실히 쉴드(shield)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네요.]

응응, 하고 점점 진지한 표정이 된다. 인상을 쓰고 있으면 역시 오빠와 닮았구나. 훨씬 귀엽지만.

[민감하구나.]

[시로 씨, 그 말 좀 야해요.]

므――하고 노려본다. 하하, 그런가. 미안, 미안. 나는 어린 숙녀에게 자세를 바로 잡고 사과했다. 이런 면, 랜스에게서 옮은 것 같다.

[시로우,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제대로 듣지 않으면 곤란합니다..]

이 때 뒤에서 므――한 표정을 한 세이버가 따라 잡았다. 아니, 일단 급했으니까.

[아~~~~~!]

갑자기 일라이저가 엉뚱하게 목소리를 높인다. 세이버를 가리키며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진다.

[미안, 세이버. 그런데 왜 그래? 일라이저?]

[세, 세, 세, 세이버 씨?!]

[안녕하세요, 일라이저. 이야기는 시로우에게 들었습니다. 커티스 씨의 여동생이라면서요?]

앞으로는 조심하라며 나에게 다짐을 받고, 세이버는 일라이저에게 인사한다. 새빨갛게 된 일라이저. 왠지 묘하게 흥분하고 있다.

[자, 잘 부탁드립니다. 이야기는 오빠에게 들었습니다. 저기, 대단히 멋진 레이디라고. 언젠가 한 번 만나고 싶다고, 생각해서……저기.]

어쩐지 말이 잘 나오지 않아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다. 혀가 말하고 싶은 대로 잘 돌아가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일라이저의 오빠와는 조금 얼굴만 익힌 사이입니다만, 매우 훌륭한 신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여동생도 이렇게 만날 수 있게 되어서 저로서도 매우 기쁩니다.]

세이버는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일라이저에게 미소를 지어보이며 대답한다. 대단히 높게 평가하는데, 토오사카와는 정반대네.

[그런가요오오…….]

그러나 일라이저는 아무래도 토오사카 파인 것 같다. 방금 전의 흥분도 식었는지, 엄청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언제나 실패만 하는 부끄러운 오빠에요.]

입을 삐죽 내밀며 조금 원망하는 듯한 눈이 된다. 그런가, 희생자는 토오사카나 루비아 양 뿐만이 아니었구나.

[그래도 일라이저의 오빠는 꺾이지 않습니다. 눈을 들어 높은 곳을 바라보며 제대로 앞을 보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닿지 못할지라도 그 뜻을 잃지 않는 한 결국엔 틀림없이 도달할 수 있을 겁니다.]

나쁘게 보면 두 걸음 전진하고 세 걸음 후퇴한다는 생각도 들지만……. 뭐, 세이버가 말하는 것은 좀 더 관념적인 것이겠지.

[우우, 그렇게까지 말씀해 주신다면 역시 여동생으로서는 기쁩니다. 세이버 씨. 대단히 감사합니다.]

세이버에게 직접 칭찬하는 말을 듣는 것은 역시 부끄러운지, 복잡한 표정이지만 그런데도 기쁜 듯이 인사를 한다. 뭐라 해도 역시 남매구나.

[오늘은 혼자?]

[네. 오빠가 일이 있어서 빠질 수 없어서요. 대신에 쇼핑하러 왔어요. 그리고 다음 주가 생일이라서 그 때를 위해 옷을 봐 둘까 해서요.]

인사가 끝났을 때, 나는 일라이저에게 물어보았다. 과연, 선물해달라고 조르려는 건가?

[그럼 우리도 같이 갈까? 우리도 쇼핑이고, 짐 정도는 들어줄 수 있으니까.]

방금 전에 그런 일도 있었으니. 또 길에서 멍해져 버리면 큰일이다. 나는 살짝 권해 보았다.

[네? 괜찮은가요? 데이트 방해해 버려도?]

뭐? 데이트? 나는 세이버와 얼굴을 마주 본다. 그러자 세이버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어 간다.

[그, 그런 게 아니에요. 나는 시로우와 그냥 쇼핑을 하고 식사를 한 뒤에 잠깐 차라도 마시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왠지 세이버가 갑자기 당황하며 둘러대기 시작한다. 아니, 확실히 옆에서 보면 데이트를 하는 걸로 보이는 걸까? 세이버와 둘이서 자주 외출하기 때문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영화를 보거나 옷을 골라주거나 하는 건가요?]

왠지, 나까지 부끄러워지잖아. 세이버도 아직 얼굴이 빨갛다.

[그 정도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시로우니까요.]

미묘하게 이야기가 빗나가는 것 같은데…….

[시로 씨는 둔감 씨네요. 세이버 씨, 힘들지 않아요?]

[그건 어쩔 수 없죠. 게다가 그런 면이 도움이 될 때도 있어요.]

왠지 점점 심한 말을 듣는 것 같은데. 어째서?

[알았어요. 그렇다면 함께 해 주세요. 아무쪼록 잘 부탁드려요.]

뭐가 ‘그렇다면’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라이저는 그렇게 말하고 싱긋 웃으며 꾸벅 인사를 했다. 뭔가 미묘하게 마음에 걸리지만 뭐 됐나. 떠들썩한 것이 싫지는 않다.

[자, 그럼 어디로 갈까?]

――꾸르르르륵…….

하고 내가 말하자마자, 뭔가 맥없는 소리가 난다. 그러고 보니 슬슬 점심시간이구나.
멍청한 표정을 짓는 일라이저를 두고 세이버를 바라보자, 아, 시선이 따가워진다.

[그럼 먼저 점심을 먹을까.]

차라리, 단식이다, 라고 말해 볼까 하고도 생각했지만, 런던 거리를 불바다로 만들 수는 없지.
마침 가까운 곳에 좋은 퍼브가 있다. 세이버의 미각을 만족시켰을 정도니까 상당한 레벨이다.

[식사인가요?]

하지만 일라이저는 조금 머뭇거린다.

[다음 주가 지나면 잔뜩 먹을 수 있습니다만…….]

[일라이저, 식사는 중요합니다.]

뭔가 머뭇머뭇 말하기 시작한 일라이저에게 세이버의 진지한 목소리가 덮친다.

[지금은 성장기입니다. 그러니까 먹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양할 필요는 없어요.]

침착하게 웃는 얼굴이지만……왠지 묘한 박력이 있다.

[점심을 먹죠. 알겠죠?]

[아, 네…….]

박력에 져서, 일라이저는 인형처럼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거린다. 소리가 들릴 듯한 기세다. 세이버. 웃는 얼굴이라도 위협은 안 돼, 위협은.

――――――――――――――――――――――――――――――――――――――――

네~ 지난 번에 빼먹었던 22.5화(세 번째 외전)입니다.

이번엔 별로 어려운 용어는 없으니까 주는 없습니다. 대신에 왠지 묘하게 번역이 어려운(해석은 되지만) 문장이 몇 개 있어서 나름대로 고민하다가 대충 뜻만 비슷하게 했어요… ㅠ_ㅠ

아무튼 커티스에게 이렇게 귀여운 여동생이 있었다니! 모에~

저도 여동생이 둘이지만, 나름대로 귀여운 녀석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리광을 부리거나 하는 건 꽤나 귀엽지요. 나이 차는 그렇게 많이 나지 않습니다만.

어렸을 때는 자주 싸우거나 했는데, 좀 머리가 크고 나니 사이가 좋아지더군요. 왠지 조금이라도 곤란한 일이 있으면 항상 아양을 떨며 부탁을 해 대니 묘하게 짜증나면서도 거절할 수가 없다고 할까……. 그러고 보면 어렸을 때부터 자주 그랬군요. 숙제를 도와준다거나, 뭔가 만들어 준다거나, 놀아준다거나, 부모님께서 여행이라도 가시면 같이 자 준다거나……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꽤나 좋은 오빠였네요, 저…. -_-;;; 추억은 추억이기 때문에 아름다워지는 거지요. (먼산) -_-;;; (그 외 버릇없이 굴면 때린다거나, 밥 차리라고 시킨다거나, 라면 끓이라고 갈구거나 등등은 기억의 저편으로~)

그나저나 요즘 번역할 때 부쩍 세이버의 매력을 새삼스레 느끼게 된다고 할까. 세이버가 한 마디 하기만 해도 귀여워 죽겠습니다 그냥. ㅠ_ㅠ

이 글을 혹시 친구가 본다면…… 또 위험한 놈이라는 눈으로 바라보겠죠. 아~ 왜 이렇게 멋진 아가씨가 상상의 존재일 뿐인 걸까요. 크흐흐흐흑 ㅠ_ㅠ

전체적으로 보면, 린과 루비아의 경쟁(?)이 메인이고, 거기에 세이버가 간간히 양념으로 들어가고, 미나 씨는 찬밥이 되어 버렸다고 할까.

윌헬미나의 모에를 보고 싶다!!! 그러나 이 후 글을 봐도 윌헬미나가 메인인 글은 거의 없더라고요… -_-;;;

그리고 앞으로는 좀 더 천천히 올라올지도 몰라요~ 슬슬 제본을 위해 앞의 글도 다시 번역하려고 시작했으니까요. -_-;;; Fate 본편도 사신님의 번역본을 제본할 수 있게 다시 정리 중입니다.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지만요. 아마도 몇 년 걸리지 않을까요. 크크크. 장대한 프로젝트 시작입니다.

(첨가) ‘그 녀석들에게 세이버를 보이면 아기가 생겨 버려’
–> 그냥 문자 그대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소설을 보면,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들이 성차라는 것을 알기 시작하면서 한동안 남자와 접촉하는 것을 병적으로 꺼리는 장면이 종종 나옵니다. 예를 들면 남자가 앉았던 의자에 앉기만 하면 임신한다느니, 또는 아버지의 속옷과 자신의 속옷을 같이 빨면 매우 불결하게 생각한다든지…
이것이 확장 되어, 경멸하는 남자를 말할 때 흔히, “저 애랑 가까이 하면 손만 잡아도 임신할거야, 가까이 가지마.” 라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이 나오게 됩니다. 예를 들어 순진한 자신의 친구(여학생)가 날라리로 유명한 같은 반 남학생과 이야기 하고 있거나 하면, 이를 본 다른 여학생들이 그런 식으로 말하며 상대하지 말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죠.
결국 토오사카가 한 말은 상대 강령학과의 사람들을 그 정도로 더럽고 불결한 쓰레기 취급하고 있는 것이죠. 거기에 마치 자신의 순진한 친구(세이버)를 그들로부터 보호하는 듯한 분위기까지 나타내고 있는 겁니다. 여기 저기 자주 보이는 표현이라 다들 분위기를 아실 줄 알았는데… 음… ^^;; 뭐, 일종의 관용어라면 관용어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중요한 건 분위깁니다, 분위기. ^^;;

――――――――――――――――――――――――――――――――――――――――

[아아―. 역시 이 가게의 키드니 파이(소의 콩팥과 고기를 버섯과 함께 파이 껍질로 싸서 오븐에 구운 영국의 명물 요리)는 최고입니다.]

어안이 벙벙한 채 바라보는 일라이저는 아랑곳하지 않고, 세이버는 평소처럼 먹성을 발휘하고 있다. 역시 엄청나다.

[대단해요…….]

세이버가 먹는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던 일라이저가 중얼거린다. 확실히 대단하다. 그에 비해 일라이저 앞에 놓인 음식은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왜 그래? 역시 식욕이 없는 거야?]

좀 걱정이 되었다. 여자 아이라고는 해도 이 정도 나이라면 한참 먹을 땐데. 여자 아이니까 혹시 다이어트라도 하는 걸까?

[먹고 있어요. 단지 조금 배가 불러서……. 위가 별로 크지 않은 것 같아요.]

부끄러운 듯이 작게 대답하는 일라이저. 헤에, 그러면서 힘이 그렇게 세다니. 연비가 좋네. 누구랑은 전혀 다르잖아.

[시로우……. 지금 뭔가 실례되는 생각하는 거 아닌가요?]

그러자 세이버 씨가 도끼눈으로 노려보며 말을 건다. 정말 감이 좋다니까. 그래도 세이버, 마지막 파이를 다 먹고 나서도 아직 부족하다는 듯한 표정, 그것만은 그만 두는 게 좋겠는데.

황동 천재
[스프링 장치의 귀족] ―Brandoll― Fate/In Britain 외전―3 후편
Coppelia

[저기, 저는 벌써 배가 부르거든요. 세이버 씨, 괜찮다면 제 것 어떠세요?]

그런 세이버의 표정을 한 눈에 알아챈 것은 아니겠지만, 일라이저는 자신의 접시를 세이버에게 내밀었다.

[일라이저. 당신은 한참 자랄 때입니다. 좀 더 많이 먹지 않으면 안 돼요. 감사히 받겠습니다.]

일라이저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면서도, 세이버는 기쁜 듯이 파이에 손을 뻗는다. 세이버. 본심과 표면상의 예의는 확실히 구별하는 게 좋다구.

[세이버 씨. 정말 대단하시네요. 그렇게 드셔도 괜찮나요?]

그건 살찌지 않느냐고 은근슬쩍 물어보는 건가?

[아, 일라이저. 걱정할 필요 없어요. 나는 성장하지 않습니다. 먹은 것은 모두 힘으로 변환되어, 중요한 순간을 위해 비축되고 있습니다.]

그런 것에 비해서는 너무 자주 배가 꼬르륵거리고 연비가 나쁜데……라고는 입이 찢어져도 말 할 수 없겠지. 세이버, 노려보지 마. 생각하는 것 정도는 괜찮잖아.

[먹은 게 제대로 쓰이고 있네요.]

일라이저는 그런 세이버를, 기쁜 듯이, 그리고 조금은 부러운 듯이 보고 있다. 건강하게 보이긴 하지만, 좀 전에 그 멍하게 있던 모습이나, 식욕이 별로 없는 것을 보면 역시 어딘가 몸이 안 좋은 것 같다.

[시로 씨와 세이버 씨. 오늘 뭘 사러 나오신 건가요?]

식사도 무사히 끝나고, 식후의 차를 즐기고 있을 때, 일라이저가 물었다.

[그게 말야, 꽤 많아.]

나는 일주일치의 요리 재료부터 시작해서 꽤나 길게 적혀 있는 쇼핑 리스트를 꺼내며 세이버와 얼굴을 마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대단한 양이네요. 언제나 이 정도로? 힘들지 않아요?]

눈이 둥그레져서 리스트를 바라보는 일라이저. 아니, 평소에는 이 정도로 모이지는 않아. 생각보다는 자주 쇼핑하는 편이니까.

[아니, 뭐, 어쩌다가.]

[그렇습니다. 가끔입니다.]

그렇다곤 해도 이런 이야기를 일라이저에게 할 수는 없다. 나와 세이버는 하하하 하고 웃으며 얼버무렸다.

[……. 혹시 그 안 좋은 모의를 하고 있는 사람들 때문인가요?]

상당히 부자연스러웠는지, 한동안 골똘히 생각하고 있던 일라이저가 꽤나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별로 그런 건…….]

[오빠에게 들은 적이 있어요. 왠지 토오사카 씨와 루비아젤릿타 씨에게 좋지 않은 일을 모의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뭐?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일라이저. 어떻게 그런 걸?]

내 의문을 대변해 세이버가 물었다. 세이버도 꽤 심각한 표정이다.

[그 사람들이 오빠를 자기 패거리로 끌어들이려고 한 적이 있다고 하셨어요.]

똥 씹은 듯한 표정으로 일라이저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런 표정은 정말로 커티스를 닮았다.

[오빠는 새로운 목표를 가진 연구 집단이라고 생각해서 한 번 참석했었데요. 그렇지만 이야기를 해 보니 한심하고 역겨운 불평과 유치한 모의뿐이었다던데요. 오빠는 질려서 돌아와 버렸다고 하셨어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화를 낸다. 욱 하는 기분이 드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커티스는 그런 비겁한 짓을 할 사람이 아니니까. 어라, 잠깐.

[혹시 당당하게 대놓고 거절한 거야?]

[당연하죠! 비굴하게 굴 필요는 전혀 없어요. 당연히 그 자리에서 상대의 어리석음을 비난하고 나왔다고 하셨어요.]

가슴을 쭉 펴며 콧방귀를 흥 뀌는 일라이저. 아, 역시. 나는 세이버와 얼굴을 마주보았다.

[일라이저. 그런데도 당신은 혼자서 돌아다니고 있는 겁니까?]

조금 걱정스러운 듯한 세이버. 그런 대응으로는 오히려 원한을 사 버렸을 것이다. 어쨌든 어렴풋이 라도 알고 있었던 거 아닌가.

[어머, 뭔가 문제라도 있나요……?]

아아, 역시 남매구나. 맹하게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는 일라이저. 그런 녀석들이 비열하게 대응할 것이라는 점에는 전혀 생각이 미치지 않는 것 같다.

[뭐, 마침 잘 됐네. 오늘은 끝까지 같이 다닐 테니까. 내일부터는 조심해야 돼.]

나로서는 이런 아이까지 이상한 녀석들에게 말려들게 할 수는 없으니까. 한 마디 주의를 주었다.

[시로 씨. 가볍게 보지 말아 주셨으면 하네요.]

그런데도 일라이저의 콧방귀는 오빠보다 훨씬 거칠다. 휙 하고 고개를 들며 오만하다고 할 정도의 표정을 지으며 바라본다.

[그런 녀석들에게 무슨 일을 당할 제가 아니에요. 뭣보다 브란돌 가의 사람으로서 뒤를 보일 수는 없습니다!]

혀가 꼬이면서도 한 번에 말을 내뱉는다. 이야아, 대단하다고 말해 주고는 싶지만. 역시 걱정이다.

[그래도 역시 한동안은 조심하는 게 좋습니다. 그렇게 말하자면, 그런 비열한 사람들과 엮이는 것은 가문의 수치가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우우. 세이버 씨가 그렇게 말씀하시면. 확실히……일리 있네요.]

세이버의 말에 일라이저도 한동안 골똘히 생각하고는, 한숨을 쉬면서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이스, 세이버. 이렇게 고집 센 사람을 다루는 거, 아주 익숙해져 있네.

[그렇지. 다음 주 생일이라고 했지? 뭔가 선물해 줄 테니까 그걸로 우선은 얌전하게 굴지 않을래?]

일라이저가 진정이 되자 다짐을 해 보았다. 하지만 이건 실패였던 것 같다. 므――하는 눈으로 노려본다.

[시로 씨. 물건으로 꼬시자는 건가요. 조금 수준이 낮은 방법 아닌가요.]

[시로우, 레이디에게 그건 실례에요.]

세이버까지 꾸중 들어 버렸다. 우아, 미안. 어린애 취급해 버렸구나. 정말 잘못했어.

[그렇지만 시로 씨가 ‘부디’라고 말씀하신다면 기꺼이 같이 해 드리겠어요.]

두 사람에게 꾸중을 듣고 쩔쩔매고 있는 나에게 일라이저의 고마운 말.

[좋아. 나도 남자다. 어쨌든 선물은 하고 싶어. 뭐든지 말해 봐.]

좀 한심하지만, 이걸로 기분이 좋아진다면 다행이다. ‘또 입니까’ 하고 노려보는 세이버는 우선 제쳐 두고, 나는 일라이저를 바라보았다.

[옷이 좋아요. 오빠도 많이 사 주기는 하지만 모두 어린 아이 같아 보이는 것뿐이에요. 조금 어른스러운 옷도 입어보고 싶었어요.]

‘오늘은 그 예비 조사였어요’ 하며 귀엽게 웃음을 지어 주었다. 아, 역시 여자 아이구나. 왠지 이런 거 저런 거 따질 것 없이 선물해 주고 싶어지는 미소다.

[그럼 오후는 그쪽을 먼저 돌자. 세이버도 괜찮겠지?]

‘마치 어딘가의 기사를 보고 있는 것 같군요’ 하며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세이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찮아, 가끔씩은. 뭐야, ‘“또”가 아닌가요’라니!

――슛!――

바로 그 때, 어깨를 떨구며 고개를 돌린 내 눈앞을 뭔가가 빠르게 지나갔다. 그것을 세이버가 번개같이 잡는다.

[……세이버.]

식은땀이 나왔다. 그대로 세이버가 잡지 않았다면 일라이저에게 맞았을 것이다.

[벌레입니다…….]

세이버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한다. 하지만 그 다음 우리에게만 들리도록 ‘그저 단순한 벌레가 아닙니다만’ 하고 작게 덧붙이며 손을 폈다.

[뭐야 이건?]

그것은 확실히 벌레였다. 파리 같은 날개가 난 지네라도 벌레는 벌레다. 이미 세이버의 손에 으깨져 에테르 덩어리로 되돌아오고 있었지만 기분 나쁘다.

[‘삼시(三尸)’의 일종인 것 같네요.]

같이 세이버의 손을 들여다 본 일라이저도 딱딱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과연.
인간의 몸에 기생하며, 기생한 인간의 악행을 염라대왕에게 전한다는 ‘삼시’다. 이건 그런 것과 같이 몸 안에 들어가 시술자에게 정보를 전하거나 하는 벌레일 것이다.
도대체 어디서……. 나는 당황해서 주위를 살펴보았다.

[아니요. 근처에는 기색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아마 원격 조작이겠지요.]

그런 나에게 아쉬운 듯이 세이버가 대답했다. ‘만약 옆에 있었다면 그 자리에서’ 라는 얼굴이다.

[어쨌든 여기는 골치 아프니까 나가자.]

이렇게 좁은 퍼브 안에서, 게다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서 상대가 뭔가 수작을 부리면 대처하기가 어렵다. 어딘가 사람이 없고 탁 트인 장소가 아니면.

[알겠습니다, 시로우. 일라이저, 당신도 안전한 곳까지 데려다 드리죠.]

[네, 부탁드려요.]

세이버를 따라 일라이저도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간 긴장하고 있지만 이 정도라면 괜찮을 것이다.
나는 세이버와 일라이저를 지키듯이 양 옆에 단단히 안고 가게를 나왔다.

[저렇게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정말로 형편없는 사람들이군요.]

일라이저는 자신이 표적이 된 것보다, 마술사로서의 모랄에 반하는 행동을 한 것에 분노를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면은 토오사카와 마찬가지다. 대단하다.

[시로우. 지금부터 어떻게?]

세이버는 주위를 경계하면서도 최대한 태연한 말투로 묻는다.

[우선 랜스에게 연락할게. 토오사카에게 연락해서 어떻게든 손을 봐 줄 거야.]

어쨌든 지금 상황은 우리에게 너무 불리하다. 상대가 어디서 무슨 수작을 부릴지 전혀 알 수 없다. 우선 어딘가로 끌어들여 단번에 승부를 걸 수밖에 없다.

[알겠습니다. 그때까지는 제가 지키겠습니다.]

세이버의 힘찬 말. 세이버가 지키겠다고 한 이상, 반드시 지켜줄 것이다.

[일라이저, 잠시 동안 답답할 지도 모르겠지만 조금만 참아.]

[참다니요, 말도 안 됩니다. 이런 괘씸한 녀석들…….]

‘이 손으로 쓰러뜨려 주겠습니다’ 라고 기세 좋게 말한다. 아니, 될 수 있으면 그쪽도 참아 주면 좋겠는데.
므――하고 볼을 부풀리는 일라이저를 달래며 나는 랜스에 연결된 라인에 의식을 집중했다. 참 나, 어째서 내 주위에 있는 여자 아이는 이렇게 기세등등한 사람뿐이지?

――마스터, 무슨 일인가?

――[그 녀석들이 수작을 걸어 왔어. 토오사카에게 알려 줘.]

랜스와 순조롭게 연결되었다. 아무래도 미나 씨의 공방에서 간식을 얻어먹고 있는 것 같다. 어이……너, 미묘하게 인생을 즐기고 있는 거 아니야?

――알았다. 그러면 마스터, 어디로 끌어들일 건지?

그건 그렇고 이런 때 사역마라는 건 정말 편리하다. 모두 일일이 생각하지 않아도 이 정도로 내 사고를 먼저 받아들인다. 게다가 랜스는 어떨 땐 나보다 머리가 좋으니까.

――[대영 박물관 뒤의 반입구가 좋겠어. 거기는 넓고 상시 결계도 쳐져 있으니까.]

――알겠다. 그럼 마스터, 대략 한 시간 정도 끌고 다녀 주면 좋겠는데.
――그 사이에 마녀 아가씨들과 준비를 해 두지.

빠르게도 대책까지 결정했을 것이다. 랜스는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려고 하고 있다.

――[아, 그리고. 토오사카와 루비아 씨는 싫어하겠지만 커티스에게도 연락하면 좋겠어. 그 녀석 여동생이랑 같이 있거든.]

잊으면 안 된다. 역시 소중한 여동생을 데리고 있으니까. 모른 척 할 수야 없지.

――[브라스] 씨의? 알았다. 마녀 아가씨들이 불평하면 내가 직접 전하지.

쓴웃음을 짓는 듯한 울림과 함께 랜스의 사고가 끊어졌다. 자, 이걸로 준비는 됐군. 저쪽은 토오사카에게 맡겨 두면 되겠지.

[저기, 오빠에게도 전했어요?]

내 모습을 보고 있던 일라이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묻는다.

[걱정할 필요 없어. 분명히 전해 두라고 했으니까.]

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안심시키듯이 미소를 지었다. 어라? 더더욱 불안한 듯한 얼굴이 된다. 왜 그러지?

[그게 가장 걱정이었어요…….]

왠지 미묘하게 뉘앙스가 다르다. 나, 뭔가 잘못한 건가?

어쨌든 가능한 한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 것 같은 길을 따라 시간을 벌며 대영박물관까지 가야 한다. 여기부터라면 옥스퍼드 스트리트를 통과하는 건 그만두고, 북쪽으로 약간 돌아가는 길을 통과하는 게 나을 것이다.

[일라이저, 잠깐!]

그렇게 생각한 바로 그 때, 갑자기 깨달았다.

[왜 그래요?]

나와 세이버 사이에 낀 채 눈을 크게 뜨며 멈춰서는 일라이저. 위험했다. 나 혼자 질질 밀려들어갈 뻔 했다고.

[이 길은 안 되겠어.]

나는 왜 그러는지를 묻는 듯한 얼굴을 하는 일라이저에게 설명했다.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골목으로 보이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이곳은 “어디로도 연결되지 않는” 골목이다.

[시로우는 공간의 왜곡에 민감합니다. 나도 조금 와 닿는 게 있습니다. 아마 “요정의 샛길”일 겁니다.]

세이버가 나대신 설명해 주었다.
즉, 이곳은 들어가면 아무리 계속 걸어가도 출구가 나오지 않는 폐쇄된 공간의 입구다.
이번 사태에는 강령학과가 가담하고 있다고 들은 적이 있으니, 틀림없이 어딘가에서 요정을 소환해서 시전 했을 것이다. 참 나, 한낮에 거리에 걸어 놓다니,

[시로우, 거기다. 깨달았습니까?]

[아아. 알았어. 정말 엉망진창이구만.]

이런 한낮에, 이렇게 사람의 왕래가 많은 길에 이런 걸 걸어 놨다. 당연히 헤맨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세이버와 내가 깨달은 것이 그것이다.

[어쩔 수 없지. 세이버. 부탁할 수 있을까?]

[알겠습니다. 사람의 눈을 막는 것과 뒤처리를 부탁드립니다.]

[알았어. 음, 일라이저는 사람의 눈에 안 띠게 하는 결계를 칠 수 있어?]

결국 지금부터 하려는 것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고 안에서 헤매는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게 하려는 것이다.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도록 하는 것은 어찌됐든, 사람의 눈을 가리는 것은 아직 나 혼자서는 좀 힘들다.

[간단한 것이라면 어떻게 할 수 있어요. 별로 잘 하진 못하지만 한 번 해 볼게요.]

‘해 보겠습니다’ 하는 일라이저. 꾸욱 주먹을 움켜쥐는 모습이 왠지 든든하다.

[――전개 개시(트레이스 온)]

[――Veloci Coepi(스타트)]

나는 일라이저의 도움을 받아 서투르지만 사람의 눈을 막는 결계를 쳤다. 뭐, 진은 잘 그릴 수 있어도 거기에 마력을 통하게 하는 것은 아직 반사람 몫 이하다. 일라이저가 마력을 잘 통해서 다행이다. ‘저는 마술 각인도 없고 마력도 별로 높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이 나이에 이 정도 솜씨라면 훌륭하다. 그러니까 마술을 배우게 되었을 것이다. 마술사로서의 재능은 나 같은 것보다 훨씬 뛰어날 것이다.

[시로우?]

[아아, 여기야.]

나는 왜곡의 중앙이라고 생각되는 공간을 가능한 한 정확하게 지시했다. 세이버는 한 번 고개를 끄덕이고 보구를 현현시킨다. 보이지는 않지만 역시 박력 있다.

――휙!――

――파직!――

일섬. 쓸데없는 마력은 사용할 수 없다. 단 한 번으로 핵을 찌른다. 신비는 보다 큰 신비에는 이길 수 없다. 정령이 단련한 최상급 보구 엑스칼리버로 상급 정령인 영령 세이버의 힘을 한 점에 찔러 넣은 것이다. 마술사가 소환할 정도로 어설픈 요정의 결계 같은 것은 순식간에 부서져 버린다.

[우와아. 엉망진창이구만…….]

순간 무언가 갈라진 것처럼 떨리며 현실로 돌아온 골목은 조금 이상한 광경이었다. 대략 이 삼십 명 정도인가? 그 정도 사람이 폭이 2m 밖에 안 되는 좁은 골목에 빽빽이 쓰러져 정신을 잃고 있다.

[우리만으로는 무리다. 미나 씨에게 부탁하자.]

나는 랜스를 통해 미나 씨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마술사의 잘못은 마술사가 정리할 수밖에 없지.

[시로 씨. 이 사람 말이죠, 마술사가 아닐까요?]

라며 그 중 한 사람을 일라이저가 가리킨다. 혼자 따로 떨어진 곳에 쓰러져 있는 로브 차림의 남자. 옆에서 보면 갈라진 유리병을 안은 채 양손에 화상을 입고 있다. 과연. “병 안의 요정”인가. 세이버의 일섬으로 도망갔구나.

[묶어서 쪽지라도 붙여 놓자. 뭔가 쓸 거 없어?]

나는 그 녀석의 옷을 찢어 로프를 만들면서 두 사람에게 물었다.

[종이는 없지만 펜은 있습니다.]

유성인가? 일라이저는 매직 같은 펜을 꺼내서 ‘어쩔 수 없어요’ 하며 “나쁜 사람” 이라고 대문자로 그 녀석의 얼굴에 써 두었다.

[“마술(매직)” 펜이에요. 그렇게 간단하게 지워지지 않는데다가 표식도 돼요.]

꾹꾹 눌러 써 둔 일라이저가 생긋 웃으며 말한다. “마술” 펜은 단순한 유성 펜이 아니었다. 꽤나 손이 매운데.

이대로 놔두는 것도 신경이 쓰여서 한동안 기절한 사람을 돌보고 있자, 미나 씨가 보내 준 마술사가 태연히 나타났다.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 뒤를 맡기고 이곳을 떠나기로 했다.
그건 그렇고, 그 녀석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참 나, 주위에 폐를 끼치는 것도 좀 생각해라.

[…….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요?]

일라이저가 기가 막힌 듯이 말한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정표를 보며 대영박물관으로 향하는 우리 눈앞, 정확히 십자로 한 가운데다.
검은 미국 쥐 인형이 우리를 노려보며 서 있다.

[……. “십자로의 악령”?]

십자로라는, 흐름이 교차하는 특수한 곳에 마법진을 써서, 하급령을 소환하여 조종하는 마술. 이 녀석도 아마 강령학과의 수작일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초록색 겉옷을 입은 머리가 크고 소 다리를 가진 악령을 소환할 테지만…….

[낮이니까 눈에 띠지 않게 이 모습을 선택했다는 건가…….]

아이들이 모여들고 있다.
‘풍선은 없어요?’ 라던가 ‘저작권 위반이야’ 라던가, 왁자지껄 떠드는 어린 아이들에게 둘러 싸여, 질린 듯이 우리를 노려보고 있다. 아니, 혹시 도와달라고 하고 있는 건가?

[시로우, 어떻게 하지요?]

그 세이버도 대응에 고심하고 있는 것 같다.

[이건 그냥 두자. 아무래도 우리들 이외에는 위해를 가하지 않도록 명령 받은 모양이니까. 미나 씨에게 연락해서 무슨 촬영을 하는 것처럼 속여 두지.]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가만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아니 움직이지 못하는 악령. 이렇게 하면 틀림없이 괜찮을 것이다.

[시로 씨…….]

[왜 그래, 일라이저?]

[자꾸자꾸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네…….]

나는 마네킹처럼 굳어진 마술사를 황급히 골목 안으로 옮기면서 일라이저에게 대답했다. 자신의 사안이 쇼 윈도우에 반사해 버려서 그대로 굳어져 버린 것 같다.
잠깐 일라이저의 옷을 보고 있을 때, 문득 등골에 오한이 달려 몸을 굽히는 순간, 뒤에서 남자가 갑자기 굳어 버렸다. 멍청한 녀석이긴 했지만 아슬아슬한 타이밍이었다.

[그래도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돼. 봐, 대영박물관이 보이기 시작했어.]

내가 가리키는 쪽으로 대영박물관. 파르테논 같은 정면이 보였다. 게다가 그 상공에는 까마귀 한 마리. 랜스다. 만반의 준비가 갖춰졌다는 거겠지.

[확실히 쫓아오고 있는 것일까요?]

세이버가 조금 뾰로통한 얼굴로 중얼거린다. 어쨌든 아까부터 점점 멍청해지는 추적자들이다. 멋대로 놓치거나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여기부터는 큰 길로 가자. 어떤 수준인지도 알았고. 그렇게 사람 눈에 띠는 짓은 하지 않을 거라 생각해.]

[정면 돌파입니까. 바라는 바입니다.]

[살금살금 다니는 건 성미에 안 맞아요.]

여성진 두 분은 내 제안이 아주 마음에 든 모양이다. 아니, 그렇게 콧김까지 난폭하게 내뿜지 않아도 괜찮아.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도 그렇지만 너희들 어찌 그렇게 혈기가 왕성한 거냐?

[시로우가 무른 겁니다.]

[시로 씨가 아마추어인 거예요.]

그런 생각이 표정에 드러난 건가, 두 사람이 므――하고 볼을 부풀린다. 하지만 평화로운 게 제일이라고.

그래서 우리들은 옥스퍼드 스트리트로 나와, 바로 정면에서 대영박물관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이곳까지 공격해 오지는 않았지만, 왠지 골목 안에서는 개에게라도 물린 것 같은 비명이나, 당황해서 달리기 시작하는 사람, 연기라도 들이마신 듯이 연달아 기침하는 소리 등이 차례차례 들려 왔다. 게다가 큰길로 굴러 나오는 수정구를 필사적으로 쫓아 나오는 사람까지 보인다.

[엄청 바보들이네…….]

정말 기가 막힌다. 이러고도 마술사냐…….

[어쩔 수 없는 것일지도 몰라요.]

그러자 일라이저가 설명해 준다.

[마술사는 혼자 틀어박혀 연구를 하는 사람. 그러니까 실전은 별로 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특히 이런 한낮에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마술을 쓰려고 하는 것이니까요. 상황이 다르니 너무 신중해 져서 실수를 하게 되는 거겠죠.]

‘상대가 있는 경우의 마술은 평소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으니까요’라며 입가를 끌어 올리며 코웃음을 친다. 즉, 이론에만 밝아서 상황이 꼬이면 대응을 할 수 없다는 건가. 그건 그렇고 그런 표정은 그만 해. 귀여운 얼굴이 엉망이잖아.

[그렇다면 마지막에 유인된 곳에서는 경계가 필요하겠지요. 더 이상 서로 사양하지 않을 테니까요.]

표정을 바꾸어 긴장을 하는 세이버의 충고. 그렇다. 자신의 홈그라운드라는 것은 저쪽도 마찬가지다. 좋아. 나는 다시 기운을 넣고 걸음을 빠르게 한다. 일라이저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되니까.

확실히 얕잡아 봐선 안 되는 상대였던 것 같다.

대영박물관 뒤쪽 반입구 앞. 그곳에서 녀석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이 있는 그곳에 그려져 있는 것은 강대한 오망성 소환진. 그 별을 정점에 한 사람씩, 거기다 조금 떨어진 제어진에 한 사람이 서 있다. 그야말로 악마라도 호출할 듯한 진용이다. 서서히 높아지는 마나의 소용돌이를 보면, 이 녀석들의 실력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로우. 일라이저. 물러서세요. 여기는 제가.]

순간 갑옷을 몸에 두르며 세이버가 한 걸음 앞으로 나온다.
그러자 그것을 본 상대의 진용이 단번에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어, 어째서?! 어째서 영령이 있는 건가!]

[이야기가 다르잖아? 멍청한 전과 녀석이 여자 아이 두 명을 데리고 온다기에 가담한 거다. 영령을 상대할 수 있겠냐!]

[누구야! 영령을 꼬마 계집이라고 보고한 녀석은!]

[알게 뭐냐! 설마 영령이 평상복으로 있을 거라고 생각했겠냐!]

갑자기 내부 분열이냐. 토오사카가 완전히 거절을 하고 있어서인지 세이버의 실태를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뭣보다, 이 녀석들에게 필요한 것은 세이버의 인격이 아니라, “영령”이라는 그릇이기 때문에 신경도 쓰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나는 그만 둔다. 돌아가겠어.]

[나도다.]
[나도.]

뭐야, 갑자기 해산이냐. 뭐야, 이 녀석들?

[정말 한심한 녀석들이네.]

[정말 어이가 없어요. 이런 걸 두고 기가 막혀 말도 안 나온다고 하는 거겠죠.]

하지만 그렇게 간단히 돌아가게 내버려 둘 사람들이 아니다. 마법진을 사이에 두듯이 양쪽에서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이 금강신처럼 우뚝 서서 모습을 드러냈다.

[어! 어쩔 작정이냐!]

[우리는 당신들과 일을 벌일 생각은 없네!]

여기엔 역시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 정도까지 난리를 피우고는, 어쩔 작정이냐고? 일을 벌일 생각이 없을 리 없잖아!

[어머? 제 제자나 패밀리어에게 수작을 부린 건 뭐였죠?]

[제 시종이 대단히 신세를 졌다고 들었어요.]

당연히 토오사카 씨도 루비아 양도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을 리 없다.
두 사람은 팔의 마술 각인을 눈부실 정도로 빛내며 생긋 웃으며 위협한다.

[어! 어째서 나갈 수 없는 거지!]

[나는 관계없다! 빨리 나가게 해줘!]

[결계라니? 말도 안 돼! 여기엔 마법진은 없었어!]

서둘러 도망치려던 소환술사들은, 왠지 안 보이는 벽에 갇혀 있는 것 같다.

[와아, 대단해요…….]

그런 소환술사들의 추태를 내버려 두고, 왠지 두리번두리번 거리던 일라이저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입을 딱 벌리고 있다. 왜 그러지, 하고 생각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자 그곳엔 랜스가 있었다.

――Croow…….

연이어 원이나 선을 그리며 날고 있다. 어라? 저건…….

[이거 확실히 대단한데.]

랜스가 그리고 있는 궤적, 그것은 거대한 결계진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라인은 아마 보석 가루일 것이다.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은 하늘에 그린 궤적을 기점으로 지상에 결계를 친 것이다. 보통의 마술사와는 센스도 레벨도 현격하게 다르다. 일라이저가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안심해요. 죽이진 않을 테니까.]

[그렇죠. 당분간 악질 병이라도 걸리게 할까요?]

허둥지둥 도망치려고 난리를 치는 소환술사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은 입꼬리를 비틀며 각각 마술 각인이 새겨진 팔을 앞으로 뻗는다.

[한 사람 한 사람 노리는 건 귀찮네요. ――En Garand(레디)!]

[거기 있는 큰 마법진, 잠깐 빌릴게요. ――Anfang(세트)!]

그대로 두 사람이 동시에 영창에 들어간다.

[아, 안 돼――――!]

[――Traurig klangen ihre Lieder(탄식의 노래 울려 퍼질 때)――Denn sie trugen ja zu Grabe(그 자 무덤에 묻히네).]

[――vis, meures; me brule et me nois(살고, 죽고, 불타오르고, 끓어오르라)――Et nous, les os, devenons cendre et pouldre(지금 그 몸, 재와 먼지로 화하라).]

[기다리게 했군, 제군!]

――콰앙!――

소환사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과 두 사람이 영창을 완료하는 것은 거의 동시였다. 순식간에 솟아오르는 섬광과 폭연이 순간 시야를 가린다. 어라? 그러고 보니 마지막에 뭔가 들린 것 같았는데…….

[뭔가…….]

[조금 이상한 반응이 있었어요…….]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도 뭔가 의심스러운 얼굴로 연기가 개이기를 기다리고 있다.
연기가 개는 가운데 서서히 나타나는 것은, 우선 끙끙거리는 신음소리를 내는 소환술사들이 왠지 여자 아이를 앞에 두고, 말하기 좀 그런 부분을 누르고 있다. 조금 안 됐는데.
하지만 그런 게 문제가 아니었다.

[시로우. 물러서세요.]

심각한 얼굴로 한 걸음 앞으로 나오는 세이버. 연기 가운데에서는 나지막한 광기어린 웃음소리와 함께, 거대한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후후후후후후……. 하하하하……. 핫핫핫핫.]

――쿠웅――

거기엔 괴상한 모습이 서 있었다.
심장 3m 정도인 강철 피부와 용암의 피를 가진 거인.
한 때 성배 전쟁에서 만났던 버서커 같은 거구.

그리고 그 뒤에는 방금 전 제어진에 있던 소환술사. 아무래도 이 녀석이 주모자 같다.

[언제 소환한 거야…….]

[아니에요…….]

그런 내 중얼거림에, 옆에서 일라이저가 그야말로 아연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장갑골렘(아이언 마타) 28호. 오빠의 작품이에요.]

뭐라고?
나는 다시 한 번 그 골렘을 올려다보았다. 아, 확실히. 이 녀석은 본 기억이 있다. 커티스와 처음 만났을 때 데리고 있던 골렘이다. 그 때 그건 부쉈으니까 이건 아마 동형기겠지.

[하하하……. 이렇게 운이 좋을 수가. 좋은 걸 주웠군. 이 녀석에게는 영령도 고생했다고 들었다. 이걸로 형세는 역전이다!]

소환술사는 거칠게 숨을 내쉬며 소리 높여 외친다. 확실히 이 녀석은 골치 아팠었지.

[야! 오빠의 작품을 멋대로 쓰지 마!]

거기게 일라이저가 흥분해서 달려든다. 나는 뛰쳐나가려는 일라이저를 막으려고……끌려갔다. 뭐 이리 힘이 세!

[멋대로고 뭐고. 바로 그 본인이 끌고 온 것이다. 있는 것을 사용한다. 마술사의 기본이 아닌가!]

그야말로 제멋대로 지껄인다. 과연. 뻥 뚫린 반입구 옆에 커티스 녀석이 뻗어있다. 방금 전 폭발의 여파 때문인가? 뭐, 상처는 없는 것 같다.

[그렇구나. 조금 전의 그 목소리는 커티스였구나.]

일라이저를 구하기 위해 골렘을 끌고 반입구에서 씩씩하게 나타났다가 그 주문에 말려 들어갔을 것이다. 기막힐 정도로 타이밍이 나쁘다.

[저렇게 될까봐 가장 걱정했었어요…….]

어떻게든 진정한 것인지 걸음을 멈춘 일라이저가 추욱 어깨를 떨군다. 기분은 알겠지만 오빠 걱정도 좀 해 줘.

[그런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여전하네.]

[정말. 매번 매번……. 대단하다고 할 정도네요.]

그런 커티스를 바라보며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도 기가 막힌 정도를 넘어 감탄하고 있다.

[이 자식들! 내 말을 들어!]

갑자기 방금 전 소환술사가 핏대를 세우며 고함친다. 자신이 유리하다고 생각되자 갑자기 고압적이 된다는 것은 별로 칭찬 받을 게 못 돼.

[여기서 그만 둔다면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 주지. 어떠냐? 나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당신 바보지?]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네요.]

두 사람도 사정없다. 불쌍한 듯이 업신여기는 시선으로 소환술사를 바라보고 있다.

[무슨! 괜찮겠나? 이 녀석에게는 영령이라도 당해낼 도리가 없었잖아!]

왠지 이야기가 커지고 있는데. 희망적인 관측을 사실이라고 생각해 버리면 어떻게 하냐.

[뭐, 확실히 그 때는 고생했지.]

[예. 이야기는 들었어요. 하지만 그건…….]

짓궂은 미소를 띠는 두 분. 입을 모아 말씀하신다.

[[그 녀석이 폭주했었으니까.]]

[이제 시간입니다…….]

마지막은 일라이저가 끊었다. 오빠를 잘 알고 있잖아.

――키이잉!――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갑자기 골렘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양손을 아무렇게나 휘두르며 땅을 울리며 제자리걸음을 하기 시작한다.

[어째서냐! 어째서 명령을 듣지 않는 거냐!]

그런데도 소환술사 녀석은 현상을 파악하지 못하고 기상을 제어하려고 한다. 아, 정말!

[세이버!]

이제 어쩔 수 없다. 이런 바보 같은 일로 사람이 죽게 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나는 세이버에게 원호를 부탁하며 곁눈질도 하지 않고 달려들었다.

[어! 어쩔 셈이냐!]

[입 닥쳐!]

골렘의 주먹을 세이버의 엄호로 피해 가며, 나는 소리를 지르며 날뛰는 소환술사를 골렘의 사정거리 바깥까지 차 날렸다. 이걸로 어떻게든 될 것이다.

[시로!]
[시로우!]
[시로 씨!]

하지만 차 날린 것은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밸런스가 무너져 버렸다. 여자 아이 세 명의 비명이 울리는 것과 동시에 덮쳐 오는 골렘의 주먹에도 나는 몸의 자세를 고칠 수 없었다.

[시로우!]

세이버의 엄호도 지금 한 걸음에 닿지 않는다. 굉음을 내며 뻗어가는 다른 한 팔이 세이버를 향해 떨어져 내린다. 지금 세이버의 무기는 보구다. 잘라서 떨어뜨릴 수는 있겠지만 그래서는 한 박자 늦어져 버린다.
머리를 향해 덮쳐 오는 주먹을 나는 끝까지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콰직!――

뭔가 금속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와 섬광. 하지만 내 머리는 아직 어깨 위에 놓여 있었다.

[――에?]

[괜찮아요, 시로 씨?]

놀라서 멍해진 내 눈앞에는, 골렘의 주먹이 아니라 일라이저의 얼굴이 있었다. 안심한 듯한 말투로 내가 무사한지 확인한다.

[일라이저…….]

[일라이저…….]

골렘의 주먹이 내 머리를 부수기 직전. 그것을 받은 것은 일라이저였다. 물론 무사하지는 않다. 양 다리는 확실히 버티고 서 있지만, 두 팔은 부서져 날아가고, 동체도 반 이상 부서져 있다. 톱니바퀴와 용수철이 마구 튀어나와 있는데도, 일라이저는 꿋꿋하게 서서 나를 걱정해 주고 있었다.

[이 아이는 제가 맡을게요. ……이걸로 끝이에요.]

내가 무사한 것을 확인해서 안심했는지, 일라이저는 생긋 웃으면서 고개를 삐걱거리며 다시 골렘을 향한다.

[28호, 잠들어요. 당신·의·임무·는·끝났·어·요.]

천천히 더듬거리며 하는 말. 그것은 마치 주문처럼 흘러나와, 마력이 되어 일라이저의 몸에서 골렘을 향해 흘러든다.

[안녕·히……여……러……분…….]

가벼운 소리와 함께 움직이을 멈추는 골렘. 하지만 그것을 마지막으로 일라이저는 침묵해 버렸다.

[일라이저…….]

――…슈웅…――

그대로 일라이저의 눈동자에서 빛이 사리진다. 그러자 그와 바뀌듯이 기상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서 일라이저의 몸과 기절한 커티스를 껴안아 올려서 조용히 반입구로 사라졌다.

[폭주를 멈춘 것뿐만 아니라 제어까지 되찾았다니?]

[재기동과 시술 재구성을 한 번에? 자동인형이?]

루비아 양과 토오사카가 넋이 나간 듯이 중얼거린다. 뭔가 말도 안 되는 걸 한 것 같다. 하지만 일라이저는……. 나는 남겨진 톱니바퀴 하나를 무의식적으로 줍고 있었다.

[시로우…….]

[아아. 설령 인형이라도 일라이저는 일라이저였어…….]

세이버의 걱정스런 말에, 나는 중얼거리듯이 대답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안심해. 자동인형이라면 핵이 남아있으면 어떻게든 되니까.]

[저 정도의 기계인걸요. 틀림없이 백업해 놨을 거예요.]

토오사카와 루비아 씨도 멍하게 있는 나를 위로해 준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저 톱니바퀴를 꾹 움켜쥔 채 반입구를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모두들, 미안…….

――――――――――――――――――――――――――――――――――――――――

[자동인형이라…….]

그 후로 일주일. 결국 커티스도 시계탑의 공방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한동안 멍하게 있던 나도, 요즘에 겨우 회복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단순한 자동인형이 아니었어. 아마 사역마겠지.]

내 혼잣말에 담긴 뜻을 알았는지, 토오사카가 대답해 주었다.

[사역마?]

[그래. 마술도 사용했잖아? 인격도 보통이었고. 부유 영혼을 넣은 사역마. 기계 장치지만 랜스 같은 거야. 이해는 가지?]

아, 역시. 그렇지만 정말로 인간 그 자체였던 것이다.
나는 남겨진 톱니바퀴를 바라보며 또 다시 생각에 잠겼다. “브란돌 M56mk14(모델56마크14)”라고 새겨진 이 톱니바퀴가 나에게 남은 유일한 추억이다. 그저 몇 시간에 불과한 사건이었는데도 왠지 마음에 깊이 남아 있다.

[시로우…….]

그런 내 어깨에 세이버가 가만히 손을 얹었다. 왠지 상냥한 눈동자다. ‘일라이저는 당신의 마음속에 언제까지라도 있습니다’라는 듯한 눈동자. 아, 세이버. 고마워.

[정말……뭐, 어쩔 수 없네.]

그런 우리의 모습에 토오사카도 어깨를 으쓱하며 상냥하게 웃어 주었다. 미안, 걱정하게 해서. 이제 괜찮아.

[시로우 에미야는 있는가?]

좋아, 하고 일어섰을 때, 공방 입구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겍, 브라스…….]

토오사카의 쥐어짜는 듯한 소리. 참나, 다른 의미로 커티스 앞에서 내숭 떠는 걸 그만 뒀구나.

[커티스 브란돌이다. 뭐, 그것 됐고. 시로우 에미야는 있는가?]

[아, 있는데?]

토오사카에게 커티스 상대를 하게 하면 끝도 없을 것 같아서 내가 직접 나섰다.

[오랜만이군. 이 전은 여동생이 큰 신세를 졌다. 감사한다.]

가슴을 쭉 펴는 변함없는 커티스. ……그러고 보니, 커티스는 일라이저를 계속 여동생이라 부르고 있었지…….

[아니, 감사할 사람은 나야.]

그렇다. 목숨 구한 것은 나다.

[여동생에게 이야기는 들었다. 등가 교환이라고 하자면, 아직 이쪽이 빚을 진 것이지. 거기에 더 빚을 지고 싶지는 않지만, 여동생이 만나고 싶어 한다. 괜찮다면 레이디 세이버와 자네를 여동생과 만나게 하고 싶은데. 이건 요청이 아니라 소원이지만 들어 주겠나?]

잠깐 기다려, 일라이저랑 만난다고? 그럼,

[일라이저, 회복 된 건가?]

[흠. 회복 되었다고 하기엔 좀 어폐가 있지만……그렇게 생각해도 그리 틀리진 않겠지.]

[알았어. 바로 갈게. 세이버도 괜찮지?]

[네. 기꺼이.]

나와 세이버는 샐쭉해진 토오사카를 간신히 달래서 커티스를 따라 일라이저를 만나러 가게 되었다.

[……병원?]

[……공방이 아니네요?]

커티스가 안내한 곳은 병원이었다. 아무래도 브란돌 가는 표면상으로는 의사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좀 무서운 생각이 들지만.

[여동생은 여기에 입원하고 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커티스의 반응. 뭐? 그렇지만……. 일라이저는 자동인형이잖아. 인간과 속까지 완전히 같은 인형이라는 것도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일라이저는 톱니바퀴와 용수철로 만들어진 완전한 기계식이었는데.

[자, 들어가게.]

더욱 훌륭한 특별 병동 앞에서 커티스가 멈춰 서서, 우리를 인도했다. 확실히 명찰에는 “일라이저 브란돌”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실례합니다…….]

[일라이저. 원하던 대로 레이디 세이버와 시로우 에미야를 데려 왔어.]

반신반의하면서도 들어간 그 병실에는 작은 침대와 자고 있는 여자 아이. 그리고 새끼 고양이 한 마리.
그대로 다가가서 ‘응?’ 하고 생각하며 바라본 침대 위에는 틀림없이 그 소녀의 모습. 규칙적으로 숨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그 때 그대로의 일라이저였다.

[일라이저……?]

[아아. 일라이저의 본체다.]

빨려 들어갈 듯이 자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나에게, 커티스의 무뚝뚝한 목소리가 들린다. 잠깐, 이 아이, 진짜 인간이잖아.

[……일라이저……군요?]

그런 우리는 놔두고, 세이버는 왠지 새끼 고양이에게 말을 건다. 생긋 웃으며 장난친 것을 발견한 어머니 같은 표정이다.

[아하, 세이버 씨에게는 들켜 버렸네요.]

라며 새끼 고양이가 일라이저의 목소리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뭐라고?
나는 새끼 고양이와 커티스, 그리고 침대 위에서 자고 있는 일라이저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며 엄청 놀라고 있었다.

[일라이저. 장난은 그만해. 설명해 주지.]

[네, 오빠.]

담담한 커티스와 일라이저의 이야기는 꽤 놀랄 만한 것이었다.
우선, 지금 여기서 자고 있는 일라이저가 진짜 일라이저라고 한다. 아무래도 일곱 살에 사고를 당해서 그 후로 의식은 남아 있지만 신체는 눈을 뜨지 않고 잠들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들은 마술사다. 그렇게 끝낼 수는 없지.]

거기서 자동인형이라는 것이다. 자고 있는 일라이저와는 조금도 자르지 않은 자동인형. 무기질 인형, 골렘은 브란돌 가의 전통 기술이다.

[일라이저는 천재였어.]

일라이저는 네 살 때부터 브란돌 가의 인형이나 골렘을 자유자재로 조종했다고 한다. 그 힘을 구사해 완전히 닮은 자동인형에게 일라이저의 조직을 넣어, 동류감응과 감염으로 강화한 일종의 사역마로서 일라이저의 의식과 감각을 옮겨 보통 사람 수준의 활동을 가능하게 했다고 한다.

[그랬구나…….]

원격 조작하는 자동인형. 마술은 행사할 수 있어도 그 몸의 유지와 몸으로부터 본체로의 피드백에 마력의 대부분이 소비된다. 그 때문에 브란돌 가문의 후계자는 오빠인 커티스가 되었다고 한다.

[힘들었겠구나……일라이저…….]

그렇다곤 해도, 정말 가슴 아픈 이야기다……. 나는 침통한 표정으로 일라이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너는 바보냐.]

[가볍게 보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네요.]

하지만 내 동정은 일격에 분쇄되었다.

[일라이저는 완전히 살아있어. 움직이고 경험하고, 고민하고 사고하고, 생각해서 감정을 표현한다. 보통 사람과 어디가 다르지?]

[그래요. 저는 인생을 즐기고 있어요.]

두 사람은 딱 잘라 말한다.

[버전 업을 거듭해서 이번 모델에서는 식사도 소화도 할 수 있고, 생리도 한다.]

[커어―티―스――!!]

[무슨 소리냐. 본체와의 피드백을 위해서도 생리는 중요하다. 호르몬 밸런스는 제대로 이루어지게 하지 않으면 이후의 성장이 문제가 된다.]

[정말, 이상한 변명만 하고…….]

[시로우. 이 두 사람에게 그런 생각은 의미 없어요. 틀림없이 아주 좋은 남매입니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세이버가 상냥하게 웃는다. 그렇다. 겉모습은 고양이와 사람이지만, 사이좋게 싸움하는 이 두 사람은 틀림없이 남매였다. 겉모습도 조성도 상관없다. 이런 모습에서 한 가지 깨달았다. 내 동정 같은 것은 이 두 사람에게는 폐가 될 뿐이다.

[시로우 에미야. 지금은 이런 임시 몸이지만, 내일은 mk15가 완성된다.]

[생일이에요. 괜찮다면 세이버 씨와 시로 씨도 와 주셨으면 하는데요.]

과연, mk라는 건 그런 뜻이었구나.

[아, 기꺼이.]

나는 세이버와 얼굴을 마주 보며 웃었다. 그렇지, 돌아가는 길에 선물을 사 두자. 이 아이에게 어울릴 것 같은 조금 어른스러운 옷을.

――――――――――――――――――――――――――――――――――――――――

오래간만이네요. 이번 건 이상하게 여기저기 걸리는 부분이 많아서…….
음. 대충 뜻은 통하게 했으니 읽기 힘들진 않을 겁니다. 정확한 번역은 아니지만……. ㅠ_ㅠ

그건 그렇고 작가의 말에 보면, 브라스의 활약을 기대한 사람에겐 미안하다는 군요. 브라스는 맛이 가버리면 한없이 폭주할 수도 있어서 작가 자신도 무섭다는데요.

그리고 장갑골렘 28호. 철인28호가 연상되는 건 저뿐일까요. -_-;;;

일라이저 모델의 mk14, mk15라는 건 아마도 나이를 말하는 거겠지요. 그럼 이제 일라이저는 15살 생일을 맞이하게 되는 거군요. 그나저나 시로도 점점 커버하는 범위가 넓어지고 있습니다. 로리일 뿐만 아니라 인형!!! 왠지 로젠 메이든이 생각나는군요. -_-;;;

(*1) 삼시 [三尸]
―> 인체 내에서 사람의 수명·질병·욕망 등을 좌우한다는 3가지 벌레. 삼시충(三尸蟲)이라고도 하죠. 경신(庚申)에 해당하는 날에 잠을 자면 수명이 짧아진다는 도교의 신앙과 관계있는 벌레. 그 날에 잠을 자면 사람의 몸 안에 살던 삼시충이 몸에서 빠져나와 그 사람의 악행을 옥황상제에게 일러바친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꽤나 오래(?) 전에 어릴 때 본 만화 중에 이걸 소재로 한 만화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이 다음은 후유키 편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그 다음은 외전 24.5가 되고 그 다음으로 3기로 넘어가게 되죠. 시간적 순서는 말입니다.
음… 시간이 오래 걸려서… 언제 다음 편 나올지는 기약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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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런던에 온 지 거의 1년. 일본에 비해 영국은 꽤 추운 곳이지만 그래도 슬슬 여름이 오고 있다.

[꽤나 여름 같아 졌네.]

이곳 에델펠트 저택의 정원도 이제 여름을 위한 준비가 끝나, 밝은 햇살이 가득 내리쬐고 있다.

[여름에는 거의 두 달 정도 이곳을 비우게 됩니다. 고용인도 교대로 휴가를 주고, 이곳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 인원만 남길 겁니다. 이제 남은 큰일은 짐을 싸는 일 정도밖에 없으니까요.]

다과 소품을 챙기던 슈프란 씨가 달력을 바라보면서 내 혼잣말에 대답했다.

[바캉스입니까?]

[그것도 있지만, 올해는 아가씨께서 일본에 간다고 하셨습니다. 에미야 님도 알고 계실 텐데요?]

그랬지. 올해는 우리가 귀향하는데 루비아 양도 함께 따라간다. 그렇다고 해도 놀러 가는 것이 아니다. 여름 방학을 이용해서, 토오사카 저택에 있는 대사부의 서재를 조사하러 가는 것이다.
토오사카와의 공동연구, 루비아 양이 자재를 제공하고, 토오사카가 자료를 제공한다.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이 함께 대사부의 유산으로의 길을 찾으려는 것이다.
어쨌든 토오사카 가문에 전해 내려오는 물건을 꺼내지 않으면 안 된다던가. 최종적으로는 마법에 도달하는 길로 나아간다. 그 두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해 버릴 것 같아서 신기하다.

[시로우……. 당신, 현실도피하고 있는 거 아닌가요?]

흠칫

내 앞에서 루비아 양이 흘겨본다. 내가 앉아 있는 곳은 루비아 양의 서재. 그 중앙에 놓인 큰 책상이다.
게다가 지금 그 책상에는 두꺼운 마술서과 참고 서적이 쌓여 있어, 평평한 부분은 내 눈앞에 노트가 펼쳐져 있는 부분 밖에 없다. 나는 거기서 필사적으로 수비학(數秘學)의 변환과 치환을 놓고 씨름하고 있다.

[그치만, 루비아 씨. 이거 완전히 암호 같잖아.]

알파벳을 수치로 변환하고, 거기다 그 수치가 같은 어구끼리 연결시켜 기술한다. 이 비법은 카발라의 기초이지만, 그야말로 난해한 문장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헤브라이 알파벳이니 희랍어니 하고 있으니, 정말 뭐가 뭔지 모르겠다.

[암호 같은 게 아니라 암호예요. 정말……. 잘 들어요, 시로우. 마술이라는 것은 비법이며, 숨겨진 지식을 숨겨진 형태로 손에 넣는 것입니다. 이걸 못하면 주술식이고 뭐고 소용없는 거예요.]

지당하신 말씀. 그래도 말야, 좀 더 알기 쉽게 할 순 없는 거야?

[아무나 다 알 수 있으면 마술이 아니에요! 잔소리 말고 얼른 풀어요. 시로우, 당신 낙제하고 싶어요!?]

내 한심한 태도에 드디어 벼락이 떨어졌다. 루비아 양은 두 손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가아――하며 흥분했다. 그렇게 말해도 말야……. 나는 눈치 채지 못하게 살짝 한숨을 쉬었다.
런던에 이제 곧 여름이 온다. 즉, 기말 고사의 계절인 것이다.

금빛 괴물
[황금빛 마왕] ―Rubyaselitta― 제 7 화 전편
Lucifer

시계탑의 스케줄은 일본과는 달라서, 유럽이나 미국의 학교와 같이 9월에 개강한다. 그리고 여름 방학도 마찬가지로 두 달 이상이다. 물론 시계탑은 그 성격 상, 그 중에도 학생의 자율 연구라는 형태로 활동이 계속되고 있기는 하다. 단지 9월부터 다음 해 7월까지 강의나 세미나가 일 년 분의 커리큘럼으로 진행된다는 것 뿐이다.

그렇다곤 해도 시계탑도 학부. 그냥 끝내 주지는 않는다. 여기서 여름 방학 전의 일대 이벤트, 기말 고사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1년간 받은 강의, 세미나의 총 마무리. 그 동안의 학습 내용을 완전히 익혔는지 어떤지를 확인하는 이 시험은, 역시나 꽤 빡빡하고 하드하다. 테스트, 페이퍼는 물론, 실습, 실연, 발표회까지. 각 담당 교수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시험을 치르게 된다.

뭐, 나 같은 전과 1학년은 보통 대학의 교양 과정이므로, 페이퍼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그런 게 가장 문제이기도 하다.

[과제 제작은 어땠어요?]

[아, 그거라면 벌써 끝냈지. 지난주에 미나 씨의 노(爐)를 빌려 아조트 형을 한 개 단련해서 제출했어.]

내 속성은 ‘검’, 그리고 마술은 ‘투영’으로, 그야말로 ‘만드는’ 사람인 것이다. 그러나 그 대단한 시계탑 전과에도 그것들을 모두 전공으로 하는 부문은 없다. 게다가 내 ‘투영’은 너무 특수해서 사람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나는 부가 마술, 그 중에서도 부구(付具)부문(탈리스머닝)을 전공하기로 했다.
검의 상위 개념의 하나인 ‘금속’. 그리고 ‘투영’과 같은 종류의 마술인 강화, 변화를 포괄하는 ‘부과’. 이것들을 조합해서 물건을 ‘만든다’는 것에 특화되어 있는 것이 이 부문이다.
즉, 마구 제작. 담당 교수도 스트라우스와는 다른 계통의 마구사(디아볼리스트)로 검에 대한 조예도 깊다. 그래서 기말 수료 과제 제작은 마술용으로 쓸 의식용 검을 단련한 것이다.

[그거라면 문제없겠네요. 검에 대해서는 시로우는 아주 뛰어나니까요.]

만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루비아 양은 생긋 미소를 짓는다. 아니 정말, 이 얼굴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노력한 보람이 있다고 할 정도의 표정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계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필기 과목은 이렇게 비참한 거죠?]

그것 봐, 시작했다.
눈살을 찌푸리며 도대체 어디서 가져 왔는지, 내 성적표를 바라보고 계신다. 참 나, 도대체 어떻게 구한 거지? 마술은 비밀스러운 거 아니었나?

[생명수도, 솔로몬의 열쇠도 이렇게 멋지게 그릴 수 있는데, 어째서 수비학이나 명상법은 전혀 안 되는 건가요?]

진심으로 이상한 듯이 묻는다. 아니, 나로서는 이런 숫자의 나열이나 알 수 없는 시나 글을 이해하는 게 더 이상하지만.

[아니, 보라구. 알파벳도 다르고, 의미는 통하지도 않고, 왠지 정신없이 복잡해서 말야.]

[그래도 시로우, 당신 마법진의 주문은 제대로 새길 수 있잖아요?]

[응. 그건 이미지 자체를 기억하고 있으니까.]

루비아 양이 크게 한숨을 내 쉰다. 시로우는 철저하게 마술사용자군요, 하고 단념한 듯한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확실히 내 방향은 그쪽이지만……. 왠지 상처 입었어.

[그런데, 내 공부 봐주는 건 좋지만, 루비아 씨 자신의 시험공부는 어때?]

커리큘럼을 고칠까 하고 중얼거리며 머리를 감싸 쥐는 루비아 양에게, 나는 가장 걱정이 되는 걸 물어보았다. 내 공부와 루비아 양의 연구는 레벨이 다르다. 본과라도 시험은 있고, 아무튼 루비아 양은 수석 자리를 다투는 사람이다. 이런 일에 시간 낭비할 틈이 없을 텐데…….

[그래도 처음은 페이퍼예요.]

‘어째서 일부러 시험공부 같은 걸 해야 하죠?’ 하고 되묻는 루비아 씨. 하하, 잊고 있었습니다. 루비아 양 정도의 레벨이 되면 메인은 강의가 아니라 연구와 실습. 강의는 거의 취미에 가깝다. 강의를 하고 있는 사람이 강사 클래스라면, 루비아 양이 훨씬 레벨이 높다.
그러고 보니, 이 기말 고사의 수석 다툼도 내기 거리가 되고 있다. 확실히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이 거의 일대 일이고, 3위 이하가 문제라고 쥴리오가 빨강 색연필을 한 손에 든 채 말했었다. 어째선지 미나 씨가 이 도박판의 관리자라고 했었지.
하긴 이제 와서 페이퍼로 괴로워하며 고민할 리는 없겠지……. 우우, 젠장. 잘 하는 사람은 내 괴로움을 알 리가 없지.

[그리고 연구 발표 쪽은 조금 고생하고 있지만요. 그래도 늘 하던 공부나 연구로 준비는 돼 있어요.]

잘도 말씀하십니다. 즉, 일부러 시험을 위해서 공부하지 않아도 평소의 생활 자체가 이미 연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루비아 씨는 정말로 마술사구나.]

[……. 시로우. 저를 뭐라고 생각하고 계셨나요?]

마음속 깊이 감탄하며 중얼거리자, 므――하고 눈을 흘기는 루비아 양.
그렇지만, 나는 다시 한 번 마술사라는 것을 실감했다.

[아니, 정말로 루비아 씨는 대단하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나는 눈이 부신 듯이 루비아 양을 바라보았다. 정말 대단하다. 산다는 것은 연구와 공부가 같다는 것, 이것이 마술을 목적으로 살아가는 자의 삶의 방식인 것이다. 나 같이 마술을 수단으로 하는 마술사용자와는 정말로 근본이 다르다.
특히 루비아 양이나 토오사카는, 이렇게 살아가는 방식이 당연한 듯이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시계탑에 오고 나서 여러 마술사를 만났지만, 이 정도로 [진짜 마술사]인 사람은 거의 없다. 대개는 마술사라고 하면서도 매일매일 연구해야 하는 것에 엄청 괴로워한다. 이 두 사람은 역시 대단하다. 괜히 수석 다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 당연하잖아요.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 거예요?]

그렇게 내가 노골적으로 칭찬하자 조금 부끄러웠나 보다. 확 뺨을 붉히며 눈을 돌려 버렸다. 미소를 지을 만한 행동이지만, 이것 또한 아주 대단한 일이다. 그 정도로 마술에 깊이 빠져들어 있으면서도, 이 두 명은 평상시에도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 뒤로는 정말로 멋지고 솔직한 여자 아이의 모습이 살짝살짝 엿보인다.
이런 것은 정말로 아주 보기 드문 것으로, 문자 그대로 [고마운(有難い)(*1)] 일인 것이다.

[그러니까 시로우는 저를 걱정하실 필요 없다구요. 자, 다음 문제를 풀어 보세요.]

역시 불평하면 벌을 받는 게 당연한 거겠지. 나는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수비학의 암호에 재도전 했다. 좀 힘들더라도 어떻게든 되겠지.

[안 되네.]

어떻게 안 됐다.

[아니, 그래도 토오사카. 수성 같은 바위 덩어리를 이성이라고 하는 건…….]

[형이하학적 개념과 형이상학적 개념을 같은 걸로 보지 마!]

순간, 가아――하고 큰소리를 낸다. ‘너, 몇 년 동안 마술한 거야’ 라니, 그야 마술 그 자체는 10년 정도 되지만, 체계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건 최근 2년 정도다. 그야 과학과 마술을 성립된 기반 자체가 다르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만 말이지.

[2년 정도면 충분해. 나는 점성술은 일곱 살 때 마스터 했어.]

그런 생각이 얼굴로 드러났나 보다. 토오사카 씨는 생긋 웃으며 재능의 차이를 과시해 주신다.
나는 식탁 위에 놓인 호러스코프(horoscope : 점성술용 별자리 그림)를 앞에 두고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지금 하고 있는 것은, 보다시피 점성술 시험공부. 이렇게 말해도 점이 아니다. 시계탑에서는 점보다는 각 행성, 별자리의 개념 구성을 이용해 주문식을 구성하고 응용하는 것이 메인이다.

[알겠어? 그야 점성술은 근대 천문학의 발전으로 가치가 떨어지기는 했어. 그렇지만 믿고 있는 사람과 귀납적으로 얻어진 경험 법칙을 통해 확인한 실제 양상은 변하지 않았어. 마술이라는 하나의 형태가 사람의 무의식계를 통해서 세계에 액세스 하는 일이 있는 이상, 형이상학적 개념은 형이하학적 개념과는 별도로 항상 실재하는 거야. 바로 이 점을 머릿속에 넣어 두라구.]

나는 뚱하게 있는데 다그치듯이 토오사카는 흥분한다. 그래도 아무래도 한 가지가 걸린다.

[그렇다는 말은 믿는 사람이 줄어들면 그만큼 힘이 없어진다는 거 아냐?]

왠지 듣고 있자니 그런 생각이 든다. 그렇게 불안정하고 애매모호한 거였나?

[그래. 그러니까 마술은 그 지식과 경험이 널리 알려지면 안 돼. 널리 퍼진 마술은 형이하학적인 개념―점성술인 경우엔 천문학이겠지―에 삼켜져서 그 가치를 잃어 가는 거야.]

‘괜히 유별나게 신비를 은닉하고 있는 게 아니야’ 하고 말하는 토오사카 씨. ‘신이나 정령의 왜소화도 이거에 해당되지’ 라며 말을 잇는다.

[상당히 불편한 거네.]

[너 말야…….]

내가 별 생각 없이 말을 내뱉자, 토오사카 씨는 핏대를 세우면서 관자놀이에 손을 댄다. 우와아, 눈꼬리가 실룩실룩 경련하고 있어, 좀 무섭네.

[편리한 걸 따지자면 과학이 훨씬 편리하다고. 알겠어? 마술이라는 것은 그 절대량이 정해져 있는 힘이야. 그것을 행사하는 사람의 수가 늘어날수록 그만큼 개개의 마술의 힘은 작아져 버리는 거야. 시로의 고유결계가 특별하게 여겨지는 이유도 바로 그거야. 아무튼 고유결계라는 것을 행사하는 사람의 수가 늘어난다 하더라도 그 시술자의 고유결계는 단 하나 뿐이라구. 그 정도로 순수한 마술이라는 거야.]

진정하기 위해서인지 심호흡을 하고 나서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토오사카는 진정하고 나면 꼼꼼하게 설명해 주기 때문에 도움이 된다. 단지, ‘그러니까 너는 말야, 엄청 치사한 거라구’ 하는 눈으로 보는 건 그만 둬 주지 않을래?

[아니, 알았어. 앞으로는 제대로 공부할게.]

결국 요점은, 현대 과학은 일단 잊고,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세계를 다시 구축하라는 것이다. 대단히 골치 아픈 작업이지만, 범재인 나는 노력과 끈기를 통해 쌓아 올릴 수밖에 없다.

[‘앞으로는’이 아니고, 지금 바로 현재 이 시각부터 시작해. 알겠지? 자아, 그럼 다음은……연금술이네. 이것은 시로의 전공과도 관련이 있으니까 빈틈없이 기억해 둬.]

꾸욱 하고 주먹을 불끈 쥐며 알통을 만드는 토오사카 씨. 천재는 범재보다 더 가차 없었던 것 같다. 우우, 따라갈 수 있을까나.

[차를 준비했습니다. 린, 시로우. 좀 쉬지 그래요?]

히드라(증류기)의 위에서 정제되고, 녹색 사자(수은)를 삼키게 되고, 두 마리 뱀이 몸에 새겨지게 되었을 때, 세이버가 차를 준비했다고 알려 주었다. 살았다. 위험하게 산 채로 현자의 돌이 될 뻔 했다고.

[아, 고마워.]

[미안하네, 세이버.]

[아니요. 두 사람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니까 이 정도야.]

요즘 완전히 머릿속에 우겨 넣는다고 변변히 자지도 못한 탓인지, 세이버의 미소가 눈에 사무친다. 우우, 다른 사람들은 너무 하다고.

[그래서, 어떻습니까? 시로우의 공부는?]

[엉망.]

토오사카의 주저 없는 한 마디. 그것을 듣고 세이버도 ‘역시’ 하는 표정으로 한숨을 쉰다. 어이, 세이버, ‘역시’가 뭐야, ‘역시’가.

[그 정도로?]

[응, 개념이 전혀 없어.]

함께 한숨을 쉬는 토오사카와 세이버. 그 정도까지 심한 건가.

[작업은 확실하게 잘 하잖아…….]

알 수 없는 개념은 저리 두더라도,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만지작거리는 것은 자신 있다.
주술식에 의해 가공된 수은과 유황, 이것을 가열해서 습기를 머금게 한 뒤, 차갑게 해서 말려서 풍수지화(風水地火)의 원소를 이끌어 낸다. 그리고 거기에 마력을 가해 증류하면, 다섯 번째의 원소, 제 5 가공 요소로 승화한다. 이 작업은 이제 눈을 감고도 할 수 있다. 나는 눈앞에 놓인 수제 증류기를 다르면서 완성된 엄지손가락 크기의 에테르 덩어리를 토오사카에게 가리켰다.

[……. 잘 하네.]

[그럼! 우로보로스(*2)라는 건 꽤 편리하네. 자꾸자꾸 승화해서 나와.]

므――하고 흘겨보는 토오사카에게, 나는 뱀의 주각이 새겨진 증류환을 가볍게 누르며 대답했다.

[그거야 그렇지. 왜냐하면 이거…….]

하고 여기서 토오사카가 입을 다물어 버렸다. 내 얼굴과 증류기를 번갈아 보며 눈썹을 찌푸리고 있다.

[시로, 이거 시로가 만든 거지?]

[그런데.]

[시로, 이걸 뭐라고 생각하고 만들었어?]

[증류기잖아? 조금 고치긴 했지만.]

비틀, 순간 토오사카가 비틀거린다. 괜찮아?

[네가 데미우르고스(*3)야? 완전히 순환결계를 만들어 놓고는, 증류기니 뭐니 하지 말라고!]

아무래도 내가 만든 우로보로스 주각은 거의 완벽한 것 같다. 밖에서 자극이 없는 한 끝없이 빙글빙글 계속해서 도는, 폐쇄된 순환결계. 그 결계를 끝없이 계속해서 가속하여, 원소는 제 5 원소로 승화해 간다.

[말하자면 하나의 세계라고. 이해 못하면 만들지 말란 말야.]

[그래도, 토오사카. 연금술 기자재는 원래 그런 거 아니었어?]

[그거야 그렇지만……. 보통은 이해하고 나서 만든다고. 시로는 중간 과정이 완전히 빠졌잖아. 어째서 개념은 엉망진창인데 만들 수 있는 거야? 내가 보기엔 그게 정말 신기하다.]

[아니, 봐. 구조라던가 그림으로…….]

나는 눈앞에 놓인 우로보로스의 구조와 주각을 종이 위에 그려가면서 토오사카에게 설명했다. 뭐라고 할까, 이렇게 그리는 것과 관련된 것은 슥슥 자연스럽게 된다.

[정~말로 마술사용자네…….]

그것을 보고 토오사카가 더욱 더 새침한 얼굴이 되어 머리를 감싸 쥔다.

[틀렸어?]

[맞았어. 개념도 모르는 주제에 어떻게 기동할 수 있는 주술식은 그릴 수 있는 거야.]

‘이래서야 우리 쪽 매상이 형편없어지잖아’ 하고 투덜투덜 궁시렁거리고 있다. 그렇게 말해도 말이지.

[이것을 시험에 응용할 수는 없을까요?]

토오사카와는 다르게 순수하게 감탄해 주던 세이버가 구원을 띄웠다. 그래도 이것만으로는 말야.

[실험이 성공해도, 그 과정과 결과를 해석할 수 없으면 답이 안 돼.]

‘이것이 전문 과정이라면 모르지만’ 하고 대답하는 토오사카 씨. 결국 그렇다는 것이다. 지금 내 시험에는 전혀 의미 없는 능력이라고.

[그러고 보니, 토오사카는 어때? 토오사카도 시험이잖아?]

[페이퍼인걸. 특별히 따로 뭔가 할 필요 없어.]

‘어째서 그런 걸 묻는 거야?’ 하는 표정으로 대답한다. 역시 대단하네, 토오사카도 루비아 양이랑 똑같네.

[그래도 연구 발표도 있잖아?]

[뭣 때문에 일 년 동안 시계탑에 있었던 거야. 그것 때문이잖아.]

이거 또 더더욱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시험공부라고 하면 이 일 년이 전부 그거야’ 라는 산뜻한 표정이다.

[그래도 안 좋은 말도 있던데.]

이 전의 소동 뿐만 아니라, 교수진도 역시 상위 클래스는 별 반응이 없지만, 하위 클래스는 이래저래 시기를 하는 것 같다. 그 토오사카와 루비아 양이니까 괜찮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조금 걱정이다.

[잘 보라고, 실력으로 엎어 눌러 줄 테니까.]

그런 내 걱정도 토오사카 씨는 콧김 하나로 날려 버리시는 군요. 하하하하, 미안, 내가 잘못했어.
알아 모시지요, 그 자신과 재능. 이 녀석이 시험공부에 신경 쓰는 모습은 아마도 평생 볼 수 없을 것이다.

[이야, 에미야 군. 수고했어. 2주 만이군.]

[오랜만입니다. 죄송합니다, 휴가 받아서.]

오래간만에 온 에델펠트 저택. 역시 시험 중은 쉬게 해 주었다. 오늘은 간신히 페이퍼가 끝나서 2주 만에 일을 하러 왔다.

[어땠나?]

[뭐, 낙제만은 면했지요.]

아슬아슬한 저공비행이긴 했지만, 빨강은 없다. 그렇다곤 해도 반 이상이 C 라니, 토오사카를 볼 낯이 없다. 그래서 오늘은 시계탑에서 바로 이곳으로 와 버렸다. 한심하지만 인정사정없는 토오사카는 무섭다고.

[응? 아아, 에미야 군은 이걸로 끝인가.]

그런 내 모습을 쓴웃음을 지으며 보고 있던 슈프란 씨가 조금 이상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다. 아, 그렇구나.

[저는 아직 일반교양입니다. 루비아 씨는 지금부터 연구 발표가 있죠?]

나는 페이퍼 시험과 과제인 작품을 제출하는 것으로 끝이었지만. 토오사카나 루비아 양 같은 본과의 특별 우대생은 지금부터가 승부다. 페이퍼는 두 사람에게는 덤 같은 것이겠지.

[아, 돌아온 것 같네요.]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없었던 동안에 밀린 일들을 계속 하고 있자, 차가 도착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튼 이곳의 차는 특징이 있어서 금방 안다.

[오랜만에 에미야 군을 보는 것이니, 아가씨도 기분이 좋겠지.]

어쩐지 기쁜 말을 해 주는 슈프란 씨와 함께, 나는 현관으로 마중 나가기로 했다.

[왜 저러죠?]

[응? …….]

현관 앞에 나와 조금 놀랐다. 핑크색 롤스로이스는 우렁찬 엔진 소리를 내며 굉장한 스피드로 주차 장소에 돌진해서 그대로 드리프트를 하며 멈춘 것이다.
그리고 아직 타이어가 연기를 피우고 있는데 운전석에서 스르륵 내린 것은 얼굴을 일그러뜨리고는 노려보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루비아 양이었다. 우와아, 운전기사님, 뒷자리에서 뻗어 있잖아.

[슈프란. 한동안 틀어 박혀 있을 겁니다. 준비를.]

[아가씨?]

걱정스럽게 고개를 갸웃거리는 슈프란 씨에게, 루비아 양은 순간 소리가 날 정도로 핏대를 세웠지만, 과연 여기서는 꾹 참고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지금부터 일 주일 동안 쓸데없는 것은 모두 취소하세요. 그리고 식사도 그 자리에서 먹을 수 있는 것으로.]

단숨에 그렇게 말하고는 발소리를 높여서 서재로 척척 걸어간다. 어쩐지 엄청난 박력이다. 게다가 그러면서도 등골을 쭉 펴고 있어, 성큼성큼 걸으면서도 틀림없이 한 줄 위를 걷는 걸음, 역시 대단하네.
그런 걸 감탄하면서 넋을 잃고 보고 있자, 갑자기 루비아 양이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곤 그대로 나를 휙 돌아보면서 아주 조금 표정을 누그러뜨렸다.

[시로우, 저, 지지 않을 거예요.]

흠칫 하는 표정을 짓는 나에게 천천히 힘을 주어 말하고는, 다시 척척 걸어가 버렸다. 도대체 뭐지?

[……. 과연, 이걸로 아가씨도 기합이 들어가셨다는 거군.]

한동안 멍하게 있던 내 귀에, 슈프란 씨의 감탄한 목소리가 울렸다. ‘응응, 과연’ 하고 밑도 끝도 없이 즐거워하는 것이 좀 신경이 쓰인다.

[뭡니까?]

[뭐, 보라고.]

어쩐지 묘하게 나쁜 장난을 치는 듯한 표정으로 슈프란 씨는 나에게 그 서류를 보여 주었다. 아, 페이퍼 성적 발표구나, 우와아…….

[에미야 군. 자네도 한 번 돌아가 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이쪽은 나에게 맡기게.]

[……. 하아, 그렇게 말씀해 주시면 고맙죠.]

왠지 묘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나에게, 슈프란 씨가 ‘고생하는군’ 하는 얼굴로 말을 건네주었다.

――수석 : 린 토오사카
――차석 : 루비아젤릿타 에델펠트

기말 고사 중간발표. 그 제일 위에 3위 이하와는 크게 떨어져서 나란히 적혀 있는 두 사람의 이름. 그렇다면 뭐, 루비아 양도 기합이 들어갈 만 하네. 이거라면 토오사카는 엄청 즐거워하고 있겠군.

[시로, 세이버. 나 잠시 동안 공방에 박혀 있을 테니까 집 좀 부탁해.]

예상과는 다르게 축제 분위기가 아니었다.
허둥지둥 집으로 돌아온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루비아 양과 같이 심각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는 토오사카 씨. 왠지 말하는 투까지 똑같다.

[발표회까지 일 주일 정도지만, 잘 부탁해. 사실, 이런 거 좋아하지 않지만.]

그대로 천천해 눈을 감는다. 왠지 결투장을 받은 검객 같은 얼굴이다.

[알겠습니다. 린이 선택한 길입니다. 반대는 하지 않습니다.]

그런 토오사카에게 세이버가 훨씬 기합을 넣어 대답하고 있다. 뭐라고 할까, 이 두 사람, 정말로 승부를 좋아하는구만.

[그렇지만 페이퍼에서는 토오사카가 수석이잖아?]

조금 궁금해서 물어 본다. 지고 있었다면 몰라도 어째서 이렇게 기합을 넣는 걸까?

[그래서 이러는 거잖아. 그 녀석이 이대로 순순히 물러설 거라고 생각해? 틀림없이 반격해 올 거야. 페이퍼 정도로 마음을 느슨하게 하면 단번에 나락으로 떨어진다고.]

‘시로는 그런 점이 물러’ 하고 토오사카 씨는 엄한 표정으로 말씀하신다. 과연, 이겼을 때 투구끈을 조여 매라는 것이다. 뭐, 확실히 기합 엄청 들어가 있었지, 루비아 양.

[그러면 내 아르바이트는 어떻게 할까? 좀 찝찝하지 않을까?]

나는 별로 상관없지만, 그런 거라면, 서로 경쟁하고 있는 라이벌의 집을 왔다 갔다 하는 건, 아무래도 어떨까.

[어째서? 무슨 문제라도 있어?]

하지만 토오사카 씨는 내 걱정과는 다르게 이상하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대답했다.

[봐, 역시 서로에게 여러 가지 비밀이라든가 있을 거 아냐?]

나로서는 역시 조금 걱정이다. 서로 경쟁하는 것은 좋지만, 이런 일로 서로 의심하게 되어 둘 사이가 망가져 버리는 건 참을 수 없다.

[시로는 나에 대한 거 말할 거야?]

내가 말하고 싶은 게 뭔지 알아 준 것 같다. 조금 눈썹을 찡그렸지만 토오사카 씨는 동요하지 않는다. 흠, 하고 팔짱을 끼고 내 눈을 들여다본다.

[아니, 그런 일 안 해.]

당연하지. 아무리 루비아 양이라도 말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

[그럼, 시로는 내가 루비아에 대해 물어보면 대답해 줄 거야?]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럼 페어가 아니잖아.]

토오사카는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대답해 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

[그러면 문제없잖아. 시로는 지금까지 해 온대로 하면 돼.]

‘둘 다 연구 자체는 공동으로 하고 있는 거니까. 시로는 시로가 하던 대로 하면 돼’ 라고 하는 토오사카 씨.
왠지 기분 좋은 말이다. 토오사카는 나를 믿고 있고, 동시에 루비아 양도 믿고 있다. 역시 서로 경쟁하는 라이벌이라고 하면 이러지 않으면 안 된다.
어쩐지 세이버도 불타오르고 있지만, 이 녀석은 신경 꺼 두자. 고생이구만.

[알았어. 잡다한 일은 나와 세이버가 할 테니까, 토오사카는 집중해서 해.]

그렇게 정해졌으면 다음은 전력으로 서포트 해 줄 뿐이다. 다행히 내 시험은 끝났으니 세이버의 식사도 소홀하지 않게 해 줄 수 있다.

[응, 시로. 나 지금 루비아와 서로 싸우고 있는데. 평소처럼 말리지 않네.]

내 격려에 ‘고마워’ 하고 미소를 지으면서도, 토오사카가 조금 이상한 듯이 물었다.

[그야, 이건 토오사카와 루비아 씨가 마술사로서 경쟁하는 거잖아? 평소처럼 쓸데없는 고집으로 싸우는 게 아니니까. 말릴 필요 없잖아.]

서로의 기량과 이지(理智)를 드러내는 경쟁이다. 나도 그걸 불평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피해도 없을 거고.

[흐응~. 뭐야, 제대로 알고 있잖아.]

‘평소라도 쓸데없는 고집만 부리는 싸움이 아니지만’ 하고 덧붙이는 건 잊지 않았지만, 그런데도 기쁜 듯한 얼굴로 말한다.

[토오사카와 루비아 씨가 그런 사이라는 건 잘 알고 있으니까.]

뭐, 두 사람 모두 성격이 성격이니만큼, 대부분의 싸움은 그 나름대로의 커뮤니케이션일거고, 서로 막역한 사이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역시 싸움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럼 지금부터 일 주일간 잘 부탁드립니다.]

그런 내 복잡한 심중을 알았는지 알지 못했는지, 토오사카는 생긋 미소를 지으며 엄지손가락을 세우고는, 긴장한 표정이 되어, ‘자, 해 볼까’ 하며 공방으로 들어간다.
그러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본다. 아주 잠깐이지만 엄청난 미소를 띤다.

[시로. 끝나면 보충 수업이야. 내 제자가 그 따위 성적이라니, 체면이 서질 않으니까.]

‘확실하게 공부시켜 줄 테니까’ 하고 발걸음도 가볍게 공방으로 들어가고 문이 닫힌다. 확실하게 체크하고 있었잖아, 내 성적도…….

――――――――――――――――――――――――――――――――――――――――

네. 이번 편은 간만에 루비아가 등장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했습니다.

그나저나 시험은 괴롭죠. 물론 즐거울 때도 있었습니다만.

한 때 대학 전공 시험 본다고 도서관에서 밤을 후딱 새던 적도 있었는데. 그 때는 정말 공부가 잘 돼서 열 세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 가버리더군요. 늘 공부가 그렇게 잘 되면 정말 즐거울 텐데 말이죠.

그나저나 시로는 머리보다는 몸으로 하는 걸 잘 하는 것 같네요. 토오사카… 좋겠수… 므흣… @_@;;;

(*1) 有難い
―> ‘고맙습니다.’를 일본어로 有難う(아리가토우)라고 합니다. ‘고마운’이라는 형용사는 有難い(아리가타이)가 됩니다. 이 말의 한자를 잘 보면, 있을 유 有 자에 어려울 난 難 자를 쓴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러니까 한자 뜻 그대로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기 어렵다’는 뜻이 됩니다. 즉, 루비아나 토오사카처럼 마술에 깊이 빠져 있으면서 평범한 여자 아이의 모습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이 보기 드문, 있기 힘든 일이면서, 시로에게는 고마운 것이 되는 겁니다. 이런 건 정말 우리말로는 전혀 표현할 수가 없네요. -_-;;

(*3) 우로보로스 Ouroboros
―> 고대의 심볼 중 하나. 뱀이 자신의 꼬리를 물고 도는 모양을 도안한 것.

(*2) 데미우르고스 demiurgos
―> 플라톤이 말한 우주생성론에서 나온 창조신. 선을 본성으로 한 자신을 닮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고, 이데아를 모범적인 표상으로 삼는 “살아있는 혼을 가진 이성적인 존재로서의 세계”를 창조하였다고 합니다.

그럼, 다음 편에서~

――――――――――――――――――――――――――――――――――――――――

그래서 나는 에델펠트 저택에서 아르바이트를 계속하면서, 두문불출하는 두 사람의 상대를 하게 되었다. 이렇게 말해도, 역시 라이벌. 나도 마술에 대한 것에는 관여하지 않고 두 사람이 무리하지 않도록 돌봐줄 뿐이었다. 뭐, 관여한다고 해도 제대로 알지도 못하겠지만.

[시로우, 잠깐 괜찮을까요?]

[응? 루비아 씨. 안색이 안 좋은데. 제대로 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이날도 루비아 양은 아침부터 틀어박혀 있다. 식사는 제대로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안색은 전혀 좋지 않다. 나도 공방 안에서 쓰러지지 않도록 확실히 신경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데도 꽤나 지친 모양이다.

[지금부터 잠깐 쉴게요. 차를 준비해 주시겠어요?]

내 걱정에 루비아 양은 ‘시로우도 참, 아버님 같아요.’ 라며 입술이 쑥 나온다. 그렇지만 이렇게 제대로 쉴 생각이 있는 것 같다.

[잠깐 기다려. 바로 준비해 올 테니까.]

뭔가 말을 하려는 루비아 양을 남겨 두고, 나는 서둘러 주방으로 향했다. 지쳐있는 것 같으니까 오늘은 뭔가 달콤한 게 좋겠군.

금빛 괴물
[황금빛 마왕] ―Rubyaselitta― 제 7 화 후편
Lucifer

[정말, 시로우도 참. 제가 살이 찌면 좋겠어요?]

트레이 위에는 밀크 티와, 크림과 잼이 산처럼 잔뜩 쌓여 있는 팬케이크가 놓여 있다.
내가 준비한 afternoon tea를 앞에 두고, 루비아 양은 살짝 뺨을 부풀린다.

[지쳐있을 때는 달콤한 게 제일 좋아. 게다가 루비아 양은 전혀 살찌지 않았잖아. 오히려 좀 야위었다고 할 정도야.]

물론 나올 곳은 훌륭히 나와 있고, 부드러운 피부는 뼈 같은 게 있을까 할 정도로 부드럽지만.

[날씬하다고 해 주세요. 야위었다고 하면 왠지 미라라도 된 것 같으니까요.]

그렇게 불평하면서도 맛있게 먹어 준다. 역시 지쳐있었구나. 그냥 봐도 한숨을 돌리고 있다는 것을 알겠다.

[이런 걸로 좋다면 언제든지 말해 줘.]

나는 세 번째 차를 입가로 가져가는 루비아 양에게 행복한 기분이 되어 말했다. 이런 것 정도는 누워서 떡먹기지. 일어서 있긴 하지만.

[잠깐 기다려요, 시로우.]

그런 모습을 보고 만족스러워하며 나가려고 하자, 루비아 양이 뭔가 생각난 듯이 관자놀이에 손을 대며 도끼눈을 뜨고 나를 노려본다.

[왠지 시로우 페이스에 말려서 잊고 있었어요. 제가 시로우를 부른 것은 차 때문이 아니에요.]

[그런 거였어?]

그럼 무슨 일이지? 특별히 짐작 가는 게 없는데…….

[잠깐 봐 줬으면 하는 게 있어요.]

‘그렇게 온 얼굴에 착한 사람이라고 써 놓은 것 같은 표정으로, 다른 사람 이야기는 듣지도 않고 자기 페이스로 내달리는 버릇은 좀 고치세요’ 하면서 루비아 양은 공방 문을 열었다.

[아, 괜찮은 거야?]

아무래도 마술과 관련된 것 같다. 공방으로 오라는 것이겠지만, 아무래도 좀 주저하게 된다.

[뭐가요?]

[아, 봐. 나는 토오사카의 제자고.]

[제 제자도 됩니다만?]

[그런 게 아니라.]

나는 경쟁하고 있는 라이벌이 두 사람을 스승으로 두고 있는 상황이 얼마나 골치 아픈지를 새삼 깨달았다. 토오사카는 상관없다고 말했지만, 역시 신경이 쓰이는 것은 신경이 쓰인다. 쫀쫀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쓸데없는 것까지 너무 신경 쓰고 있네요.]

결국 루비아 양도 토오사카와 같은 생각이었던 것 같다. ‘뭣보다 시로우는 봐도 몰라요’ 라며 상냥하게 말씀해 주시는군요. 왠지 분하다. 사실이지만.

[린과는 공동 연구를 하고 있는 걸요. 서로의 손바닥을 전부 보여 주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버릇이나 경향은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번 승부는 지식이나 축적이 아니라, 해석과 응용의 승부예요.]

지하로 내려가면서 루비아 양은 나에게 설명해 주었다. 즉, 같은 재료로 어떤 요리를 만들 것인가 라는 승부인 것 같다.

[이걸 시로우에게 보여 주고 싶었어요.]

루비아 양은 그대로 공방 작업대 까지 나를 데려가, 받침대 중앙에 놓인 큰 수정구를 가리켰다. 꽤 크다. 점을 칠 때 사용하는 수정구의 두 배 정도 되는 크기다. 반짝반짝 은도금한 듯이, 공 표면이 거울처럼 되어 있다.

[뭐야, 이건?]

[우선 모양부터 봐 주세요.]

루비아 양은 내 이상한 듯한 표정은 깨끗이 무시하며 묻는다.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에게 해석을 해 보라는 것 같다.

[헤에, 완전한 구네.]

그 수정구는 놀랄 정도로 굉장히 정밀도가 높은 완벽한 구 였다. 이 정도로 완벽하게 연마하다니, 역시 루비아 양이다.

[틀림없어요? 중요한 거예요.]

[응. 틀림없어. 대단하네. 하지만 어째서 거울이야?]

[조금 재미있는 걸 시험해 보려고 해요.]

그렇게 말하고 루비아 양은 공방 내부를 어둡게 하고, 그 수정구에 손을 대고 살짝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구가 뿌옇게 빛나며 거울 면이 투명해진다.

[반투명 거울? 왠지 매니악한 취미네.]

안에서 빛이 나와, 이 수정구는 이미 거울이 아니었다. 환영인가. 안에 춤추듯 불길이 몇 개 떠오르고, 이중 삼중으로 오망성, 육망성이 비춰 보이기 시작해서, 그것이 복잡하게 얽힌 우로보로스 뱀의 주각을 형성하고 있다.
꽤 멋진 주술식이지만 어딘가 언밸런스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차근차근 보니, 주각에 둘러싸인 중앙은 점을 칠 때 쓰는 수정구가 딱 맞게 들어갈 정도의 크기로 텅 비어 있다. 게다가 그 주각, 우로보로스 뱀도 완벽하게 순환하고 있다. 속이 빈 부분에서 흐름을 이끌어 내어 계속 끝없이 돌 뿐, 밖으로 연결되는 통로가 보이지 않는다. 보통은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뚜껑을 만드는데…….

[도대체 뭐에 사용하는 거지?]

반투명 거울이 뚜껑인가 하고 생각했지만, 빛만 통해서야 의미가 없다.

[역시 그건 비밀이에요.]

‘맞춰 보세요’ 하고 생긋 웃는 루비아 양. 그렇게 말해도 나는 전혀 모르겠다. 뭐, 시험에 관련된 거라는 정도는 알겠지만, 정말 어디에 사용하는 걸까?

[좋아. 럭키――! 내가 먼저네.]

드디어 발표회 당일. 시계탑 게시판 앞에 서서 토오사카 씨가 승리 포즈를 한다. 아무래도 발표 차례를 보고 하는 소리 같지만, 정말로 빠른 걸 좋아한다.

[표제는 둘 다 똑같네.]

오늘의 발표회. 토오사카가 처음, 그리고 마지막이 루비아 양. 둘 다 제목은 [병행 시공 통과 원시(遠視)의 주술식 구성] 이라고 적혀 있다. 대단하다. 두 사람 모두 첫 해부터 마법을 향한 단계인가.

[그러니까 먼저 하는 게 유리해. 아무래도 나중에 하면 신선함이 떨어지겠지?]

내가 중얼거리자 흐흥~하고 코를 울리며 당당하게 대답하는 토오사카 씨. 이걸로 이긴 거나 다름없는 듯이 기세가 대단하다.

[그럼 먼저 사샥~ 하고 결판을 내고 올 테니까. 시로도 확실히 봐줘.]

수면 부족도 아랑곳하지 않고 토오사카는 눈에 잔뜩 힘을 넣고 손을 흔들며 대기실로 향했다. 아니, 수면 부족 때문일지도 모른다. 조금 불안하네.

[시로우, 린은 맡겨 주세요. 제가 붙어 있을 테니까요.]

세이버가 쓴웃음을 지으며 그런 나에게 말해 주었다. 자료나 기자재인가. 큰 트렁크를 가볍게 들고 토오사카의 뒤를 따르고 있다.

[아아, 부탁해. 세이버도 조심하고.]

오늘 세이버는 토오사카의 조수다. 어쨌든 “영령의 마스터”라고 하는 것만으로도 꽤나 받는 느낌이 다를 것이라고 한다. 일종의 데몬스트레이션이라는 것 같다. 모든 걸 전부 드러낼 수 없는 이상, 그 외 부분에서 가능한 한 점수를 번다는 것이다.

조금 치사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오늘처럼 묘하게 토오사카가 불안할 때는 이렇게 세이버가 함께 있어 주는 것이 정말로 고맙다. 부탁해, 세이버.

[우와아, 사람이 꽤 많네.]

발표회장은 시계탑의 소강당. 학생이 앉는 청강석에는 교수진이 진을 치고 있고, 연단에서 학생이 발표를 실시하므로, 평소와는 정반대이다.
그리고 갤러리들은 강당 둘레에 난 좁은 통로에서 입석 관람이다. 평소에는 사람이 별로 없는 이곳도, 오늘은 입추의 여지도 없이 학생으로 흘러넘치고 있다. 내가 들어가 선 곳은 이 복도다.

[아, 역시 시로 군도 왔군요.]

어떻게 좀 더 앞으로 갈까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미나 씨가 말을 걸었다. 그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연단 정면 2층의 특등석에 어디서 가져 왔는지 파이프 의자를 늘어놓아 관객석을 마련하고 있다.

[안녕, 미나 씨. 이거, 어떻게 된 거야?]

[고생했어요. 어제 밤부터 자리 잡고 있었으니까요.]

생긋 웃으며 나에게 자리를 권하는 미나 씨. 꽃놀이가 아니라고. 그런데 미나 씨 발표는 괜찮은가?

[저는 내일이에요. 그리고 오늘은 정찰하러 몰래.]

자리까지 잡고는 몰래고 뭐고 없겠지만, 어쨌든 교수들의 성격이나 개성을 파악하기 위해서 온 것 같다. 상황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화하여 대응하는 것이 스트라우스의 본의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런 걸 보고 알 수 있어?]

[보통은 무리겠지요. 뭐니 뭐니 해도 시계탑의 교수진이니까요.]

어쨌든 산전수전, 근성이 크레타의 라비린토스(*1) 같은 시계탑 교수진이다. ‘정말 고생이라니까요’ 하고 전혀 고생스럽지 않은 듯한 어조로 미나 씨가 대답했다. 그렇지만 역시 엄청 고생스러울 것 같은데.

[봐요, 오늘은 린 씨와 루비아 씨가 있잖아요? 그 두 명을 상대로는 교수진도 그렇게 돌부처 같은 얼굴로 계속 있을 수는 없을 거니까요.]

그래서 오늘은 정찰에는 안성맞춤이라고 한다. 과연, 확실히. 그 두 명을 말리기 위해 일부러 나를 부르기 시작할 정도다. 완전히 내숭 떠는 것을 그만둔 두 사람에게, 교수진도 엄청 고생하고 있는 것이다.

[아, 시작하네요. 린 씨가 첫 번째군요.]

미나 씨의 말을 듣고, 나는 잡담을 끝내고 연단으로 눈을 돌렸다. 학생용 짙은 회색 로브를 입은 토오사카가 세이버를 대동하고 거침없이 연단으로 올라가고 있다. 자료와 기자재를 척척 준비하는 세이버를 뒤에 두고, 토오사카는 한 번 헛기침을 하고 교수진에게 인사한 뒤, 바로 강연을 시작했다.

[이상, 세 차례에 걸친 접촉 실험 결과, 주술식은 거의 완성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 실패한 것 아닌가?]

[원인은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실패라고는 해도 경계 세계 진입 및 포말 세계와의 접촉에는 성공하고 있습니다.]

[마법이라고 하는 것인가? 그런 바보 같은.]

[그것은 교수의 말이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군요. 순간적인 현상을 관측하는 접촉 실험은 어디까지나 [마법급의 사상]을 밖에서 관측하는 원시(遠視) 마술에 지나지 않습니다.]

[유물에 의지해 확인한 현상을 실험이라고 말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나?]

[유물이라고 하셨습니까? 창홍옥은 물론 구하기 어렵긴 하지만 단순한 광물일 뿐입니다. 마력을 부가한 것도 벡터도 아니고 역점을 극소량 했을 뿐입니다. 이런 것을 유물이라고 한다면, 우리들이 마력을 전이한 보석도 유물이라고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교수진의 집요한 공격을 토오사카는 차례차례 튕겨낸다. 그때마다 갤러리가 한숨을 쉬거나 탄식한다. 아무래도 분한 듯한 신음소리가 들리는 것이 조금 신경 쓰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린 씨는 특출하니까요. 질투도 훈장의 하나예요.]

확실히. 성격도 그러니까 말이지. 뭐,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기를 원하는 건 아니니까, 조금만 더 신경을 써도 괜찮을 텐데. 사실은 사랑스럽지만, 알기 어려우니까.
본인은 그리 신경 쓰지 않는 타입이지만, 역시 토오사카가 미움 받거나 소외당하는 것은 그리 기분 좋지 않다.

[그렇게 어두운 표정 하지 말아요. 아군도 잔뜩 있으니까요.]

좀 어두운 표정을 지었는지, 미나 씨는 상냥하게 웃으며 갤러리의 한쪽을 가리켰다.

토오사카를 응원하고 있는 한쪽은 어쩐지 낯이 익은 얼굴이 많다. 쥴리오부터 해서 전과에 소속된 녀석들이다. 입가를 비틀며 어두운 감정을 뿜어내는 반대편과는 대조적으로, 묘하게 들떠서 즐거운 듯이 응원하고 있다.

[그래도 저건 자기들이 그냥 즐기고 싶을 뿐인 거 아닌가?]

응원해 주는 건 고맙지만, 저건 왠지 학술 발표라고 하기 보다는, 야구 시합이라도 보고 있는 듯한 분위기다. 왠지 묘하게 마음에 안 든다.

[즐기지 않으면 오래 가지 않아요. 그리고.]

‘잔걱정이 많군요’ 하고 쓴웃음을 짓는 미나 씨. 그러다가 갑자기 표정에 차가운 빛이 떠오른다.

[어두운 감정은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옵니다. 마술의 기초 중에 하나예요. 시로 군도 잊지 마세요.]

‘그러니까 시로 군도 밝은 얼굴로 응원하지 않으면 안 돼요’ 하고 또 꽃이 피듯 웃어 준다. 이 사람도 꽤나 복잡한 사람이다.

[다녀왔어. 아아, 지쳤다.]

무사히 발표를 마치고 돌아온 토오사카 씨. 한숨 돌렸다는 표정으로 털썩 의자에 앉았다.

[수고하셨어요. 상당히 훌륭했어요.]

어느 새 준비했는지, 미나 씨는 차가운 타월을 꺼내 토오사카에게 건네주며 미소 지었다.

[뭐. 논쟁은 싫어하지 않지만, 저 녀석들 끈질기니까.]

기분 좋은 듯이 타월에 얼굴을 묻으면서, 토오사카는 ‘나 원 참’ 하고 쓴웃음을 짓는다. 그래도 발걸음은 아직 씩씩하니, 왠지 든든하다.

[수고했어. 그래서, 어땠어? 나는 잘 모르겠던데 말야.]

날카로운 지적을 교묘하게 주고받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내가 보기엔 토오사카의 반격이 좀 약한 듯 했다.

[60% 성공이랄까. 속을 다 보이지는 않았으니까. 내가 서투르게 찔러 들어갈 수도 없고. 무기가 조금 부족했을지도. 봐, 나도 처음이었으니까.]

애매모호한 표현이었지만, 아무래도 토오사카도 조금 더 했으면 하는 자각은 있었던 것 같다. 완벽한 발표는 되지 않았다며 조금 샐쭉한 얼굴이다.

[아, 그렇지. 토오사카도 이런 건 처음이었구나.]

언제나 자신만만한 태도로 강의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잊고 있었지만, 토오사카는 아직 시계탑의 1학년생. 마술사가 잔뜩 들어찬 곳은 익숙하지 않았겠구나.

[응. 역시 경험 부족인 것 같아. 알다시피 나는 쭉 혼자서 해 왔잖아?]

‘상대를 때려 눕혀도 좋다면 편하겠지만’ 하고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하며 쓴웃음을 짓는다. 이렇게 상대를 세워 놓고 아슬아슬할 때까지 조여들어오는 승부에서는 아무래도 사정이 다른 것 같다.

[그래도, 보통은 저렇게 된다구요.]

그런 토오사카에게 ‘역시 다르네요’ 하면서 미나 씨가 연단을 가리킨다. 의기양양하게 나오는 학생들은 차례차례 나와 상처 없는 곳이 없을 때까지 두들겨 맞고 쓰러져 간다. 약간의 저항은 해 보지만, 대부분의 학생은 샌드백 상태다.

[잘 봐 두세요. 전문 과정에 들어가면 시로도 저걸 해야 되니까.]

우와, 그거 큰일이네. 그래도 뭐, 토오사카나 루비아 양에게 오줌 지릴 정도로 당하는 걸 생각하면, 그 정도는 아니네.

[시로 군은 괜찮아요. 익숙해져 있으니까.]

[그게 무슨 뜻이야…….]

[말 그대로예요.]

가볍게 대답하는 미나 씨. 여기에는 토오사카도 입을 다물어 버렸다. ……. 나를 구박하고 있다는 자각은 있었구나.

[루비아젤릿타 차례 같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며 분위기를 살리고 있던 우리들을, 왠지 만면에 미소를 띠며 보고 있던 세이버가 말했다.

[드디어 군요.]

힐끗 쳐다보는 토오사카의 시선 앞, 토오사카와 같은 학생용 로브를 입은 루비아 양이 위풍당당하게 입장했다. 주위를 물리친다는 게 이런 거겠지. 마치 붉은 융단이라도 깔려 있는 것 같이 당당히 들어온다.

[대단하네. 끄떡도 안 해.]

나는 넋이 나간 듯 바라보았다. 반짝반짝 빛나며 그야말로 여왕처럼 교수진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 정도로 위축한다면 고생 안 해.]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말을 하는 토오사카지만, 그 말 뒤에서 루비아 양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내 적이니까 이 정도는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생긋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한 루비아 양이 얼굴을 들어, 왠지 이쪽을 살짝 본 것 같은 생각도 들지만…….

[제 연구에 대한 기초 부분은 조금 전 토오사카 여사가 보고 했습니다.]

[크…….]

순간 토오사카의 안색이 바뀌어, ‘아차, 이런 방법이 있었나’ 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 연구의 응용 부분에서의 성과를 보여 드리려고 합니다.]

루비아 양은 그대로 가볍게 손가락을 튕겨, 단상에 몇 개의 환영을 비추었다. 방금 전 토오사카의 강연을 발췌한 것이라고 할까.

[[병행 시공 통과 원시]의 기초는, 무작위로 찔러 넣은 탐사 바늘로 이세계(異世界)의 상황을 관측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라인을 추적할 수 있다면 어느 곳이라도 관측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루비아 양은 연기를 하듯이 연단 위에 천을 씌웠다. 그걸 바라보고 있자, 그 중앙에 뭔가가 부풀어 올라 간다. 그래, 마치 배구공만한 크기다.

[즉, 우리가 보낸 탐사용 바늘 뿐만 아니라, “저쪽”에서 찔러 온 라인이라도, 잡아낼 수만 있다면 그것을 통해 이세계를 관측할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루비아 양은 자신의 말이 회장에 완전히 전달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듯이 잠시 말을 멈춘 후, 다시 손가락을 튕긴다. 그러자 일제히 회장의 창에 커튼이 쳐지고, 조명도 서서히 꺼져 간다.

[현상이 확인되고 있는 이세계로부터의 접촉. 그 대부분은 대사부의 유물이나 유고에 의한 현상입니다. 예를 들면 토오사카 여사께서 보고한 포말 세계. 이것도 그 중 하나입니다.]

어둑어둑한 단상에 비추어 지는 것은 그 때의 비브르의 모습. 각종 다양한 반인용(半人龍)이 환영이 되어 춤춘다.

[그러나 이 포말 세계는 어디까지나 가능성. 라인이 끊어지면 슈뢰딩거의 고양이(*2)와 같이 존재가 고착하지 않는 세계로 전락해 버립니다.]

루비아 양의 대사에 맞추듯이, 비브르는 차례차례 비눗방울이 터지듯 사라져 간다.

[그러나 현재 저희가 함께 확인하고 있는 이세계는 단 하나. 이것 또한 대사부의 유물을 통한 것이긴 합니다만…….]

터진 비눗방울은 색채를 바꾸어 푸르게 일그러지며 하나의 형태가 되어 간다.

[잠깐, 루비아 저 아이 설마…….]

토오사카가 신음하듯이 중얼거리고, 내 눈도 그것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 저 색, 저 형태, 저건…….

[여러분, 주의 깊게 보세요. 그렇습니다. 이것이 그 결과. 제가 잡아낸 “저쪽”에서 연결된 라인입니다.]

루비아 양은 모양을 갖춘 환영을 손에 들고 사람들의 눈을 집중시킨 다음, 가만히 천을 당겨서 벗겨 내고 안에 있던 것을 보였다.
거기에는 안쪽에서 발광하여 빛나는 수정구. 본적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구로, 오망성, 육망성에 둘러싸여 있다. 그렇다. 내가 루비아 양의 공방에서 본 그 수정구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중앙이 비어있지 않다. 다른 수정구가 마치 딱 맞춘 것처럼 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중앙의 수정구를 싸고 있는 공간, 우로보로스의 뱀 위에 떠오른 불꽃을 향해, 미칠 듯이 덤벼들다가 갈기를 고르고 포효한 뒤, 다시 덤벼들며 끊임없이 도는 뱀 위를 계속 돌고 있는 푸른 그림자. 개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개가 아닌 그것은…….

[라인을 잡아내어 환영으로 유인하고 완전한 구에 봉인한 “틴달로스”입니다. 자세히 봐 주시기 바랍니다.]

회장 전체가 숨을 삼켰다. 내 옆에서 토오사카도 할 말을 잃고 있다. 정말 대단한 걸 내놨네, 루비아 양은.

그 뒤로는 완전히 루비아 양의 페이스였다. 수정구는 그 자리에서 다시 천을 씌웠지만, 숨을 삼킨 교수진은 질문도 하는 둥 마는 둥하고 방법론과 주술식 해석을 논의하느라 자신들의 세계에 틀어박혔고, 그 흐름에 루비아 양도 끌어 들였다.
즉, 어느 샌가 학생과 교수가 아니라, 대등한 연구자로서 루비아 양을 대해 버린 것이다.

[린…….]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던 토오사카에게, 세이버가 걱정스러운 듯이 말을 걸었다.

[당했어…….]

거기에 대답하듯이 토오사카는 천정을 올려다보며 탄식했다.

[주머니를 다 뒤집어서 승부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이런 방법이 있었다니.]

보기 드물게 토오사카가 약한 소리를 한다. 그렇다곤 해도 묘하게 시원스럽다. 당한 것은 확실하지만, 그런데도 시기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이런 점이 토오사카의 좋은 점이다.

[그래도, 저거 엄청 위험하지 않나?]

어찌 됐든 발표에 사용한 대상은 “틴달로스”다. 저 녀석의 무서움을 우리들은 뼈아프게 알고 있다.

[다른 녀석들이 했다면 모르겠지만, 루비아가 한 거잖아? [모퉁이]를 기점으로 하는 사냥개는 저 수정구로 된 우리 안에서 절대로 빠져 나올 수 없어.]

‘사실 “이쪽”에서 소환한 것도 아니고, 수정구에 결계를 만들고 그 안쪽의 세계에 소환한 거겠지’ 하고 팔짱을 끼며 설명해 준다.

[시로는 수면에 비친 개에 대한 동화 알고 있어?]

[음, 이솝이야기에 나오는 거? 자기 얼굴이 비친 수면을 보고 짖어서 입에 물고 있던 고기를 떨어뜨려버린 녀석?]

[그래. 그거와 같은 원리야. 우로보로스의 뱀이 보이지? 거기에 실어 놓았기 때문에, “틴달로스”는 자신의 등을 보고 다른 존재라고 믿고는 계속 뒤쫓고 있는 거야.]

‘물론 루비아가 환영을 시술해서 속였기 때문에 올라탔겠지만’ 하고 손톱을 깨문다.

[그럼, 저 녀석은 이쪽의 누군가와 라인이 연결돼 있는 게 아니구나.]

[응. 어디까지나 이쪽 세계의 일부를 잘라낸 우로보로스의 순환 결계를 빙빙 돌고 있는 상태라는 거지.]

즉, 라인을 무언가에 연결해서 이쪽 세계로 소환한 것이 아니라, 일단 라인의 끝을 고리 형태로 만든 상태로 그 고리를 끌어 온 것이라는 말이다.

[원래는 손에 넣은 후에 완전히 경면 가공해서 봉인해 버리는 게 좋지만.]

[아아, 저건 반투명 거울로 해 놨었지. 어째서?]

[하나는 저 순환 결계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통발 같이 일방통행의 입구를 만들어 놓은 거지. 그리고 다른 하나는 관측을 위해서. 안 보이면 발표도 할 수 없잖아? 관측할 수도 없는 완전 봉인된 결계에 불러 봤자, 그런 건 부르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니까. 슈뢰딩거의 고양이도 아니고.]

과연, 보이지 않으면 의미 없으니까. 어라? 그러면.

[저건 결국 사역마 같은 게 아니구나.]

[그거야 그렇지. 그 정도로 제어할 수 있으면 저런 우리에 감금할 필요도 없지. 맹수를 우리 안에 잡아넣고 구경거리로 하고 있을 뿐이야. 아마도 이 발표가 끝나면 완전 봉인하든지 송환하겠지. 저런 위험한 걸 저렇게 둘 수는 없으니까.]

그 말을 듣고 좀 안심했다. 저것은 저렇게 함부로 취급해도 되는 존재가 아니다.

[그래도, 이걸로 결정인가요…….]

토오사카의 반대편에서 살짝 중얼거리는 미나 씨. 눈썹을 찡그리고 손에 뭔가 계산기 같은 것을 몰래 두드리고 있다. 미나 씨, 토토칼쵸(*3)의 관리자 같은 거 하고 있다더니 사실이었구나.

이래저래 하고 있는 동안에 루비아 양의 강연도 끝난 것 같다. 하지만 루비아 양의 제재가 제재였던 만큼, 연단 아래 모여 아직도 교수진과 논의를 계속하고 있는 것 같다. 게다가 마지막 강연이었기 때문에 학생들도 우르르 몰려가 거기에 참가하고 있다.

[린, 시로우.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자, 그럼 우리도’ 하며 일어섰을 때, 가만히 아래층을 바라보고 있던 세이버가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뭔데?]

[반투명 거울은 어떤 구조로 되어 있습니까?]

이상한 걸 묻는다. 토오사카도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나와 얼굴을 마주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설명한다.

[으음. 거울은 유리에 수은을 입혀서 반사시키는 거고. 반투명 거울이라고 하면, 그 수은의 양을 조절해서 어두운 쪽에서 보면 그냥 유리고, 밝은 쪽에서 보면 거울이 되도록 한 거지.]

[그렇군요. 그럼 어두운 쪽에서 밝은 쪽으로는 빛이 통과할 수 있다는 거군요.]

[그런 거지.]

그러자 갑자기 세이버의 얼굴이 한층 더 심각해진다.

[그렇다면 저것은 아주 위험한 상황이 아닐까요?]

뭐라고?

세이버가 가리키는 쪽으로 눈을 돌리고는, 나는 토오사카와 함께 순간 말을 잃었다.
조명이 돌아온 연단 위에, 틀림없이 천이 덮여 있었던 수정구에 학생들이 둘러 싸여 있다. 누가 천을 벗긴 것일까. 드러난 수정구를 앞에 두고 뭔가를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은 학생이 입술을 비틀며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
아무래도 뭔가 트집을 잡고 있는 것 같지만, 문제는 그쪽이 아니다. 서서히 표면에서 은빛을 반사하기 시작하는 수정구. 그 안쪽에서 굶주린 눈동자가 무언가를 찾는 듯이 이쪽을 돌아보려고 하고 있다.

[세이버!]

나는 그렇게 외치며 동시에 토오사카를 안아 들고 주저 없이 아래층으로 뛰어 내렸다.

[시, 시로!]

[괜찮습니다.]

토오사카가 절규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완전무장을 한 세이버가 나와 토오사카를 받아 안고 대답했다. 내 신호에 호응해서 한 발 먼저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 우리를 받아 준 것이다. 나는 두 명을 돌아보고 연단 아래에 내려와 있는 루비아 양에게 달려간다.

[루비아 씨!]

[에? 시로우?]

우리들의 갑작스런 행동에 경악하는 사람들을 밀쳐 내며, 나는 루비아 양에게 연단 위의 수정구를 가리켰다.

[멈춰요!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겁니까?!]

상황을 눈치 챈 루비아 양의 대응은 재빨랐다. 외치는 것과 동시에 마술 각인을 발동시켜 수정구로 모이는 학생들을 차례차례 간드로 때려눕힌다.

[나이스, 루비아!]

라며, 거의 동시에 토오사카도 같은 짓을 시작했다. 잠깐, 잠깐! 기분은 알지만 방법이 너무 난폭하잖아!

[바보! 시간에 못 맞춘다구! 세이버, 시로, 너희도 너무 앞으로 나가지 마!]

뭐지, 하고 달리면서 토오사카의 시선을 따라 가다 깨달았다. 상황을 알아차린 건 교수진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과연 시계탑의 교수진. 당황하거나 소란을 피우지 않고, 강력한 결계를 펼쳐 연단을 덮으려고 하고 있다. ……. 잠깐 기다려. 아직 학생들이 남아 있다고!

[그만 둬! 아직 사람이 있다고!]

[안 돼요!]

[에? ――으아앗!]

교수진에게 덤벼들려고 한 나를, 슥 끼어들어온 미나 씨가 가볍게 집어 던져 눌러 버렸다. 어째서!

[시로 군. 지금은 참아요.]

그대로 단단히 목과 팔의 관절을 꺾여 나는 소리도 내지 못했다. 젠장, 놔 줘! 저런 걸 용서할 수는 없어!

[시로우!]

[시로, 불평은 나중에. 미나, 너도 도와!]

[아, 네! 세이버 씨, 시로 군 부탁해요.]

나를 누르고 있던 것을 세이버에게 맡기고 미나 씨도 가지고 있던 결계석을 뿌리고 풍탄(風彈)으로 학생들을 튕겨 내기 시작한다.
그때야 겨우 깨달았다. 루비아 양이나 토오사카는 교수진의 결계가 완성되기 전에 학생들을 연단에서 떨어뜨리려는 것이다.
하지만, 안 좋은데. 너무 난폭한 방법이다. 이래서야 저 수정구가…….

[세이버!]

나는 나를 누르고 있던 세이버에게 외쳤다. 지금 저걸 멈출 수 있는 것은 세이버 뿐이다.

[시로우? ……. 앗!]

알아챘는지, 순간 달리려고 몸을 일으켰지만, 이미 수정구는 연단에서 굴러 떨어져 바닥을 향해 등가속도 운동을 시작하고 있다. 늦었다!

[해! 세이버!]

[에? 아, 네!]

그렇다면 시간에 맞출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세이버는 순간 내 지시를 이해했다. ‘각오를’ 하고 중얼거리고는 전력으로 연단을 향해 나를 내던졌다. 나이스, 세이버.

[――!]

영령의 피칭. 그야말로 메이저 리거 급의 광속구가 되어 나는 연단으로 날아들었다. 심하게 머리를 부딪쳤지만, 아슬아슬하게 마루와 입맞춤하기 직전인 수정구를 잡아서 그대로 윗도리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이걸로 거울은 다시 기능을 되찾는다.
어쨌든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 내 의식은 아쉬운 듯한 포효를 들으며 점차 멀어져 갔다. 좀 더 살살 던져 줬으면 좋았을 텐데…….

[루비아젤릿타 에델펠트 군.]

[……. 네.]

흐릿한 의식 속에서, 몇 사람이 웅성거리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린다. 아무래도 루비아 씨가 누군가에게 꾸중을 듣고 있는 것 같다.

[뒤처리가 서투른 것 같군.]

아, 생각해 냈다. 이 억양 없는 밋밋한 목소리는 확실히 은비학 교수였다. 나도 배운 적이 있다.

[…… 의미 없는 행동이 [아니, 그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관리가 소홀했다고도 할 수 있다.]

잘도 지껄이는군. 그건 자기들도 마찬가지인 주제에.
큰소리로 반박하고 싶지만, 유감스럽게도 입이 움직이지 않는다. 내 몸은 아직도 눈을 뜨지 않은 것 같다.

[참 나, 기껏 해서 틴달로스를 포획해도 제어 불능이라면.]

[용두사미라는 것이지.]

어쩐지 멋대로 지껄이는 소리도 들린다. 조금 전까지 그걸 눈치 못 채고 들뜬 눈빛을 한 사람은 어디의 누구야.

[그렇다고는 해도, 그 유물을 부분적으로 제어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미스 토오사카에게 감사하도록.]

[그것은……. 알고 있습니다.]

기분 나쁜 목소리들은 억양 없는 목소리에 막히고, 거기에 조금 아쉬워하는 듯 하긴 하지만, 대답을 하는 루비아 양의 듣기 좋은 목소리가 들린다. 웅성거리는 소리는 그런 두 목소리에 완전히 힘을 잃어 간다.
뭐, 상관없나. 결국 잡음은 잡음에 지나지 않는다. 비몽사몽간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문득 뭔가 부드러운 것이 뺨에 닿았다. 어쩐지 어루만져주고 있는 것 같다. 묘하게 기분이 좋다.

[그러므로 협의 결과, 연구 성과에 대해서는 고려할 만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단, 감점은 각오해 두도록.]

봐, 역시 루비아 양의 승리잖아. 제멋대로 떠들던 소리는 그것을 마지막으로 발소리와 함께 멀어지고 있었다. 남은 것은 뺨을 어루만지는 부드러운 감촉과 루비아 양의 희미한 숨결 뿐이다.

[미안해요, 시로우. 이상한 일에 말려들게 해 버렸네요.]

그렇게 좋은 기분에 빠져 있으려니, 루비아 양이 중얼거린다. 평상시와는 다르게 조금 허탈한 듯한 목소리다.

[괜찮아, 루비아 씨. 그것보다 아까 그 수정구는?]

간신히 눈을 뜬 내 눈에는, 걱정스러운 듯이 바라보고 있는 거꾸로 된 루비아 양이 비쳤다. 아, 내가 올려다보고 있는 거구나.

[대사부의 수정구(틴달로스 아이)는 교수진이 가져가 버렸어요.]

[그거……안 됐네.]

[괜찮아요. 원래 이 발표회에만 쓸려고 적당히 모양만 갖춰 만든 거니까요.]

점점 기운을 차리는군. 그렇지만, 루비아 씨. 적당히 모양만 갖춰 만든다면서 저런 걸 만들었단 말이야?

[그런 식으로 저런 위험한 거 만들지 말라고.]

하고 이 때 들려오는 소리. 세이버와 함께 토오사카가 서 있다. 두 사람 모두 묘하게 기분이 안 좋은 것 같네, 왜 그러지?

[어머, 린. 있었나요?]

[조금 전부터 쭈욱. 아직 인사를 못 들었는데?]

[고마워요, 린, 세이버. 정말 도움이 되었습니다.]

잠깐 눈싸움을 한다. 조금 조마조마했지만, 루비아 양은 의외로 순순히 토오사카에게 인사했다.

[별로 한 일도 없습니다. 인사라면 시로우에게.]

[천만에. 이제 빌린 것을 돌려주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것보다…….]

쓴웃음을 지으며 답례하는 세이버와 어깨를 움츠리며 루비아 양에게 응하는 토오사카. 그런데 이번엔 나를 노려본다. 세이버까지 엄청 차가운 눈이다. 왜 그러지?

[언제까지 루비아 무릎을 베고 있을 거야!]

뭐? ……우왓! 그러고 보니 이런 시야. 생각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나. 나는 당황하며 일어났다.

[시로우는 여성에게 무릅니다.]

왠지 묘한 분위기에서, 툭 하고 울리는 세이버의 혼잣말. 그게……미안.

――――――――――――――――――――――――――――――――――――――――

[그냥 이겨버리면 미안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이런 경우도 있는 거야?]

며칠 후 시계탑. 이번 학기의 성적 발표일이다.
뭐, 그런 일이 있었어도, 역시 이 두 사람. 이번 학기 학생 중에서는 독보적이었다. 3위 이하와는 월등한 차이가 있는 성적이었지만…….

――수석 : 해당자 없음
――차석 : 루비아젤릿타 에델펠트, 린 토오사카

발표된 결과는 수석은 없고, 차석 두 명. 왠지 희한한 결과가 되었다.
도박판 관리자였던 미나 씨가 왠지 머리를 움켜쥐고 있었다던가 뭐라던가.

[그렇지만, 페이퍼에서 지고 있던 제가 동률이라는 것은, 연구 발표에서는 승리라는 것이군요.]

[그만큼 폐 끼치고 잘도 그런 소릴 하네.]

그렇다고 해도 이 두 분, 변함없이 씩씩하다. 처음 1년 정도는 이 정도로 상관없다고 하는 것 같은 모습이다. 두 사람 모두 마지막에 이기면 그걸로 좋다고 한다.

[어머, 그래도 대사부의 유물을 다룰 수 있었다는 건 컸다고 생각해요.]

[그러고 보니, 너 확실히 대사부 계보가 아니잖아. 어떻게 한 거야?]

[그것은 저기……. 대사부 계보에 있는 분의 피를 촉매로 사용했어요.]

[잘도 그런 걸……. 뭐! 잠깐 기다려!]

호호호, 하고 웃으며 몸을 피하는 루비아 양에게, 이것으로 빚은 다 갚은 거니까 하고 고함치는 토오사카. 지금부터 시계탑에 있는 동안 쭈욱 이런 일이 계속되는 건가. 좀 한숨이 나온다.

어쨌든 이렇게 우리들이 시계탑에서 보낸 1년이 마지막을 고했다. 올려다 본 하늘은, 런던에서는 보기 드문 쾌청한 하늘이었다.

자아, 여름이 왔다.

(종료)

――――――――――――――――――――――――――――――――――――――――

와. 루비아 양의 무릎베개. 부러운 녀석……. ㅠ_ㅠ

(*1) 라비린토스
―> 그리스 신화에 등장. 크레타의 미노스 왕이 미노타우르스를 감금하기 위해, 다이달로스에게 명령하여 만들게 한 미궁. 그 후, 테세우스가 줄을 이용해서 들어와 미노타우르스를 죽이고, 미노스 왕의 총애를 잃게 된 다이달로스는 아들 이카루스와 함께 이 미궁에 갇히게 됩니다.

(*2) 슈뢰딩거의 고양이
―> 과학에 관심이 많은 분은 잘 알고 있는 이야기겠죠. 20세기에 들어와 양자 역학이 성립되면서 불확정성 원리에서 드러나듯이 관찰자의 관측 행위가 대상의 상태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양자 역학을 이해하기 위해 인식론의 변화가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나온 각종 논의에서 많은 패러독스가 만들어지게 되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슈뢰딩거의 고양이입니다.
자세히 하면 끝도 없으니까 간단히 정리하면, 상자 안에 독가스 장치를 하고 고양이를 넣었을 때, 시간이 지난 후 고양이는 살아 있거나 혹은 죽어 있을 것이며, 이 때 고양이의 상태는 어떤 하나의 상태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아직 두 상태가 서로 중첩되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자를 열어 확인하는 순간, 살아 있는 상태와 죽어 있는 상태가 중첩되어 있던 고양이는, 순식간에 살아 있거나 혹은 죽어 있는 두 상태 중 하나의 상태로 실체화 된다는 것이죠. 사실 이 이야기는 물리학적으로 확실히 이해하지 않으면 많은 오해를 낳게 되어(잘 모르면 상당히 해괴한 소리 같죠) 수많은 해괴한(?) 상상의 근원이 되기도 합니다.
이 SS에서 쓰인 뜻은, 포말 세계는 가능성 중의 하나로(즉, 가능한 수많은 상태 중의 하나로) 라인이 끊어지면(즉, 더 이상 관측자가 간섭하지 않으면), 존재가 고착하지 않는 세계로 전락해 버린다는(즉, 그 세계가 존재하는지 아닌지를 특정 지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지요. 루비아의 이 말은, 관측자가 관측하지 않아도 특정 지어지는 세계가 존재한다는(예를 들면 현재 세계) 말이 됩니다만, 과학적으로나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패러독스가 말하려는 것에 비추어 보나 완전히 틀린 말이에요.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말을 그냥 갖다 쓴 거에 불과합니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시고 그러려니 하시길.

(*3) 토토칼쵸
―> 이탈리아에서 프로 축구의 승패를 예상하는 도박. 우리나라의 토토복권 같은 거라고 할 수 있으려나요.

Attempt easy tasks as if they were difficult, and difficult as if they were easy; in the one case that confidence may not fall asleep, in the other that it may not be dismayed. Dressing up is inevitably a substitute for good ideas. It is no coincidence that technically inept business types are known as "suits." To find yourself jilted is a blow to your pride. Do your best to forget it and if you don't succeed, at least pretend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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